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에 빠진 중국의 청년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로 코로나’를 주장하며 강력한 방역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난감한 상태에 빠졌다. 코로나19를 지금과 같이 통제하자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됨과 동시에 인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방역을 푼다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남부의 전염병관리소는 방역정책을 홍콩 수준으로 완화한다면 사망자 수가 1년 안에 2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는 보고서를 중앙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제로의 딜레마에서 가장 혼란을 겪는 사람들은 대학생과 청년들이다. 중국의 경제는 고성장 시대를 지난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활동마저 위축되었고 거기다 미국과 경쟁 대결 구도가 이루어지면서 대학생들은 졸업을 해도 당장 취업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단맛을 이미 누렸지만, 취업난과 높은 집값, 거기다 결혼의 어려움이란 현실에 직면하면서 중국의 청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욕망을 최소화하는 생활의 변화 혹은 물질적 성공을 이루려는 마음가짐을 바꾸는 일이었다. 따라서 사회인으로서 당연히 누리고 소망했던 사회·경제 및 인간관계의 욕망을 포기하는 삶들이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한국의 ‘오포세대’나 일본의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 그리고 홍콩의 폐청(廢青, 버려진 청년)과 닮은 꼴들이 중국 청년들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2030 세대의 트렌드였던 ‘탕핑(躺平)’은 중국식 오포세대의 삶을 표현하는 용어다. 탕핑은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상에 누워만 있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신조어다. 집·차·결혼·아이·소비 등 5가지를 포기하는 대신 더 이상 경쟁하거나 악착같이 살지 않겠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식의 삶을 추구한다. 어차피 많이 벌지도 못한다면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일할 필요 없이 편하게 누워 있는 것을 최선의 길로 여긴다. 그러나 ‘탕핑’은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을 향한 욕망도 포기하지만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노동의 가치에도 반한다. 중국 정부는 몹시 당황했고 즉시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탕핑’을 검색 금지어로 지정했다. 미국과 경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탕핑이란 말도 돌아다녔다.
그런데 금년에는 탕핑보다 더 심각한 ‘바이란(摆烂)’이 등장했다. ‘바이란’은 악화하는 상황 속에서 쉽게 포기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냉소적인 태도를 뜻한다. 원래는 중국 농구 경기에서 심각하게 지고 있는 팀이나 선수들이 불가피한 패배 앞에서 노력을 포기해버리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한 용어다. 즉 선수가 경기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면 경기를 하는 의미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게 마련이다. 사회가 썩든 말든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자세인데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国梦)을 이루기 위한 중국의 청년들로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화민족 대부흥이라는 중국몽 실현을 위해 분투하는 게 신시대 청년운동의 중대한 과제”라고 역설한 것도 바이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책이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미국의 CNBC는 “바이란의 유행은 사회적 경쟁 속에 전염병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깊어진 젊은 중국인들이 직면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지 시위에 나서는 대학생들 그런데 갑자기 중국의 대학생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뭘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자포자기하는 바이란의 풍조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우한 등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하얀 A4용지를 들고 나오는 이른바 ‘백지 시위’가 이제는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구호가 적혀 있지 않은 백지는 중국 정부의 검열과 통제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년 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에도 시위대는 백지를 시위용품으로 사용한 일이 있었다.
시위가 시작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11월 24일 봉쇄령이 내려진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로 인해 10명이 사망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봉쇄령으로 인해 화재진압이 늦어졌다는 의혹은 가뜩이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집 안에만 갇혀 있었던 중국인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대학생들의 경제적 좌절감 또한 바이란을 누르고 거리로 나오게 만든 동력으로 작용했다. 폐쇄적인 코로나19 방역정책이 우루무치에서는 화재로 인한 죽음을 낳았지만, 나머지 대도시의 청년들로서는 경제적 죽음의 위기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년 동안 일자리가 없다!”는 시위대의 외침을 보도한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억압적인 정치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육체의 고립과 경제적 고난은 시진핑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젊은 세대를 거리로 내몬 결정적 이유란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부는 당황한 내색을 감출 수 없었다. 중국의 대학들은 일찌감치 겨울방학에 들어갔고 시위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중국 공안의 물리적 진압이 이루어졌다. 11월 27일에는 상하이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영국 BBC 방송의 에드 로런스 기자가 취재 도중 공안에 붙잡혀 몇 시간 동안 구타를 당했던 것도 중국 정부가 백지 시위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위 현장에는 공권력을 투입시키면서도 코로나19 방역을 느슨하게 풀어주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중국 정부의 새로운 전략이 감지되고 있지만, 과연 백지 시위가 ‘찻잔 속의 폭풍’처럼 넘어갈지 세계는 예의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장쩌민(江泽民)의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11월 30일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이 백혈병 등으로 투병하다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올해 나이 96세다. 장 전 주석은 1993년부터 10년간 국가주석으로 재임하며 덩샤오핑(邓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을 이어받아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톈안문(天安门) 사태를 무력 진압한 정부를 옹호하고 파룬궁(法輪功) 탄압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따르고 있다.
중국 정부는 12월 6일에 국장격인 추도대회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기로 했다. 중국 경제발전의 주역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모양새다.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인 까닭에 세계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사망이 향후 중국의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시진핑은 그의 상징적 숙적인 장쩌민의 퇴장으로 독재적 권력이 더욱 강화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장쩌민의 계파인 상하이방 및 후임자 계파인 공청단 소속의 국무위원은 7인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배제되면서 시진핑 주석 중심으로 정치 권력의 완전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진핑을 견제할 만한 장쩌민과 같은 상징적인 인물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인민들에게 남은 것은 장쩌민에 대한 기억과 부정적 현실이다. 현실이 좋으면 옛기억은 그다지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현실이 어려울 경우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진핑으로서는 서둘러 중국 인민들의 머리 속에서 장쩌민을 잊힌 인물로 만들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시진핑과는 달리 장쩌민은 ‘장 할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인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거기다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강압적인 시진핑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로서는 장쩌민의 시대가 훨씬 자유로웠고 개방적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추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CNN방송이 “장쩌민의 죽음은 매우 민감한 시점에 찾아왔다”고 보도한 것도 그 이유다.
백지 시위는 중국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주춤한 상태지만 추모 기간이 끝나면 백지 시위가 다시 불붙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왜냐하면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의 명예 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를 중국 정부가 유혈 진압한 사건이 바로 톈안먼 사태인 까닭이다.
중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과거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를 향해 교회가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기도가 간절한 시점이기도 하다. 기성세대를 아루르면서 중국의 미래에 하나님 나라를 일궈갈 수 있는 제자 양성은 중국교회의 시급한 숙제로 남아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 2:28)
사진 출처 | 바이두(위)→한겨레(아래)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