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가정교회 신앙고백 연구
합동신학대학원 정의
목 차
I. 서론
II. 가정교회 신앙고백의 형성배경
III. 신앙고백의 내용 및 평가
IV. 신앙고백에 보충해야 할 부분들
V. 결론
I. 서 론
교회는 초기부터 공동체가 믿는 내용을 표명하는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다. 신앙은 모든 강력한 확신들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 표명되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교회의 신앙고백이 생겨난 것이다.1) 교회의 신앙고백은 교회가 그 안팎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가르침과 문제에 대응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면서 역사적 시대와 상황을 따라 발전하게 되었고 시대적 및 지역적인 특징을 띠게 되었으며 동시에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2)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물으심에 대한 우리들의 답변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과 수납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신앙고백은 성경과 같이 완전 무오한 것은 아니다. 성경은 절대적이지만 신앙고백은 상대적이며, 성경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하지만 중국 가정교회는 사도신경과 같은 신앙고백이 성경에 없다는 이유로 예배 시에 신앙고백을 하지 않았으며, 많은 신자들이 사도신경을 비롯한 신앙고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고백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데 1995년, 1996년에 가정교회가 내적, 외적인 요인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합과 협력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1998년 11월 26일에 비로소 ‘중국가정교회선언(中國家庭敎會宣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선언문은 ‘중국가정교회신앙고백(中國家庭敎會信仰告白)’과 ‘중국가정교회가 정부, 종교정책 및 삼자에 대한 태도(中國家庭敎會對政府,宗敎政策及三自的態度)’ 등 두 가지의 문서로 구성되었다. 첫 문서는 그들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고백으로 성경론,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 등 7가지의 큰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신학적인 입장에서의 선언이고, 새로운 정립이다. 둘째 문서는 ‘우리들의 국가, 정부에 대한 태도(我們對國家,政府的態度)’, ‘우리들의 정부 종교정책에 대한 태도: 우리는 왜 등록하지 않는가?(我們對政府宗敎政策的態度:我們爲何不登記?)’, ‘우리들은 왜 삼자에 참가하지 않는가?(我們爲什麽不參加三自)’, ‘우리들이 박해받을 때의 태도(我們對遭受逼迫時的態度)’, ‘우리들은 진정으로 정부에게 호소한다(我們眞誠地向政府呼籲)’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가정교회가 왜 등록하지 않는지, 왜 삼자에 가입하지 않는지에 대한 그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첫 문서인 ‘중국가정교회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연구하려 한다. 이는 중국 가정교회가 처음으로 발표한 ‘신앙고백’으로, 이는 중국 가정교회 내부에 신앙의 내용에 대한 공통적 인식과 표준을 이루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미흡한 점도 적지 않다. 신앙고백이 발표 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본인은 ‘중국가정교회신앙고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앙고백’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작업을 하려고 한다.
II. 가정교회 신앙고백의 형성배경
1979년 개혁 개방이래 중국 가정교회는 크게 부흥하였다. 특히 1995년부터 가정교회는 등록문제에 부딪혀 전국적으로 핍박을 받았지만 기독교인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는 가정교회의 부분적인 연합운동으로 비롯된 것이다.3) 이 운동은 삼자교회가 강조하는 ‘삼자에 가입(加入三自’하여 이루어지는 조직적이고 형식적인 연합과는 다른 것이다. 가정교회의 연합은 영적인 연합이다. 이는 가정교회 간의 진정한 연합의 기초는 성경적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며, 이 기초 위에서 마음을 합한 기도, 솔직하고 성실한 교제, 넓은 아량으로 용납하는 것만이 서로간에 신뢰할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 연합운동은 조직적인 연합이 아니라, 영적인 연합이다.
교회의 연합운동은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화중(華中) 지역의 가정교회 대표들은 여러 지역에서 모여 함께 교제하고, 기도하였는데,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이 모임 중에 공안당국에 의해 붙잡혀 가는 상황도 발생하였다. 종교 정책에 의해 가정교회의 집회가 불법 종교활동으로 규정되었고, 특히 계파가 있는 조직적인 가정교회는 ‘사교조직’으로 낙인찍혀, 전국적인 단속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이로 인해 가정교회의 신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마저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국내외의 실정을 모르는 기독교인들로부터도 ‘사교’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이런 핍박 속에서 가정교회는 기도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의 부흥운동은 모두 기도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가정교회는 복음이 중국 전역에 전파될 것을 위해 연합하여 기도하였으며, 또한 지금의 가정교회는 비록 신앙의 자유가 속박을 받지만, 성령 안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교회임을 인식하고, 그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모든 중국 기독교인은 영적으로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는 것을 믿고, 21세기에는 세계선교에 앞장설 것을 확신했다. 이 기도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 기도운동을 통하여 가정교회는 더욱 부흥하게 되었다.
기독교인의 현저한 증가는 중국정부의 경계심을 일으켰으며, 1996년 종교사무국은 국무원의 지시 하에 <종교활동장소에 대한 연도검사방법>을 공포하였다. 이 법령에서는 모든 가정교회가 빠른 시일 내에 삼자에 등록하도록 하였다. 이 법령에 근거해 정부는 가정교회에 대해 정치적인 압력을 한층 강화하였다. 모든 등록교회는 반드시 ‘삼자회’의 관리를 받아들여야만 했기에 이때 많은 가정교회들이 압력에 못 이겨 등록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가정교회들은 등록하지 않은 채 핍박을 견뎠다. 그러나 삼자에 등록하지 않은 가정교회를 ‘사교조직’이라고 규정하여 많은 가정교회 사역자들을 붙잡아 노동을 통한 개조를 시키는 등 핍박과 단속은 가정교회가 더 이상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 없게 하였다. 계속되는 핍박과 사교로의 규정은 가정교회로 하여금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했고, 1997년 1월 16일 가정교회의 각 계파 지도자들은 연합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등록하지 않은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탄압하는 것을 놓고 기도하며, 사교로 규정한 것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는 가정교회의 입장을 밝힌 <신앙고백>을 중국 가정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1998년 11년 26일에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98년 11월 26일에 발표한 이 신앙고백서는 기독교신자가 가장 많은 중국 화중 지역의 4개의 비교적 규모가 큰 계파들이 모여 상의하여 채택하였다. 그들은 견고한 신앙의 기초를 놓고, 영적인 연합, 선교의 연합을 위해 이 신앙고백이 화중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 전파되기를 바라면서, 네 계파의 대표인 신이평(申義平), 장영량(張榮亮), 정헌기(鄭獻起), 왕군려(王君焒)가 서명함으로 이 신앙고백에 대해 책임질 것과 이 신앙고백의 공정성을 나타냈다. 그들은 이 신앙고백서가 연합운동의 기초가 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중국가정교회가 신앙고백을 선언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정교회가 내부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신앙기준을 이루기 위해서이고; 둘째, 해외기독교와 연합하여 하나됨의 기초를 이루기 위해서이며; 셋째, 정부와 백성들로 하여금 가정교회의 신앙적 입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며; 넷째, 가정교회와 이단, 사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이다.4)
III. 신앙고백의 내용 및 평가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시대마다 필요에 따라 성경 말씀에 있는 대로 기독교의 신앙 내용을 거듭 확인하고, 더 구체적으로 더 자상하게 신앙을 변호하고 설명하며 고백하였다. 중국교회도 마침내 신앙고백을 채택하였다. 1958년 가정교회의 모임이 전면적으로 금지되고, 삼자교회가 등장한 이래, 삼자교회는 그 어떤 공동적인 신앙고백을 발표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가정교회가 시대의 요청에 응하여 제일 먼저 신앙고백을 선언한 것이다.
이 신앙고백을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1986)와 비교하면 인간론, 국가론, 선교론이 빠져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신앙고백의 각 부분마다 잘못된 신앙을 인식하여 거기에 대한 바른 고백을 함으로써, 각 가정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단을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에 각 주제별로 먼저 잘못된 신앙(이단)에 반박하여 추가한 것에 대해 해석한 다음, 각 주제의 내용에 대해 평가하려고 한다.
A. 성경론
우리는 성경 66권이 모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이고(딤후 3:16),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선지자와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것(롬 1:2, 벧후 3:15)임을 믿는다. 성경은 완전하고 오류가 없는 진리이고, 가장 높은 권위가 있으며, 어느 누구도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함부로 바꾸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 5:18, 막 13:31, 눅 16:17).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에 대한 구속계획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고전 15:3-4). 성경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또 섬기는데 있어 최고의 기준이다(롬15:4, 딤후 3:15). 우리들은 성경을 부인하는 어떠한 주장도 반대한다. 성경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또는 어느 부분만 선택하여 믿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성경이 마땅히 역사적인 배경과 전체적인 성경의 교훈에 따라 해석되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성경은 마땅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읽어야 한다(요 16:13, 14:25, 고후 3:6, 고전 2:13).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에 따라야 하며(딤후 2:15), 위아래가 연관되어 있기에 어는 한 문장만 골라 그 뜻을 취할 수 없다. 성경을 이해하는데는 반드시 역대(歷代)교회의 신앙적 전통을 참고해야 하며, 우리는 개인의 뜻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주관적인 영해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반대한다.
1. 해석
‘성경 66권’이라고 규정지은 것은 가정교회 내에 성경의 일부만을 믿는 이단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권수를 지명한 것이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는 것은 성경이 절대 무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동방번개’라는 이단에 대한 반박으로, 이 이단은 성경의 신빙성을 의심한다. 이들은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가’고 질문하면서 성경이 오류가 있음을 주장한다.
‘성경을 이해하는 데는 반드시 역대 교회의 신앙적 전통을 참고해야 하며, 우리는 개인의 뜻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주관적인 영해(靈解)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일부 가정교회가 성령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이들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령만 받으면 된다고 하면서 그 어떤 참고서적이나, 주석서 혹은 ‘인위적’인 성경연구를 참고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에 대해 신앙고백은 가정교회가 반드시 사도시대부터 전해진 역대의 교회와 일치성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위험을 주는 것은 주관적인 성경해석으로는 영해(靈意解經)가 있다. 즉 성경을 해석할 때 주관적인 감동으로 얻은 것에 의존하여 늘 성경의 교훈과 전후가 모순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5)
2. 평가
성경의 신적 권위성, 명백성, 충족성, 무오성에 대한 고백이 나와있다. 신적 권위성, 명백성, 충족성은 성경의 특성에 속하는 것으로 이 고백은 성경이 정경임을 믿는 것이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신 이전의 방법은 지금은 정지되었음을 밝히는 것이 좋다(눅 16:29, 요 20:29,31). 또한 하나님의 계시는 자연이나(롬 1:20), 역사나(단 2:36-45), 혹은 인간의 본능(행 17:27, 롬 1:19)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성경해석에 관해서 서술이 좀 빈약한 것 같다. 구약은 신약의 빛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신약은 구약의 빛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본문의 원 뜻을 찾아내야 하고, 기록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더듬어야 하며, 성경 전체의 영감을 전제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자는 성경의 부분적인 석의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흐름에 조명해야 한다. 성경해석의 정확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 어떤 성구의 참되고 온전한 뜻에 관해 문제가 일어날 때 보다 더 명백하게 말하는 다른 성구에서 그 뜻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 막 4:5-7, 12:1-7)
B. 삼위일체론
우리는 유일한 참 하나님이(신6:4, 요17:3) 스스로 계시고, 영원히 계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마 28;19, 고후 13:14)임을 믿는다. 성부, 성자, 성령은 그 본질이 서로 같으며 동일하게 존귀하고 영광스럽지만 각 위격은 구분되며, 구속사역에 있어서도 구별이 있다. 성부는 구원을 계획하고, 성자는 구원을 이루고, 성령은 구원을 실행한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은 분리할 수 없고, 삼위는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요 14:11, 17:22). 성자는 성부를 나타내고(요 4:9-10), 성령은 성자를 나타낸다(요16:13-15).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게 경배와 찬양을 받으며(계 4:10-11, 5:11-14, 1:4-5),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롬 8:27, 엡 6;18, 유 1:20) 성자의 이름으로(요 16:23-24), 성부께 기도한다(마 6:9).
우리는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창1:1, 골 1:16),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였음을 믿는다(창 1:26-27). 하나님은 만유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며(롬 11:36), 인류역사의 주재자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신 32:4, 시 11:7), 거룩하시며(레 19:2, 벧전 1:15), 신실하시고(신 7:9, 고전 1:9), 자비로우시다(민 14:18, 시33:5, 36:5). 하나님은 알지 못함이 없으시고(요21:17, 시 139:1-6), 어디든지 계시며(시 139:7-12),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사47:4, 48:2). 하나님은 모든 인류역사 가운데서 그의 주권을 나타내셨다. 성자와 성령은 영원하며, 성자는 영원 전부터 성부에게로 말미암으며, 피조물이 아니다(요 1:1, 14, 히 1:1-13).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송되었다(요 14:26, 15:26). 하나님은 영이시기에(요 4:24) 형체나 모양은 없으며,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신령과 진정으로 그를 경배해야 한다. 삼위일체의 참 하나님 이외에 기독교인이 경배할 대상은 없다(출 20:3-5, 사44:6). 우리들은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해석, 예를 들면 일체삼형태론(물, 얼음, 증기의 해설)과 일체삼신분론(태양, 빛, 열의 해설 및 아들, 남편, 아버지론)등을 부인한다.
1. 해석
‘성부, 성자, 성령은 그 본질이 서로 같으며 동일하게 존귀하고 영광스럽지만 각 위격은 구분되며’라는 것은, 삼위가 동등하며 위격만 구분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가정교회 내에 유행되는 이단조직을 반대하기 위해 특별히 강조한 것으로, 이 이단은 ‘아버지는 아들보다 크며, 아들은 성령보다 크다’고 가르친다. 이 이단설(異端說)의 배경을 보면 중국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들은 아버지와 차등(次等)한 관계라는 것이다.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께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할 때 보편적으로 예수님께 기도를 하고,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대비해 말하고 있다.
‘성자는 영원 전부터 성부에게로 말미암으며, 피조물이 아니다’. 1960년대에 이상수(李常受)는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창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이단사상은 이상수의 ‘호함파(呼喊派)’기독교인 사이에 지금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신앙고백은 여기에 대해 특별히 지적한 것이다.
‘일체삼형태론과 일체삼신분론등을 부인한다’는 것은 가정교회에 여러 가지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양태론(三位形態說)을 반박하는 것으로, 이 고백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다른 위격을 가진다는 것을 지지한다.
2. 평가
삼위일체와 우리의 관계에서는 사람이 성자를 통하지 않고는 성부에게 갈 수 없고(요 14:6), 성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성자에게 갈 수 없으며(요 6:44), 또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성자를 주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전 12:3)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으면 좋겠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 우주통치, 역사섭리, 인간구원 및 역사심판에 있어서 공동체적으로 사역하면서도 각 위격의 고유한 사역을 담당한다. 여기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다루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정치, 사회적 현실과 결부하여 다루었으면 좋았겠다.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 하나님의 전능, 전지, 편재, 거룩, 의로우심, 자비로우심을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님은 영원하시며(시 90:2, 102:26-27, 계 10:6), 무한히 지혜로우시며(롬 11:33-36, 16:27), 무한히 선하시며(시 119:68, 눅 18:19), 무한히 자유하시고(시 115:3, 롬 9:14-21), 광대하시고(시 145:3), 불변하시며(약 1:17), 항상 영광 중에 계심(왕상 8:11, 롬11:36)을 보충하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더 상세하고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부터의 창조였고(창 1:1),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을 선포하시기 위한 것이다(시 104:24, 롬 1:20).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셔 다른 피조물을 주관하게 하셨다(창 1:26-27, 시 8:6).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창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만물을 보존하시고, 지배하시며, 인도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그의 우주 섭리의 종결로서 의와 불의를 가려 상벌(賞罰)하심을 가리킨다(마 25:31-46). 하나님의 심판은 현 역사 속에서 정확하고도 강력한 판단의 힘으로 나타나기도 하나(출 14:12-15, 단 5:1-30), 그것은 표본적이며(눅 13:1-5, 단 5: 1-30), 하나님은 역사의 종말에 가서 명백하고도 공정한 대 심판을 행하신다(계 20:11-15).
C. 기독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요 1:14, 눅 1:35),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믿는다. 완전한 인간으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가 없으시다(히 4:15). 그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빌 2:6-8), 보혈을 흘림으로 그를 믿는 사람을 구속하여 죄악과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였다(마 26:28, 엡1:7). 그는 사망에서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롬 8:34, 행 1:9-11, 마 26:64)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았으며,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다(요 14:26, 20:22, 행 1:8).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마 16:27, 계 1:7)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지만(엡 1:5), 그러나 여전히 사람이며 신이 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구체적인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마 24:36, 막 13:32).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반드시 재림하실 것을 굳게 믿으며, 재림 전에 나타날 징조를 통해 이를 알 수 있다(마 24-25, 막13, 눅 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두 번째 육신으로 태어났다는 주장에 반대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스스로 그리스도라 칭하는 것을 반대한다(마 24:24, 막 13:22). 또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재림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이단이다.
1. 해석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지만, 그러나 여전히 사람이며 신이 될 수는 없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성화하여 신이 될 수 있다는 이단설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중국의 재래 종교와의 구별을 시도한다. 예를 들면 유가(儒家)에서는 사람이 수신양성(修身養性)의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불가(佛家)에서 명상(冥想)을 수행하여 보살(佛)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구체적인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 이는 현재 중국 내에서 이단이 갖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특징에 대응하여 고백한 것으로, 많은 이단 두목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날짜를 예언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스스로 그리스도라 칭하는 것을 반대한다’. 중국의 이단 가운데서 또 하나의 보편적인 특징은 많은 이단 두목들이 자신을 재림한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는 것이다. 그중 ‘동방번개’의 위해(危害)가 가장 큰데, 이들은 그리스도가 이미 2차 재림을 하였으며, 장소는 하남성 정주(鄭州)이고, 여자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이는 등(鄧)씨 성을 가진 여자라고 주장한다.
2. 평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시사 완전한 사람이 되어 인류역사 안에서 생활하셨음(마 1:23)을 보충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 그리스도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다. 이 계시는 자연에 나타난 계시나(시 19:1-4, 롬 1:20), 구약성경의 예언적 계시(히 1:2) 이상이요, 모든 계시의 완성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므로 사람은 그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고(요 1:18, 14:9), 그가 보여주신 이상의 하나님을 알 수도 없다. 기독교는 신앙의 근거를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에 두는 계시종교이다.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히 7:25, 9:24), 만물 위에 모든 권세를 잡으시고 왕권을 행사하심으로(마 28:18, 엡 1:21, 계 11:15), 그를 의지하는 모든 성도를 끝까지 다스리신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일반 역사에서도 통치하시고 섭리하신다.
D. 구원론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요일 1:9)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요 1:12),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빌 2:6-8), 삼일만에 부활하셔서(요 21:14)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을 믿으면(엡 1:7, 골 1:14)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며(요 14:16-17) 반드시 거듭나고 구원을 얻는다(롬 10:9-10). 우리들이 구원을 얻은 것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엡 2:8-9). 우리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고(롬 5:1, 갈 3:8),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갈4:5-6, 롬 8:14-17). 우리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자녀를 끝까지 보호하심을 믿는다(요 10:28-29, 히 7:25). 그러므로 신도는 마땅히 진리를 끝까지 견고하게 믿어야 한다(히 3:14, 6:4-8, 계 2:25-26).
우리는 성령을 받는 것이 곧 구원의 증거이며(엡1:14), 또한 하나님의 영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임을 믿는다(롬8:16). 우리들은 어떤 특정한 현상이나(갈 3:2-5) 혹은 개인의 경험이 사람들이 구원받는데 확실한 증거로 삼는 것을 반대한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후에도 은혜를 의지하여 죄를 짓는 것을 반대하고(롬 6:1, 15), 여러 번에 걸친 구원론을 반대하며 또한 율법에 의지한 구원론을 반대한다(갈 5:4).
1. 해석
‘반드시 거듭나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중생득구(重生得救)라는 것으로, 중국에서 이 용어는 이미 구원(救恩)의 특별 용어로 정의되어 있다.6)
‘…신도는 마땅히 진리를 끝까지 견고하게 믿어야 한다’. 이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주장하는 파와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는 파 사이에서 하나의 평행점을 찾는 것이다. 1983년 두 파 사이의 충돌을 시작으로 하여 이 ‘영적논쟁(屬靈論戰)’은 하남성에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논쟁에서,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사람들에게 임의로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 걱정 없이, 안전하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잘못된 보증을 준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반대되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이 믿음이 있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만약 믿음을 버린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끝까지’ 보호하신다고 하면서, 그러나 신자는 마땅히 믿음을 견고히 가져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들은 어떤 특정한 현상이나 혹은 개인의 경험이 사람들이 구원받는데 확실한 증거로 삼는 것을 반대한다’. 이는 ‘중생파(重生派)’ (혹은 곡파(哭派)라고도 함) 내의 일부 복음 전도자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회개와 믿음의 외면적인 증거를 요구하다. 그 예로 죄로 인해 울 때, ‘너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는가 혹은 ‘빛 또는 환상을 보았는가’를 구원의 증거로 삼는다. 비록 ‘중생파’의 두목은 위에서 말한 규정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그들이 조직한 ‘생명회(혹은 설교회라고도 함)’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이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2. 평가
구원은 우주 지배를 포함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이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경륜에 의한 선행적인 은총에 의한다. 인간이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격리되었고, 그 결과 인간 사이에도 부조화와 온갖 불행의 상태로 놓여졌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아(엡 2:8)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여 그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축복을 누리다가 세상의 종말에 부활함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것을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여러 번에 걸친 구원론을 반대한다’고 하기보다는 구원의 유일회(唯一回)성으로 정확히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며,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빌 3:2). 누구든지 지상 생활에서 완전한 성화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하거나 완전한 의인이 되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롬 3:10).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총과 도움이 필요하다(고전 12:31).
‘율법에 의지한 구원론을 반대한다’에서는 율법의 역사성을 논해야 한다. 구약시대에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으나 그 명령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율법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다(창 2:16, 17, 호 6:5, 갈 3:10). 때가 차매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율법의 권세를 소멸하고 하나님과 화목케 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으면 의롭게 되는 동시에 구원을 얻게 된다(요3:16, 롬 3:23, 24, 5:8). 하지만 그리스도의 오심은 율법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중국의 가정교회에서 구원론의 문제는 한동안 첨예화된 문제였고,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히브리서 10장 26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어 역본에는 ‘왜냐하면 우리가 참도(眞道)를 알게 된 후 만약 고의적으로 범죄하면 속죄의 제사는 더 이상 없게 된다(因爲我們得知眞道以後, 若故意犯罪, 贖罪的祭就再沒有了)’로 되어 있다. 여기서 ‘참도를 알게 된 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참도’인 예수를 믿지만, 죄를 반복하여 짓게 되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됨으로, 구원은 한번 구원받았다고 영원히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가정교회 내에 퍼wu 있다. 따라서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 범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차례 믿고, 여러 차례 구원을 받는다(多次相信, 多次得救)’라고 주장하는 이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론된다. 이들은 「구원을 받은 제자(유다)로부터 주님을 파는 마귀가 되기까지―믿음이 변한 자의 비극(從得救的門徒(猶大)到賣主的魔鬼 ― 一個改變信心的悲劇)」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여 유다는 본래 구원을 받은 제자이고, 성령의 내주함으로,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은 경력도 있지만, 후에 믿음을 상실하였기에 마귀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이 믿음이 약할 때,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전국의 가정교회에 퍼져 논쟁의 문제로 되어 있으며, 가정교회에는 구원에 관한 명확한 성경적 해답이 시급하다.7) 이 고백에서는 소극적으로 ‘여러 번에 걸친 구원론을 반대하며 또한 율법에 의지한 구원론을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구원의 온전성(히 7:25), 속죄의 영원성(히 7:28, 9:12), 그리스도의 일회성, 속죄의 영속성(히 9:12, 10:11-14), 하나님의 전적 은혜(엡 2:8-9)를 강조하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구원은 단 한번에 이루어지며, 구원받은 신자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실족하더라도, 이는 신자의 구원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E. 성령론
성령은 삼위일체 참 하나님의 제 삼위로서, 그는 하나님의 영이고(창 1:2), 그리스도의 영이며(행 16:7), 진리의 영이고(요 15:26, 16:13, 14:17), 성결의 영(벧전 1:2, 갈 6:17)이다. 성령은 인간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며(요 16:8), 진리를 알게 하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한다(요 3:5-6). 성령은 믿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깨닫게 하며(요 15:26), 그리스도께 순복하게 하며,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며(갈 5: 22-23), 성령은 믿는 자에게 다양한 능력을 주어 기적을 행하므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증거 하도록 인도한다(막 16:17-18). 성령은 모든 일을 깊이 감찰하신다(고전 2:10).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 교회에 주셔서(고전 12:28, 14:12)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사모함으로, 성령의 부으심과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다(행 2:17-18). 우리는 사도시대 이후 기적과 성령의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주장을 부정한다(요 14:12, 막 16:17, 고전 12:10). 우리는 방언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고전 14:39), 또한 방언 하도록 강요하지도 않으며(고전 14:5, 26), 뿐만 아니라 방언하는 것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강조하지 않는다(고전 12:30). 우리는 성령이 단지 일종의 감화력이나 비인격적인 신이라는 관점을 부정한다(막 3:29, 엡 5:30, 요 15:26).
1. 해석
‘성령은 믿는 자에게 다양한 능력을 주어 기적을 행하므로’에서는 성령의 능력과 기적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성령이 전진하는 동력(動力)이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실행됨을 반영한다.8)
‘우리는 사도시대 이후 기적과 성령의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주장을 반대한다’. 이 신앙고백을 한 대표자 중 세 사람이 사역하는 계파(敎會系統)에서 해외 영은파(靈恩派)의 영향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들은 여러 종류의 부동한 ‘영적인 은사(屬靈恩賜)’를 받았다. 여기에 방언도 포함되지만 강요하여 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러 성(省)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할 때 많은 기적을 체험하였다.
‘우리는 성령이 단지 일종의 감화력이나 비인격적인 신이라는 관점을 부정한다’. 여기서는 성령의 위격(位格)을 부인하는 이단에 반박한다. 성령도 삼위일체의 위격의 신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해석은 그 역사가 오래 되었지만, 현재 서방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도 있다.
2. 평가
성령의 활동에 관하여 상세히 논할 필요가 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오셨으며, 신자에게 임재 하셔서 신자들을 은총 안에 머물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구원으로 이끄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성장케 하신다. 성령은 영원 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함께 계시면서 구약시대에도 활동하셨고(출 31:3, 삼상 16:13, 사 63:10-11), 성자가 세상에 계실 때도 사역하셨다(마 3:16, 눅 4:1-2, 요 1:33). 그러나 오순절 이후 성령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졌고(행2:17), 영원히 임재 하시면서(요 14:16)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구속사업을 더욱 충만케 하신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교회의 기원으로, 이로 인해 사도들의 성령충만한 말씀사역이 시작되었다.
방언은 은사에 속하는 것으로 성령의 은사를 다루어야 한다. 성령의 특수 은사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전 12:4-11). 이는 믿고 구원받은 자들의 봉사를 위해 주신 선물로 신자들에게 다양하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어떤 한 가지를 가지고 성령의 은사를 전체적으로 규정해서는 안되며, 각자는 자신의 받은 은사를 지키고, 남이 받은 은사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며, 모든 은사는 오직 복음을 증거 하는 데에만 쓰여져야 한다.
F. 교회론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