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설정   사이트맵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HOME  |  선교회소개  |  교육.훈련  |  중국을주께로  |  중국기도  |  중국어교실  |  자료나눔  |  커뮤니티  |  도서·음반
   
중국을 주께로는
전체보기
이번호보기
지난호보기
주제별보기
  특집/기획
  선교전략
  중국교회
  중국사회와 문화
  지역 및 종족연구
  중국뉴스
  중국어관련
  선교일반
  선교나침반
  중국 기독교
  기획
정기구독안내
해외정기구독안내
HOME > 중국을주께로 > 이번호보기
2002.2.20 통권 74호     필자 : 김중하 프린트   이메일 
[소수민족을 알자]
아창(阿昌)족

 

인구: 약 27,708명(1990년 통계)

분포: 아창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윈난(云南)성 서남부 지역으로 텅총(騰衝), 롱링(龍陵), 루시(路西), 량허(梁河), 잉장(盈江), 롱촨(隴川), 루이리(瑞麗) 등의 시나 현이다. 주로 산과 강 사이에 삼림이 우거진 아열대에 속하는 지역이다. 연평균 강우량이 1,800mm 정도로 식물들이 잘 자라는 곳이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미얀마에도 적은 인원의 아창족이 살고 있는데,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았다.


언어:
중국 학자들은 아창족의 언어에 대해 두 가지의 견해를 갖고 있다. 아창어는 한장어계 장면어족 이어지(漢藏語系藏緬語族彛語支), 또는 한장어계 장면어족 면어지(漢藏語系藏緬語族緬語支)에 속한 것으로 본다. 아창족의 언어가 비교적 복잡한 것은 민족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 아창족은 원래 윈난성의 서부지역 안에서도 동쪽이라 할 수 있는 따리(大理) 지역에서부터 천천히 이주해 오면서 그 지역에 있는 많은 민족들과 교류가 있었다. 이때 언어와 문화 방면에서 민족들 간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아창족 언어는 현재 두 가지의 방언이 있는데, 량허(梁河) 방언과 후사라싸(戶撒臘撒) 방언이다. 량허 방언은 한어(漢語), 징포어(景頗語), 리수어(傈僳語)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후사라싸 방언은 따이어(傣語), 징포어(景頗語), 그리고 미얀마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창족은 어떤 방언을 사용하든지, 몇 개의 다른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창족의 언어가 이렇게 복잡하고 다른 민족의 언어와 유사한 점이 많은 이유를 아창족은 다음의 설화를 통해 풀이하고 있다.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여러 민족이 있었는데, 모든 민족이 각자 나름대로의 언어가 없어서 불편하게 지냈다. 이때 걸출한 지도자 황제(黃帝: 황띠)가 나타나 모든 민족에게 언어를 갖게 해주겠다며 각 민족의 대표를 불러모았다. 자기 민족의 언어를 갖기 위해 달려온 민족 중 징포족, 따이족, 리수족, 한족 등은 일찍 도착해서 모두 언어를 분배 받았으나, 아창족은 가장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분배 받을 언어가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게 되자 황제는 각 민족 언어에서 조금씩 가져다가 아창족 언어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아창족의 언어는 여러 민족의 언어가 함께 섞여 있게 된 것이다.
 

문자:  아창족만의 문자는 없다. 한자(漢字)를 사용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겨 그리 보편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민족 명칭의 유래와 지계(支係)
고대 문헌에 의하면, 아창족은 원래부터 자신들을 아창(阿昌) 또는 어창(峨昌, 俄昌, 莪昌)이라고 불렀고, 후싸(戶撒) 일대에서는 멍싸(蒙撒), 멍싸찬(蒙撒樿), 천싸(襯撒)라고 불렀다. 량허 일대에서는 한싸(漢撒), 어창(峨昌)이라고 불렀었는데, 1953년에 더홍따이족징포족자치주(德宏傣族景頗族 自治州)가 성립된 이후에 정식명칭을 아창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아창족은 인구가 적은 민족이라 지계가 그리 복잡하지는 않지만, 서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다르고 혈통이 다름으로 인해 지계를 구분한다. 아창족의 지계는 따아창(大阿昌), 샤오아창(小阿昌), 창싸(昌撒) 세 가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따아창과 샤오아창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어의 표현이고, 세 지계가 자기 자신과 다른 지계를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을 표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생활: 주로 농업 위주이고 농작물은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주된 산업은 아니지만 수공예, 수렵, 가축업 등도 생활 경제의 수단이다. 아창족 사회에서는 분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있다. 사냥, 건축, 밭갈기 등 힘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들은 남자의 몫이고, 섬세함을 요구하거나 자녀들을 돌보는 것은 여자가 주로 책임을 진다.
 

음식: 주식을 쌀이며, 감자와 옥수수도 많이 먹는다. 아창족은 신맛을 좋아하고, 미시엔(米線: 쌀국수)을 쭈오(著)라고 부르며 즐겨 먹는다. 먹는 방법도 탕으로 끓여서 먹지 않고, 주로 삶은 뒤에 온갖 양념을 하여 비벼서 구운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데 아창족이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다.


복장:
복장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남자의 경우 상의는 남색, 흰색, 검은색 등의 단색으로 된 중앙에 섶을 둔 저고리를 입고, 바지는 검은색 긴바지를 입으며, 머리에 짙은 색 천으로 머리를 감아 모자를 대신한다. 여자는 결혼을 하였을 경우 일반적으로 소매가 좁고 정면 중앙에 섶을 둔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검은색이나 남색의 빠오터우(包頭)를 쓴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는 긴 바지를 입고, 머리를 땋아서 머리 위로 감아 올려 장식을 한다.
 

건축: 아창족의 대부분은 한족이나 따이족과 인접해서 살고 있는데, 어떤 마을은 그들과 함께 구성원을 이루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아창족의 가옥 구조도 주거하고 있는 환경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 산 속에 사는 사람들이 평지에 사는 사람들의 가옥보다 구조가 간단하다. 평지에 있는 집들은 대부분 담을 쌓고 사는데, 산 속에서는 담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지붕도 평지는 기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산 속에서는 초가집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가옥은 대부분 삼면에 방을 두고 한쪽을 벽으로 쌓는 경우와 사면을 모두 방으로 하는 경우이다. 집은 2층으로 짓는데, 1층은 물건을 넣어두거나 가축우리로 사용하고 2층에 사람들이 거주한다. 2층에서 한쪽 방은 곡식을 넣어두고 또 다른 한쪽은 자녀들이 거주하며 중앙에 있는 양쪽방을 부부와 노인이 사용한다.
 

결혼: 아창족의 젊은 남녀는 결혼하기 전에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다. 그러나 결혼에 한해서는 자유가 없다. 아창족의 부모들은 딸을 재산으로 여기므로 결혼할 때 신랑에게 파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결혼에 있어서 본인들의 의사보다는 부모의 결정이 더 중요하다. 만약 부모의 뜻을 어기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짝을 찾아 결혼하면 부모뿐 아니라 모든 마을 사람들이 엄격하게 벌을 내린다.

결혼한 여자는 시집의 재산으로 여긴다. 그리고 만약 형제가 있는데 형이 결혼해서 죽으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장인에게 그렇게 많은 예물을 할 필요는 없다.

아창족은 이러한 매매혼이 이외에 라훈(拉婚)과 창혼(槍婚)이 있다. 라훈은 아창족어로 ‘쭈에니에싸(卓涅撒路)’라고 한다. 젊은 남녀가 연애하면서 감정이 깊어져 서로 결혼을 약속하였지만 부모가 반대할 경우, 서로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라훈을 진행한다. 일단 남자측에서 여자를 데려다가 자기가 믿을만한 사람의 집에 두고 중매인을 통해 여자의 집에 알린다. 이때 여자 부모가 동의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자를 돌려 보내야 한다. 부모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함께 죽거나 도망을 가는 경우도 있다.

창훈은 후사라사 방언으로 ‘쭈오니에싸루(卓涅撒路)’라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데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경우, 혹은 여러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경우에 남자 본인이나 친구들이 여자의 부모에게 통보하지 않고 여자를 납치하여 이웃집에 숨겨둔다. 그리고 중매인을 통해 여자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결혼을 이야기한다. 이 경우도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라훈이든 창훈이든 남자 측에서 여자 측에게 결혼을 위한 충분한 예물을 주어야만 한다.

아창족은 비교적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른다.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롱촨지역에서는 저녁시간에 신부맞이를 한다. 신부맞이는 신랑이 젊은 남녀 두명씩 데리고 신부의 집으로 가서 식구들이 모두 잠이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랑이 두 개의 향을 피워서 신부집의 가호신 앞에 꽂고 조상들에게 인사한다. 그리고 함께 동행한 젊은 남녀가 신부를 데리고 출발한다. 가는 길에 모든 다리를 건널 때마다 ‘상차오깡(上僑崗: 신랑이 다리 앞에 담배, 삔랑[檳樃], 은전 등을 놓는 행냥(伴娘: 신랑과 함께 신부를 맞으러 갖던 젊은 여자)들과 함께 이웃집에서 잠을 잔다.

이튿날 해가 떠오를 때 빤냥들이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온다. 신부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랑은 긴칼을 들고 나와 새로 세워둔 황색 대나무 문을 베어버린다. 이 의미는 신부가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의 머리 뒤를 칼로 긋는 시늉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이 행위는 신부의 몸에 있던 모든 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신랑과 신부가 방에 들어간 후에 제를 드리고,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리면 빤냥들은 신부를 데리고 부뚜막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빗기고 화장을 고친 다음 우물로 가서 물을 한 그릇 떠온다. 신랑은 이때 문 앞에 서서 신부가 떠온 물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서로 도와가며 집안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친구들은 새로 떠온 물처럼 깨끗하고 달콤하며 재난 없이 행복하게 살라고 큰 소리로 축복한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 신부 집에서 닭 한 마리와 쌀밥을 담은 함을 신랑 집에 보내다. 이때 신부의 친구들은 신부 집에서 만든 것보다 더 큰 함을 만들어 다른 고기도 넣어서 들고 간다. 밥과 고기를 담은 함이 도착하면 신랑의 집에서 친척과 친구들은 신부 집에서 만든 것보다 더 큰 함을 만들어 다른 고기도 넣어서 들고 간다. 밥과 고기를 담은 함이 도착하면 신랑의 집에서 친척과 친구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하고 다음날은 신부의 집에서 잔치를 한다. 삼일 째 되는 날은 신부의 집에서 다시 함을 만들어 찹쌀 4근(1근은 500g)을 넣고, 다른 네 개의 광주리에 여러 가지 곡식을 넣어 보낸다. 이는 새로운 살림을 시작하는 집에서 종자로 삼아 번성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의 화장품이나 장식품 등을 담은 상자를 보내는데, 상자의 열쇠는 남자 둘을 시켜서 미리 보낸다. 남자 측에서 상자와 열쇠를 받으면 이로써 모든 결혼행사를 마치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는데, 만약 상속받게 되면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책임을 지고 모셔야 한다. 아들이 없고 딸만 있을 경우에는 사위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사위는 장인과 장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야 하는 책임을 갖는다.
 

장례: 아창족은 사람이 죽으면 발인하기 전에 ‘훠파오(活袍: 뤼스(經師)라고도 하는데, 경학(經學)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를 모셔다가 경을 읽는다. 발인 시에는 절에서 지도자를 모셔 관 앞에서 천을 잡고 길을 인도하게 한다. 천은 관에서부터 연결되어 있으며 부인이나 자녀들이 고개를 숙인 위로 펼쳐져 있다. 죽은 사람이 이 천을 다리 삼아서 하늘까지 가라고 하는 의미이다. 전염병이나 난산 등으로 죽었을 경우는 화장(火葬)한다. 만일 부녀자가 죽었을 경우는 친정으로 데리고 가서 짚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새 옷과 새 빠터우를 씌워 생전의 모습을 만든 뒤 방안에 7일 동안 안치한다. 마지막 날에 훠파오를 모셔 경을 읽어 영혼을 보내는 의식을 한다.


절기:
아창족은 한족과 따이족의 영향을 받았기에 춘제(春節), 포수이제(潑水節) 등을 지키는데, 특히 소승불교와 관계있는 절기(따이족 편을 참고- 필자 주)는 모두 지킨다. 이 외에 아창족이 특별하게 지키는 절기는 창신제(嘗新節)와 후이자제(會街節)가 있는데, 창신제는 하니족 등 기타 다른 소수민족들이 지키는 절기이므로 이미 실렸던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후이자제는 음력 10월에 지키는 절기로 아창족의 전통적인 절기이다. 이 절기 때에는 목재와 종이, 천으로 흰 코끼리를 만들어 코끼리 춤을 추며 풍성한 수확을 축하하면서 즐긴다.

쭝치우제(中秋節)는 다른 많은 민족들이 다 함께 지키는 절기이기는 하지만, 아창족이 행하는 특별한 활동이 있다. 아창족은 쭝치우제에 먼저 개를 배부르게 먹게 해놓고 그 다음에 밥을 먹는 습관이 있다. 평상시에는 사람이 먹고 남은 것을 개에게 먹게 했으나, 이 날만은 사람보다 개를 우선 배부르게 먹인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소수민족들에게서 볼 수 있는 토테미즘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금기

생산방면의 금기;
매년 입추(立秋)에는 아창족 그 누구도 밭에 나갈 수 없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금기를 어기면 비옥했던 땅이 변하여 황량한 땅이 되고, 이미 익은 곡식도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냥활동에 대한 금기가 많은 편이다. 1월 1일에는 사냥을 금한다. 집단으로 사냥을 갈 경우 말, 소, 양, 돼지에 속한 날은 사냥을 나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런 날 사냥을 나갈 경우 사람이 다치거나 아무런 수확이 없게 된다고 해서이다. 아창족은 공장(工匠)들이 각각의 신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보고 그들을 존경한다. 그래서 공장들이 사용하는 공구를 건너가거나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만약 함부로 다루게 되면 그들과 함께 있던 신이 해꼬지를 한다고 생각한다.
 

생활방면의 금기: 결혼한 지 10년이 안되었거나 아기가 아직 5세가 안된 부녀자는 시아버지나 시아버지의 형제들 옆에 앉을 수도 없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어도 안 된다. 여자는 문턱에 걸터앉는 것도 금하고, 남자들이 사용하는 공구를 넘어가거나 함부로 다룰 수 없다.
 

결혼, 장례의 금기: 동성(同姓)은 결혼하지 못한다. 인근에 있는 한족이나 따이족과의 통혼은 그래도 허락하는 편이나 그 외의 민족과는 통혼을 금한다. 그리고 결혼은 반드시 형제들 간의 연령 순서대로 해야 한다. 만약 맏형이 결혼을 안 한 경우 동생들은 모두 맏형이 결혼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질병 등 특별한 이유로 결혼을 못한 경우 동생이 먼저 결혼하려 한다면 형이나 언니에게 추월벌금을 주고서야 할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상을 치르기 전에 죽은 사람의 몸에서 모든 금속을 제거해야 한다. 금이나 은으로 이를 했으면 그 이를 빼야 한다. 또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이나 신은 털로 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절기나 종교적인 금기: 아창족은 한족, 따이족과 인접하는 민족으로 함께 지낸 시간이 길기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종교와 절기방면에서 그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특히 따이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이족의 절기를 대부분 지키고 있으며 금기사항도 비슷하다.


종교

신령(神靈)숭배와 귀신숭배의 혼합은 아창족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정령숭배에 대한 것은 아창족의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구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신화 역사시(神話史詩)인 ‘쩌파마어쩌미마(遮麻和遮米麻: ‘쩌파마’와 ‘쩌미마’는 신의 이름이다.)’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작품 안에는 천지의 시작, 만물의 생성, 인간의 기원, 그리고 종교와 세속에 대한 연구와 해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천지만물이 생기기 이전에 세계는 대단한 혼란한 가운데 있었는데, 갑자기 빛이 나타나서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구분지었다. 이 때 음과 양이 생겨났는데, 음양은 떠다시 ‘티엔공(天公, 하늘신)’인 ‘쩌파마’와 ‘띠무(地母, 땅신)’인 ‘쩌미마’가 태어나게 했으며, 저파마와 쩌미마는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쩌파마’는 하늘간의에 태양, 달, 별, 번개, 천둥, 구름, 비 등 하늘과 관계있는 모든 강들을 만들어 내었고, ‘쩌미마’는 꽃, 풀, 나무, 강, 바다, 산 등 유지와 관계있는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쩌파마’와 ‘쩌미마’는 함께 사람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땅에 마왕(魔王) 라홍(臘訇)이 나타났다. 라홍은 떠오르지도 지지도 않는 가짜 태양을 만들어서 인간들에게 해(害)가 되는 빛을 발하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라홍은 이에 그치지 않고 모든 우주 만물들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물 속에 살아야 할 생물들을 산 위에 갖다 놓고 산 위의 동물들은 바다로 가게하며, 나무뿌리들이 하늘을 향하게 하고 가지들이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등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서 혼란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쩌파마와 쩌미마가 나서서 마왕 라홍과 싸워 승리를 거둔 후, 라홍이 만들어 하늘에 놓았던 가짜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려 세계가 다시 낮과 밤을 찾게 하였으며, 모든 생물들이 원 위치로 돌아가게 함으로 세계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이를 계기로 쩌파마와 쩌미마는 신들의 세계에 질서를 바로 잡았으며, 인간 세계에 윤리와 도덕이 있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이때부터 아창족은 쩌파마와 쩌미마를 최고의 신령으로 섬기게 되고, 그 후로 일년에 한번씩 ‘워루오(窩羅)’라는 절기를 지키면서 이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아창족은 처음에 불사약(不死藥)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설에 의하면 세상이 시작된 후에 신과 마귀와 사람만 있었는데, 사람이 불사약을 잃어버렸고 그때부터 사람은 죽게 되었다.

아창족은 사람은 본래 혼이 있는데, 죽게 되면 이 혼이 귀신으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아창족이 생각하는 모든 귀신은 선량한 귀신과 악한 귀신 두 종류로 나뉜다. 선량한 귀신은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오고, 악한 귀신은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다. 선량한 귀신으로는 ‘구치(谷期: 풍성한 수확을 자져다 주는 귀신)’, 팡치(旁期: 재물을 가져다 주는 귀신)’ 외에 산귀신, 토지귀신, 사냥귀신 등이 있다. 악한귀신으로는 등나무귀신, 태양귀신, 달귀신, 사자귀신, 이리귀신, 벌레귀신 등이 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태양귀신이나 달귀신에게 한번 물리면 피부에 부스럼이 생기는 등 어려움이 닥친다. 사람들은 이러한 재앙을 피하고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 시간을 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아창족들은 조상이 죽어서 된 귀신은 다른 일반 귀신과 달리 자기 집안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조상신을 특별히 잘 대한다. 이러한 생각이 조상숭배를 하게 되는 원인이다. 이들에 의하면 조상은 3개의 혼이 있는데, 하나는 집에 남아있다고 해서 집안에 모셔놓고 매년 음력 1월 1일과 7월 1일, 8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 다른 하나는 무덤에 있다고 믿고 매년 칭밍제(淸明節) 때마다 무덤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섬기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청황먀오(城隍廟: 성황당)’에 있는데, 매년 음력 7월 1일에 귀신의 왕이 문을 열어서 각 귀신들에게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후손들의 제사를 즐기도록 한다.

아창족의 조상신은 일반적으로 집과 자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특별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해하기도 한다. 조상신이 자기 집에서 고기를 얻어먹지 못할 경우 악한 귀신인 ‘캉파오마웡(康袍麻翁)’과 ‘캉미마웡(康米麻翁)’을 대동하고 와서 집안 사람들을 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 꼭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 전에 ‘훠파오’를 불러서 점을 치게 하고, 제사를 지낼 때는 ‘모타오(莫陶:무당)’를 불러서 경을 읽게 한다. 아창족의 이러한 특별한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다룰 것이 더 많이 있지만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만을 다루어도 많은 지면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정리하기로 한다.

그 외에 아창족 마을에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제사를 지내는 건축물이 있는데, 이를 ‘싸이(塞; 묘[廟])’라고 부른다. 아창족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일찍이 싸이 안에 ‘와까오자오(瓦告早: 마을의 우두머리)’와 사냥신을 모셔 놓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족의 영향을 받아 싸이 안에 땅신, 산신, 고아와 과부의 신선 등을 모셔 놓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세번 마을 제사를 지내는데, 첫째 날은 음력 2월중에 말(馬)에 속한 날을 골라 지내며, 둘째로는 음력 5월 28일, 셋째로는 음력 6월 25일에 지낸다. 매번 제사를 지낼 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평안을 빌고, 가축도 건강하고 농사의 수확도 많도록 빈다. 이 마을 제사는 집단활동으로써 모든 마을이 하루동안 모든 일을 놓고 쉬며 외부 사람이 이 날은 마을에 들어갈 수 없다.

아창족은 또한 인근에 사는 따이족의 영향으로 소승불교를 믿기도 한다. 소승불교에 대해서는 이미 실렸던 따이족 편을 참고하면 된다. 아창족은 소승불교의 영향으로 코기리를 좋은 일을 가져다 주는 신이라고 여긴다. 흰 코끼리는 태평하고, 기쁘고, 화목한 것을 상징한다고 하여 매년 후이자제 때 흰 코끼리 춤을 추는데, 이는 축복하는 행위이다.
 

기독교
인근에 있는 민족인 리수족이나 징포족에게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에 아창족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기는 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아창족은 아직도 미전도 민족으로 분류되는 민족이다.
 

아창족 거주지역에 가려면
최근에는 한국에서 쿤밍(昆明)까지 일주일에 4회(윈난항공-일∙목, 대한항공-월∙금) 직항이 운행된다. 쿤밍으로부터 비행기나 버스로 망쓰(芒市, 최근에는 루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는 바오산(保山) 까지 가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아창족이 사는 각 지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기도제목
∙ 많은 귀신에 대한 이야기로 아창족을 혼란하게 하는 사단의 세력이 성령의 역사로 무너지고, 아창족의 영혼들이 사단으로부터 해방되도록.
∙ 아창족을 위한 사역자들이 국내외에서 일어나도록.
∙ 아창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이 민족을 입양하는 교회가 생기도록.


※참고도서

∙ 阿昌族節史, 云南人民出版社, 1986
∙ 梁河縣志, 云南人民出版社, 1993 
∙ 阿昌族文學史, 云南人民出版社, 1995
∙ 云南小數民族, 云南人民出版社, 1983
∙ 云南小數民族槪覽, 云南人民出版社, 1999
∙ 阿昌族, 民族出版社, 1989
∙ 中國少數民族禁忌大觀, 廣西民族出版社, 1996
∙ 中華民族, 華夏出版社, 1991
∙ 中國少數民族槪觀, 天津古籍出版社, 1988





김중하/ 중국선교사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110-812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25, (명륜3가 명륜빌딩 202호)   Tel : 02)745-0780~2, 070-8236-1270   Fax : 02)745-0786    E-mail : sinim@chol.com
Copyright 중국어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duct by gmgl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