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하는 팀사역의 기쁨 자정을 달리는 늦은 시각. 인적은 물론 대로엔 지나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찬바람을 맞으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 너무 늦게 끝내서 미안해요. 언니가 맘을 열고 얘기하는데 도무지 끊을 수가 있어야지. 많이 기다렸죠?"
"아니 별로. 나도 아저씨랑 좋은 시간이었어요"
매주 한번 있는 A자매와의 일대일 성경공부 시간은 늘 이렇게 늦은 시간이 돼서야 끝이 난다. 믿지 않는 남편의 구원문제, 자녀교육문제, 장사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들. 그런 것들을 모아 말씀을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을 후딱 넘겨버리고 그사이 남편은 그의 ‘A자매의 믿지 않는 남편’을 붙잡고 씨름을 한다.
유난히 여성들과 관계하기를 힘들어하는 A자매의 남편은 많은 상처에 깊은 열등감 그리고 무척이나 의심 많던 중년사나이다. 그런 그가 다행히도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고, 남편과 대화하기를 즐기고 약속된 만남 시간을 기다린다. 그 덕에 그의 부인이 마음 놓고 나와 일대일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님이 아니면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 가정. 주님이 만져주시기 시작하면서 이 가정은 새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회복을 볼 때마다 나는 주님께 감사하고 또 남편이 더 없이 고맙고 든든하다.
결혼 후 맞이한 변화들 결혼 전 남편은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이 땅에 왔고, 나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이 영혼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이들에게 왔다. 우린 그렇게 이곳에서 만났고 결혼했고 지금은 가정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
처음 결혼해서는 많은 한계들이 느껴져서 힘들었다. 미혼 때처럼 시간 제약 없이 현지인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마음대로 이곳저곳 다니며 땅 밟기도 할 수 없었다. 언어를 집중해서 공부 할 수도 없었으며 늘 우선으로 남편의 시간과 아이의 끼니와 잠자리를 고려해야 했기에 대부분의 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 2년간 나의 사역은 미혼 때와는 달리 마치 중단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것은 내 맘을 많이 힘들게 했다. 나는 단지 남편과 아이와 관계했고 그리고 가정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모든 관계에만 충실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놓쳐버렸다고 느꼈던 시간 동안 주님은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팀으로 설 수 있도록 작업한 것이다. 우리가 기쁘게 할 수 있고, 우리가 하고 싶어 하고, 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바로 주님이 우리 가정을 통해 너무 하고 싶으셨던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팀워크를 다지셨던 것이다. 주님은 이루어주신 우리 가정이 기꺼이 기쁨으로 행복을 만끽하며 할 수 있는 선교사역을 하길 원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우리 가정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우린 ‘우리가정’ 만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통해 주님을 섬기게 됐다. 농촌에서 올라와 오갈 데 없던 자매들을 중심으로 공동체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고 또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예배와 일대일 성경공부 그리고 큐티에 목숨(?)을 걸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뛰어다녔다. 자매는 내가 형제는 남편이, 중보기도는 내가 모임인도는 남편이, 아이디어는 내가 몸으로 발로 땀 빼며 뛰는 것은 남편이 하며, 그야말로 역할과 분담이 잘 이루어진 팀사역을 이루어나갔다. 남편의 정확하고 완벽함에 걸려서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은 내가 가서 위로해 주고, 성령보다 앞서가는 내 열정은 남편이 분별해줬다.
나는 이것을 주님께서 다지시고 세워주신 팀사역 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 나의 경우에선 ‘기혼여성사역자의 삶과 사역’이 가정에서 분리되어 설명 될 수 없었으며 나의 삶과 사역 자체가 곧 이 ’팀사역’ 이었다. 그리고 이 팀원이 바로 나의 남편이고 나의 아이인 것이 늘 감사하다.
기혼여성사역자이었기에 느꼈던 한계(?)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사역에 있어서 내가 기혼여성이기 때문에 머뭇거리는 상황이 가끔 있다. G자매의 일이 그 중 하나였다. G자매가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만 해도 그에게 어떤 병이 있는지 그도 우리도 몰랐다. 농촌의 열악한 환경은 그의 폐와 신장을 망가뜨렸고 찢어지도록 가난한 그의 가정은 17세 소녀가 가질 수 있었던 어떤 소망이나 가능성도 없이 그를 주저앉게 했다. 그저 집에서 입이나 하나 덜자는 생각에 도시로 보내진 G자매는 우리 집에 온지 오래지 않아 폐결핵 의심으로 결핵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결핵병원은 여러 전염병 환자를 격리시키기 위해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내가 도시락을 들고 병원에 갈 때면 매번 남편이 정색을 하고 "가도 내가 가요." 라며 막아서는 것이었다.
남편의 마음엔 아내와 아이의 건강이 먼저였고 그런 맘이 남편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난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G자매가 퇴원을 하고 우리 집에서 요양하는 도중 아이가 자주 아팠다. 폐렴이 심했고 잘 낫지 않았다. 자매의 지병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이가 고생 하는 것 같다는 주위의 진단을 듣던 날 저녁 남편과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다. 남편은 아이를 위해 자매를 돌려보내자 했고, 나는 보낼 수 없다고 우겼다. 가장으로서 남편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이 선교사 부모를 만나서 이렇게 원치 않은 고생을 한다고 마음 아파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영혼을 내 한계 때문에 보낼 수 없으며 아이의 건강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고 버텼다. 그날 밤 나는 눈물로 베개를 적셨고 등 뒤로 남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가정으로 있다는 것이 정말 한계처럼 느껴졌다. 내가 미혼이었다면 이렇게 남편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지도 않았겠고, 어린 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도 않았을 텐데 싶었다.
G자매는 고향으로 보내지지 않았다. 남편이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방을 하나 얻어서 한동안 아이와 격리시켜 요양하게 배려해줬다. 이제 건강해져서 공동체의 리더로서 지체와 교회를 섬기고 있는 G자매를 볼 때면 남편과 나는 자주 그때의 일들을 떠올린다.
"나 혼자였다면 그 때 그렇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남편은 이 한마디로 그 당시 자신의 모든 마음의 갈등을 설명했다.
"알아요. 나도 한계를 느꼈으니까요."
그렇다. 그것이 우리에겐 한계였다. 당시에는 그 한계가 힘들었지만 지나온 지금의 순간 나는 그 한계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내가 기혼여성사역자이었기에 느꼈던 한계라면 그 한계는 나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사역할 수 없게 하는 고마운 겸손의 올무이기 때문이다.
미혼여성사역자들을 바라보며 결혼 초 미혼사역자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여러 번 부러워했고 지금도 가끔은 그분들의 자유(?)가 부러울 때가 있다. 미혼사역자는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그것도 여러 날씩 자신의 숙소를 현지인들에게 오픈 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자신의 시간을 그들과 나눌 수도 있다. 성령의 감동이 오면 누구에게 신고할 필요도 없이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또 필요하면 언제든 골방에 들어가서 주님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많은 청년들을 케어하고 기혼사역자들 보다 훨씬 빠르게 현지에 적응한다. 미혼여성사역자들은 기혼여성사역자들보다 상당히 많은 시간과 열정을 사역에 쏟을 수 있다.
물론 미혼여성사역자들은 가족이 함께하지 못하면서 오는 외로움과 스트레스와도 싸워야 하고 또 다소 보수적인 사역자들 사이에서의 부당한 대우들에 있어 맘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꼭 단점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외로움은 그로 하여금 더욱 신랑 되신 주님을 사모하게 할 것이고, 보수를 타고 오는 그런 부당한 대우들은 그로 하여금 사람과 주님 앞에 더욱 겸손하게 하기 때문이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사는 분명 제한적이고 모든 은사는 연합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아내와 남편이 연합해서 가정으로 선교사역을 하는 것처럼 미혼여성사역자들도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은사들을 연합시켜서 주님의 팀사역을 이루는 모습은 언제 봐도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선교지에 파송 된지 이제 겨우 6년 차, 우리는 올해 처음으로 안식년을 갖는 아직은 여러모로 서투른 선교사다. 선교를 말하라면 아는 것이 없고 사역을 말하라면 내놓고 보일 것이 없다. 6년 여 시간을 중국 땅에 있었지만 그저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단 한마디,
"정말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혜현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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