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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4 통권 198호     필자 : 시과(西瓜) 프린트   이메일 
[선교현장 이야기]
살다보니 이런 일도: 여권을 분실하다

여권발급을 위해 빙빙 돌다
정월 보름을 하루 앞두고 사역지 중국으로 들어갔다. 저녁 늦게 C시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B현으로 들어가는 막차가 끊어져서 전에 한두 번 잠을 잔 적이 있는 기차역 앞 여관으로 갔다. 여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는 그냥 자고 가라고 하셨다. 공사 중이어서 여러 가지 좀 불편했지만 날씨도 많이 춥고해서 그냥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은 가까운 식당에서 먹고 시골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가 예전과는 다르게 너무 천천히 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전기사에게 현(縣)에 가서 또 시골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하니, 기사는 알았다고 하였다. 한 2시간 정도 달려서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었다. 예전 같으면 도착했어야 할 시간인데 말이다. 운전기사는 기름을 다 넣고도 출발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할 수 없이 또 운전기사에게 가서 왜 출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운전기사는 오늘은 명절이라 버스터미널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기다렸다가 B현에서 차가 나오면 그 차로 갈아타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그 차에 탄 손님들을 받아서 돌아간다고 하였다. 잠시 뒤에 B현에서 나오는 차가 도착하여 모든 손님들이 그 차로 갈아탔고 나도 그 차로 갈아타고 현으로 왔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말한 대로 버스터미널은 문이 닫혔고, 아무도 없었다.
 

마침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있어서 함께 택시를 타고 교회로 왔는데 교회는 텅 비어 있었다. 짐을 교회 한 켠 구석에 내려놓고 누가 오기를 한참 동안 기다리렸다. 드디어 한족교회 성도들이 와서 그들과 함께 한족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시작될 때쯤 조선족 성도들이 들어왔다. 예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 꾸러미들을 풀면서 성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서 다음 교회로 이동하였다. 거기서 저녁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을 보내고 짐을 정리하는데 여권이 보이지 않았다. 가방과 주머니를 수도 없이 살펴보았지만 여권은 없었다. 어제 있었던 교회에 전화해서 여권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니 혹 여권이 거기에 있는지 한번 찾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한참 뒤에 전화가 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여권이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일은 주일이니까 예배를 드리고 월요일에 대사관에 가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서 출국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월요일 아침에 출발하여 오후 늦게 한국 대사관에 도착하여 여권분실로 인한 임시 여권을 발급받으러 왔다고 하였더니 재발급 절차가 복잡하다고 하였다. 먼저 여권이 분실된 파출소에 가서 분실신고를 하고 오면, 그 분실 신고서를 보고 이곳에서 서류를 해주고, 그것을 가지고 안전부로 가서 조사를 받고 그곳에서 확인서를 해주면, 다시 이곳으로 와서 임시 여권을 받아서, 출입국사무소로 가서 비자를 받고 출국하면 된다고 하였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잘 모르는데 어느 파출소로 가야 하는지, 또 잠은 어디서 자야 하는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시간도 많이 늦어서 그곳에서 1시간 반쯤 떨어진 곳에 있는 C시의 할아버지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최근 2, 3년간 들르지 못해서 할아버지의 안부도 궁금하던 차에 할아버지의 얼굴도 뵐 겸 그 집으로 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아버지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나서 여권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해드리며 여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며칠 신세를 더 져야겠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버스를 갈아탔던 B현에 있는 모 지역 파출소에 가서 이야기를 하였더니 버스를 처음 탔던 지역 파출소로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버스를 탔던 C시의 지역 파출소로 들어가는데 모든 사무실 창이 교도소처럼 철창살이 쳐져 있었다. 여권을 분실해서 왔다고 하였더니 자기들은 그런 일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파출소로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곳의 파출소로 갔었는데 이곳으로 가라고 하여서 이곳으로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 맞은편 사무실에 가서 한번 물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맞은편 사무실의 창문을 두드렸다.그러자 여순경이 창문을 열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여권을 분실해서 왔다고 하였더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였다. 또다시 다른 파출소에서 이곳으로 가라고 하여서 왔다고 하였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 여순경은 전화로 다른 경찰을 불러서 지시를 하였다.
 

그분은 따라 오라고 하면서 철문을 열고 나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한 사무실로 들어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쭉 듣고 나서 그 내용들을 종이에 적고 확인 도장을 찍어 주면서 혹 다른 문제가 있으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 서류를 가지고 다시 C시로 돌아와서 대사관에를 찾아갔다. 대사관에서 그 서류를 보고 한국인 신분 확인 서류를 해주면서 분실 신고한 C시 출입국사무소로 가서 조사를 받고 확인서를 해오라고 하였다. 그곳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하였더니 자기들은 위치를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C시 출입국사무소로 가서 접수처에 서류를 보여 주었다. 3일 뒤, 오후 2시에 와서 서류를 찾아가라기에 주님께 감사하면서 가벼운 마음을 안고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3일 뒤에 시간에 맞추어 출입국사무소에 서류를 찾으러 갔다. 그리고 접수증을 보여 주었다. 그랬더니 굳게 잠겨 있던 철문을 열고 나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한 사무실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나를 어떤 사람 앞으로 데리고 갔다. 접수증을 보여주자 그 사람은 내가 원래 주었던 서류를 나한테 돌려주면서 왜 다른 도시의 것을 이곳에 가지고 왔냐며 버럭 화를 냈다. 문을 열고 나와서 내가 들어왔던 문을 열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계단을 따라 한 층 더 내려와서 문을 열었는데 역시 문이 열리지 않았다. 1층까지 내려와서야 뒤쪽으로 나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다시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가 다음날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분실 신고를 하였던 C시로 와서 택시를 타고 출입국사무소를 찾아갔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서류를 쓱 훑어보고는 경찰서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찰서 수위실에 가서 서류를 보여 주면서 여권을 분실해서 왔다고 하였더니 여기는 그런 것 취급하는 곳이 아니라고 하면서 출입국사무소로 가라고 하였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여기로 가라고 해서 여기로 왔다고 하니 그 사람들이 잘못 말한 것이라고 하면서 다시 출입국사무소로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또 다시 출입국사무소로 가서 경찰서에 갔더니 다시 이곳으로 가라고 하였다고 말하자 안전과의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서 나에게 주며 또 경찰서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시 경찰서 수위실에 전화번호를 보여 주면서 이쪽으로 가라고 하였다고 하니 수위실에 있는 전화로는 전화를 할 수 없다면서 직접 전화를 하라고 하였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중국에서 사용하는 전화는 없다고 하였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 자기 휴대전화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안전국 경찰이 나와서 나를 데리고 경찰서의 한쪽에 있는 건물의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떻게 여권을 분실하였는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정확하게 언제 분실하였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였더니, 그 중요한 여권을 언제 분실하였는지 모른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되물으면서 잠은 어디서 잤는지를 물었다. 나는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시골에 가서 또 하룻밤을 자고 나왔다고 하였다. 그는 내 가방과 지갑 등 온몸을 수색하고는 3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일이 다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는 본격적인 심문조사
다시 3일 뒤에 이제야 서류를 찾는구나 하고 그곳을 찾아갔는데 웬걸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었다. 컴퓨터의 모니터에 나의 모든 정보를 띄워 놓고, 한 사람이 한국말로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B현 종교처 상황판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수시로 교회에 들러서 내가 교회에 왔다 갔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목사’라고 당당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쪽으로 온 지 몇 년이나 되었냐고 물었다. 15, 6년쯤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더니, 이번에는 한 권사님의 이름을 대며 이 사람을 알고 있냐고 해서,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지금 한국에서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고 요즘도 가끔씩 정신이 나빠질 때가 있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그 권사님이 10여 년 전에 안전부에 붙들려 와서 심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곳이 바로 심문을 받았던 그곳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고, 잘못 말하면 교회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심문이 이어졌다. 이곳에 와서는 무슨 일을 하였느냐고 물었다. 나는 교회도 돌아보고 여기저기 많은 도시들도 돌아다녔다고 하였다. 내 말을 듣은 그 사람은 그럼 지금까지 잠은 어디서 잤냐고 물었다. 나는 교회에서 잘 때도 있었고, 여관이나 호텔에서 잔 적도 있었으며, 아는 사람들 집에서 자기도 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거주지 등록이 안 되었냐고 궁금해 하였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더니, 여관이나 호텔에서는 어떻게 하였냐고 물었다. 나는 여권을 복사하는 곳도 있었고, 여권번호를 노트에 적는 데도 있었다. 또 어떤 곳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여권을 찍어 보관하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주인과 같이 거주지 등록을 하려고 파출소에 갔는데 하룻밤만 자는 것이라면 거주지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냥 보내주었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 잠을 잔 곳의 사람들을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일흔이 넘으신 분들이라 여기까지 오시는 것은 힘들다고 하였더니, 그럼 지금은 누구네 집에서 자냐고 물었다. 지금 묵고 있는 곳도 할아버지 집이라고 하였다. 예전에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하고 있을 때 만난 할아버지이신데 그때 내가 이것저것 도움을 주었던 분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늙은 노인네들 말고 젊은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지금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고 하였다. 물론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없기도 하였지만 교회에 누가 와서 심문을 받게 되면 교회가 문을 닫거나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을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럼 젊은 사람들도 없는 데에 무엇 하러 오냐고 묻기에, 내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하나하나씩 한국으로 돈 벌러 나가고 이제는 늙은 노인네들만 남아 있어서, 그분들을 천국에 잘 갈 때까지 가끔씩 들어와서 돌보는 게 내가 할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것은 상관없고 아무튼 젊은 사람을 찾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한국으로 못 나가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사람을 찾아서 같이 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서 한국에 전화하여서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모두가 하는 말이 요즘은 사람을 찾아서 일 해결을 하는 것은 없어졌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시 가보라고 하였다. 나는 그 다음날 다시 경찰서를 찾아가서 혼자 왔다고 전화를 하였더니, 이곳 사람을 찾아서 같이 오기 전에는 오지 말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그 다음날 대사관으로 가서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협조 전화라도 좀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대사관에서는 자기들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다른 사람들은 사람을 찾아서 돈을 주고 해결하는 것 같다면서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의 한국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면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도 그런 몇 명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몇백만 원을 쓰고 해결한 사람들을 보았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번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더니 C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의 만남에 우연은 없습니다
또 다른 도시의 D권사님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여권을 분실한 이야기와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들려 드렸다. 그 권사님은 당장에 당신의 큰집 손녀사위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당신이 전화를 해놓을 테니까 내일 만나서 같이 가라고 하셨다. 사위되는 분은 예전에 D권사님의 회갑잔치 자리에서, 그리고 D권사님 손위 동서의 장례식 때 뵌 적이 있었다. 그 사위를 만나 인사를 하고 같이 경찰서로 갔다. 그 사위는 그곳에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서 아는 사람도 많았다. 사무실에서 그 사람들과 인사를 하자 그 사람들은 어떻게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그는 처 작은할머니 때문에 알게 된 사람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거주지 등록을 안 해서 벌금이 조금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돈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돈이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한국에 전화해서 돈을 보내 달라고 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중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한국 집에서 받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당신들도 알고 있듯이 중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 모두가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이어서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그 사위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다시 들어와서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경찰서 밖으로 나와서 그는 나에게 한국돈으로 한 백만 원 정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돈이 없다고 하였더니 어디서 빌려서라도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함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방을 잡아 줄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갔다가 모레 다시 오면 자기가 사람을 찾아서 같이 경찰서로 가자면서 전화로 호텔 예약을 했다. 잠시 뒤에 호텔로 갔는데 호텔에서는 당분간 외국인은 투숙할 수 없다면서 다른 데로 가라고 하였다. 몇 군데 다른 호텔과 여관에 가 보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마도 경찰서에서 모든 숙소에 전화를 해서 외국인을 받지 말라고 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돌아와서 식당에 붙은 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교회로 가는 것이 편했지만 혹 미행이 붙을 수도 있어서 교회로는 갈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집으로 와서 교회로 전화를 했는데 교회는 그런 돈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어려운 마음으로 D권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당신한테 돈이 있으니 내일 그 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다음날 사위는 우리를 도와 줄 사람을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만나서 D권사님에게 전화를 하여 그 사람의 카드로 돈을 받았다. 그런 뒤에 사위와 함께 경찰서 안전부 사무실로 가서 다시 서류를 작성하고 도장을 받아서 출입국사무실로 가서 비자발급 신청을 하였다. 3일 뒤에 오라고 하면서 접수증을 주었다. 접수증을 가지고 교회에 가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사람들이 아니 데리고 와서 확인해 주지 왜 돈을 주었냐고 하였다. 조사받을 때 첫날에 갔던 교회에 전화를 하였었는데 그 교회에서는 자기네 교회에 왔다가 갔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었다. 이 교회에서는 예전에 한국 목사들이 방문하였던 문제로 많은 벌금을 낸 적이 있었다. 다음날 저녁까지 말씀을 전하고 그 다음날 짐을 정리하여 아침차를 타고 나와서 출입국사무실로 가서 여권을 찾았다. 직원은 여권을 주면서 5일 안으로 출국하여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식당에 가서 사위에게 여권을 찾았다고 전해주고, 할아버지 집으로 와서 비자발급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D권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권사님 때문에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더니, 권사님은 목사님이 어려음을 당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다른 한 도시를 더 들렸다가 그날 오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금요일과 토요일은 여권 분실 사실을 알고 걱정하며 기도했던 한국의 성도들과 동역자들에게 전화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저녁에 중국의 D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이번에 큰 도움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였고 돈은 언제까지 돌려드리면 되는지 여쭈었다. D권사님은 그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오늘 손녀의 돌잔치가 있어서 많은 친척들이 와서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따라 조카들과 손자들이 용돈을 줘서 받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모두 노래방에 간 사이에 혼자 방에 들어와서 돈을 세어 보았는데 목사님께 보내준 정확히 그 금액만큼이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나는 D권사님이 다른 도시로 시집간 큰딸네에서 손자들을 돌보며 사위집에 얹혀 살고 계신 것과, 자녀들과 손자들 문제로 많이 힘들어 하신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자녀들이 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은행에 저금해 둔 것을 나에게 보내 주신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일로 D권사님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큰 힘과 위로를 받는 좋은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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