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영화대학(北京电影学院) 출신인 황지(黄骥,1984- ) 감독은 일본인 남편 오츠카 류지(大冢龙治, 1972- ) 감독과 함께 《돌로 막힌 벽(石门, Stonewalling)》을 연출하였다. 2022년 제7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한 이 영화는 2023년 제60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马奖)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편집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23년도 최고 영화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여주인공 야훙구이(姚红贵)는 2023년 제47회 홍콩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스무 살의 린썬(林森 姚红贵 분)은 항공 승무원직업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이다. 후난(湖南)성 창사(长沙)시의 여관에서 남자 친구 샤오장(小张 刘龙 분)과 동거 중 임신하게 된다. 린썬은 남자 친구와 헤어져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다. 린썬의 어머니(林母, 黄小雄 분)는 의료사고(환자 유산)에 휘말리자 린썬이 아이를 낳아서 어머니를 대신해서 배상하려고 한다.

린썬은 남자 친구 샤오장의 권유로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남자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샤오장은 린썬이 임신하자 아이를 낳게 되면 휴학해야 하고 좋은 기회들을 놓치게 되는데, 어느 것이 더 후회스러울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샤오장은 기성복 모델과 결혼식 사회자로 돈을 벌면서 해외 유학의 꿈을 좇는다. 샤오장은 린썬이 자신의 아이를 낳으려 하자 새로운 여자 친구와 유학 떠날 생각을 한다. 

린썬은 주얼리숍의 모델로 길거리에서 공주처럼 머리에 왕관을 쓰고 행인에게 미소를 짓는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부탁하는 린썬에게 주얼리숍의 점장은 난자를 팔아서 고소득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부잣집 중년 여성은 수혜자가 유학생 출신이라면서 지원 여성이 코를 성형했는지를 묻고, 치아, 키, 전공, 학력 등을 살펴보고, 지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암산 능력도 시험해 본다. 하지만 린썬은 임신하여 거부당한다.

린썬은 낙태를 바라는 남자 친구를 떠나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작은 진료소에서 산부인과를 맡고 있고, 아버지(肖子龙 분)는 한의사다. 린썬의 부모 역을 맡은 황샤오슝(黄小雄)과 샤오쯔룽(肖子龙)은 감독의 실제 부모다. 

린썬의 어머니는 사설 진료소에서 환자를 유산시켜서 배상금 50만 위안의 채무를 지게 된다. 린썬의 아버지는 아내가 빚 때문에 다단계 판매에 빠진 것이 불만이었는데, 아내는 오히려 자기 돈을 들여 진료소를 개업했다며 남편과 실랑이를 벌였다. 아버지는 평소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휘두르고 어머니는 부엌칼을 들고 대학생이 된 딸 앞에서 부부싸움을 벌였다. 

린썬은 초음파검사로 7주 정도가 되는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아이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아, 태어날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줘서 빚을 갚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딸의 말을 듣고 아이를 낳아서 남에게 줄 때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이 밀려올 것이며, 그 고통은 지금 임신으로 인한 가슴 통증과는 비할 바가 아니며 영원히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는 여주인공 고통의 실상을 상징하며 영화의 결미에서 잘 보여준다. 

린썬은 임신한 지 50여 일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유아원을 경영하는 중년 남성을 찾아가서 배상금을 아이로 갚겠다고 말했다. 린썬은 계약서를 요구했지만 상대방은 이러한 거래 자체가 위법이라며 거절하였다. 

린썬의 어머니는 불법 다단계 판매에 가담하여, 건강과 미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병도 치료한다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딸까지 끌어들이려 하였다. 빚에 허덕이는 생활을 청산하고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방관자적인 아버지, 딸의 돈까지 빌려서 빚을 갚으려는 어머니, 이들 부부는 돈 때문에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딸은 불법 거래로 발생할 육체적 금전적인 불안을 감수한다. 서글픈 현실에 노출된 가족의 모습이 안타깝다.

린썬은 자신(특히 몸)을 희생해서 남자 친구의 마음을 붙들고, 어머니에게 효도하려고 생각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은 갈수록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이를 여주인공의 가슴의 통증(젖몸살)으로 표현했다.

영화와 등장인물은 표면적으로는 모두 돈의 문제에 귀결된다. 영화는 어린 소녀에게 노출된 난자 암거래, 대리모, 아동 인신매매 등 불법과 윤리 문제를 들춰내 여성의 신체를 물질로 여기는 세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한다.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고 서열을 매기고, 질시와 편견, 매매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을 고발한다. 

린썬은 임신을 하고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다가 난자 암거래를 자원한 위구르족 여성들을 돌보게 된다. 남성 중개인은 춤과 신체 등 외모를 보고 위구르족 여성을 선택한다. 거래인들은 태생적인 유전자를 언급하며 난자 제공자의 조건으로 외모, 학력, 지능 등을 따졌다. 

창사의 한 의류숍에서 직원은 대학생 린썬에게 자신을 세일즈하면서 상품도 세일즈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이를 통해 영화는 사람을 상품처럼 여기는 세태를 우려하였다.

린썬은 대학생이면서, ‘샤오위(小雨)’라는 별명으로 난자를 판매하려 했고, 어머니의 부채를 위해서 ‘인팡(银芳)’이라는 별명으로 대리모가 되었다. 린썬은 ‘인팡’이란 이름으로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병원에서 태아 건강검사도 받는다. 영화는 하층 사회의 여성이 신분과 역할에서 겪는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들 여성은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해 불법의 주변을 맴돈다.

이 영화는 최소 2-5명의 스태프가 제작한 저예산 영화다. 부부 감독은 조명, 녹음, 촬영 등을 도왔다. 감독의 가족이 배우로 등장하고, 감독의 고향이 영화 배경이 되고, 감독의 부모가 운영하는 진료소에서도 촬영하였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현실감을 증폭시켰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린썬의 부모가 운영하는 진료소에서는 마스크를 판매하고, 영화 관련 소식을 보도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대본에는 전혀 없던 예상하지 못한 내용들을 사실 그대로 담아낸 이 장면은 마치 다큐 영화 같았다.

린썬은 아버지와 의료기 판매점에서 마스크 두 상자를 구매해서 판매하였다. 남자 친구 샤오장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서 린썬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린썬은 영어학원비를 갚겠다고 대리모를 해서 번 돈을 남자 친구에게 주었다. 남자 친구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쓰라고 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했다. 남자 친구는 새 여자 친구와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젊은 연인의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사랑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영화는 줄곧 여성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남자 친구와 함께 영어학원의 파티에 참석한 린썬이 가슴에 통증을 느껴서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찌푸린다. 임신으로 인한 가슴 통증이었다. 

린썬은 산부인과 병원에서 퇴원하여 약속 장소인 주차장에 세운 차 안에서 아이를 데려갈 중년 남자가 오길 기다렸다. 린썬은 출산으로 지친 몸을 시트에 기댄 뒤 우울하고 측은한 눈빛으로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린썬은 가슴의 통증이 더 심해져서 견디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차창을 세차게 때린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빗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아이와의 이별을 앞두고 다시 도진 참을 수 없는 가슴 통증은 아기와 젊은 엄마 둘의 고통을 대신 말해준다. 정신적인 압박감은 신체적인 고통으로 나타난다. 

린썬은 남자 친구와 통화하기 위해서 진료소 밖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가면서 통증을 완화하려고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연신 두드렸다. 다른 남성은 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내적 고통을 은유적으로 묘사하였다. 

젊은 미혼모 린썬은 임신하여 배가 불러오자 태아가 자신의 배를 차서 한참 동안 잠 못 들고 고통스러워한다. 분만을 앞두고 린썬은 젖병에 향 두 개를 꽂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기원하였다. 자신이 복이 없어서 아이를 안지도 못하니 좋은 집을 찾아가라고 빌었다. 이는 주얼리숍 점장의 어린 아들이 고층빌딩 숲 사이에 있는 옥상 풀(pool)에서 신나게 수영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21세기 젊은 여성은 여전히 전통적인 여성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자신을 박복한 엄마라고 치부하지만 자식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나길 빌었다. 하지만 버려진 자식과 젊은 엄마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린썬은 돈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2019년 중추절에 나들이를 갔다. 영화의 카메라 렌즈는 거대한 화강석의 젊고 잘생긴 마오쩌둥(毛泽东)의 조각상을 한동안 클로즈업하였다. 린썬과 부모는 창사 있는 쥐쯔저우(橘子洲) 궁지루(拱极楼)에 가서 복을 빌었다. 부모와 딸이 마주한 현실의 벽은 너무 크고 단단해서 기복(祈福)을 통해서 해소하고자 하였다.

특히 젊은 여성 린썬의 몸은 부모, 남자 친구, 어두운 세태에 강한 충격을 받아 고통과 상처투성이다. 

린썬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중년 남자의 여조카를 만나, 태어날 아이를 잘 키워서 훌륭한 인재로 성장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린썬도 태아의 건강기록부를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여성은 “천진하시네” 하며 냉소를 지었다. 중년 남성은 린썬의 아이를 다른 이에게 팔아서 높은 이윤을 남기려 하였다. 유산한 여성은 중년 남성과 친척관계가 아니라 난자를 판매한 대리모이다. 부모와 딸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딸은 엄마가 거액의 빚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 대리모를 자청하고 엄마는 처음엔 말리다가 잠자코 딸의 뜻을 따랐다. 현실에 타협하는 모녀는 순진하다 못해 황당함마저 들게 한다. 린썬은 돈 때문에 영어 공부를 계속하거나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황지 감독은 젊은 여성(미성년 포함)의 궁핍을 말하며, 그녀들 삶의 막다른 골목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으며, 또한 여성은 가금류처럼 인류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냥감이라고 여겼다. 린썬은 외모는 예쁘지만 작고 연약해 보여 미성년같이 보인다. 린썬은 철들지 않은 어린 소녀처럼 방황하고 우유부단하며, 일련의 외부의 충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 스먼(石门)은 지명으로 후난성 창더(常德)시 스먼(石门)현을 가리킨다. 황지 감독과 여주인공 린썬의 주요 활동 공간이다. 중의학에서 석문혈(石门穴)은 배꼽 아래쪽으로 여성의 신체 부위를 지칭한다. 이는 여성의 몸으로 생육의 시작이며, 여성에게 고통, 압박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2019년 여름에서 2020년 초반까지 10개월간 촬영하였는데 여주인공의 임신 기간이다. 

이 영화는 제1부 《계란과 바위(鸡蛋与石头), 2012》와 제2부 《멍청한 새(笨鸟The Foolish Bird), 2017》와 더불어 황지 감독의 ‘여성 삼부곡(女性三部曲)’ 가운데 제3부 마지막 영화이다. 세 편 영화의 주인공은 14살 중학교 2학년, 16살 고등학생, 20살 대학생이다. 야훙구이는 세 편의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다. 부모가 외지로 돈 벌러 나가고 홀로 농촌에 남아 있는 후난성 농촌 마을 소녀 역을 맡았다. 어린 소녀는 농촌과 도시를 배회하며 온갖 곤욕을 겪으면서 온몸에 상처를 입는다. 여성 감독은 젊은 여성이 이러한 고통을 통해 돌처럼 더욱 단단해지며 성장하길 바란다. 나아가 우리는 젊은이들이 사회적 경제적인 짐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란다. ▩

♠사진 출처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