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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 통권 206호     필자 : 김종구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Religion(종교) and Gospel(복음)

인도에 온 선교사가 어느 주일날 설교를 마쳤을 때 회중의 한 사람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리 인도에는 힌두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가 있는데 당신은 왜 또 다른 종교를 소개합니까?” 선교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Friend, I’m not interested in religion, but I'm deeply interested in the gospel. I wouldn’t walk across the street for religion, but I’m willing to go around the world for the sake of the gospel. There is a great difference between the two.”1) 

많은 이들은 이 선교사에게 질문한 회중석의 인도인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Why do you say there is only one way to God? All rivers flow into the ocean, likewise, all religions lead to God. Are not all religions equal?”2)


복음과 종교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는 동등(equal)하다고 한다. 복음을 가진 우리의 입장은 종교와 복음은 확연히 다르다. 하나님과 동등한 독생자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고 죄인들 인간을 위해 죽어주신 종교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종교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할 뿐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그들의 신이 인간을 위해 한 것은 없고 오직 인간이 그 신들을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종교와 복음이 무엇이 확연히 다른지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원(起源)의 문제이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반면에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종교는 인간들이 고안한 것이지만 복음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계시에 근거한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이 꼭대기에 가면 하나님을 만난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사닥다리를 만드는 노력이다. 반면에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지옥의 깊이와 진노의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죄인들을 만나 주신 것이다.
 

둘째는 목표의 문제이다. 종교는 무덤에 회를 칠하여 희게 보이게 하는 일을 하지만, 복음은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 죄인을 그리스도의 보혈(寶血)로 눈같이 희게 씻어 주는 것이다. 종교는 ‘외적 개혁(outer reformation)’에 목적이 있다. 그러나 복음은 ‘내적 개혁(inner transformation)’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복음은 사람을 새롭게 한다.
 

셋째로 본질의 문제이다. 종교는 좋은 충고요, 교양이다. 반면에 복음은 좋은 소식이며, 영광스러운 선포이다. 복음에는 구원이 있다. 다만 종교에는 고행과 수양(修養)만 있을 뿐이다. 종교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죄인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은 오직 하나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본질과 우리의 본성
종교와 복음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기원과 목표와 본질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복음은 인간의 본질을 중생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껍데기에 치중하고 겉모양을 치중하는 일에 열심을 낸다. 혹시라도 우리의 신앙이 복음이 아닌 종교들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본성과 죄성(罪性)이 우리를 자꾸 종교인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지 현지인들의 눈에 선교사도 종교인으로 비쳐지는 일은 없는지? 나는 열심히 사역하는 중에 이런 오해는 없었을까 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선교는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개종이 아니라 세계관이 바뀌는 회심의 사건이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이다. 본질을 놓치면 모든 것이 헛것이다. 본질을 놓친 바리새인들은 인류의 메시아이며, 나의 유일하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에 예수님은 종교를 역행하는 자요, 종교를 파괴하는 이단아요, 종교의 규례들을 파괴하는 자가 된 것이다.
 

예수와 바리새인의 시선
종교의 틀로 예수를 바라보는 바리새인은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서, 또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도전하며 시비를 건다.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가요?”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 12:1-13)


선교사와 복음

선교사들은 종교를 위해서 길을 건넌 사람들이 아니다. 선교사들은 유일한 복음,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오대양을 건넌 사람들이다. 복음을 위해서 누리던 많은 것들과 익숙한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다양한 종교권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종교 중에 하나인 종교가 아니라 유일한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통로가 되기 위해 많은 틀과 형식을 깨트리고 거기서 성육신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신앙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두꺼워지는 종교적 껍질, 선교사의 경력이 쌓여 갈수록 견고해져 가는 자신의 틀이 선교지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날마다 본질인 복음을 붙들고 가야 하리라. 주께서 나를 보내신 사명-복음, 그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을 소중히 여기며 급변하는 선교지에서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오늘도 걸어가야 할 것이다.
 

Religion takes a man and leaves him as he is; the Gospel takes a man as he is and makes him what he ought to be. 
 
미주     
1) 친구여, 난 종교에는 관심이 없지만 복음에는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나는 종교를 위해 길조차 건너지 않겠지만, 복음을 위해서는 기꺼이 세계를 일주할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2) 당신은 왜 신에게 가는 길은 하나뿐이라고 합니까?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것처럼 모든 종교도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모든 종교가 평등하지 않습니까? 이 내용은 John T. Seamandes, Tell it Well: Communicating the gospel across cultures.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동로인 2019. 봄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수정 보완하여 싣습니다.





 


김종구 | 선교사, 빌리온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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