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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3 통권 197호     필자 : 량자린 (梁家麟)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기독교는 사회 건설의 힘이 될 수 있다

【시대논단 통신】 “기독교와 중국 사회•문화”에 대한 ‘국제청년학자연구토론회’가 2002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중국과 홍콩, 대만 등지의 젊은 학자들은 기독교에 연관된 중국 사회•문화를 연구하고 체험한 것을 서로 교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는 홍콩중문대학교 기독교연구센터(香港中文大學基督教研究中心)와 홍콩중문대학교 숭기학원 신학원(香港中文大學崇基學院神學院)이 공동 주최한 제9차 연구토론회가 12월 6일부터 8일까지 홍콩중문대학교에서 열렸다.

이번 연구토론회 마지막 날에는 대회의 초청을 받은 건도신학원(建道神學院) 량자린(梁家麟) 명예원장을 주강사로 하여 공개강좌를 열었다. 그 내용은 기독교의 중국에서의 보완성(補充性)과 전복성(顛覆性)에 관한 토론이었는데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중국 기독교 발전에 대한 남모를 근심
량자린은 먼저 중국 기독교가 중대한 순간에 처해 있음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중국교회가 더 이상 사회에 의해 제거되거나 경시될 수 없으며, 심지어 정권에 의해 위협받을 수 없다고 했다. 도시에 많은 신흥교회들이 나타나 지식인과 전문가들을 끌어들이고 있기에 중국 정부는 이들을 가정교회라고 여기고 관리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 가정교회를 보면 그들 스스로도 변혁하고 있다. 보편적인 기독교 체제에 연계되어 있고(예를 들면 복음적인 신앙, 종교개혁)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차츰차츰 더 온전한 교회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기독교의 전반적인 발전과 관련하여 신비종교(神秘宗教)에서 점차 실증종교(實證宗教)로 변화하면서 중국 정부가 지난 1980년대 정한 중국교회의 틀을 중국교회가 깨 버렸다. 기독교가 중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독교는 성도들이 ‘선한 사람’되어야 한다고 지도할 뿐 아니라 성도들도 공공신학(公共神學)에 대한 과제를 가지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다른 공공의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신앙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과 현실이 대립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하며, 정부 당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어느 정도 비판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중국 정부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량자린은 중국교회가 중국 사회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으로 여겼으며, 더욱더 중국 내 기독교의 존재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국교회가 이미 2천 년 동안 발전해온 서방교회(西方教會)와 분리되어 있고, 각 경전에서 이념을 따왔기에 뿌리도 없고, 생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만약 신앙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충분한 자율성과 선택권을 유지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신앙이 아니고 종교 연구에서 파생된 것이며, 또 종교 무리에 접목될 수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어떤 신도들은 정부에 재편성되었고, 정부를 위해 계책을 내놓고, 각 종교를 응징하고 있다.
 

기독교의 보완성
교회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며, 또한 사회조직이다. 사회에 대하여 교회는 통상적으로 보완성과 (체제)전복성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배척하지는 않는다. 관건은 두 개가 각자의 비중과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의 보완성은 신앙이 사람들의 영혼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음을 가리킨다. 기독교는 인간 자각의 필요와 정당하고 합법적인 꿈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자신을 변화시켜 어떤 필요와 꿈이든 간에 잘 맞추어서 대책을 강구하게 한다.
 

그리고 중국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은 거의 보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명말(明末) 청초(清初) 시기에는 기독교가 ‘유교를 보완하는 것’(유교사상의 결핍을 보완하는 것)으로 등장했으며, 청말(清末) 시기에 이르러서는 기독교가 ‘구국론(救國論)’의 다른 형태로 등장하였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 사회와 서로 적응하려고 하고 있다. 종교가 사회에 강력하게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정권이 다양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있고, 상부의 종교조직을 통제하는 것이 선결(先決)조건이 되어 버렸다.
 

중국에서는 ‘종교는 아편이라는 이론’이 오랫동안 성행했다. 이것은 현 정권이 구 정권을 비판하면서 구 정권이 종교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마비시켰다고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도 종교가 새로운 아편 역할을 하도록 적극 인도하고 있다. 량자린은 ‘종교 아편론’이 실제로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면 중요한 촉진자(산파역)는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 권력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의 전복성
보완성에 더하여 기독교는 또 전복성을 가지고 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각 나라의 정치 권력은 종교가 가져오는 위협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시도해왔다. 중국의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는 19세기에 중국에 전해졌는데 당시 중국 문화가 쇠퇴한데다가 전도활동은 외국 정치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또한 기독교 자체가 수년 동안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미 방대하고 세밀한 이데올로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정권에 대항한 경험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중국에서 재편성되기가 어렵다.
 

량자린은 기독교 자체가 강력한 전복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에게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통제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사람의 선함과 영성을 강조하면서 양심, 자유, 이성 등을 중시하고 있고, 또 강한 개인주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왕권실현을 기대하며 말세(末世)를 강조하는 성도들이야 말로 가장 견고한 신앙의 실천자이며, 가장 큰 전복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량자린은 중국교회 안에는 길들여진 사람들과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 이 두 종류의 군중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은 보수성향의 신도들이다. 기독교는 신비한 종교의 형태로 존재한다. 1990년대까지는 신흥도시가정교회(新興城市家庭教)가 점차 흥기하였다. 그리고 갈수록 더 많은 성도들은 중국교회가 서방의 비정부조직에 결탁함과 동시에 신앙을 통한 시민사회를 건설하면서, 중국의 기독교가 점차 실증적인 종교로 변하기를 기대했다.
 

이데올로기 전쟁에 직면한 중국교회
시진핑이 중국 주석으로 취임한 뒤 기독교를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다. 량자린은 이것은 순전히 집권자의 사고방식(심리상태)의 변화 때문이지 종교정책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영국 정치 철학자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의 이론을 인용하면서, 중국 정부가 종교로 인한 사회갈등을 피하기 위해 기선을 제압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화로울 때 정부는 (종교와의) 조화를 강조했었다.
 

그리고 공산당은 이데올로기적 정치 권력으로서 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때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종교를 공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젊은이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억압하고, 고의적으로 여론을 조작하며 기독교가 해외 세력과 결탁했다고 공언하면서 탄압과 의혹을 합리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 기독교에 대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 신도가 사회적 혹은 정치적 요구에 연루되면 강력한 공격을 받게 했고 무력으로 위협을 강행하였다. 최근 수개월에 걸쳐 빈번히 벌어진 십자가철거운동, 교회 안에 국기 달기, 국가 부르기 등은 모두 종교가 아니라 정부가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다.
 

량자린은 오늘날 중국교회는 정부에 의해 시작된 이데올로기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중국교회는 오직 두 개의 길만 걸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완전히 정권에 복종하여 매우 제한된 보완적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더 소외당해서 그 전복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는 중국교회가 정권 통치의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또한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개혁하는 데 동원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은 단지 또 다른 형태의 보완성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겼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은 중국교회가 만약에 집권당에게 이용당하지 않는다면, 반대당에게 이용당하게 된다는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정치적 투쟁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보고 있기 때문에 중국교회의 성장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여기면서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교회는 오직 보완적인 역할만을 수행할 수 없으며, 내재적인 전복성을 강조해야 하기에,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장기적인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량자린은 중국 사회와 문화가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을 내려놓으면서 기독교의 전복성을 사회의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촉진시키는 조력으로 삼기를 희망했다.
 

전복은 양성(良性, 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답 부분(Q&A)에서 강의 사회자이고, 홍콩중문대학교 숭기학원의 신학원 원장인 싱푸쩡(邢福增) 박사는 보완성 자체가 전복성을 포함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질문하였다. 싱푸쩡은 보완의 전제는 현재의 상황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도들은 중국에 대해서 비교적 강한 “보완”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러는 중에 전복성도 가져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나 량자린은 중국 신자 중 일부는 이미 정부에 길들여져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정치 상황에 대한 판단으로 이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량자린은 보완성 자체가 전복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중국의 교회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는 전복성이 현재의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또 양성(좋은)의 사회를 건설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가 정권을 도와 스스로 조정할 수 있게 하고, 중국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실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량자린은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오직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중국의 가정교회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관해서 량자린은 중국 가정교회의 변화는 명확하며, 중국교회 자체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교회 형식은 갈수록 현대 젊은이들에게 매력이 없어지고 있기에, 가정교회는 부득이 전환 문제를 고려해야만 했다. 만약 예전의 관례에 매달리다 보면 신세대 신자를 지킬 수 없게 되며 교회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온화하게 전복을 가져오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현재 중국교회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정부와의 대립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중국교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량자린은 현재 상황에서 중국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본인이 제안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는 설사 선의의 제안을 할지라도 그것이 나쁜 뜻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는 중국교회가 정부와 대면할 필요가 없으며 비교적 부드러운 방식으로 대응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전략은 여전히 논의의 여지가 있다. 량자린은 복지와 사회개조는 장기적인 과정이므로 중국교회가 오직 보완적인 길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사회복지는 오직 사회의 부족을 보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그 과정에서 전복성을 가져올 수도 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중국교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회를 온화하게 전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또한 토론회 참가자들은 신자가 정치에 참여할 때는 가장 먼저 사회를 이해해야 하고, 그런 뒤에 자신을 먼저 전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량자린은 중국교회가 어떤 정치 권력과도 결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전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신도들이 기존 정권을 타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떻게 정책을 개혁하고 끊임없이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신도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산다면 주류 사상을 뒤엎고 외부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겼다.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전복 외에 미시적인 관점의 전복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는 성도들에게 제로섬 게임(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게임을 일컫는 말이다. _번역자주)에 대한 태도를 가지지 말고, 오직 자기부터 시작하여 자그마한 것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고 조금씩 하고 있다면, 그들은 이미 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基督教與中國社會文化研討會’탐방(천바이툰, 陳栢暾) | 2018년 12월 17일
번역 | 석은혜• 본지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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