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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2 통권 174호     필자 : 왕빈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대만교회와 동역의 길을 찾아보라

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아울러 한국과 대만이 단교한지 2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은 중국과 수교를 위해 오랜 우방이었던 대만과 단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중국과 대만을 통합해서 볼 때 그 과정뿐만 아니라 그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 정부의 태도에 적잖은 아쉬움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대만은 중국 남해안에서 180km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의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섬나라다. 남북의 길이가 394km, 동서의 폭이 144km인 고구마 모양 형태로 돼 있다. 전체 면적은 한국 면적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대만은 1992년, 즉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웠다. 선교의 의미에서도 한국선교사들이 일찍부터 활동했던 곳이다.
 

세계는 일찍부터 대만 복음화에 관심을 가졌다. 초기 대만선교는 크게 남부와 북부, 두 줄기로 이뤄졌다. 첫째, 남부 선교는 다음과 같이 이뤄졌다. 1860년 9월, 영국장로회는 샤먼(厦门)에서 선교하고 있던 카스테어스 더글러스(Carstairs Douglas)와 맥켄지(H. L. Mackenzie)를 대만에 파견, 선교 탐사를 하게 했다. 그들은 대만에서 민난(闽南)어가 통용되고 현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대만선교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1865년 5월 28일, 영국장로회 소속 의료선교사인 제임스 맥스웰(James L. Maxwell)이 천쯔루(陈子路) 등 3명의 도우미와 함께 대만에 도착해 6월 16일 대만선교의 문을 정식으로 열었다. 대만에서는 이 날을 대만선교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는 타이난(台南)을 중심으로 의료선교를 전개하다가 현지인들의 심한 반발을 받아 결국 선교기지를 가오슝(高雄)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당시 복음을 받아드리는 부류는 대부분 빈곤층이었다.

영국장로회는 계속 선교사들을 파송해 적극 지원했다. 맥스웰 선교사는 1868년 타이난에 병원을 설립했다. 그는 의료선교뿐 아니라 문서선교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예를 들어 신도들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영어 알파벳을 이용해 민난어를 음역한 민난어 성경을 출판했다. 1881년 영국에서 인쇄기를 도입해 1885년부터 타이난에서 월간 ‘교회보(教会报)’를 발행했다. 1885년에는 교육학을 전공한 조지 에데(George Ede)씨가 타이난에 창롱중학교(长荣中学校)를 설립, 교육선교를 전개했다. 2년 후에는 타이난에 여학교도 설립됐다. 이후 적잖은 핍박이 있었지만 맥스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영국장로회 선교사들은 대만 남부의 선교 기반을 구축해갔다.
 

둘째, 대만 북부 선교이다. 북부는 남부보다 조금 늦게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조지 맥카이(George Leslie Mackay) 목사가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871년 12월 29일 가오슝에 도착해 언어와 풍습을 익히면서 선교 준비를 하다가 북부지역이 아직 복음의 미개지로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북부지역 개척을 자원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 타이베이(台北)의 단수이(淡水)에 도착했다. 대만장로회에서는 이 날을 북부교회선교일로 기념하고 있다. 맥카이 목사는 들판에서 목동들과 함께 생활하며 대만어를 배웠다. 그는 19세기 위대한 선교사의 한 사람으로 설교, 교육, 의술, 등의 은사를 갖고 북부의 선교 기지를 만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그가 배웠던 의학상식은 그의 대만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 요인 중의 하나가 됐다. 그는 전에 치과의료선교에 종사한 경험이 있어서 이가 아파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빼주며 고통을 덜어주었다. 게다가 선교사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의식을 제거하며 대만인들과 쉽게 관계를 맺어갔다. 그는 대만에서 모두 29년 동안 사역하면서 적어도 4만 개 이상의 이를 빼주었다고 한다. 2년 후 캐나다장로회는 프레이셔(J. B. Fraser) 목사를 파송해 맥카이 목사를 도와 대만 북부지역 선교를 강화했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맥카이 목사에게 큰 도움이 됐다. 맥카이 목사는 29년 동안 60개의 교회를 개척, 설립했으며 옥스퍼드중학교를 설립하고 많은 현지인목회자들을 양성했다. 대만장로회는 그의 선교정신을 기념해 타이베이 중심가에 한국의 세브란스병원과 같은 ‘맥카이기념병원’을 설립해 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한편 한국교회의 대만선교 역사는 194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여성선교사인 정성원 전도사가 대만을 방문, 지롱(基隆) 한국기독교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정 선교사는 1955년에는 가오슝 한국기독교회를, 1957년에는 타이베이 한국기독교회를 세워 교민 사역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후 김영진, 김달훈, 유환준, 황모영, 이기복, 한덕성(순교), 이재윤 선교사 등이 교민과 유학생 사역에 힘썼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적잖은 선교사들이 대만 복음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이들은 한국교회의 선교비 지원이 급격하게 줄어들거나 중단된 경험을 갖게 됐다. 당시 기독교 복음화율이 3.6%에 불과한 대만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은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실탄’ 공급을 받지 못했다.
 

2010년 한인선교사들은 60여 가정, 약 120여 명에 달했다. 현재는 중국 입국거절을 받는 선교사 다수가 대만으로 합류하면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타이베이에서 활동 중인 선교사 대부분은 대만에서 활동한 지 20년을 훌쩍 넘긴 시니어들이다. 타이중(台中)과 타이난에 있는 선교사들도 현지사역 경험이 15년 이상 된 분들이 많다. 선교사들 가운데는 중화복음신학원 등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현지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도 있다. 대학에서 중문학 내지 중국어학을 전공한 선교사들은 언어구사면에서 다른 선교사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보이기도 한다. 한인선교사들은 현지 교단과 협력 선교, 객가족 사역, 무교회 지역에서 교회개척, 신학교와 대학 교수 사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교회의 경직된 선교전략 때문에 대만에서 철수한 선교사도 적지 않았지만 선교사들은 굴하지 않고 대만 현지인들에게 세계선교의 비전을 심어주고 있다. 대만교회와 협력, 인재를 양성해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선교사 중에는 대만을 중화권 선교 전초기지로 만든 뒤 직접 중국과 동남아 화교권을 오가면서 사역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대만 물가가 중국 대륙에 비해 높았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대만에 선교사를 파송할 경우 중국보다 더 많은 비용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대만 물가는 매우 안정된 반면 중국 물가는 계속 올라가면서 비용대비 선교의 효과가 결코 대만이 낮다고 볼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중·장기적 사역 효과를 고려한다면 최소 2∼4년의 대만사역 기간은 중국은 물론 중화권 선교사들에게는 무척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대만은 언어 실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대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선교사들을 대만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다. 중국선교를 보다 효율적으로 감당하려면 대만사역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만은 중국선교를 위한 준비 장소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등 동남아화교들을 위한 선교 전진기지이다. 중국인의 사유방식이 무엇인지 먼저 경험하고 중국 현지에 맞는 목회와 선교가 무엇인지 만들고 실험할 수 있는 곳이 대만이다.
 

요즘 대만기독교가 ‘확’ 변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대만은 뿌리 깊은 혼합 종교의식, 낮은 복음화율, 팽배한 개교회주의 등으로 교회의 성장이나 교회 간 협력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성장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대만 목회자들이 그동안 한국, 미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지의 교회를 벤치마킹하면서 결국 성령운동만이 대만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대만교회의 변화는 방송 언론매체의 활약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65년 창간한 ‘기독교 룬탄바오(论坛报)’, ‘궈두 부싱바오(国度复兴报·2002년 창간)’ 등이 전 세계 화교교회의 소식 등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 1998년 설립된 기독교 텔레비전방송국인 ‘GOOD TV’가 방송선교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또 ‘좋은 소리’라는 의미의 ‘자인(佳音)’ 라디오방송 청취자가 늘고 있으며 기독인들을 위한 잡지들이 10여 종이나 발간되고 있다. 대만에서 아직은 기독교 매체의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대만 기독인들의 영성 강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주 1회 예배를 드렸을 뿐이지만 이제는 주 3회 이상 집회를 갖는 교회가 주류가 돼가고 있다. 기도의 경우 입으로 하지 않고 이제는 무릎으로, 영성으로 한다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기독인의 질적 성장이 가시화가 되고 있다.
 

대만 기독 연예인 100여 명이 출연하는 문화전도 집회 러브 소나타가 해마다 타이베이에서 열린다. 이 집회는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가 2008년 6월 대만에서 러브 소나타를 개최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대만 교계 지도자들은 차인표, 유승준, 한혜진 등 한국 연예인들이 비신자 전도를 위해 참석, 자신들의 신앙 여정을 밝히고 재능을 기부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에 지도자들은 대만 연예인들과 공감대를 확산시켜나갔고 2009년부터 ‘대만 연예인교회’로 유명한 거양밍(葛扬明) 타이베이자인(佳音)교회가 대만판 러브 소나타를 주도하게 했다.
 

2009년에는 800여 명, 2010년에는 5000여 명이 각각 집회에 참가했으며 참가자 가운데 결신율이 50%를 넘었다. 드라마, 음악, 무용, 간증 등으로 진행되는 대만판 ‘러브 소나타 타이베이’에는 비신자도 1만여 명이나 참가할 정도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이 집회는 기획 단계부터 최종 마무리까지 목회자 대신 평신도와 연예인들이 주도하는 게 특징이다. 그동안 쏭이민(宋逸民), 쏭다민(宋达民) 등 유명 배우와 인기 진행자 허롱(何戎), 대만 최고 권위의 연예상인 금종장을 수상했던 국민배우 쑨위에(孙越), 리톈주(李天柱), 인기가수 황궈룬(黄国伦) 등이 주요 순서를 맡았다.
 

한편 2015년 ‘대만교회추세보고서’에 따르면 대만 기독교 인구는 2013년에 비해 0.67%, 15만7139명이 늘어나 전체 대만 인구의 7.62%를 기록했다. 5세 이상 기독교인은 146만4981명으로 5세 이상 대만 인구의 6.53%에 달했다. 타이베이의 경우 기독교인이 타이베이 전체 인구의 13%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2013년 대만교회는 4101곳으로 2년 전에 비해 273곳이 늘어났다. 사역자도 40만1399명에 이르렀다. 교파를 나눠보면 독립교회를 제외하곤 대만기독교장로교회 교인이 24만7179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지방교회(召会) 15만6636명, 링량탕(灵粮堂) 7만794명, 참예수교회(真耶稣教会) 5만4991명, 중화기독침례회연회(中华基督教浸信会联会) 4만8733명, 대만루터교회(台湾信义会) 2만6434명, 대만성결교회(台湾圣教会) 1만9626명 순이다.
 

전통적으로 대만 등 중화권 교세는 한국에 비해 크게 약하다. 2011년 통계를 보면 전 세계 화교 7138만5700명을 위한 화교교회는 9609개, 기독교 기관은 3512개다. 중화권의 대표되는 기독교 연합기관인 ‘세계화푸(华福)중심’의 통계에 따르면 화교교회가 많이 분포돼 있는 곳은 대만, 홍콩,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순이다. 세계화푸중심은 1974년 로잔대회에 영향을 받은 토마스 왕 목사 등이 주축이 돼 발족한 기구다.
 

2011년 세계화푸중심의 통계에 따르면 대만교회는 3728곳, 기독교 기관은 1059곳에 달한다. 여기에 안식교, 참예수교회, 가톨릭을 포함하면 교회 수는 4454곳으로 늘어난다. 당시 5세 이상 대만 인구 중 6.44%(141만7925명)가 기독교인이었다. 이는 20년 전보다 117.29% 성장한 수치다. 홍콩교회는 1250개, 기독교 기관은 1844개다. 총 성도 수는 32만923명이지만 주일예배 평균 출석 인원이 29만2287명에 달해 주일성수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화교교회는 1215개, 기독교 기구는 330개에 이른다.
 

중화권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열정과 헌신이 중화권 교회에 제대로 이식될 수만 있다면 세계 선교의 지평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대만 교회의 부흥은 한국교회의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다. 대만 등 화교들과 한국인들이 힘을 합친다면 중국선교의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교세가 한국에 비해 크게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교회와 같은 열정, 헌신이 이들 교회에 이식되면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선교와 세계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중국전문가들은 대만을 중국선교 준비 장소, 중국목회자 양성과 재교육장소, 중국과 중화권의 한국선교사 재교육장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등 동남아화교들을 위한 선교 전진기지 등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만교회와 신학교들이 교회개척과 중국선교에 힘쓰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면 전 세계 화교들과 함께 큰 틀에서 사역하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대만을 지렛대로 전 세계 화교들과 동역하면 한국 중심의 중국선교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세계인과 더불어 팀사역을 하는 선진 선교 시스템도 갖추게 된다. 특히 화교는 중국어 등 외국어 구사 능력이 탁월하고 경제 능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협력하면 적잖은 선교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현재 많은 화교교회의 중국선교가 치고 빠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능력이 출중한 한국선교사들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다소 갈등이 있더라도 대만 등 화교교회를 선교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요청된다.


 

 

왕빈 | 중국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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