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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3 통권 176호     필자 : 나은혜 프린트   이메일 
[나은혜 선교문학]
MK와 수저론

얼마 전에 큰딸이 첫아이를 출산하여 나는 외할머니가 되었다. 큰딸이 결혼한 지 9년 만에 얻은 첫 아이라서 우리 온 가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아직 산후조리 중인 딸을 돌봐 주기 위해서 딸네 집이 있는 대구로 내려갔다.

딸은 대뜸

“엄마, 우리 로아(나의 외손녀 이름)는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야”라고 한다.

나는 뜬금없는 딸의 그 말에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딸은, 첫아이 출산기념으로 러시아에서 온 수련의 두 사람이 러시아산 아기용 은수저를 선물로 보내왔다는 것이다. 딸은 그 선물을 받고, 그때 한참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하면서 떠돌고 있던 이야기들이 생각이 났나 보다. 아니 어쩌면 딸은 자신이 부모의 도움 없이 힘겹게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지난 일에 대해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쩜 자기 딸은 적어도 '은수저' 정도의 인생을 출발하게 해주고 싶은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수년 전, 필자가 비자발급이 제한되어 고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그해에 큰딸은 결혼식을 올렸다. 집이 선교지에 있었으니 딸은 결혼 전에 C국에 들어와 있다가 엄마가 비자발급제한으로 추방을 당하는 아픔을 함께 겪었고 한국으로 같이 나왔었다. 선교지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 딸이 캠퍼스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당시 우리는 딸의 결혼을 도와줄 재정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연금대출을 몇 백만 원 받아서 건네주면서 결혼식준비를 해보라고 하였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목돈을 좀 모아 두었다면서 부모 도움 없이 제힘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나중엔 연금대출 받아서 준 돈도 돌려받았다. 이렇게 큰딸은 강한 자립정신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작고 아늑한 아파트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다.
 

둘이 열심히 일하더니 무일푼에서 전세자금을 마련하고 든든한 가정을 세워 나가고 있다. 딸과 사위는 대구 D교회 영어예배부를 섬기고 있다. 외국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사는 딸과 사위가 대견하기만하다. 자신들의 집을 공개해서 외국인들을 초대해 성경공부를 하고, 음식을 먹으며 함께 교제를 나눈다. 처음엔 형제와 자매들이 같이 모이더니 이젠 사람이 많아져 형제그룹은 사위가, 자매그룹은 딸이 맡고 있다.

대구에 사는 영어권 뿐 아니라 중국어권 등 다른 언어권 사람들이 주로 오는데, 불신자 외국인들도 초대받아 오기도 한다. 크리스천이 아닌 그들은 처음엔 크리스천 모임이라서 어색해 하다가도 따뜻하고 서로 섬기는 사랑의 분위기에 감동되어 마침내 예수 믿고 세례를 받고,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선교사인 부모를 만나서 선교지에서도 고생하고 한국에 나와서도 자립하여 살 수밖에 없었던 MK, 우리 자녀들은 요즘 시쳇말로 금수저, 은수저가 아닌 흙수저가 분명하다. 하지만 MK이기에 갖게 된 강한 독립심과 건전한 정신, 선교사부모한테서 물려받은 세상 풍파에 굴하지 않는 야성의 영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뿐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과 나그네를 섬기며 살아가는 MK의 삶은 귀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요즘 사회의 풍조가 태어날 때부터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것이 없어서 뭐가 안 된다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론은 젊은이들에게 불평과 불만을 키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본다.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준 것만도 감사해야 할 텐데 말이다. 위에 말한 은수저 이야기는 딸이 크게 의식하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외국인한테서 은수저 선물을 받고서 제 딸에게 빗대어 '은수저'라는 우스갯소리를 한 것뿐이다.
 

얼마 전 정치 지도자 자녀들이 대부분 외국에 유학 가서 호화판으로 살고 있다는 보도를 한 것을 보았다. 겉으로는 민심을 모으기 위해 서민을 위한 정치가라고 하나 그들의 삶은 서민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한 달 후원비가 2천불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선교사역을 하며 생활하는 많은 선교사자녀들은 그야말로 대학을 가려면 등록금이 없어 얼마나 힘들고 또 힘든가? 그런데도 선교사자녀들을 보면 분명 재정은 없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키우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가정만 해도 메인 후원교회가 후원을 전면 중단하여 개미군단이 보내주는 후원비 천 불 남짓으로 선교지에서 생활했다.
 

그러던 중 삼남매가 줄줄이 대학을 가게 되었다. 당시 자녀들의 대학진학에 따른 학비 문제가 매일 저녁 가정예배에서 함께 기도하던 기도제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삼남매를 전부 대학을 졸업하게 하셨다. 막내까지 대학을 졸업시킨 어느 날, 나는 아이들 셋이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들어간 학비와 기숙사생활비를 계산해 보았다. 무려 1억6천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간 것을 알았다. 참으로 놀라웠다. 사실 자녀들의 대학 학비는 매월 천 불 남짓 선교비를 받아서 사는 우리 가정에서는 감당할 길 없는 커다란 비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의 학업은 선교사가정에 베푼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결과였다.
 

이처럼 MK들은 자신의 삶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몸으로 체험하고 살아낸 친구들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똑바른 정신을 갖고 있고 건전한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MK들의 마음 씀씀이만큼은 가장 모범되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MK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와도 같다. 진정한 축복은 긴 인내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 온다. 성경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MK들이 선교사부모한테서 재물을 유산으로 받지는 못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믿음의 자산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MK들은 이미 타문화권 문화와 언어의 습득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쓰임받는 인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 MK들은 이제 세상의 가치관으로 말하는 금수저요, 은수저요, 흙수저에서 자유롭게 더욱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잠 14:26)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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