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으로 아버지 쪽으로 4대째 믿음을 지켜 온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의 기도로 어린 시절 믿음 안에서 잘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저의 신앙은 껍데기뿐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한 학기를 주일에는 열정적인 크리스천으로 평일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2학기 때 과 선배를 통해 예수전도단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학년을 마치고 예수전도단에서 2004년 겨울방학에 인도로 단기선교를 떠났습니다. 단기선교 팀은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따로 모여 사는 곳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기도하며, 아이들에게 성경학교를 열어주는 사역과 빈민촌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 매일 오전마다 드리는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저의 아버지가 저를 위해 챙겨 주시고, 또 저를 위해 남몰래 일하시는 장면들을 하나씩 하나씩 보게 해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으셨기에 저를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저를 위해 애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구나.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하셨는데,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구나.” 그러면서 회개와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왔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 심야기도회에서 “하나님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님은 계속해서 이 기도를 하게 하셨는데, 그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군 생활의 힘든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2학년 1학기를 끝낸 그해 2006년 7월에 군 입대를 하였습니다. 군 생활을 통해 하나님은 저를 더욱 단련시키셨습니다. 군 생활의 힘든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되었고, 제대할 때쯤에 더 하나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대 뒤에 미국 LA에서 진행되는 한인 DTS (예수 제자훈련학교) 훈련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군 생활에서 힘들었던 몸과 마음에 안식과 평안함을 주셨고, 선교에 대한 꿈이 점점 확고해졌습니다. 3개월의 강의가 끝나고 2개월의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선교지를 미국, 중국, 중남미 이렇게 세 곳을 각각 한 팀씩 세 팀으로 가게 되는데, 미국에 왔으니 중남미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선교지를 놓고 기도하는데 만리장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못 본 척하고, 못 들은 척하고 중남미로 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중국으로 결정하였고 분명 주님이 저를 중국으로 보내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선교사님들이 사역하시는 곳에서 함께 협력하여 사역하는 가운데 특별히 저희 단기 팀은 이슬람을 믿는 A족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가운데 현지 사역자의 친구가 A족인데 오랫동안 이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단기 팀과 연합하여 함께 기도하며 영어 캠프를 통해 그 친구가 하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1월 1일 새해 첫날 새벽에 저희 단기 팀에 계신 목사님을 통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너무나도 귀한 시간이었고, 이 시간을 통해 A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DTS 과정을 마치고 간사로 섬기는 6개월 동안 하나님은 저를 훈련해 가셨습니다.
중국 교환학생, 매일 저녁 운동장을 돌며 찬양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복학하고 1년 뒤, 2008년 9월부터 1년간 중국 항저우(杭州)에 중어중문학과 전공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1년간의 유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은 가장 먼저 중국과 중국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하나님은 예배받기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또 좋은 한인교회를 만났습니다. 특별히 담임목사님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기도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매일 저녁 운동장을 돌면서 찬양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운동장을 돌며 기도하던 어느 날,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지난주 설교하셨던 말씀 가운데 대부분이 유학생들이기에 이곳에 온 목적은 공부하러 온 것이지만 이곳은 선교지이기에 분명 각자마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 역시 하나님이 나를 왜 이곳으로 부르셨는지에 대해 더욱 궁금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 땅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질문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곳에서 나를 예배하는 자가 없구나. 네가 나를 위해 예배해주면 안 되겠니?” 이렇게 말씀하신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죄와 허물 많은 저에게 인격적으로 부탁하시는 하나님께 죄송스럽고 감사했습니다. 이날 이후 날마다 운동장을 돌며 예배하였고, 이를 통해 귀한 열매들이 맺어졌습니다. 저에게 주신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계속 기도하며 나아갔습니다. 새벽기도 중에 선교사에 대한 확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 1년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졸업을 하고, 신학대학원 M.Div 과정에 입학하였고, 모 교회에서 중고등부 사역을 하면서 계속해서 선교사로 나아가기 위한 훈련도 함께 받으며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중국선교 비전을 가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선교사 훈련과정을 마치고 인준에 통과하여 2014년 5월 12일 중국 A지역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선교지를 정할 때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를 준비시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게 하셨고, DTS 훈련의 단기선교를 통해 A족에 대한 마음을 품게 하셔서 그들이 사는 A지역으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에 ‘BCD’라는 단어를 외치며 잠에서 깼습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바로 BCD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A족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였고, 그렇게 A족을 품게 되었고, 그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송 받기 몇 주 전, 점점 선교지로 갈 날이 다가오면서 “내가 과연 선교사 자격이 있는가? 선교지에서 잘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연약하고, 부족한데 왜 하나님은 이런 나를 그곳에 보내시는지….” 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주님의 길을 가겠다는 그 순간부터 저희 부모님과 저에게 매우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사단의 공격은 강력했습니다. 신학을 시작하고 전도사로 사역하며, 목사안수를 받고, 선교사로 나가게 되는 순간까지 정말 이 길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저의 연약함을 보게 되면서 “나 같은 사람이 선교사를 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늘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 제가 왜 중국을 가야 하죠? 왜 나를 그곳으로 보내시는 거죠?”라며 기도할 때, 주님은 울면서 기도하고 있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너의 사명이란다.” 그 순간! 하나님은 믿음과 선교사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 번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저의 사명, 즉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고백이 이제는 저의 고백이 되었고, 저희 가정에 주신 사명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제 생명까지도 내어 드려야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선교사로 세워가시는 하나님 저희가 A지역으로 파송을 받기 전에 A지역에서 폭탄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그곳으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주변에서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예정대로 2014년 5월 12일에 안전하게 입국하여, 잘 정착하였습니다. 저희가 이 땅에 들어오고 일주일 뒤에도 또다시 폭탄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 때문에 거의 한 달 정도를 집안에만 있었습니다. 선교지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단의 영적 공격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언어를 배우며, 그들의 문화 속으로 점점 가까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년쯤 되었을 때 F지역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소속한 E선교회에서 F지역에 현지인 대상으로 선교훈련원(현지인을 선교사로 세우는 훈련원, 3년 과정)을 시작하여, 저희 가정을 비롯해 4가정이 현지인사역자와 함께 선교훈련원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선교지로 나간 지 1년도 안 되었고, 아직 언어와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었고, A족에 대한 마음이 있었기에 지역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빨리 사역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니 저의 생각에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기도하는 중에 그곳으로 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선교적 상황은 무슬림인 A족을 외국인이 선교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 일을 감당해야 할 선교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주신 마음은 중국의 한족들이 복음을 들고 소수민족을 섬기는 것이 좀 더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적합한 선교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F지역으로 이사를 하였고 이곳에서 선교훈련원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기도부터 저녁 취침까지 훈련생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힘들기는 했지만,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을 섬길 수 있음에 감사했으며, 많은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은혜로운 일들이 많았지만 물론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도중에 그만두거나 관계 문제, 보안 문제, 재정 문제 등으로 인한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은 배우게 하셨고,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1년 정도가 되었을 때 지속적인 중국 정부의 감시와 압박이 있었고, 이를 피해 새로운 공간으로 옮겼지만 6개월 뒤에 중국 정부에 의해 더 이상 선교사들이 함께 사역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현지인사역자에게 이양하고, 선교사들은 당분간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그동안 뿌린 씨앗이 있었고,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겨울방학에 훈련생들과 6개월 전부터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국 단기선교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훈련생들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은혜 가운데 선교사 동행 없이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이를 통해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거듭 경험하였습니다. 이후로도 현지인사역자를 통해 선교훈련원은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되었고, 2기 졸업생 중에 A자매가 선교의 비전을 가진 형제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소수민족지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1기 졸업한 B형제 역시 소수민족의 G지역 단기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물론 선교훈련원을 떠난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선교사로 세워가셨습니다. 할렐루야!
축구 코치로 취업비자를 받다 더 이상 이 사역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뒤에서 기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사역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저희가 계속 학생비자로 있었기에 앞으로 장기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사업비자로 변경을 위해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40일이 끝난 뒤에 하나님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허락하셨고, 그 집에서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축구를 좋아해서 동네를 둘러보다가 풋살장을 발견하였고, 밤마다 현지인들을 사귀기 위해 축구를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현지인 조기 축구팀에 가입하고,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체육 회사 사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사 사장이 코치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습니다. 연락이 없다가 한 달 뒤에 면접을 볼 수 있냐고 연락이 왔고, 체육 전공도 아니고, 축구지도자 자격증도 없는 저를 받아주었고,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축구를 하는 것은 너무 재미있지만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특별히 유치원,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라 축구보다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서 호흡하며, 집중하게 하고 재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또 일상용어가 아닌 축구 용어도 다시 새롭게 배워야 했기에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코치들이 수업할 때 따라다니며 옆에서 계속 묻고 배웠습니다. 이를 사장은 좋게 보았고, 2017년 9월부터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회사에 정직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학생비자로 있었기에 오전에는 학교 언어 수업에 갔다가 오후와 저녁에는 축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는 제가 풀타임으로 근무하기를 원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취업비자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결국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제가 독학하며 취업비자 서류를 준비하였고, 주변에 도움을 받아서 비자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서 안 될 것 같았던 취업비자가 2018년 3월, 3개월 만에 극적으로 나왔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정말 취업비자가 나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저에게 취업증과 취업비자가 나왔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저희 가정이 이곳에서 할 일이 더 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사진 | 바이두 아브라함 |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