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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1 통권 150호     필자 : 闻则信(원쩌신)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중국 평신도사역에 대한 탐구(Ⅱ)

하나님의 사랑, 교회사역의 기초
평신도사역자들 중에는 종종 혈기나 개인적 욕심으로 교회사역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사회에서 사장은 교회에서도 사장 노릇을 하려 든다. 그래서 사회의 관리방식대로 교회를 다스리려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작당하여 사리사욕을 꾀하거나,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만 한다. 이렇게 ‘동역자 모임(同工会)’은 ‘서로 공격하는 모임(同攻会)’으로 변해 버렸다. 이로 인해 교회사역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심지어는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고, 아직 믿지 않은 자가 주를 믿는 것에 장애물이 되었다.

필자 역시 전임사역자인 전도사로서 마음을 지키는 일에 신중해야 하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드는 교활함을 방지해야 하고, 개인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서(무서운 것은 이런 야심이 종종 영적 베일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전임사역자들은 때때로 평신도사역자들을 미성년 노동자(童工)로 보고, 마치 바둑판 위의 하나의 바둑알로 본다. 개인적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하며, 언제든지 자신의 지시를 따르기를 원한다.

교회의 다양한 사역 중에 성도들에게 가장 많은 부러움을 사는 것은 바로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것이다. 반면 예배 전 좌석 안내나 예배 후 청소, 그리고 주일학교 사역에는 봉사자들이 많지 않다. 많은 평신도사역자들 가운데 특별히 언변이 좋은 사람들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난 후, 자신은 “재능이 있는데도 펼칠 기회가 없다”고 느낀다. 내가 목사님보다 말솜씨가 뛰어나고, 아는 것도 더 많아서 강단에서 설교한다면 분명히 더 잘 할 텐데 왜 나는 강단에서 설교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을 강단에 세우시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말재주가 뛰어나고 신학지식이 많을지라도, 생활이 거룩하지 않거나 또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들을 강단에 그대로 세워 설교하게 한다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실족하게 할 것이다. 더욱이 거룩한 강단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설교를 하게 된다면,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약 3:1). 따라서 교회사역의 직분은 개인의 능력에 있지 않고, 오직 교회의 필요에 근거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성경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전임사역자들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 섬기는 부서가 자신의 은사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아닐지라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은 그리스도인들의 좋은 모델이다.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믿음과 성령 충만한 사람”,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다”,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무리들이 능히 당하지 못했다.” 사도들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그를 교회 내 음식을 관리하는 곳으로 보냈다. 그는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맡겨진 일을 잘 했으며, 또한 자신의 은사를 발휘하여 전도에 힘썼다. 주를 위해 순교할 때까지 말이다. (사도행전 6장 참고) 

전임사역자이든 평신도사역자이든 간에 모두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은 바로 교회사역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사람을 섬기는 게 아니며,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모든 사역의 동기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속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한다. 만일 다른 동기로부터 나오게 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 안에서 그분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역의 기회와 직분도 모두 보배로운 은혜요 상급이다. 이것을 가볍게 보거나 자기의 유익을 따라 고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형제자매들에게 교회에서 “경쟁(争大)”을 하라고 하셨지만, 그것의 목적은 세상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상에서의 “경쟁”은 명예를 얻고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의 “경쟁”은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가고, 순종하고, 그분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다. 이 두 가지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을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눅 22:25-26).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12).

평신도사역자가 직면한 도전
전임사역자와 평신도사역자의 사역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임사역자들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스스로 안배할 수 있지만, 평신도사역자들은 낮에는 일을 해야 하므로 퇴근 후 또는 주말이 되어야 사역이 가능하다. 오늘날 중국, 특히 대도시의 사람들은 엄청난 생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주택, 차량, 자녀교육 등 각종 스트레스로 숨을 쉴 수가 없다. 게다가 회사는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면서도 야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들은 모든 평신도사역자들(특히 중년)이 교회사역을 할 때 겪는 큰 어려움이다.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리한 무기에 대처하며, 비록 시대마다 면모를 끊임 없이 새롭게 하고 있지만 여러 번 해봐도 틀림이 없는 세 가지의 시험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의 시험은 보이지 않는 쇠사슬 같아서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부주의한 틈을 타서 우리를 속박한다. 그리스도인이(특히 평신도사역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마귀에게 붙잡힌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조여옴을 느끼고 성령에 속한 생명은 질식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많은 평신도사역자들은 자동차, 집, 현금 등에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허세를 부린다. 잔업을 하고, 여러 가지의 직책을 겸임하고,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법을 위반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돈 버는 일에 목숨을 걸게 되고 예배와 교회봉사는 점점 소홀해 진다. 성령에 속한 생명은 점점 야위어 말라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더욱 평신도사역자들을 깨워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도록 권고해야 한다.“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4,10). 우리는 마땅히 이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집트로 돌아가 노예 생활하는 것을 거절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교회는 평신도사역자가 직면한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하고 아끼며 존중해야 한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역들을 안배해주어야 한다. 또 시간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대도시에서 가정심방을 할 때, 종종 거리에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평신도사역자에게 평일 가정심방은 최대한 안배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그 밖에, 평신도사역자는 주일성수와 관련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원칙을 지키려다 핍박을 받기도 하고, 상사 또는 동료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교회는 마땅히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힘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많은 평신도사역자들이 일하는 것 외에 무익하고 유해한 사교활동, 컴퓨터 게임, 인터넷 서핑에 빠져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한다. 그리고 대도시의 평신도사역자들은 버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사실 그 시간에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듣거나 기도함으로써 더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주님께 긍휼을 구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며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평신도사역자는 세상에 대해서 한계를 정하고, 균형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야 한다. 생활 중에 우선순위를 잘 안배해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한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소홀히 하곤 한다. 그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받으시길 원하고, 봉사와 헌신은 그 다음이다.”그러므로 일과 교회사역, 이 두 가지의 부담을 평신도사역자들은 주의해야 한다. 매일 하나님과 일대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매일 한 시간씩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 중 최소한 30분은 개인적인 일대일의 기도시간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역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다.

맺음말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21세기에 하나님께서 중국교회에게 큰 복을 내려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복음의 바통을 중국교회에게 넘겨주셔서 중국교회가 복음을 전 세계로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러한 바람은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바람만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국교회는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을 해야만 복음을 전 세계로 전하는 중대한 임무를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복음의 바통을 이어 받으려면, 중국교회는 전체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 그 중 중요한 하나가 평신도사역자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중국교회를 감동시켜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모든 사역자들이 한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주며, 성도들과 함께 일어나야 한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4:7). 성경의 진리를 기초로 삼아 함께 힘을 합하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며, 죄에 대해선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선 살아야 한다. 세상의 빛으로, 단련된 정금으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하나님의 이름이 중국교회의 모든 곳에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하나님의 영이 중국교회를 감동시키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수 있기를 원한다. 또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계시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전 세계에, 온 천하 민족 가운데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한다.



출처 | 《教会》통권 48호
번역 | 임수현 •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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