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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 통권 160호     필자 : 박애양 프린트   이메일 
유시유종(有始有终)

 

 

《논어》〈자장〉편에 있는 이 말은 “有始有卒者,其惟圣人乎! (유시유졸자 기유성인호: 처음과 끝이 있는 사람은 아마 성인일 것이오!)”에서 나온 것으로 ‘有始有终’은 처음도 있고 끝도 있다는 뜻이다. 현대에 와서 이 말은 시작한 일은 끝까지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곳 제남에 첫눈이 내렸다. 원래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 눈이 내려도 금방 녹기 때문에 겨울이 되어도 흰 눈이 주는 한겨울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젯밤 내린 눈은 제법 쌓여 갓 떨어진 낙엽과 어울려 교정(校庭)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구두코까지 푹 빠질 정도로 수북하게 쌓인 눈이 뽀드득뽀드득 밟는 소리조차 반갑다. 숙소에서 학교까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금방 닿을 거리지만 오늘은 에둘러 걷고 싶었다. 한쪽엔 벌써 부지런한 이들의 빗질로 밤새 수고로이 내린 눈이 저만큼 비켜 쌓여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쨍’한 겨울 날씨에 언뜻 오늘 아침엔 ‘晨读(chéndú 새벽 공부)하는 아이들이 없겠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출근길이면 교정 곳곳에서 어김없이 듣게 되는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게으른 이의 귀를 배부르게 해주고 마음을 뿌듯하게 해주던 터라 오늘같이 추운 날 눈 쌓인 교정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괜한 생각이 들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낮고 오래된 건물과 앙상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막 떠오르는 해를 등진 채 나무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탄성과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눈 쌓인 나무 밑에서 성독(声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견스럽다는 생각도 잠시, 만감이 교차하면서 갑자기 부러움과 질투로 머리가 뜨거워졌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전무후무한 속도로 글로벌 G20 국가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동안 중국은 개혁개방 30여년 만에 G2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를 긴장시켰다. 그간 우리는 메이드 인 차이나를 짝퉁의 대명사로 치부했고 이들의 ‘실력’을 ‘실수’로 과소평가해왔다. 그러나 이미 한국 충전기 시장에 안착한 샤오미는 ‘카피캣’이라는 오명에도 굴하지 않고 전 세계 IT 시장에 싸고 좋은 제품을 보급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얼마 전 11월 11일 ‘光棍节(guānggùn jié 일명 솔로데이)’에 912억 위안(한화 약 16조5천억) 판매라는 신기록을 달성한 중국의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阿里巴巴)가 세계적인 기업인 아마존을 위협할 다크호스로 약진하고 있다. 이들은 따로 혹은 같이 협력과 상생으로 세계 경제 지도를 바꾸어 가고 있으며 교정의 나무 아래서 제2, 제3의 샤오미와 알리바바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활동하고 성장해 갈 수 있는 중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 생태계 개척에 앞장서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들이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았고 과감한 혁신을 실천할 줄 알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맞다. 그러나 이들은 무엇보다 현재의 것을 인정하고 그 틀 위에 새로운 미래를 그려낼 줄 알았다. 이들의 꾸준한 준비 과정이 없었다면 이들의 창의와 혁신은 사상누각에 불과했을 것이다. 5천 년 중국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 한 단계 한 단계 유시유종을 거듭하며 과거의 시간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어에 ‘下功夫(xià gōng‧fu)’라는 말이 있는데,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정신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동사 ‘下’는 우리말 ‘쓰다’의 의미로 어떤 목적을 위해 무엇인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쓰임은 사라지거나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이다. 쌓이는 것이다.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고 힘을 쓰면 땀과 노력의 화학작용을 거쳐 실력과 능력으로 쌓여진다는 것이다.

눈 내린 추운 교정에서 형설지공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중국 학생들의 열정을 목도하면서 앞으로 중국은 몇 번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만 보겠는가. 지금이라도 우리 스스로에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한다면 아픈 우리 과거를 기억하며 두려움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제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신문과 방송에선 올해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떠올리며 한 해를 반추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끝까지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한 해를 가장 아름답게 정리하는 것이리라. 지난 1월 시작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유시유종의 차분한 12월이 되길 바란다.






박애양 | 중문학 박사
 

필자 : 박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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