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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 통권 159호     필자 : <중국민족보> 프린트   이메일 
[기획]
중국관영언론매체에 보도된 《기독교 중국화의 3가지 요소》

2000년에 설립된 중국 관영언론인 <중국민족보(中国民族报)>는 《기독교 중국화(基督教中国化)의 3가지 요소》를 통해 “어떻게 하면 기독교가 중국화를 실현하고 중국 문화, 중화민족, 중국 사회와 조화롭게 공존하고 좋은 상호작용을 이어갈 수 있을지 깊게 연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중국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_ 편집자 주




《기독교 중국화의 3가지 요소
(
基督教中国化的三要素)
--- 중국 정치에 대한 인정, 중국 사회에 대한 적응, 중국 문화에 대한 표현
(对中国政治的认同、对中国社会的适应、对中国文化的表达)

기독교는 중국에 들어온 이후 끊임없이 “중국화(中国化)”라는 문제에 부딪혔다. 2012년 3월에는 베이징대학교 종교문화연구원, 중국사회과학원 기독교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기독교의 중국화” 세미나가 열렸다. 2014년에는 기독교 전국 양회(基督教全国两会), 쟝수, 허베이, 후베이, 산시, 푸졘, 베이징, 톈진, 저쟝 등 지역의 기독교양회에서 앞다투어 “기독교의 중국화”를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개최하여 적극적으로 기독교의 중국화를 추진했다. “기독교 중국화”문제는 이미 가장 주목을 끄는 이슈가 된지 오래다.

앞서 2년 동안 베이징대학 종교문화연구원과 중국사회과학원 기독교연구센터에서는 “기독교의 중국화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10권의 전문 저서를 출판하였고, 《기독교 중국화 연구(基督教中国化研究)》를 주제로 2권의 논문집을 출간했으며 학술세미나도 열었다. 이에 따라 이번 호부터《기독교 중국화(基督教中国化)》를 특집으로 관련 글을 싣고 어떻게 하면 기독교가 중국화를 실현하고 중국문화, 중화민족, 당대 중국사회와 조화롭게 공존하고 좋은 상호작용을 이어갈 수 있을지 깊게 연구해보고자 한다.  _<중국민족보> 편집자 주

기독교 중국화의 기원

현재 기독교 중국화에 관한 토론은 날로 심화되고 있고 중국 사회와 정부, 또 사회 각계의 주목과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이나 제안들이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와 기독교계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거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갖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토론하고 논의할만한 문제들을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현지화”, “본토화”, “토착화”, “상황화”라는 말을 쓰지 않고 직접적으로 “기독교 중국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과 우려를 표명했다.   

기독교가 중국에서 발전하면서 복잡성과 굴곡성(曲折性)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도대체 외부에서 들어온 “서양종교”인지 아니면 이미 중국에 뿌리를 내린 “현지화된 종교”인지에 대해 논쟁을 펼쳐왔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소위 말하는 “보편적” 성질을 유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적 특색”을 형성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큰 이견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더 나아가 중국에 기독교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문제와 중국의 사회, 정치, 문화영역에서 기독교를 배척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련의 논의와 경험을 통해 중국 사회에서 기독교를 배척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배척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자체가 개혁이 필요하고 사회주의 중국 사회에 맞춰 모양새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 즉 서방세계의 교회 혹은 외국교회와 달라져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1950년대에 일어난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中国基督教三自爱国运动)은 주로 정치적 부분을 고려하고 실천한 중국화 방법이었다면 지금은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정치와 문화 두 가지 부분을 모두 고려하면서 중국 사회에 존재하고 발전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구상과 새로운 조처를 내놓아야 한다. 이는 현재 중국기독교의 운명과 전망에 대한 논의와도 관련이 있는데 현 상황을 놓고 보면 많은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관련부처는 학술계가 먼저 나서서 명확하게 주장하고 강조한 중국화라는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독교계도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2014년 중국기독교전국양회가 주최한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国基督教三自爱国运动委员) 설립 60주년 기념 대회와 기독교 중국화 세미나에서 왕쭤안(王作安) 국가종교사무국 국장은 기독교의 발전과 중국화에 대해 높은 평가를 보냈다. 따라서 기독교 중국화가 한 차원 더 높게 발전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 중국화에 대한 이해
2012년도에 열린 제1회 기독교 중국화 회의에서 우리가 주로 논의했던 문제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기독교의 중국화를 추진할까라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정치계나 교계에서 “중국화”라는 표현법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표현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이 “상황화”, “현지화”, “토착화”, “본토화” 등 이를 대체할만한 표현들을 열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 중국화라는 사상의 발전을 추진할 때는  “상황화”나 “현지화”처럼 이미 중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들이 바로 “중국화”이고 결국 “중국화”로 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화”라는 표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중국”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 또한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은 제1차 회의에서 각 분야로부터 진심 어린 지지를 받았고, 회의가 끝난 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중국화와 관련된 연구활동들을 추진하고 연구 논문과 저서들을 출판하여 연구와 실천에 탄탄한 이론적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중국중앙통일전선부와 국가종교사무국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중국화”라는 구호가 더욱 명확해지고 방향이 분명해졌으며 중국교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참여하고 있다. 또한 매우 실질적이고 구체화된 생각과 연구를 실천하는 교회들도 적지 않다. 올해 들어 정치계에서나 교계에서도 “중국화”라는 표현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독교 중국화를 구현하는 것은 바로 중국적 특색이다. 그렇다면 이 “중국화”라는 실체가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독교 중국화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다. 어떻게 해야 기독교의 중국화를 추진하고 이루어낼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해야 앞으로 기독교 중국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목표를 명확히 하고 관련 조치들이 구체적인 실행성을 가질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기독교 중국화를 내세운 후 반드시 직면하게 될 그리고 이성적으로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물론 기독교의 중국화를 알려면 구체적으로 중국교회의 신학적 사고와 목양방법을 살펴야 하고 외부에서 주제넘은 참견도 해서는 안 된다. 또 학술계는 참관자와 연구자로서 기독교 중국화를 위한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경험과 교훈을 정리하여 정확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따라서 2014년 제2차 기독교 중국화 세미나의 목적도 이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가 기독교 중국화에 대해 가진 인식과 기대를 놓고 보았을 때 관련된 전망과 호소가 공허한 것이 아닌 명확하고 실제적인 이해를 갖고 구체적인 방법과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화”가 매우 추상적이며 구체적이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인들의 자아의식, 자아인식 그리고 자아정체성의 문제까지 미친다. 오늘날 전 세계의 문화가 뒤섞이는 환경 가운데 기독교가 중국에서 “중국화”를 추구하는 것은 사실상 중국기독교의 신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중국 기독교인들은 중국인으로서 마땅히 중국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문제이다.

기독교 중국화의 요소
기독교 중국화의 핵심요소는 매우 간단하며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기본적인 문제가 바로 중국 정치에 대한 이해, 중국 사회에 적응 그리고 중국 문화를 표현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보기에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 1000여 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수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 가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첫째는 기독교 중국화는 중국에 뿌리 내린 기독교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자리매김이다. 즉 현 중국 정치를 기독교가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교가 중국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두 가지 중요한 단계를 거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정치적으로 중국화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문화적으로 중국화되는 것이다. 불교가 인도에서부터 중국으로 유입된 초기 몇 백 년 동안 불법(佛法)이 왕법(王法)보다 강하다고 여겨 승려가 왕을 불경하게 대했다. 사실 이것은 중국 정치에 맞서는 행위이며 타협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태도이다. 그 결과 불교는 수백 년 동안 발전하지 못했고 외래종교라는 인상을 남기며 중국 사회에 융화되지 못했다. 그러자 불교계 지식층들이 먼저 정치적인 부분에서 “중국화”를 진행할 필요성을 인식하였고 “임금을 의지하지 않고 법사를 세울 수 없다”는 정치 현실을 직시했다. 

이에 정치에 순응하는 노선을 걸으며 중국 정치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물론 이 관계를 정리하는 데 있어 내부적으로 중국 사회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도 했지만, 외부적으로 불교의 발상지가 점차 쇠락하여 해외선교를 위해 필요한 정치적인 버팀목이나 든든한 후원을 해주지 못했던 원인도 있다. 이는 일정 부분 불교가 기본적으로 막다른 길에 도달하여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여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기회가 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불교가 이 기회를 통해 중국 정치·문화에 적응한 후 화려하게 변신하여 진정한 중국의 종교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는 기독교 발상지의 정치적 쇠락이나 후원이 줄어드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때문에 기독교가 중국에서 전파될 때 기독교를 수출한 국가들의 정치적 이익이 더욱 강화되고 지속되어 중국 문화와 조우했을 때 정치적 게임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내에서 힘겨루기와 대치가 많아지고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중국의 기독교가 정치적 중국화를 이루었는지 구체적인 분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 기독교의 삼자애국운동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1950년대의 발전방향에서부터 이야기해야 그 목적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비록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의 적극적인 권유와 권고를 통해 삼자애국운동이 교회가 정치적 방향성을 갖도록 했지만 중국 정치를 완전히 인정한다거나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정치적 방향성을 갖는 문제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분열을 겪기도 했다. 

“지하교회(地下教会)”처럼 정부에 협력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교회는 사실 개혁개방 이전 심지어 “문화혁명”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세계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기독교 중국화라는 의미상의 정치적 방향설정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외국의 적대 세력이 종교를 이용하여 중국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중 대부분은 서방의 적대세력이 기독교를 이용해 우리 사회의 정치체계에 맞서고 그것을 통해 서방의 정치이념과 문화가치를 추진하려고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1950년도에 중국교회는 조직 구성에 있어서 서방교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다. “삼자애국”이 바로 자치(自治), 자전(自传), 자양(自养) 의 방식을 통해 독립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지지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운동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삼자애국운동은 기독교 입장에서 하나의 정치적인 운동이지 교회 자체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일어난 종교운동은 아니다. 일종의 정치적인 방향설정과 태도표명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서방세계와 긴밀하고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철저하게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시 교회의 발전이 순조롭지 못했고 연합예배나 “초교파 교회의 발전”으로 인해 교인감소나 교회의 쇠락을 숨기지 못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중국의 문이 열리고 세계화의 물결이 유입되면서 외국 특히 서방 사회와 더욱 직접적이고 빈번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관념이나 가치에 대한 취향 등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포용범위가 커서 세계 문명에 늘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중국은 기본적으로 서방 문명과 그 종교를 배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 서방 간의 정치적 충돌이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서방의 정치관념과 가치체계는 현 중국 정치 사상체계를 부정하고 적대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이들 둘 사이에 끼어있는 중국기독교는 정치적인 표현과 정치적 방향설정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며 기독교의 정치적 고려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오늘날 개방적인 사회가 된 중국으로서 이 문제를 대할 때 더욱 광범위하고 많은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홍콩에서 발생한 “홍콩시위(占中事件)”에서 다수의 홍콩 기독교인들이 시위에 참여하거나 지지를 표명했다. 이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방향설정이자 표현이다. 홍콩시위는 중국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정치시스템이 아닌 서방의 정치시스템을 따르자는 주장이다. 그래서 중국인민대회의 결의에 불복하고 중앙 정부와 다른 정치적 방향설정을 제시했다. 이 와중에 보여진 서방세력의 참여와 지원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마치 중국과 서방세계 사이에 대결이 존재하고 그것이 지속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번 적지 않은 기독교인과 교회가 공개적으로 시위에 반대입장을 표명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홍콩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서방에만 치우쳐있지 않고 현 중국의 정치를 인정하고 홍콩의 “일국양제(一国两制)”의 발전을 지지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대립이 일어날 경우 쌍방이 모두 피해를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파괴하게 된다.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참여와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기독교 중국화가 정치 문제에 있어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분명한 입장과 명확한 태도로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역사에서 나타난 “양교(洋教)”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떼어내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늘어나는 기독교와 교회에 명확하게 제시하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중국의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중국화를 강조하고 우리의 기본 정치시스템과 관련 정책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중국 정치도 기독교에 대해 포용과 인정 그리고 받아들임의 태도를 보이고 기독교를 우리의 역량이자 내재적 구성으로 바라보며 배척하는 태도나 적대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또 기독교가 현 중국의 정치를 인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길을 닦아 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중국의 정치를 인정하는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고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둘째, 기독교는 반드시 현재의 중국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건설에 있어서의 기독교 중국화이다. 

기독교는 자신만의 구조와 체계를 비교적 잘 완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조와 체계는 기본적으로 서방 사회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특히 기독교는 종교개혁 이후에 형성된 개신교가 다원화되며 발전하였고 근대에 들어서는 개신교 교회가 공인된 모델이 되었다. 이렇게 느슨하고 다원화된 성격의 교회구조는 중국사회의 기본구조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없다. 이로 인한 모순과 충돌도 이미 발생한 바 있다.

1949년 이후 중국 기독교의 발전상황을 볼 때 특히 초교파시대의 발전에서 연합예배와 연합교회의 모델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 모델은 매우 모호하고 성숙하지 못한 것으로 중국 사회가 개방되고 발전되는 과정에서 명백한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다. 오늘날 교회 밖 교회, 교회 내 교파 등 새로운 모델들이 발전하고 있고 교회 시스템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점도 있다. 그래서 먼저 사회 외적 적응이 필요하고, 둘째로 교회 내부구조를 조정하여 시대적 발전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사회적 중국화를 위해 중국의 현행 사회체계, 법치관리, 지역관리 구조, 조직의 형식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교회체계가 중국의 사회체계에 적응한다는 것은 중국의 사회건설, 사회구조에 대한 적응을 포함하고 있으며 중국의 교회는 사회의 큰 체계 속에 속해진 하위체계여야 한다. 

물론 교회의 시스템과 구조 역시 우리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즉 중국 사회는 기독교 단체를 모든 단체의 체계 속에 포함된 유기적 구성이며, 합법적 존재로 바라보고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임을 인정함으로써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으로 “동화”되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는 중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소외된 존재”라 여기지 말고 “함께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현실 사회에서의 “고립된 소수집단” 이나 “외톨이”로 여겨서는 안 된다. 중국의 기독교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연구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사회에서 이상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 

세 번째로 기독교는 중국 문화의 표현방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문화적인 부분의 중국화이다. 

이문제의 경우 불교에서 아주 좋은 해답을 찾은 바 있다. 불교는 문화적 부분에서 중국불교인 선종(禅宗)을 창시하며 중국화를 완성하였다. 이 중국 불교의 종파는 인도불교와 확연히 다른 중국불교의 특징을 잘 드러냈다. 불교가 중국에 유입될 때 인도 문화의 특징이 함께 들어왔다. 그러나 선종 등 중국불교 종파가 외국으로 전파될 때는 기본적으로 중국 문화적 특성이 함께 나간다. 오늘날의 중국불교가 문화 사상을 묘사할 때 중국화된 문화의 전형적인 부분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인도 문화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미 중국화된 표현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소들을 견지하는 경우가 많고 쉽게 양보 하지 않는다. 사실 기독교의 모체 문화는 동방의 유대 문화에 속한다. 그러나 서방 문화의 운반체 혹은 대표로서 엄청난 문화혁명과 문명의 전환을 겪었다. 때문에 중국에 들어오는 문화 모델이 절대 적인 것도 아니고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는 원래 문화에 적응하고 현지 상황에 따르는 융통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중국의 문화적 의미를 재건하는데 있어 잠재력이 매우 크다.

우리는 지금 중국기독교의 문화적 상황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큰 진전을 이루었다.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본다면 우리가 찾아내어 조정할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신학사상을 만드는 것을 추진한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어떤 신학사상을 만들 것인가?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모호하게 남아있다. 딩광쉰(丁光训) 주교는 생전에 “사랑의 신학”을 주창하며 중국 사회주의의 핵심가치에 적응하고자 했다. 그러나 교회 내부의 보수파들은 거부감을 가졌고 이 때문에 중국 문화의 특색을 가진 신학 시스템을 형성하지 못했다. 또 중국 사회에서 극좌 사조를 가진 이들은 모든 신학을 반대하고 신학을 부정해야 하는 반동 요소로 대했다. 뿐만 아니라 신학은 비판과 철저한 폐기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여긴다. 이는 사실 기독교와 주류사상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것이고 기독교의 핵심사상과 사회주의의 핵심가치가 완전한 대립구조로서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우리의 반대편으로 밀어 넣고 우리와 대립하는 길이나 분열하는 길로 가라고 압력을 준다. 기독교를 배척해야 할 적인 것처럼 반대쪽으로 떠미는 것은 사실 서방의 적대세력이 기독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효과도 같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에 있어서나 중국 사회에 있어서 재난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강력하게 움직여야 한다.

중국이 세계화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교회는 이에 상응하는 사상자원을 통해 중국적 특색에 맞는 이론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결국 중국의 사상, 문화, 전통을 가지고 기독교 신앙의 몇몇 기본요소를 결합해 자신만의 신학 시스템을 만들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서방 신학 시스템을 중복적으로 인용하여 해석과 설명에만 급급하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중국교회만의 문화적 색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세계 기독교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완비하는 것이다. 중국교회는 중국의 문화 색깔을 더 많이 나타내 보이고 중국의 사상, 문화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 중국기독교가 모든 부분에서 서방세계의 원래 모습을 가지고 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중국 문화에 녹이라는 것이다. 중국 문화의 개방성은 중국과 서양을 하나로 이끌고 시대에 맞춰 나갈 수 있다. 

1949년 전에 중국의 교회학자들은 중국화를 위해 탐구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의 경험을 축적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에 교회가 다시 서방세계와 접촉하면서 이 부분에서 오히려 퇴보하는 결과가 나타났고 더 많은 관심과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교회 인사들은 지방 정부가 그들에게 고딕양식의 예배당을 지으라고 요구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아니라고 여긴다 말했다. 이 사실을 볼 때 중국 사회에서 서방세계의 의식을 가지고 기독교를 관찰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으며 기독교 중국화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중국의 기독교 역사에 대한 무지함을 엿볼 수 있다. 중국교회는 반드시 중국의 색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우리 스스로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 사회가 문화발전에 있어서 비정상적으로 서방 사회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국화를 위한 연구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교회는 절대 세속적이어서는 안되고 대외개방과 중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부분에서 합당한 선을 찾아야 한다. 

중국교회가 일상생활 속에서 또 사회참여 가운데 어떻게 개혁개방과 발걸음을 맞출 수 있을까? 이것은 깊은 의미에서 볼 때 하나의 문화 문제이다. 현재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 건설은 중국의 문화건설에 융화되고 보폭을 맞춰야 한다. 중국교회의 전통적인 관습과 대중 사회의 문화적 관습이 결합되는 부분에 있어서도 문화적인 혁신을 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일찍이 1920년대 초와 1930년대에 기독교가 중국의 전통 문화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재건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바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중국화가 이론뿐인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반드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교회의 일상과 종교예식에서도 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배당에서 진행되는 예배와 찬양 등에서 이러한 개혁이 명확하게 또 끊임없이 드러난다. 천주교는 서구에서 라틴 문화의 특성을 형성하였고 종교개혁 시기에는 개신교의 민족교회 경향이 언어와 문화의 변혁 가운데 나타났다. 천주교회는 이미 서방세계에서 민족교회로 적응하고 1960년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된 후 민족언어를 사용하는 미사 등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초기에 서방 사람들이 중국에 온 후 여전히 라틴어 미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 그들의 향수를 자극시켜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예배형식에서의 개혁은 서방 사회보다 오히려 더디게 진행되고 시대의 발전에 따라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서방교회들은 현대 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고 능동적으로 개혁했다. 그렇다면 우리 중국교회도 오늘날 중국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맞추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굉장히 흥분되는 시대적 도전이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 중국교회의 찬송가 같은 경우도 일부 교회들에서 중국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참여하는 사회건설 활동이나 자선활동 등의 영역에서도 중국적 특색의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다. 현재 불교에서 “인간” 혹은 “인생” 불교의 혁신은 사실 기독교적인 표현을 많이 차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사회에 적용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불교도 중국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성공사례를 남겼으니 중국의 교회들도 불교가 남긴 교훈을 발판으로 삼아 천천히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우리는 오랜 연구와 협의를 통해 중국적 특색의 기독교 생활을 만들어내야 한다. 즉 중국화가 기독교인들의 삶 가운데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 몇 가지 부분을 볼 때 기독교의 중국화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가 중국에서 정상적인 발전궤도에 올라 중국 사회에서 “서방세계”의 모델에서 벗어나 중화민족의 길로 되돌아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 더 이상 “반대편”이나 “소외”와 같은 민감함이 없어지고 중화 문화의 일원으로서 함께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소장 줘신핑(卓新平)






출처 | <중국민족보(中国民族报)>, 2015년 3월 24일
번역 | emily moon · 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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