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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1 통권 169호     필자 : 박애양 프린트   이메일 
화이부동(和而不同)

《논어》 〈자로〉편에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빽빽한 일정 속에 겨우 빼낸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그동안 미뤄두었던 혼자 영화보기에 투자했다. 영화 내용은 리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큰 감동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영화 속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되어 울고 웃고 아쉬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묵직해진 눈꺼풀이 부담스러워 하늘을 올려다보다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영화의 어떤 장면과 대화에 공감한 것이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영화는 다양한 플롯과 장치를 통해 공감대를 구성하고 감동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등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타인의 감정 상태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공감 행위가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당겨주는 순기능을 한다. 현대 사회를 공감이 결여된 사회라고 한다.

삶이 팍팍해져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졌다는 말도 되지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만연한다는 의미도 되겠다. 현재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감’의 역기능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SNS 인기에 중독되어 ‘좋아요’를 구걸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모 실시간 인터넷방송에서는 별풍선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하는 일까지도 생겨나고 있다. 공감에 목마른 이들이 가상공간에서 ‘만들어진’ 공감이라도 기꺼이 구매하고 소비한다. 또 한편에서는 여론을 조장하여 ‘왜곡된’ 공감을 얻어내려는 불순한 시도도 자행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감동하고 특정 뉴스에 공분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내용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공감이 진정 사회구성원 전체의 의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가 사람의 취향이나 개인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처럼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해야 창의의 발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 하위 집단마다 추구하는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집단구성원 사이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내용이라도 다른 집단에서는 수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심화되면 반목과 갈등의 요인이 된다. 집단구성원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만 집단의 이익에 저해되는 일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에 막대한 힘을 갖는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공감하여 생긴 힘, 공감력이다. 공감력은 집단 간 융합과 화합을 이루는 중요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갈등과 반목을 극대화하는 부정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공감하는 내용에 따라 공감력은 긍정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도 있고 부정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和而不同”의 ‘和’는 서로 뜻이 맞아 좋은 상태를 말한다. 조화로운 상태, 긍정의 공감이다.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할 때 공감력이 증가하고 그 힘은 앞으로 나아가는 긍정 에너지원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대로 “同而不和”의 ‘同’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좇아 부화뇌동(附和雷同)함을 말한다. 화이부동과 동이불화는 전적으로 우리가 어디에 공감하는가에 달려있다. ‘화이부동’할 것인지, ‘동이불화’할 것인지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박애양 | 중문학 박사
사진 | 바이두
 

필자 : 박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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