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은 시골 고향에서 20년을 살다가, 1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지은이 량훙(梁鴻)은 인문학자이자 소설가입니다. 지은이는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깊은 회의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평소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모든 것들이 허구가 아니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즉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면서 일말의 부끄러움까지도 느끼게 됩니다. 급기야 자기 삶이 ‘가짜 삶’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살아오는 동안 항상 고향에 애착이 있던 작가는 고향에서 떠나있던 10년 세월이 그녀의 삶에서 가장 깊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량좡(梁庄)이란 마을 이름은 실제 지역명이 아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마을 이름이라고 되어있지만, 이름이 어떠하든 마을을 묘사한 것은 허구가 아닙니다. “량좡과 수백만의 량좡이 중국의 질병과 슬픔의 중심지로 점점 더 많이 떠오르면서 그들을 외면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작가가 그들(농민들)을 돕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작가는 이런 다짐을 합니다. “농촌으로, 내 고향으로 돌아가 중국의 역사적, 문화적 변화 속에서 현대 농촌이 차지하는 위치를 온전한 시각으로 조사, 분석, 검토하고, 농촌의 본질적인 삶의 모습을 폭넓게 보여주고 싶다” 아울러 작가의 눈을 통해 농촌의 과거와 현재, 변화와 불변의 모습, 농촌이 겪은 기쁨과 고통, 견뎌낸 슬픔이 역사의 지반 위에 서서히 드러나기를 바랐습니다.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중국의 현대 정치 및 경제 개혁, 근대성 추구와 중국 농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할까? 농촌은 어떻게 쇠퇴하고, 재생되고, 흩어지고, 재편되는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래, 현대성과 연결된 것은 무엇이며, 한 번 파괴되면 다시는 없을 것이지만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2008년과 2009년 여름과 겨울 방학 동안 중부 평원에 있는 작고 외지며 가난한 마을 량좡으로 돌아와 거의 5개월 동안 그곳에서 살게 됩니다. 매일 마을 어르신, 중장년층, 청소년들과 함께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마을의 성씨 구성, 씨족관계, 가족 구성원, 주거 현황, 개인 목적지, 결혼과 출산 등에 대한 사회학적, 인류학적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발과 눈으로 마을의 땅과 나무, 연못, 강을 측량하고 옛 친구들과 선배들, 그리고 이미 떠난 친척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검은 진흙탕 예상되는 부분이었지만, 많은 것들이 (매우) 안 좋게 변해있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눈에 띄게 변한 모습(불과 10년 만에)은 마을 곳곳이 폐허로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맑았던 연못과 시냇물은 흙탕물로 변해 있었습니다. 오리가 헤엄치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사람들이 빨래하고 뱀장어가 진흙 속에 파묻혀 있었지만 물은 더럽지 않았는데, 지금은 악취만 풍기고 있었습니다. 강은 무분별한 모래 채취를 한 후 생긴 수많은 깊은 웅덩이 때문에, 그나마 물이 남아 있는 강에선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검은색의 흙탕물, 검은색의 죽음, 검은색의 냄새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강변에 늘어서 있던 울창한 나무들도 사라졌습니다. 강은 점점 물이 줄어들어 마른 바닥만 보인 곳이 많았고, 제방이 넓고 강이 깊고 고요한 곳은 멀리서 보면 검은 흐름이 오히려 엄숙하고 차분해 보이고 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국 땅에서 오염되지 않은 강을 몇 개나 찾을 수 있을까? 푸른 하늘을 반사할 수 있는 맑은 물은 무인지역에 가야만 찾을 수 있으며, 일단 발견되면 그 물은 ‘죽음’의 날로부터 멀지 않게 된다.”
유수아동(留守兒童) 사람이 살아가야 할 주변 환경 못지않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뀐 것은 사람입니다. 순간에 일어난 상황이 아니겠지만, 그리 긴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닙니다. 우선 황폐해져 가는 시골에선 돈이 될 만한 것도, 돈이 될 만한 일거리도 없다 보니 청년이나 젊은 부부들은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로 향합니다. 대부분은 도시에서 농민공으로 육체노동에 종사합니다. 문제는 시골에 남겨지는 아이들입니다. 조부모들이 그들을 돌봅니다. 마을 대부분은 모두 남겨진 아이들과 남겨진 노인들입니다. 50~70대가 손자를 키웁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돈을 보내지 않아 먹고 살기 위해 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 부모도 있습니다. 어떤 집은 친손주, 외손주 합해서 5~6명을 키우는 집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작가의 고향에선 운영상의 이유로 초등학교마저 없어졌습니다. 학교는 돼지우리(실제 돈사(豚舍))로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읍내까지 학교를 오갑니다. 집에 오면 게임하고 인터넷 보고,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읍내에 가서 만화책을 빌려와 집에서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만화책만 들여다봅니다. 청소년 범죄가 급증합니다. 마을에선 고등학생이 같은 마을 82세 노파를 강간 살해한 사건도 발생합니다. 청년들 보기가 힘듭니다. “요즘 외지에 나가 부자가 되는 예는 있지만 아이들 교육은 큰 문제야. 농촌의 교육 수준이 너무 낮아. 부모들은 모두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자기 자식을 돌보지 않아.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먹이고 입히고 여기에 더해 숙제도 도와줘야 한다니까. 그런데 애들 수학 문제를 조부모가 어떻게 알겠어. 아무리 좋은 사회라도 병폐가 있어. 이것이 바로 병폐지.”
기독교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자 ‘‘신도덕’의 우려‘라는 제목을 붙인 장에는 기독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읽어봤습니다. 우선 작가는 각 장 서두에 공산당 정부에서 관보 형식으로 발표하는 내용을 실었는데, ‘기독교’ 항목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2006년까지 랑현은 151개의 기독교 교회와 여러 곳의 간이 행사장을 개방했다. 랑현에는 장로 3명, 전도사 184명, 신학교 졸업생 3명, 신도 4만 명이 있다. 기독교의 각 교당은 5~7명의 교무팀을 만들어 규정 규칙과 애국공약을 제정하였고 종교 활동은 정상이다.” 《랑현 현지. 종교》 신도 수가 4만 명이면 많은 편이지요? 위에서 ‘애국공약(愛國公約)’이라는 것은 1950년대 전반, 주민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생산을 증가시키며 애국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규약입니다. 중국은 기독교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중국의 현실에 맞게 활동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책에 그려지는 기독교인의 모습이 그리 마음 편치 않습니다. 작가의 먼 친척이기도 한 밍(明) 아저씨를 인터뷰합니다. 밍 아저씨는 꽤 오래 군 생활을 하고 전역했습니다. 전역 후 운송업자로 일했는데, 아내가 기독교 신자가 된 후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집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운수업을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게 됩니다.
아내는 마을에 교회가 없을 때는 이 마을 저 마을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예배를 드리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려지는 교회의 모습이 우리 교계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는 집단으로 보입니다. 교회의 우두머리(목사)는 교회 전단지 인쇄비도 떼어먹을 정도로 인색합니다. 그러나 큰 집을 짓고 잘 먹고 잘삽니다. 밍 아저씨는 어리석은 신도들에게서 받아낸 헌금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신도 할머니는 교회 가는 길에 두 아이가 웅덩이에 빠져 떠 있는 것을 보고도 교회 시간에 맞추느라 그냥 지나쳤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아이는 그 할머니의 외손주들이었습니다. 밍 아저씨가 집수리하느라 일손이 부족한 데, 아내는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가르쳐줘야 한다고 집을 비웁니다. 결국 참다못해 부부가 이혼했지만, 이혼했는데도 아내는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있지만, 이만 줄입니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가정과 교회의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원하고 계시겠지요.
이 책이 첫 출간 되었을 때는, 14년 전 2010년 10월입니다. 초판본에는 작가의 고향인 ‘량좡’에 대한 귀향 기록만을 바탕으로 했지만, 점차 사회학적 ‘현장조사’, ‘인류학적 구술사’ 등의 관점이 추가됩니다. 책 제목이 ‘중국 속의 량좡 마을’이 아니고 《량좡 마을 속의 중국》이라는 점을 주목합니다. 아울러 책에 실린 중국 농촌의 현실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점점 더 벌어지는 농촌과 도시의 격차와 빈집과 노인인구만 늘어나는 농촌의 상황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덧붙여 이 책은 중국에서 ‘논픽션’, ‘르포 문학’의 효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
♣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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