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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20 통권 96호     필자 : 강인규 프린트   이메일 
[중국선교역사]
항일전쟁시기의 중국기독교


지난 호에서 우리는 중화민국 훈정시기(1928-1937)의 기독교를 정치적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군정정치에서 헌법에 기초한 훈정시기에 진입하게 되면서 종교자유를 헌법에 의해 보장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37년 7월 7일, 일본은 허베이(河北)성의 루거우차오(蘆溝橋)사건을 통해 중국 침략을 전면적으로 전개한다. 8년 동안 전개된 이 시기를 역사가들은 ‘항일전쟁 시기(1937-1945)’ 혹은 ‘항전시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 중국의 기독교는 어렵게 획득한 종교자유를 누리기전에 또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항일전쟁 시기 중국 기독교의 핍박과 고난의 발자취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항일전쟁 시기 이전의 중국 기독교
1936년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외국 선교단체는 모두 133개 단체에 이르고, 서양 선교사는 6,059명에 이른다. 한편 중국인 전도사도 이전보다 많이 증가하여11,662명, 중국인 세례 교인은 536,089명으로 증가하였다. 

당시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단체는 겨우 10여 개에 불과 했지만, 중국에서는 무려 133개의 많은 선교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은 여전히 최우선 선교지의 위치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중국교회는 전국에 걸쳐 두루 분포되고 있었지만, 내륙지역과 연안(沿岸)지역을 비교해 보면 여전히 해안지역이 우세했다. 비록 내지회(內地會)와 많은 선교단체들이 내륙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적으로 열심히 참여 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여전히 불균형 상태였다. 

항일전쟁 시기 함락된 지역의 교회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한 후, 연안 지역은 점차적으로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었지만 일본은 영국과 미국 등의 서방국가와의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교회에 별다른 박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41년 진주만(眞珠灣) 사건 이후 일본이 서방국가와 전면적인 적대 관계로 전환되면서 교회에 대한 태도도 돌변하였다. 온갖 방법으로 기독교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 베이징(北京) 지역
1942년 일본과 미국이 전면적인 전쟁상태에 돌입하면서 교회는 거의 문을 닫고 정상적인 예배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1900년의 의화단 사건 이후 유래 없는 일이었다. 목회자들은 ‘베이징 기독교 유지회(北京基督敎維持會)’를 조직하여 교회 간에 서로 협조하여 역경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일본은 기독교를 장악하기위해 ‘허베이 기독교연합촉진회(河北基督敎聯合促進會)’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각 교회 목회자들은 모두 참가하라고 위협하였다. 모임에 참가하지 않으면 이는 일본을 지지하지 않는 교회라 간주하여 적대시하고 온갖 핍박을 가하였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연합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 난징(南京) 지역
일본 기독교계 조차 일본 정부의 선전에 속아서 중국인들과 중국교회를 이해하지 못했다. 난징 지역의 수많은 교회들이 폭격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일본군에 의해 강탈당하기도 하였다. 일본군은 교회를 점령하여 일본어를 가르치는 언어학교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 상하이(上海) 지역
내지회 상하이 총본부의 사무실이 일본군의 폭격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흙더미로 변했다. 3개월 이상을 밤낮으로 기관총 소리, 해군이 쏘아대는 포탄 소리, 공습으로 인한 폭발 소리 등으로 상하이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각처에 피난민 수용소를 설치하여 난민들을 수용했지만 식량 부족으로 굶주렸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이 만연하여 상하이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있었다. 이러한 지역이외에도 광저우(廣州)와 홍콩(香港)을 비롯한 대부분의 연안지역은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어 교회 건물은 파괴되고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함락된 지역의 박해받는 신도들
일본군은 점령지역의 교회를 파괴하고 피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와 신도들에게 온갖 박해를 가했다. 특히 서양 선교사들에게는 더욱 가옥 했다.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거나 귀국하지 않고 남아있던 선교사들은 대부분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그 당시 수용소에 감금된 서양 선교사들의 수는 1,200여 명이었다. 이들은 장기간의 감금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 등으로 죽어갔으며 1936년 독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루따오(呂道) 선교사도 산둥(山東)성의 한 수용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후에 일부 선교사들은 포로를 교환하는 국제법에 의거하여 일본인 포로와 교환하여 석방되었고, 1942년 6월과 1943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던 400여 명의 영국, 미국 출신의 선교사들이 중립국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되기도 하였다.

서양 선교사뿐만 아니라 중국인 목회자와 신도들도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서 온갖 고통과 핍박을 받았고 목숨을 잃어갔다. 장인(江陰)현에서 37명의 신도들이 무고하게 살해 되었고, 쉬저우(徐州)에서는 일본군이 교회를 파괴하는 것을 막던 목사와 신도들이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였고 그 외의 많은 신도들은 체포되었다. 샨시(山西)성 타이위엔(太原)의 왕진칭(王金慶) 목사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본 헌병들에 체포되어 참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순교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일본군에 함락된 지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중국교회는 일본군들의 총칼 앞에 참혹한 핍박과 고통 속에 무고한 희생을 당해야 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일부 목회자와 신도들은 일본군에 협조하여 중국교회에 더 많은 분열과 상처를 남겼다.

결 론
이 기간 동안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 연안지역은 함락지역이라 칭하였고 국민당 정부의 통치하에 있던 쓰촨(四川), 윈난(雲南), 꾸이저우(貴州), 신장(新疆), 깐쑤(甘肅)등의 후방지역들은 자유지역이라 칭하였다. 항전시기 중국은 함락지역과 자유지역을 막론하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과 종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영국, 미국 등 서방국가에 의지하고 있었던 기독교는 1941년 진주만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서방국가의 급변한 대세로 인해 크나큰 박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이 시련을 통해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있게 되었다. 고난 속에서 이들은 굳건한 신앙을 견지하여 초대 교회 교인들과 같이 더욱 담대하게 순수한 신앙을 지켜나갔다. 또한 중국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함락지역은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귀환하거나 감금되어서  서방 선교사들이 없는 공백 상태가 되었고, 자유지역 조차 선교사들의 수가 감소하고 영향력이 약화되어 장기간 서방 교회에 의뢰하던 중국교회는 부득불 자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쟁이라는 시련은 중국교회의 자립(自立), 자전(自傳), 자양(自養)의 중국교회 본토화운동을 철저하고도 신속히 진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차스제(査時傑), 『抗戰時期的基督教會』
왕밍따오(王明道),『五十年來』
짱원씬(章文新, Rev. Francis P. Jones), 『歲月如流(The Moving Finger Writes)』
라이올(Rev. Leslie T. Lyall),『(萬有主宰, God Reigns in China)』
쮸요우위(朱友漁), 『朱友漁自傳』 


 

강인규 | 대만 중원대학교 교양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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