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남편이 다니던 학교 식당 조리사인 M의 누나이다. 대부분의 W 사람들이 그렇듯이 친구를 사귀고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M은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우리가 그의 작은 월세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거기서 만난 A는 매우 수줍음이 많았다. 사실 그냥 수줍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집 안에 들어섰을 때부터 떠날 때까지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무슬림 여자들이 외부인, 특히 남자들을 경계하는 습관이 있다 해도 A는 그 도가 너무 지나쳐서 우리에게 별로 호감이 없는 듯 생각되었다.
얼마 후 우리 가족이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A가 보낸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우리 가족을 만나서 기뻤고, 한국어도 배우고 싶고 친구도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첫인상과는 달리 메일까지 보낸 적극성이 무척 의외였다. 나는 간단한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계속 반송이 되었다. 중국 정부가 해외에서 그 지역에 사는 W인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차단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모 대학의 언어 과정에 다니게 되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무척 낯이 익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 기억이 맞나 싶어 망설이다 아는 체를 했는데 바로 4년 전 딱 한 번 만났던 A였다. 한 번에 알아본 내 기억력이 놀랍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를 알아본 그녀가 무척 반가웠다. A도 나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고, 그리고 신기하게도 오늘 학교에 오기 전 나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딱 한 번 만난 나를, 그것도 4년 만에 만난 나를 떠올렸다니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A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석사학위가 있는 A는 교사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마침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교수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6개월 전 엄마의 뇌경색 발병 소식을 듣고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정성껏 엄마를 돌봐드렸지만 결국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충격에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보다 못한 가족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자신을 도시로 올려 보냈다고 한다.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하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후로 A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우리 집을 찾아왔다. 4년 전 우리가 M의 집을 방문했을 때 주었던 성경을 그동안 엄마와 함께 읽었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는 성경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현재 W어 성경은 구약의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번역이 되어 있고, 신약은 모두 번역이 되어 있는데 아마도 A는 엄마에게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복음서 일부분을 읽어드린 것 같았다. 이슬람 신앙심이 깊은 W인 중에는 복음서는 내용이 변질되었고 기독교인들의 책이기 때문에 읽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A의 어머니가 복음서 읽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A에게 W어를 배우면서 신약성경을 함께 읽어 나갔다. 요한복음부터 시작하여 누가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을 순서대로 하루에 두 장씩 읽어 나갔다. A가 먼저 읽고 나서 단어와 문법에 대해 설명을 하면 내가 다시 읽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성경을 읽는 시간 외에는 A의 상황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A는 대학원 시절에 과외를 했던 학생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학생들은 현재 터키에 유학을 가 있다고 한다. 자녀들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낼 정도이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일 테지만, 그래도 옛날 과외 선생을 돈도 받지 않고 집을 제공해주니 고마운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A는 그 집에서 나와 친구의 월세방으로 숙소를 옮겼다. 그분들의 집에 지방에서 손님이 찾아오게 되면서 머물 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A가 과거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자신이 3년 동안 그 집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동안 과외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동안 과외비를 주지도 않은 그 사람들, 그리고 요구하지도 않은 그녀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해서 수락하기는 했지만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민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돈이 많은 사람들인데 자신을 이용했다면서 A는 스스로 바보스럽고 후회한다며 분노했다.
정기적으로 우리 집에 오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머물 곳이 없어서 가방 하나 들고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고 있는 A의 어려운 상황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남동생 M이 얼마 전 결혼해서 월세 집을 얻어 살고 있지만 신혼부부인 동생네 집에서 계속 지내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듯 했다. 또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특히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서 현지인이 외국인의 집에 머무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관할 파출소 직원들이 비정기적으로 찾아와서 혹시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지 감시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가 이집 저집 떠도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우리 집에 머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A의 상황에 대해 함께 기도하며 도울 방법을 찾았다. 일단 직장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니 잠시라도 저렴한 숙소에서 머물면서 안정된 직장을 찾게 되면 그때 원하는 아파트를 구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을 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낯선 사람과 어울리기를 힘들어 하는 A는 6-8명이 방 2-3개가 있는 아파트에서 여러 개의 이층 침대를 놓고 지내는 열악한 곳에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유명 대학의 교사 자리만 원하는 A의 태도였다. 사실 소수민족인 A가 전문대학의 시간 강사 자리를 얻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각종 관계와 뒷문, 무엇보다 돈이 없으면 초등학교 교사도 할 수 없는 이 지역 상황에서 석사학위 하나만 갖고 4년제 대학의 강사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바람이었다. 여러 대학에 이력서를 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고 또 알아보러 가면 모멸감에 찬 거절을 받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A는 더욱더 우울해져 갔다.
보다 못해 남편과 나는 A의 구직에 대해 조언을 해줄 W 친구들 몇 명을 함께 만났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 여성 사장을 만났는데 그녀는 A를 보자마자 대뜸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우냐며, 이런 태도로는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A와 같은 고향 출신이면서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지역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내 친구와 만남도 주선했다. 그 친구 역시 A를 보자마자 어둡고 우울한 표정을 지적했다. 현재 이 지역 상황에서 취직을 하는데 대학원 석사 졸업장은 아무 소용없다며, 일단 돈을 벌어서 자신의 독립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니 약국이나 큰 마트에서 일자리를 찾으라고 했다. A가 요구하는 직장의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이곳에서 약국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약사 면허증이 없어도 취업할 수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부부는 외국인으로서 한계를 갖고 있는 우리보다는 이곳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경험 많은 선배들을 만나게 해줌으로 A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A는 이들을 만나면서 자존심이 상했고 자기가 그런 일을 하려고 석사까지 졸업한 것이 아니라며 화를 냈다. 지금까지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던 많은 사람들 특히 학교의 교수님들을 거론하면서 자기 안의 분노를 쏟아냈다.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 사람들이 이유 없이 자신을 무시하고 오히려 이용하고 마땅히 주어야 할 도움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이렇다고 하면서.
이러는 가운데 A는 머물 숙소가 없으면 버스를 타고 4-5시간 걸리는 고향에 내려갔다가 또 잠시 묵을 곳이 생기면 돌아오곤 했다. 왕복 교통비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말이다. 어느 날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간에 갑자기 A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버스 터미널(우리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데 방금 고향에서 올라왔단다. 오늘 밤에 잘 곳은 있냐고 물었더니 대학교 근처 싼 여관에서 묵으려고 한다고 했다. 이 늦은 시간에 다시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여관을 찾아 간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일단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더니 절대 폐를 끼칠 수 없다며(A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여관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도대체 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우리 집에 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도 되고, 여관에 가는 것이 걱정도 되고 해서 당장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A가 우리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함께 성경을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기에 A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담당교수의 전횡과 무시 속에서 여러 좋은 기회를 놓친 일,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엄마를 간호했던 일, 엄마가 돌아가시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몇 달 동안 멍하니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일 등등. 여전히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며 우울한 감정에 빠져드는 A를 보면서 불쌍한 마음이 들고 하나님이 이 친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라는 생각이 재차 들었다.
그러나 A가 우리 집에 머문 지 며칠 지나면서 나와 남편은 조금씩 불안해졌다. 수시로 유동인구 조사를 하러 왔다 갔다 하는 파출소 직원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A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루는 A가 외출했다가 들어오는데 아파트 단지에 파출소 직원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들어와 당장 짐을 쌌다. 자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을 줄 수 없다면서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그냥 더 있으라고도 편히 가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집을 떠나면서 A는 우리가 자신에게 조언이라고 해준 말들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고는 머물렀던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00위안(한화 2만 원 정도)을 식탁에 놓고 잽싸게 현관을 나섰다. 나는 그동안의 관계를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A의 태도에 섭섭하고 화가 나서 “이 돈을 받으면 너와 나의 관계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받을 수 없어”하고서는 다시 돈을 그의 손에 쥐어줬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섭섭함 속에 몇 주가 흘렀지만 A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걸었는데 도무지 답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이 되는 동시에 이런 피곤한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것인지, 과연 A가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이 맞는가 회의가 든 것도 사실이다. 겨우 연락이 닿아 집에 초대라도 하면 전화기가 고장이 났다든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못 오게 되었다는 변명을 했다. 온다고 해서 저녁 식사도 준비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지치고 화가 났다. 이제는 A와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연결해주신 영혼이라는 믿음으로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이렇게 지지부진한 관계로 힘을 빼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친구에게 쏟을 에너지로 다른 새 친구를 만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마음도 들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다. 그것이 작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이었다.
오후 4시까지 온다고 했는데 5시가 넘도록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문자를 보내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도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서 문자를 보냈더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내가 그렇게 시간개념이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폐를 끼쳐서 미안해요. 지금 버스에서 내려서 언니네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냥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겠어요.” 7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이런 문자를 받으니 황당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면 그러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나가는데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는 A를 만났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어쨌든 식당에서 같이 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돌아가기 어려우니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그날 밤, 나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라도 반드시 A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하리라고 결심을 했다. 비록 복음서를 함께 읽기도 하고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이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나의 일방적인 설명에 불과했지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직접 들어본 적이 없었다. 먼저 올해 가장 감사한 일에 대해서 적어보자고 했다. 제일 첫 번째 감사한 일은 나를 다시 만나게 되어 함께 성경을 읽은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알라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으며 우리 가족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일, 아버지가 살아계신 것, 가족들이 건강한 것 등 한참 동안 10가지가 넘는 감사의 내용을 적은 것을 보면서 그동안 이 친구로 인해 속상하고 답답했던 내 마음도 조금 풀렸다.
내년의 소망을 적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직장을 얻는 것, 아버지의 건강 등. 나는 이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성경이 단지 감동적인 좋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어 천국에 갈 믿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모든 물음에 대한 A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자신은 무슬림이기 때문에 크리스천이 될 수 없으며 예수는 선지자일 뿐이라고 했다. 또 자신은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성경은 좋은 책이기 때문에 계속 읽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A가 감동받는 모습도 많이 보았기에 내심 기대를 했지만 여전히 복음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언젠가 싹이 나고 열매를 맺지 않을까 소망하며 그녀를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 A는 작은 전문학교의 시간 강사로 일하게 되었고 간간이 우리 집에 와서 근황을 나누었다. 실력은 있지만 소수민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족 교사들에게 근거 없는 미움도 받고 차별 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화가 났다. 한족 강사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시간의 수업을 배분 받았기에 월급도 형편없었다. 그래도 하나님이 이렇게 직장을 다니게 하신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위로하며, 차별하고 질시하는 다른 교사들을 용서하고 주님이 불의한 그들이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기를 기도하자고 하였다. 이후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던 교사들이 학교에서 어려움을 당해 학교를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심에 A도 놀라워하였다. 하나님이 A를 사랑하시기에 세밀한 부분까지 도와주고 계심이 분명하였다.
비록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A가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와 다른, 인간의 삶에 친히 개입하시고 도와주시며 친밀한 관계를 갖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또 얼마 동안 그녀와 연락이 끊어졌다. 전화를 해도, 문자를 보내도 감감 무소식. 이번에는 조급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전화기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요즘 이 지역의 민감한 상황 속에서 외국인과 통화하는 데 부담을 갖고 일부러 연락을 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우리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몇 달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로 우리 가족은 15년 동안 살았던 이곳의 삶을 정리하고 귀국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바쁘게 짐을 정리하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연락이 끊긴 A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 것이 안타깝고 슬펐다. 내가 보냈던 몇 통의 문자에 한 번의 회신도 받지 목하고 몇 달이 넘었지만, 마지막 희망으로 문자를 보냈다. “우리 가족이 떠나게 되었어. 혹시 이 문자를 보면 꼭 연락해주길 부탁해.”
모든 짐 정리를 끝내고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저녁,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놀랍게도 A였다. A는 몇 주 전 전화번호를 바꾸었고 자기 전화기를 남동생에게 주어서 휴대폰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그녀의 과거 전화번호를 쓰고 있는 여학생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 여학생이 내가 보낸 문자 내용을 알려줘서 부리나케 찾아왔다고 했다. 그것도 시골 고향에 내려갔다가 바로 어제 올라온 참이었다.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 학기 동안 베이징(北京) 모 대학에 연수생으로 다녀왔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의 삶에 작은 빛이 비추이는 것을 보고 떠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했다.
언제 A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A가 들은 복음을 기억하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할 그 날이 올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주님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얼마나 그와 동행하고 싶어하시는지 느낄 수 있다. 언젠가 그녀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참된 소망이신 그분을 꼭 붙잡을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A뿐만 아니라 온갖 억압과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W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참된 희생물(코르반)이 되신 예수님께 나아와 참된 소망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A를 비롯하여 W 영혼들의 눈에 있는 어두움이 떨어져서 밝은 빛을 보게 하시고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여주소서! ”
한광명 | 중국선교사
<벤처선교>(2017년 겨울호)에 실린 글의 일부를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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