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泰山)에 다녀오시나 봐요?” 태안(泰安)에서 곡부(曲阜)로 향하는 기차에서 평원에 지는 해를 카메라에 담던 내게 옆자리에 앉은 중국 여대생이 말을 걸어왔다. 지난밤 태산 정상에 있었건만 아쉽게도 일출을 못 보았다는 그녀에게 그 옛날 두보(杜甫)도 태산에서 일출을 못 보았던 일화를 말해주니 표정이 환해지며 자신의 고향 이야기로 화제를 이어간다.
“호남성(湖南省) 악양(岳阳)을 들어보셨는지요?” “그럼! 송대(宋代)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阳楼记)〉가 유명하지.” 대화가 통한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악양루기〉의 한 구절을 읊어댄다. “천하 사람들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기고 난 뒤에 즐긴다(先天下之优而优, 后天下之乐而乐欤!).” 내 한 몸보다 타인의 안위를 더 걱정했던 위인들의 삶이 새삼 그리워지는 내용이다.
옛 중국의 문인들은 거의가 관리의 삶을 거쳐 갔다. 그런데 ‘관도(官途)’가 늘 평탄할 수는 없었으니 명재상으로 문명을 날린 이보다 지방으로 폄적(貶谪, 좌천)되어 눈물을 머금고 글을 쓴 이가 훨씬 많았음은 이를 반증한다. 한때 명신으로 칭송받았으나 정쟁에 휘말려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던 범중엄도 그러했다. 그는 〈악양루기〉에서 동정호(洞庭湖)를 대하면서 느낀 밝은 날 화려한 모습이나 흐린 날 음산한 정경 모두를 깊이 있게 묘사하였는데, 그중 좌천되어 귀양살이하거나 시름에 젖은 심정으로 이 정경을 대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쓴 부분이 특히 시선을 끈다. (어진 사람은) 어떤 일이 좋다고 기뻐하지만 않고, 자기의 불행 때문에 슬퍼하지만도 않는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 백성을 걱정하고, (좌천되어) 강호의 먼 곳에 머무르면 그 임금을 걱정한다. 나아가 벼슬을 할 때도 걱정하고 관직에서 물러나서도 걱정하니, 그렇다면 어느 때에 즐거워할 것인가? 그들은 말한다.
“천하 사람들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기고 난 뒤에야 즐긴다. 아! 이런 사람처럼 되지 않는다면 내가 누구처럼 되겠는가? (不以物喜, 不以已悲. 居庙堂之高, 则优其民; 处江湖之远, 则优其君, 是进亦优, 退亦优. 然则何时而乐耶? 其必曰: 先天下之忧而忧, 后天下之乐而乐欤!)” 비록 좌천되어 힘겨운 삶을 살고 마음속에 회한이 그득한 상태지만 개인의 걱정보다는 천하의 일을 먼저 근심하고, 다른 이가 즐겁게 된 뒤에야 비로소 즐거움을 갖겠다는 의식을 담고 있다. 만추의 단풍 같은 오색찬란한 경치를 바라보면 마음이 기뻐지는데 옛 위인들은 이처럼 멋진 자연을 대하면서 개인의 즐거움보다 공공의 희락을 먼저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개가하여 너무 가난했기에 죽을 끓여 네 그릇으로 나눈 뒤, 두 그릇으로 하루 끼니를 삼으며 공부했다는 ‘획죽(划粥)’고사의 주인공인 범중엄의 말이기에 더욱 숙연해진다. 살아가며 남모를 걱정과 슬픔이 없는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이란 삶의 이유이며 걱정거리가 없으면 삶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걱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나의 존재감도 결정된다. 나에게 어떤 걱정이 주어진다면 이것은 내가 지닌 어떤 능력과 지혜를 요구하는 것이며, 이를 해결한다면 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스스로의 신뢰가 필요할 것 같다. 고해(苦海)와 같은 인생이지만 때로는 즐거움도 우리에게 주어진다. 즐거움과 행복의 크기가 존재한다고 볼 때 자신만이 즐기는 행복은 작은 행복이요, 남과 사회가 모두 행복한 것은 큰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행복은 잠깐이요 시련은 꼭 오기 마련이다. 즐겁고 행복할 때 걱정과 괴로움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 나갈 때 남들과 과실을 나눠 먹어야 시기로 인한 질투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내 이익을 먼저 찾고 내 어려움을 먼저 추스르는 것이 정설인 세상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내 눈물을 마음으로만 삼키고 주변에 헌신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복을 받고 내 상황까지 치유되는 역사도 일어난다. 그 눈물과 인내의 가치는 의외로 커서 훗날 두고두고 더 큰 감동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돌아보면 우리를 향한 부모님들의 삶이 그랬고,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위인들의 삶이 그렇지 않았던가? ‘선공후사(先公后私)’는 희생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삶을 보람되게 하며 나 스스로를 의연하게 하는 좋은 의식이다. 이를 실천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에 힘입은 것이리라!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