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심방의 추억 지난 97년 9월 평강교회에 외국인전도부가 생긴 이후로 벌써 7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면서 의욕만 가지고 뛰었던 때로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선교에 대해서 눈을 뜨면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경험하며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과 마음을 경험할 수 있었던 감사의 시간이었다.
초기 평강교회 외국인 전도부는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다 한 팀으로 활동을 하였다. 토요일에는 다같이 승합차를 타고 외국인들이 근무하는 공장과 숙소를 돌아다녔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주일에는 영어로만 통역을 하는 예배를 드렸다. 차츰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 때는 19개국의 사람들이 모인 적도 있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모이자 외국인 전도부는 역할 분담을 시작하였다. 나라별 파트너를 정하여 나라별 시간을 갖고 심방도 나라별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거의 한 명이 한 나라를 맡는 정도였으니까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영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외국어였다. 말이 안 되면 서툰 한국어와 만국공용어인 바디 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주 토요일 그들의 공장과 숙소를 찾아가 밤늦도록 그들의 대화상대자가 되어주는 것과 또 몸이 아프다든지, 직장을 잃었다든지, 월급을 못 받았다든지 하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는 긍휼사역으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었다.
이 일은 7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매주 토요일 나라별로 팀을 이루어 밤늦도록 의정부, 덕정리, 덕계리, 율정리, 가래비, 은현면, 백석, 가산면, 송우리, 포천 등에 있는 우리의 외국인 친구들을 찾아 밤길을 헤매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외국인 전도부 봉사자 중에 한 분은 자신의 소신으로 운전도 안하고 운전면허도 따지 않았는데 외국인 전도부 활동을 하면서 운전할 사람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면허를 따서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 운전을 하면서 외국인들을 찾아가고 있다. ]
어떤 때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들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몇 년을 변함없이 우리를 찾아오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친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언어사역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면서 외국인전도부에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사역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고 있었던 긍휼사역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인데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의사전달이 필수적이었고 우리와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는 분들을 보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현지인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사역자를 구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연결되어졌다. 태국에 비젼을 가지고 있었던 이교욱교수님(ACTS 선교학과 교수)과 이문기 전도사님이 연결되었고 그 분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포기하고 평강교회에서 태국인을 섬기는 일을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많아지고 있었던 인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던 중 인도에서 사역하던 조나단 선교사님이 신학공부를 위해 한국에 들어오게 되어 만나서 대화하던 중 이 일에 공감하고 자신을 후원해 주던 교회의 요청도 뿌리친 채 평강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다. 구소련권 사람들을 위해서는 소련선교회를 통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러시아어 통역을 할 수 있는 러시아 선교사님의 딸이 연결되었고, 몽골 사람들을 위해서는 몽골 선교사님의 소개로 한국에 유학 온 오르나라는 몽골자매와 연결되었고,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던 중국인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했을 때는 마침내 중국에 7년 동안 유학을 다녀온 송현옥 전도사님이 2000년도부터 이 사역에 합류하게 되었다. 송전도사님은 2003년까지 사역하다가 사임하고 남편과 함께 중국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조선족으로 중국에서 유학을 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혜영 전도사님이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김혜영 전도사님은 정확한 중국어와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중국인 사역을 한 단계 올려놓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필리핀 사역자를 구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한 끝에 서전덕 전도사님이 사역에 합류하였고 2003년도부터는 양동목 전도사님이 이어 받아 필리핀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의 언어로 정확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역자를 구할 수 없게 된 다른 나라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나씩 하나씩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이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 속에 사역을 중단하였고, 베트남과,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와 나이지리아 등이 같은 이유로 사역을 중단하였다.
무료진료활동 처음 재한 외국인 선교사역을 시작했을 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서 교회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매주 토요일 심방을 가보면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다가 힘든 일을 종일해야 하는 여건, 게다가 야간 잔업이나 철야근무를 하면 무쇠라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에 지쳐 있는 외국인들이 피로를 호소해오면 그들에게 영양제라도 한 병 맞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그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의약분업 때문에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영양제 주사를 놓는 것도 불법이었기 때문에 합법적인 길을 모색했지만 별다른 묘안이 없었다.
교회 안에서 해결하기 어려우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외부 단체를 찾아보기로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중 서울 누가회라는 의료선교단체를 소개받게 되었다. 우리의 형편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얼마 후 우리 교회에서 매월 1회씩 무료진료 활동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서울 누가회에서도 서울역에서 노숙자 진료를 하다가 그 사역을 중단하고 다른 사역을 찾던 중이었는데 우리 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진료에 대한 제의가 오니까 곧 바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었다. 첫 진료가 시작된 것이 99년 10월이었고 지금까지 매월 2째 주일에 무료진료 활동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의사 외에는 아무것도 갖추어진 것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원봉사자로서 간호사들과 물리치료사들, 약사, 한의사 등이 속속 합류하게 되면서 조금씩 의료 진료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의료 장비면에서도 글로벨케어를 비롯해서 여러 기관으로부터 약품을 지원받았고 간단한 물리치료 장비와 혈압계 등 기초 장비를 구입하면서 진료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000년부터는 국민일보에서 이동진료차량을 지원받아 치과진료 및 각종 검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방사선사 선교회에서 방사선 차량을 지원하면서 좀 더 체계적인 의료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서 일하고 계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비전, 즉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영양제라도 하나 맞게 해 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주시고, 장비를 보내주셔서 외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혜택을 해 줄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가진 것만 생각하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 일을 하셨음을 고백할 뿐이다.
장홍해 씨의 죽음 지난해까지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MBC 방송의 “느낌표”라는 프로에 “아시아 아시아”라는 코너가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나라별로 한명씩 선정해서 그들의 가족을 만나게 해 주는 프로이다. 이 프로를 보면서 TV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인권이 있고 가족이 있으며 아프면 치료 받아야 하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은 이 프로에 중병에 걸려있는 인도사람이 나온 적이 있었다.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며 병상에 있다가 가족을 미처 만나기도 전에 사망해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애통하게 했던 일이다.
2001년 5월에 평강교회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 중국에서 온 이제 30대 중반에 불과한 장홍해라는 사람이 전격성 간염에 걸려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증상인 줄 알았는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의료진의 노력도 헛되이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쓸쓸히 눈을 감은 것이다. 많은 봉사자들이 여러 날 동안 병원을 오가면서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기도한 보람도 없이 사망한 것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상심하였다. 낙심한 가운데 중국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니 며칠 후에 부인과 숙부가 한국에 나왔다. 그들과 함께 병원과 대사관을 오가며 수속을 밟고 병원에서 시신을 인수해 화장터에서 화장하여 중국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 그 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부인과 숙부가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워하면서 당신들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돌아가서 꼭 예수를 믿겠다고 다짐하고 돌아갔었다.
작년 여름에 중국에 단기선교를 가서 천진에 사는 장홍해씨의 집에 가서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만났다. 그 분들은 우리 일행을 너무나 고마워하며 반가워하였다. 우리는 함께 장홍해씨의 일을 이야기하며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또 그 부모님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분들은 눈물을 흘리며 온 가족이 꼭 예수를 믿겠다고 다짐하며 집안에 있는 부적을 다 불태워 버리는 결단을 하였다. 비록 장홍해씨는 죽었지만 그로 인하여 온 가족이 다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작은 도움도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려울 때 작은 도움을 베푸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고 그들이 마음을 열 때 복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기선교 외국인 노동자 선교를 시작하는 초창기에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사역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주안장로교회에서 외국인 사역을 한 경험이 있었던 집사님 한 분 밖에는 없는 형편이었고 다른 모든 사람은 처음으로 이 사역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외국인 집회가 마치고 외국인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한국인 파트너들끼리 모여서 저녁 6시나 7시까지 열띤 회의를 매주 진행했던 것은 회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매번 새롭게 부딪히는 문제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2000년 여름에 평강교회에서는 처음으로 태국단기선교를 가기로 준비하였다. 태국을 섬기고 있는 파트너들에게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태국이 어떤 나라인지 직접 체험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8명이 태국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외국인 전도부는 단기선교가 외국인 선교에 있어서 사역을 발전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되었다. 나라별로 단기선교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2002년 1월에 제1차 인도단기선교, 2002년 8월에 제1차 중국단기선교, 2003년 8월에 제2차 중국단기선교, 2004년 1월에 제1차 필리핀 단기선교를 다녀왔고 2004년 8월에 제 2회 인도단기선교를 다녀오게 되었다.
평강교회 외국인전도부에서 가는 단기선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단기선교를 가는 나라의 사람들과 이미 많은 만남을 가지고 그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에 와 있는 노동자들의 가족들을 찾아가 만남으로 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회를 거듭할수록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제 1차 단기선교 때에는 교회에 출석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단기선교 코스로 정하고 자기 집에 방문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산동성의 위해, 청도, 천진을 주 방문지로 하여 신청을 받고 그들의 공장과 숙소를 돌며 인터뷰를 받고 그들이 본국에 보내는 선물을 들고 각 가정을 방문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시간에 쫓겨 깊이 있게 그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중국에 있는 가족들은 설레임 가운데 기다리며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아주고 극진히 대접하였다. 우리는 가져온 인터뷰가 녹화된 비디오를 보여주고 선물을 전달하며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접근하였다. 우리가 간 지역은 거의 교회가 없는 지역으로서 복음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제 2차 단기선교 때에는 한국에서 믿고 본국에 돌아간 사람들을 방문해서 그들이 신앙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도록 격려하고 돕는 목적과 자신의 가정에 방문해서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가정을 선별해서 방문계획을 마련했다. 한 예로 한국에서 세례를 받고 중국에 돌아간 왕 형제를 위해에서 만나 그의 신앙을 격려하고 또한 그의 부인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2일간 계속 복음을 전한 결과 예수를 믿기로 결신하게 되었고 바로 세례식을 거행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천진에서도 앞에서 쓴 장홍해 사건으로 만난 부인과 숙부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확실히 결신한 것을 확인하고 세례를 베풀고 함께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단기선교의 모델은 앞으로 한국에서 신앙을 가진 외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격려하여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내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꼭 필요한 사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단기선교 일정동안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와 협력을 해서 함께 동행하도록 했는데 중국인 사역자와 함께 방문함으로 외국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중국인의 입장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한 것이 방문사역에 더 큰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 한국에서 돌보기 어려운 결신자들을 중국 내의 교회 지도자들이 파악하고 간접적으로나마 도울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하게 되었다는데 단기선교의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결신자들 외국인 전도부의 비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땅 끝인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회심케 하여 복음으로 무장시켜 다시 본국에 들어갈 때 본인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이웃과 지역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로 훈련시키는 것이다. 전문 사역자는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고, 여러 가지 봉사와 도움을 주는 것도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 했던 일들이었다. 외국인 전도부는 영혼구원의 목적을 위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소그룹 성경공부를 계속해 왔다. 그 결과 각 나라별로 결신자들이 생기게 되었고 98년 가을부터 한국인들과 같이 학습 및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중국인만으로 보면 학습을 받은 사람은 57명, 세례를 받은 사람은 38명에 이른다.
장애물 경주 재한 외국인 선교사역은 장애물 경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물을 넘으면 바로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나고 그것을 넘고 나면 또 다른 장애물이 이어지는 장애물 경주.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계속해서 장애물을 넘다 보면 마침내는 결승점이 우리 앞에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재한외국인 선교사역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첫째 섬기는 분들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짐이 있다. 매주 토요일 밤늦게까지 심방을 하고 주일 오전부터 차량 수송에 신경을 쓰고 예배 준비와 정리를 하고 식사준비와 정리 및 나라별 활동 저녁 늦게까지 각종 활동과 회의를 하고 나면 녹초가 되기 일쑤이다. 절대적으로 적은 인원을 가지고 일을 감당하려다 보니 한 사람이 몇 가지의 일들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동역자들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둘째 외국인 선교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의 말들이 들려올 때이다. 외국인들은 불결하다는 말에서부터 외국인들 때문에 한국인들이 불편하고 장소사용도 어려워졌다는 말들, 외국인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아깝다는 말을 들으면 온 몸에 힘이 빠진다. 하나님이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셋째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때이다.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고 잘 훈련을 받아 자신의 믿음을 지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드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다. 힘을 다해 그들을 섬기고 도와주고 또 복음을 전해도 변화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 낙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게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다. 많은 장애물을 건너왔지만 우리의 눈앞에는 아직도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분명히 결승점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당신의 기도가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 선교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복음 전파의 절호의 기회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언제 외국인들이 이토록 많이 들어온 적이 있었던가? 또 이토록 다양한 인종들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한국을 배우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한국교회는 이 중요한 일에 쓰임을 받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재한 외국인 선교사역을 맡아오면서 갖는 분명한 확신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정말 기뻐하시고 원하신다는 것이다. 재정이 필요하면 재정을 주셨고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주셨다. 안에서 안 되면 밖에서 보내서라도 이 일을 하게 하셨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 뒤에는 늘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다. 우리는 하나를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열을 하셨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급하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황이 완전히 익어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과 같다. 이들을 추수할 일꾼이 필요하다. 그 일꾼을 보내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그 기도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여러분 자신이 그 부르심에 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 나는 아니라는 생각에서 주님의 마음, 주님의 눈으로 희어져 추수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보도록 하자.
황성훈 | 평강교회 외국인사역부 담당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