기다림과 배움
아침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중국에서 선교에 눈을 뜨다니…….” 하는 생각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품어 온 중국선교사의 삶이 15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쓸 만한 동역자가 될 때까지 나를 위해 꾸준히 일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내하심의 승리였다. ‘언제쯤이면 들어갈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을 때는 몰랐었지만, 현지에서 살면서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얼마나 필요하고 고마운 시간인지 깨닫게 되었다.
 

10년이 넘는 교회 청년 사역을 하면서 중영사전과 중국어성경을 베껴 쓰며 중어중문학과, 한국어교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선교학을 공부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준비했던 모든 것이 현장에서는 큰 혜택으로 돌아와 사역 초반이면 겪는 어려움들을 거의 건너뛸 수 있었다. 사람마다 인도하심의 순서와 장소에 차이는 있겠지만 주변의 사역자들 -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 등 가릴 것 없이-을 보면 내면세계와 영성 훈련, 언어, 인간관계, 문화 적응, 사역 경험, 전문적 기능 등의 필수과목은 거의 동일한 것 같다. 

선교 필수과목
봄날 같았던 중국에서의 지난 6년 반의 시간들은 내게 있어 사역의 시간이라기 다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며 중국에 대해 배운 교육의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내가 다시 배운 것은 선교의 동기였다. 어느 날, 현지 목사님이 “당신은 중국에 왜 왔습니까?”라고 물으셨다. 나의 대답은 당연히 “중국선교를 위해 왔습니다.”였다. 그러나 그날 나는 정말 여기에 왜 와 있는지 계속 묵상하게 되었고, 내가 하는 선교의 진정한 이유와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직 그분만이 나를 부르셨고, 내가 추구할 목표이며, 선교의 동기가 되심을 고백하였다.

자신의 사역지 혹은 자신이 품은 나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지정학적, 경제적 여러 조건에서 세계선교에 중요한 곳이라며 여기가 복음화될 때 주께서 다시 오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교제했던 현지인 자매 사역자는 간혹 선교사들이 그들만의 선교 프로젝트의 도구로서 자신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후 나는 현지인을 사역 대상으로만 보거나, 내가 직접 섬기는 사람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내가 100% ‘나’이기를, 그 ‘나’는 ‘작은 예수’이기를 더 원하신다. 최선을 다해 주께서 보내주신 현지인을 돌보고, 룸메이트와 학우들도 사랑하고, 동역자들을 진심으로 돕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태도로 대할 때 사역을 통한 자기 자랑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 

두 번째로 내가 배운 것은 ‘받는 선교’였다. 현지 지체들과 관계가 깊어지면서 내가 ‘주는 자’의 역할만 하려고 하면 올바른 관계의 선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지체들은 그들의 다양한 필요를 사역자가 채워주었을 때 감격하고 성장하게 되지만, 내가 겸손히 현지 공동체(지역사회와 신앙공동체 둘 다)의 문화와 내용을 배우며 그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게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내가 배우고 자란 기독교 문화와 다른 형식의 예배와 나눔의 방식, 서로를 대하는 의사소통의 방식을 보고 배우면서 나의 문화나 사고방식과 충돌하고 깨어지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것은 선교에 꼭 필요한 단계로 이 때 선교사의 본색(?)이 드러난다. 과연 무엇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가치인지 고민하게 되고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선택하게 된다.

어떤 분들은 중국인들이 예의가 없다거나 형식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며 한국식으로 고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진리는 다면체와 같다고 생각한다. 각 문화를 통해 드러내 보이는 진리의 새로운 면을 다양하게 보여주시는 것 같다. 또한 외양에 집착하지 않고, 나이와 직위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현지 지체들의 모습은 내게 있어 직분이라는 권위를 벗어나 진실한 성품으로 사역할 수 있는 좋은 교육의 장이 되었다.

한 번 친구가 되면 끝없이 사랑하는 태도 역시 내가 배워야 할 내용이었다. 사역한 지 4년 째 되던 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지체들이 돌아가며 시간마다 와서 나를 돌봐주었다. 아파서 말도 못하는 나에게 성경을 낭독해주고, 얼굴과 발을 씻겨주고, 좀 나아졌을 때는 부축해서 산책하며 교제하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들을 통해 나를 위로하시는 것을 경험했고, ‘앞으로 누군가를 돕고 섬긴다면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필요를 채우는 도움의 교류뿐만 아니라 사역에서 현지 지체의 리더십 아래 들어가 순종하는 것도 선교사가 꼭 경험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선교사가 공동체 안에서 세워진 권위에 따라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현지 공동체만이 가진 독특한 은사가 나타나고, 주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된다.

중국을 떠나오기 직전까지 외지에서 그 도시로 들어온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에서 영어와 음악교육 봉사를 했다. 한 달 동안 성도들이 직접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설비를 하며 학생들을 위한 교실을 만들었다. 교육비용을 마련하는 모든 과정은 현지 지도자와 성도들의 몫이었다. 전체적인 진행을 책임 진 지도자의 영성과 지혜도 배울 수 있었고, 물질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한국, 새로운 배움의 자리
성육신으로 타문화선교의 기초를 놓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그 문화 속에 온전히 젖어 들어가셨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시고 또 우리와 모든 것을 함께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주는 선교와 함께 받는 선교를 할 때, 선교사의 삶은 하나님의 선교를 경험하고 배우는 길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주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 땅으로 불러주시고 함께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 다시 한국에서 새로운 커리큘럼으로 이끄실 예수님을 기대한다. 

밝은뜰 | 전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