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주께로> 가족 여러분께 머리 숙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2022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국을주께로>를 더욱 사랑하여 주실 것을 함께 부탁드립니다. <중국을주께로>도 한국교회의 중국사역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더 힘을 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사역이 제약을 많이 받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실정인데, <중국을주께로>는 자유롭게 중국사역자들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이런 때일수록 여기에 더 알찬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일하려고 합니다.
1922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부터 100년 전인 1922년에 중국교회 안팎에서는 중요한 사건들이 유난히 많이 일어났습니다. 1912년에 중화민국이 민주공화국 형태로 수립되었는데 중화민국 정부가 1912년 3월 11일에 공포한 임시헌법과 1914년 5월 1일에 공포한 약법회의(約法會議)에는 신앙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교인들은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新時代開始了]!”라고 외치며 기뻐했고 중국교회는 부흥했습니다.
1910년대 말에 일어난 신문화운동 때 기독교는 거친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중국교회는 중화귀주운동(中華歸主運動)을 일으키고, 베이징기독교증도단(北京基督敎證道團)을 발족시켜 부흥을 이어 갔습니다.
1920년 당시 중국교회 안에는 선교사 6,204명, 중국인전도인 12,967명, 자립교회당 4,727개, 전도처 6,480여 개, 기독교인 366,524명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22년에 위치만니(倪柝聲)에 의해 푸저우(福州)에서 지방교회가 일어났는데 이 지방교회는 중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방교회는 기성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각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적은 무리가 모이는 자기들의 교회만이 참 교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지방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지방교회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방교회는 소군파(小群派)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은 누가복음 12장 32절의 “적은 무리[小群]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는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방교회는 목사를 세우지 않았고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세례가 아닌 침례를 행했고, 매주일 성찬식을 가졌습니다. 중국교회 전문가들은 지방교회의 특징이 분리주의, 신비주의, 교주주의, 경제공동체주의, 문자주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는 중국의 내지로 들어가면서 여러 지역에 집회처를 세웠는데 중국이 공산화가 된 다음에 가정교회가 출발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1922년 4월 4일부터 베이징의 칭화(淸華)대학에서 열린 세계기독교학생연맹(WSCF, World Student Christian Federation)의 11차 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말하게 될 것입니다.
1922년 5월에는 제5회 기독교중국대회가 상하이(上海)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에서 중국의 모든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가 될 수 있는 기관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어 중화기독교협진회(NCC, The National Christian Council of China)가 태동되었습니다.
비기운동과 오늘날의 기독교 정책 100년 전인 1922년은 무엇보다도 ‘비기독교운동’이 시작된 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비기독교운동을 줄여서 ‘비기운동’이라고 하는데요, 이 말의 정확한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1984년에 《중국의 기독교 정책》이라는 책을 펴낸 일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홍콩의 중국교회연구센터(CCRC)에서 발간한 《中共對基督敎的政策》을 역간한 것인데 CCRC의 책임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조나단 차오(趙天恩) 박사입니다. 조나단 차오 박사가 2004년 1월 14일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 <중국을주께로>는 제86호를 추모 특집으로 꾸몄었지요.
《中共對基督敎的政策》에 나오는 ‘비기운동 시기’라는 소제목을 ‘반기독교운동 시기’라고 번역하고 제목 밑에 작은 활자로 개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비기운동을 이렇게 번역했다고 주를 달았습니다. 그랬더니 책이 나온 다음에 한 중국사역자가 비기운동은 반기독교운동이라는 말과 성격과 범위가 다른데 그렇게 한 것은 잘한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조나단 차오 박사는 그 책에서 비기운동은 1922년 3월에 시작하여 1923년 말까지가 첫 단계이고, 1924년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에서 1927년 7월 분열 때까지가 그다음 단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WSCF 11차 대회에는 세계 32개국에서 146명의 대표가 참석했고 중국에서도 5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규모가 엄청난 국제대회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상재(李商在), 신흥우(申興雨), 김활란(金活蘭), 김필례(金弼禮) 등 여러분이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이 대회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세계에서 재건하자!”였고, 사회 개조 문제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어떻게 기독교를 전할 것인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그리스도화할 것인가, 현대 학생의 교회 안에서의 책임 등에 대해서 활발하게 토론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회는 대회 자체보다 이 대회에 대한 비기운동가들의 거센 공격 때문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인 2월에는 YMCA의 간행물인 <청년진보>가, 3월에는 베이징기독교증도단의 월간지 <생명>이 이 대회를 소개하면서 이 대회를 알렸는데 비기운동 지도자들은 이 무렵부터 강력한 내용의 반대 선언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3월 9일에 발표한 반대 선언문은 “우리는 인류사회를 위하여 종교의 해독을 반드시 말살할 것을 맹세한다. 우리는 종교의 독이 인류사회에 물드는 것을 극도로 증오한다. 종교의 독은 홍수나 사나운 맹수보다 열 배 천 배 독하여 종교가 있으면 인류가 없게 되고, 인류가 있으려면 종교가 없어야 한다.”로 시작해서 “중국은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하면 종교가 없는 깨끗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기독교 등이 매일 밀려들어 왔다. 최근에 와서는 무슨 세계기독교학생연맹이 대낮에 베이징에서 세계기독교학생연맹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마취약이요 최면술이다. 안타깝도다! 가련한 청년들이 정말 적지 않다. 마음이 아프다. 악한 기독교도들은 장차 우리 학생들의 인격을 어느 지경으로 끌고 가려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발표한 두 번째 성명은 선교사들을 공격하면서 “그들은 중국에 들어와서 선교와 교육을 우정으로 한다면서 실은 자본주의 관념을 선전하고 중국 인민의 애국심을 파괴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종교 중에서도 특별히 기독교를 반대하여야 한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비기운동 지도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얼마나 큰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려 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100년 전에 일어난 비기운동의 이모저모를 살피면서 저는 ‘오늘날 중국 집권층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은 그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교회가 최근에 겪는 일들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크게 놀라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는데 <중국을주께로> 가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새해 첫 호의 특집은 ‘2022년, 키워드로 보는 중국선교와 선교사역’입니다. 중국선교단체와 그 외 단체에 ‘주제 키워드’를 드리고, 글을 써 달라고 요청해서 받은 글들을 모았는데요, 2022년 중국사역 설계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2022년은 <중주> 기족들의 기도제목들이 빠짐없이 응답받은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제목에 <중국을주께로>가 크게 쓰임받도록 해 달라는 것도 빼놓지 않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바이두(위)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겸 웹진 <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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