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두 번째 글에서는 불교 세계관과 그에 대한 평가, 유교 세계관과 그에 대한 평가, 그리고 세속인본주의(근대-세계화주의)의 세계관 중 신-영계와 현실세계에 대한 세계관과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 본다. 이 평가는 물론 지난번 글에서 소개한 3개의 평가 기준에 비추어서 하게 되고, 필요한 경우 복음세계관의 해당 가르침과 비교하여 평가함으로 이해를 더 깊게 하고자 한다.
불교 세계관과 평가 우선 불교에 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서 그 세계관을 살펴 본다. 불교는 많은 아시아인들이 신봉하는 세계의 종교이다. 불교는 내용면에서는 많이 다른 두 종류의 불교 즉 ①남방불교-소승불교(Theravada Buddhism, TB)와 ②북방불교-대승불교 (Mahayana B. MB)로 구분이 된다. 남방불교가 창시자 석가모니가 시작한 원래의 불교이고 이 불교가 중국을 거쳐 다른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변화된 것이 북방불교이다. 이를 가르침의 내용에서 보면, 불교 가르침의 3요소 즉, 뿌리인 힌두교 가르침과 현인 고타마-석가모니의 가르침, 그리고 신-영계에 관한 추가적인 가르침 중에서 전자 2요소를 가르치는 것이 남방불교-소승불교이고, 3요소 전부를 혼합해서 가르치는 것이 북방불교-대승불교이다. 이하에서는 구분이 필요한 경우에는 TB와 MB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불교의 근원적 현실관(신-영계) 불교 창시자인 고타마 석가모니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 따라서 원래의 불교는 기본적으로 비신적(non-theistic)종교이며 이 세상 중심이고 수행 중심인 종교이다. 즉 지혜탐구적이며 도덕/윤리 수행중시의 종교이며 해탈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 열반 (nirvana)을 지향하며 일찍이 영국인들이 동양의 등불(Light of Asia)로 부르던 종교이다(TB). 한편, MB는 신-영계를 다 인정하며 원래의 불교의 신관을 범신론/정령론적 신관으로 변형하였다. 이 변형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고대 중국인의 신관과 도교의 신관을 혼합적으로 수용한 것이 된다. 이 신관의 가르침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신-부처가 될 수 있다(성불)고 가르친다(MB). 따라서 불교의 신관에 대한 평가는 큰 관점에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TB는 신-영계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니 이를 무시함으로써 불충분한 세계관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MB는 타종교의 가르침을 혼합적으로 수용하였기에 미신적/정령론적/혼합적 영관-신관을 가르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그 가르침의 내적 일관성과 타당성이 결여된다. 이는 완벽한 신관-영계관을 가르치는 기독세계관과 대비된다.
불교의 세계-현실관(World-Reality) TB의 세계-현실관은 늘 변하고 상대적이며 가변적인 것으로 보며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현실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의 총체로 본다. 세상과 인생은 카르마 (Karma)법칙에 따른 윤회의 바퀴에 갇혀(Samsara)있으며 이것이 인간 불행의 근원이라고 본다. 현실은 해결불가한 욕심과 집착의 결과로 오는 고난의 연속이다. 따라서, 현실은 윤회바퀴 (Samsara)로써 거부하고 탈출해야 할 것이며, 사성제와 팔정도를 수행함으로 해탈해야 할 대상이다.
한편, MB의 세계-현실관은 기본적으로 상기한 TB의 것과 동일하나, 비움을 중시하며, 보살님의 은혜의 도움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서 성불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점이 다르다. 그러면 이러한 불교의 세계-현실관을 상기한 평가 기준에 비추어서 평가하여 보자. TB와 MB 공히 인간을 포함한 현실을 늘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며 실체는 없고 관계적 존재에 지나지 않고 고난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또한 한 번 뿐이 아닌 윤회하는 인생이며 부정하고 탈 해야 할 대상이 세상인 것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세계는 그 속에 책임 있게 살고 연구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세계-현실관은 합리적인 생각과 경험(과학주의)에 배치되는 매우 비현실적이며 부정적이며 수동적이고 운명론적인 현실관이다. 이러한 관점은 불교의 뿌리가 되는 힌두교가 세계-현실을 허상(illusion 혹은 maya)으로 보는 데서 오는 필연으로 볼 수 있다. MB의 경우는 상기한 내용의 현실관에다 범신론-정령론적 세상관을 혼합하여 더 미신적이고 요행적인 현실관을 가지게 되었다.
불교의 인간-인생관 TB의 인간관은 인간은 실존이 아닌 허상(Illusion)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관계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즉 인생은 현실의 변화로서 허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카르마 법칙과 윤회원칙의 적용을 받아 전생의 업보에 따라 현생의 운명이 결정되며, 인생은 고난 (suffering)의 연속으로 본다. 따라서 인생은 부정하고 탈해야(Moksha)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탈하는 방법은 사성제와 팔정도를 통한 깨달음과 수행으로 무지-욕망-고난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한편, MB의 인간관은 근본적으로 상기와 동일하나 탈하는 방법에서 자신을 비우는 것을 중시하며, 개인의 영은 죽지 않고 성불할 때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존재하는 사상을 수용하는 점이 다르다.
불교의 인간-인생관과 평가 인간-인생에 대해서 일체의 실체성이나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인생은 계속 변화하는 허상과 관계인 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고생의 연속인 인생은 부정하고 탈피해야 할 대상이다. 즉, 인생을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본다. 불교 특히 TB의 인간관은 비현실적, 부정적, 운명적인 것이다. 이런 인생관은 부분적 진리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생은 고난이라는 그럴듯한 설파도 부분적 진리에 불과해 인생에는 고난 외에도 다른 많은 것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난은 오직 욕심과 집착에서 온다는 가르침도 그런 것들 외에도 여러 가지 악한 것들에 의해서도 고난이 야기되는 현실을 보면 부분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MB의 가르침도 대동소이하다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죽지 않는 영이 있다는 사상을 추가해도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의 죽음-사후관과 평가 TB와 MB 공히 인간의 죽음은 카르마 법칙에 의해 끊임 없이 변화-윤회하는 과정(생성노사)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일체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본다. 즉, 비현실적이고 운명-수동적인 인생의 일부로서의 죽음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부분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보편적인 인생의 궁극적 걱정과 두려움의 근원인 죽음에 대해 아무런 구원을 제시하지 못하는 죽음관이다. 이는 인생과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한 충분한 가르침과 죽음으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제시하고 초자연적 도움을 주는 기독교의 죽음-사후관과 많은 차이가 난다.
유교의 세계관과 평가 유교는 동아시아인 특별히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세계의 종교 내지 윤리 가르침이다. 특별히 한국의 경우 유교는 이조 500년의 국가통치 이념이자 사상이었다. 중국의 경우에도 공산화 이후 배격하였던 것이 유교인데 근래에 와서는 다시 긍정의 평가대상이 되었다.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형성에 유교는 아직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유교의 세계관을 요점 중심으로 살펴본다.
유교의 근원적 현실(신-영)관과 평가 유교에는 신-영계-사후에 관한 자체의 가르침이 없다. 유교 창시자인 공자는 이런 것들로부터 초연할 것을 가르칠 뿐이었다. 유교의 가르침은 대신 이 세상 삶의 도덕-윤리와 제도에 중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근원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중국의 전통적 정령주의-미신적 영계관을 가진 중국인들에게 각자의 생각에 맡겨 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유교의 공식 가르침이 없어서 중국 고대 전통에 따른 하늘신-조상신-장군신-미신 등의 중국인의 신관-영관이 이를 대체하게 되었고, 여기에다 후기 도교의 미신과 정령론적 신관이 추가로 혼합되어 수용된 것이 현실의 신관이 되었다. 이 결과 중국인이나 동아시아 유교신봉자들은 더 혼합된 미신적 신-영관을 계속 믿고 있고 조상신숭배는 중국, 한국, 일본과 대만에서 아직도 공통으로 매우 중요하게 지속되고 있다.
유교의 현실-세계관과 평가 세계의 시작과 의미나 가치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다만 세계는 주워진 것이고 중요한 것이며 선과 악의 도덕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세상은 내재적 질서가 있고 이에 순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유교의 세상관은 기본적으로 세속적이며 인본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며, 근원적 세계에 대한 가르침이 없고 도덕성의 근원과 내재적 질서에 대한 가르침이 미약한 세계관이다. 따라서 매우 부족한 세상관인 것이다. 이는 기독세계관의 현실관 즉 창조주 하나님이 원래 선한 목적으로 창조하고 인간에게 관리하게 만든 것이나 인간의 타락으로 같이 타락해서 구원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가르침과는 많이 대비되는 세계관이다.
유교의 사람-인간관과 평가 유교에는 인간의 시작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다만, 인간은 내재적 선을 가진 것으로 가르친다(성선설). 사람의 마음은 하늘의 본성인 양심-양지-선함을 부여 받은 것으로 본다. 이 선한 본성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인간이 악을 행하는 것은 이를 거역 하는 것으로 부자연스런 것으로 가르친다. 이 부자연은 욕심 혹은 수양부족으로 인하여 본성을 거역하게 하며 나아가 악을 행하는 데 이르게 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인간은 부단한 공부와 수양으로 선한 성품을 개발하여야 하며, 도덕과 경의 가르침을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선한 개인과 가정과 제도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덕-윤리의 가르침과 선한 제도를 통하여서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여야 하는 것으로 가르친다. 이러한 인간관은 인간의 이중성(선과 악이 공존하는 본성)을 바로 보지 못하고 단순하게 성선설에 근거하는 인간관이며, 이를 거역하는 인간은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을 통해서 고쳐질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유교의 가르침인 도덕의 기준이 자신의 마음(자신에 부끄러움 없는 자)에 있다는 것은 마음이 악한 자에 관해서는 속수무책이며 이는 준법성의 결여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 아무런 해결책이 없는 세계관인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역사적 경험으로서 첫째, 부족한 인간관에 근거한 공자-맹자의 필생의 인간-제도-사회 개혁은 실패하여 그들의 말년의 인생을 큰 실패와 좌절에 빠지게 한 것과, 둘째, 오늘날 현실 법의 규제와 준법성의 부족 등으로 인한 중국-한국 등 동아시아 유교 전통국가의 높은 부패지수를 들 수 있다.
유교의 죽음-사후관과 평가 죽음이나 사후에 관하여는 아무런 가르침과 관점 없기 때문에 유교신봉자들은 그들 사회의 전통 관점을 수용하고 따르게 된다. 따라서 정령론-범신적 신-영관에다 조상신-위인신을 편하게 잘 섬겨야 화를 면한다는 미신적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유교는 부모사망의 경우 아주 정교한 상 절차를 상주로서 일정 기간 지킬 것을 가르친다. 이는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서 생전에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믿은 자는 죽음으로 육체는 끝나지만 영혼은 영존하고 육체의 부활을 거쳐 영원히 변화된 존재로 하나님 나라(천국)의 영광으로 들어가거나,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분리된 나라(지옥)로 가게 되는 것을 가르치는 기독교의 죽음-사후관과 매우 다른 것이다. 죽음과 사후에 관하여 아무런 가르침이 없는 유교는 신도들의 죽음-사후의 근원적 걱정과 두려움에 대해서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으로부터 구원이 없는 종교인 것이다.
이에 따라 유가 사람들은 전통적 죽음-사후관(정령론-범신론-미신적 관점)에 따라서 장례-제사 등의 제도를 예를 다해 따르지만 죽음은 두려움이고 직면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비해 복음세계관은 죽음의 원인인 죄로부터 속죄 받는 길과 영원히 사는 길을 제시하고(엡 1:7) 조상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제사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우상숭배로 본다. 이상에서 동아시아인에게 매우 중요한 세계적인 종교인 불교와 유교의 세계관과 그 평가를 개관하였다. 다음에서는 세속-인본주의 혹은 근대-과학주의의 세계관과 평가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세속-인본주의(Secular Humanism) (근대주의-세계화 사상) 세계관과 평가 근대주의-세계화 사상은 지난 500년 이상 서양의 발전의 근거가 되었던 사상이자 정치-경제 이념의 근간이었다. 서양의 고대-중세의 신본-교회 중심의 세계에서 15-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의 인간과 과학 중심의 세상으로 변화시킨 사상이 근대주의이며, 과학주의-계몽주의에 입각한 정치-경제-사회제도의 혁명적 변혁(산업혁명, 프랑스혁명과 볼셰비키혁명)의 근거가 되는 이념이었다. 유럽과 북미의 서구 세력이 비서구의 전세계를 지배케 하는 식민주의 시대의 배경도 근대적 발전의 차이에서 결과한 것이다. 또한 20세기 이래 전세계 신생 독립국들이 서구 선진국의 발전을 따라가기 위한 국가 개발 전략의 근거가 된 것이 근대주의이다. 이 근대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본류인 자본주의 서구의 세속인본주의와 지류인 구소련과 중국 등의 물질-마르크스주의로 양분하게 되었다. 또한 서구의 근대주의는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세계화로 연장되고 있다. 오늘날 이 근대주의 사상과 그 세계관은 경제개발과 정치발전을 추구하는 모든 개발도상 국가들, 특별히 동아시아 국가들이 매우 중요시하는 세계관이 되었으며, 동 아시아인들의 전통적 세계관과 가치관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세속-인본주의의 신-영계(근원적 현실-세계)관과 평가 물질-질량(matters)이 근원적 존재이다. 물질은 영속하며 세상의 근원은 그것 뿐이다. 신은 존재치 않으며(신-영-귀신 존재 불인정),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질의 근원을 빅뱅(big bang)으로 보며 의미적 존재론을 불인정한다. 이러한 관점은 위에서 본 평가 기준들에 비추어 보면 지극히 불충분한 관점이다. 왜냐하면 여러 문화의 고등과 평민종교가 인정하는 신-영-귀신의 존재를 무시하며 그 역할에 대해 무지한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세계관의 의미론적 존재론(전지전능, 무소부재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으로 세상을 창조)과 신-영계에 관한 근본 가르침을 불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은 신-영계는 하나님과 천사와 이에 대적하는 타락한 천사인 사탄과 그 수하인 마귀로 구성되는 실재이지만 이들 또한 하나님의 주권과 통제 하에 있음(이원적 영계 아님)을 가르친다. 그리고 온 세상 만물의 근원이 창조주이며 구원주가 되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세속-인본주의의 현실-세계관과 평가 세계는 우주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우주의 일부이며, 세계는 원인-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법칙에 의해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신적 존재에 의미론적 창조와 존재 및 초자연적인 기적 등을 불인정한다. 다만 세계는 인류의 삶의 무대이며 인간이 개발하고 관리하고 연구-과학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세계에 관한 영적 의미와 의미론적 존재를 불인정하는 세계관으로서 부분적인 진리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선한 목적에 따라 창조-재창조-유지하는 세계를 그 목적에 맞도록 사용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만물의 머리인 사람에게 맡기는 기독세계관의 세계관과 매우 다른 세계관이다.
이번 글에서 다루지 못하는 세속-인본주의의 인간관과 평가, 죽음-사후관과 평가는 다음 번 마지막 회의 글 서두에서 다루기로 한다. 마지막 글에서는 물질주의-마르크스주의 세계관과 평가, 복음세계관과 평가와 복음전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살펴볼 계획이다.
정우철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국내외 외국인신학교 강사, 자비량 선교사-교사, 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장로, OMF-K 선교회 이사, 전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7년), 전 ADB 부서장-전문직원(24년),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경영학석사. 그의 저서로는 “글로컬 시대의 문화와 국제경영: 인문사회학적 이해와 적용” (2013, 박영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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