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너무 잘 아시는 주님
23살, 헌신이, 선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선교 집회에 참석했다가 선교에 헌신하기로 작정하는 무리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날의 헌신은 까마득히 잊은 채 3년을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한 선교단체에서 6개월 동안 훈련을 받으면서 헌신했던 그날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그 훈련을 계기로 여름, 겨울 두 차례 중국 땅으로 단기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헌신했던 나에게 하나님은 중국 땅을 선물로 준비하셨다.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며 처음으로 밟은 그 땅은 내가 머릿속에 그려오고 책에서 읽어왔던 중국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많은 가능성과 인력, 자원을 가진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큰 나라, 중국. 그렇게 중국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나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겨우 2개월 지내다 온 중국이 마치 내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곧 중국으로 돌아가겠구나.” 하고 내뱉어버렸다.

그렇게 또 다시 3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중국 땅을 향한 부담감과 그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서 새로운 땅으로 간다는 것이 나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망설임 속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내게 선교사가 아닌 유학생으로 중국 땅을 밟을 기회를 주셨다. 직장인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때면 종종 “대학생 때가 제일 마음 편하고 좋았지” 라는 말을 한다. 직장인에서 유학생으로 간 중국은 나에게 좋은 쉼의 시간을 주었다. 여유롭게 중국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만약 내가 선교사로 바로 중국 땅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면 중국 땅의 좋은 것들을 누리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먼저 보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렇게 되었다면 지금쯤 중국 땅을 떠나 제3의 국가나 한국에 있을 확률이 더 클 것 같다. 그런 나의 기질을 잘 아시는 하나님의 배려로 선교사로서의 내 삶은 매일매일이 기쁨과 감사로 넘쳤다.

나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땅
유학생활 덕분에 나의 선교사로의 삶은 여유로웠다. 또한 현지에서 파송교회를 만나고 현지에 계신 분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비록 다른 사역자들에 비해 순조롭게 시작된 선교사의 길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별히 유학생 시절에는 몰랐던 보안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파출소를 일 년에 두 세 번은 출입해야 했다. 갈 때마다 혹시 신분이 노출될까봐 늘 불안했다. 모든 신고 절차를 위해 걸리는 20-30분의 시간이 어찌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지. 선교사로 살아가는 서러움 아닌 서러움을 경험하면서 중국에서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 긴장감이 너무 싫었다. 파출소나 영사관에 다녀오는 날이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간절하게 드는지. ‘내가 왜 이 땅에 왔지?? 하필 왜 나를 이 땅으로 부르셨지?’ 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불평과 원망으로 쏟아놓고 하염없이 울다보면 하나님은 늘 나를 안고 계셨다. 내가 중국 땅에 와서 얼마나 많은 축복과 사랑을 받고 있는지 고백하게 하셨다.

이런 연약한 나에게 하나님은 주변에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또 내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주셨다. 함께 사역하는 이들이 어찌나 성숙하고 겸손한지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 생각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중국 땅으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나에게 허락하실 축복들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다. 중국에서 동역하는 현지 분들과 학생들은 자주 나에게 “중국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오히려 중국 땅에 와서 더 많은 축복들을 누리고 있다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동시에 내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이들을 잘 섬기고 있는가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렇게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시는 하나님과 동역자들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다.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
중국에서 7년 동안 경험한 것들이 있어서 웬만한 먹거리, 교통, 위생 상태는 잘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재래식화장실보다 더 불편하고 냄새가 심한 게 고장 난 수세식 화장실임은 미처 몰랐다. 공동체 생활 전에 긴급기도를 가장 많이 하던 곳이 화장실이었는데, 화장실 때문에 이렇게까지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으로 내게 “변비의 은혜”를 주셨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주말마다 외출이 가능했기에 일주일에 한번 해소하면서 변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공동체 생활의 큰 짐을 하나 덜 수 있었다.

나는 주로 훈련 사역을 한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서의 길을 준비하게 한다. 훈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다양하다. 연령뿐만 아니라 거주지, 성별, 직업 등이 저마다 다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울고 웃으며 훈련의 시간을 보낸다. 훈련을 받기 위해 처음 기차를 타본 사람도 있고, 맥도날드나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처음 본 사람도 있다. 60시간이 넘는 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훈련을 받겠다는 의지를 딱딱한 의자만큼이나 단단하게 다지며 온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불평불만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 보게 되었다. 또한 선교사로 중국 땅에 와 있지만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참 많았던 나는 그들을 훈련시키는 가운데 여전히 내 안에 그들을 나보다 낮게 여기는 마음이 있음을 보았다. 참 부끄러웠다. 그들과의 공동체 생활은 불편하고 힘든 것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묵상과 예배, 강의, 소그룹 모임 등 모든 시간들을 통해서 내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 은혜는 너무나도 커서 모든 어려움들을 이기고 남았다. 이렇게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겸손 쪽에 가까이 가게 되었다.

훈련받는 학생들의 사고는 하루하루 지나면서 세상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다.  비전이 생기고 삶의 목적들을 찾아가며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생겼다. 그런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내가 중국 땅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함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고백하게 된다.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함께 사역하는 현지 사역자들의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거울 속에 나의 속마음을 비춰보는 것처럼 벌거벗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중국에서 보내고 있는 시간들 가운데 나를 통해 중국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 중국인들을 통해 나를 훈련시키시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보게 된다.

중국 땅을 사용하소서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오늘날까지 중국은 무서울 정도로 과속성장을 하고 있다. 개인 소유가 인정되고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면서 기독교에도 많은 성장이 있었다. 특별히 가정교회들이 많이 늘어났고 교인수도 6천만 명에서 8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선교지로 나가기 위해 훈련 중에 있고, 어떤 이들은 이미 선교지에 나가있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중국인들의 겸손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들을 보며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들끼리도 자주 이런 얘기들을 하곤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중국 땅을 바꿔 가시고 계시는 것 같아.” 유일하게 모든 나라에서 환영받는 사람이 중국 사람들이다. 벌써 우리나라만 해도 못 들어가는 나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특별히 무슬림지역은 더더욱 들어가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환영받고 있다. 1900년대 한국 땅에 불었던 부흥의 바람이 이제 중국 땅에 불고 있는 것 같다. 삼자교회 지도자들이 종교국의 눈치를 보며 국가가 원하는 교회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로 변해가고 있다. 성경공부 모임이 생겨나고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정 교회와 협력하는 교회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길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교회들이 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중국의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을 만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중국인선교사를 쉽게 만나보게 될 날을 기대한다.

여기에 글을 쓰면서 내가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축복과 사랑을 받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와서 좌충우돌 겪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중국에 온 첫날 동네 작은 슈퍼에 계란을 사러 갔는데 진열대에 계란이 없었다. 주인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중국어로 계란을 몰라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몸으로 닭의 날개 짓을 하며 “꼬끼오” 소리를 냈더니 주인과 주인집 아들이 한참 웃고서는 계란이 없다고 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그 슈퍼에 단골손님이 되었고,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단어들을 한마디씩 슈퍼에서 사용하면 “너 중국말 진짜 많이 늘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만원버스에서 땀 냄새와 입 냄새 등으로 시달릴 때, 소매치기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를 회피하면서 들었던 죄책감, 석회질이 많은 중국물이 몸에 맞지 않아 생긴 피부병, 길거리 음식을 먹고 장염이 걸려 고생한 일, 이제는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일상이 되었다.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제 나는 한국음식보다 중국음식이 더 입에 맞고, 한국생활보다 중국생활이 훨씬 더 안정적이고 여유롭기만 하다.





이은아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