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理)는 이정 사상의 핵심이며 그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범주이다. 그리하여 천리론의 탄생은 송대 이학의 정립을 의미한다. 중국철학에서 ‘리’는 조리, 법칙, 윤리도덕과 우주의 본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중에 리를 법칙이나 조리로 파악하는 것은 각 학파에서 공유하는 것이었다. 리에 윤리, 도덕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유가(儒家) 고유의 것인데 그것을 우주의 본체라는 의미로까지 확장한 것은 이정에게서 비롯된다고 해야 한다. 물론 불교철학에서 리는 본체론적 철학 범주로서 그 이론이 비교적 정밀하였고 사변적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리에는 윤리도덕의 성격이 들어있지 않았다.” -안은수-
경제 가치만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시대의 윤리 오늘날 세대와 계층, 지역 사이에 소통의 부재와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아실현을 행복추구와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경제 가치관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아름다운 미덕으로 보기보단 오히려 손해로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행동하는 이유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봉사의 정신이 아닌 그저 그것이 더 많은 관계를 유지해주고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라면 그것이 이해타산의 행동인 것이지 결코 윤리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계몽주의 이래로 서구사상은 줄곧 ‘개인’의 의미에 주목했습니다. 저마다의 욕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법과 협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기조가 발전한 것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입니다. 곧 윤리를 행복과 동일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꿈은 각자도생(各自图生)의 행복추구가 되어 선을 추구하기 위해 기꺼이 행복을 희생하는 대의명분보다 행복을 최고의 선으로 보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선한 가치도 기꺼이 묵살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불행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수록 사실은 더욱 외로워지는 인간소외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한 뿌리에서 찾는 공감 윤리의 요청 주돈이의 태극도설 이후 송대의 유학자들은 ‘우주 본체’의 문제에 관해 고심하였고 인간 윤리 행동의 근거를 여기서 찾고자 하였습니다. 우주론의 본체적 차원을 고찰한 것이 리학(理学)이라면 우주론적 현상의 차원에 집중한 것이 기학(气学)입니다. 이렇게 리와 기로 세계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정리한 송대 유학의 개념이 바로 리일분수(理一分殊)입니다. 리일은 제각기 다른 모든 사물들이 바로 그것이 되게 하는 본성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원리를 지닌다는 의미이고 분수는 그것이 기에 의해 형태를 가질 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리일분수라는 용어를 제시한 것이 정이입니다. 그는 리일과 분수의 관계를 ‘천하의 리는 하나이다. 따라서 길이 비록 다르더라도 그 귀결은 같고 생각이 비록 수백 가지라 해도 최종적으로 이르는 지점은 하나이다. 비록 사물이 만 가지로 다르고 일도 만 가지로 변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통괄하여 하나로 해 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위반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송대의 유학자들이 한결 같이 우주론에 관심하였던 이유가 자연의 조화와 성실함에서 선한 인간 본성의 근거와 윤리 행동의 당위성을 찾고자 함이었다면 정이는 바로 그러한 우주가 곧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객관적인 근거이며 사실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나’와 ‘너’가 참 된 ‘우리’가 되려면 서로의 동질감이 필요한데, 그 동질감이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본성이며 사람과 사물들의 모든 현실이 다르더라도 그 출발점과 원리는 늘 같다는 것입니다. 제각기 뻗어나가는 기가 하나의 뿌리에 근거하고 있고 또한 그러한 원리와 법칙이 수많은 양태의 운동하는 기를 지탱해준다고 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욕구와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땅히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본성으로 유학은 인의예지(仁义礼智)의 네 가지 덕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덕성을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해준 천명(天命)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천명으로 주어진 사람의 본성에 대한 추구는 그 외의 감정, 감각, 쾌락이나 욕구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우주가 하나다’라는 것이 아닌 ‘우주는 선하다’라는 명제가 송대 성리학의 의미입니다. 정이는 우리 모두가 리의 원리를 담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저 하나의 개인일수만은 없으며 우주 안의 모든 관계들 속에 ‘선함’으로 더불어 지탱되고 있고, 우리도 각자의 역할 속에서 그러한 선함을 구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늘 윤리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의 책임 하나가 된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오륜(五伦)인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은 모든 관계에서 하나 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뿐만 아니라 하늘과도, 자연과도, 이 우주와도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그 든든함과 따스함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가 된다는 것을 때때로 경계해왔습니다. 그것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가 된 가치관과 문화를 주입시키려는 정치 선동일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된다는 것이 그저 더 많이 가지고 힘이 센 사람들의 권력을 통한 통합이라면 그것은 온전한 리일분수의 개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추구할 수도 있고 다른 것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이는 끊임없이 같은 것과 다른 것에 대해 ‘분별’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이 바로 격물치지(各物致知)의 공부법입니다. 같은 것만을 추구할 때 우리는 획일화에 빠지게 되고 다른 것만을 추구할 때 우리는 동질감을 상실합니다. 격물치지는 이러한 각각의 사물들의 현상을 통해 그것이 지닌 리를 밝히고 다시 현실에서의 천리를 추구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리일분수의 균형을 그대로 체현하는 것이 곧 천리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누구하나 무엇하나 소외되지 않는 상생(相生)의 시대가 오면 좋겠습니다. 존재의 의미와 목적이 사랑에 있지 않겠습니까. 정이 또한 우주의 본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랑의 영원성과 실천성을 끝없이 호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주는 사랑으로 채워져 있고 또한 채워져 갑니다. ♧
♣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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