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국의 전통사상인 유교에 대하여 말할 때, 이것은 역사 발전에 크게 저해되는 부정적인 요소로서 평가하는 일이 많다. 그 이유는 이 사상이 보수적이며 진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수성이 짙은 왕조 사회의 현실만을 ‘유교’로 인정하여 평가한 것으로, 진보성이 강한 많은 유교 사상가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물론 전통 시대의 중국 사회가 왕조·관료 중심의 수직적 통치 형태를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이런 관행을 벗어나려 노력한 많은 진보적 사상가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명말청초(明末靑初)를 살아간 지식인들의 정치 행동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당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유림들은 환관의 횡포와 결탁한 비합리적인 ‘사’(私)의 통치를 비판하고 공익적·합리적·사회통합 지향적 정치 시스템을 제창했다. 그들 지식인들은 언로(言路)의 개방, 국가 독점권 및 국가 통제의 철폐, 그리고 민간인 교육 진흥을 요구하면서 수직적인 ‘위민(爲民)’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민(民)이 중요한 몫을 갖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운동을 전개한 인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을 들라하면 황종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명 왕조의 멸망(1644)으로 동림당의 투쟁과 복사운동이 좌절되고 주자학적 통치가 재현되는 가운데에서 ‘공’(公)을 바탕으로 한 정의파 지식인들의 이념을 집대성함으로써 유교가 결코 ‘복종과 파벌의 논리’만이 아님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세기 초 중국 개혁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였던 것이다.

부친과 스승의 비극적인 죽음

황종희(1610～1695)는 1610년(만력 38년)에 저장(浙江)성 위야오(餘姚)현에서 태어났다. 자는 태충(太沖), 호(號)는 남뢰(南雷)이며, 학자들은 그를 황이주(黃梨洲) 선생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중국 정치체제의 전제적 성격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고, 또한 경세치용의 학을 일삼다가 청 강희(康熙) 34년,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중국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다. 

그가 살던 저장성은 송대 이래 학문적인 전통이 매우 강한 곳으로, 양명학의 개창자 왕수인(양명)도 같은 고향의 사람이니 그는 지적 문화가 크게 성숙한 환경에서 자란 셈이다. 그의 아버지 황존소(黃尊素)는 양명학의 학통을 이은 학자요, 정의파 관료로서 이름이 높았다. 그 무렵 전횡을 일삼은 환관 세력과 격심하게 항쟁하던 동림당의 영수로 활동하였기에 그의 집에는 양련, 좌광두 등 동림당의 여러 인사가 드나들고 매일 밤 정치문제를 중심으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어느덧 정치에 강한 관심을 품게 하였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만력연간(萬曆年間, 1573～1619) 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이 어사에 이르렀다. 그는 관료로서 재임 중,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전횡을 규탄하는 대열의 선봉에 서서 환관들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정치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도리어 1626년(천계 6년) 동림당 대 탄압으로 환관 위충현의 모함을 받아 옥중에서 고문당하다 숨지고 말았다. 

이 때 황종희의 나이 17세,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으로서 아버지의 동지들이 꿈꾸던 정치 이념을 깨달을 나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부친의 명을 따라 저둥(浙東)의 대유학자 유종주(劉宗周)의 밑에 들어가 학문에 몰두하며 여러 서적을 섭렵하였다.

2년 후, 숭정제(崇禎帝)가 즉위하여 정치를 쇄신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위충현은 자신의 죄를 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 인해 환관파 세력은 위축되고 동림파가 간신히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때 19세의 황종희는 아버지의 원죄를 씻기 위해 북경으로 달려가 조정에 호소하였다. 이 때 그는 아버지를 고문한 형리를 찾아 쇠 송곳으로 찌르고, 또한 아버지를 죽인 정적의 수염을 뽑아 선친의 위패 앞에 바쳐 제사하였다. 그는 당시 희생된 동림당인의 자제들과 함께 조옥의 중문에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하였는데, 그 곡소리가 궁중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것은 그의 생애를 통해 변함없이 지속된 열정적인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그 후 황종희는 동림당인의 자제들과 교섭을 갖으면서 동시에 복사(復社) 운동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복사’란 옛 학문을 부흥시켜 후일 유용하게 사용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동림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목적으로 각지의 독서인 집단을 결집한 비밀 결사인데, 황종희는 1630년(숭정 3년)에 남경에서 복사운동에 참가하여 현실사회의 결함을 날카롭게 비판하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계의 실현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는 명이 망하자(1644), 수백 명의 자제를 규합하여 ‘세충영(世忠營)’이라는 의병을 조직하여 청군에 저항하였는데, 이로 인해 한때 지명 수배를 받고 현상금이 붙어 곤경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의 스승 유종주 역시 명 왕조의 멸망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20여 일을 단식하여 목숨을 끊으며 그의 의지를 지키었다. 아버지 황존소와 스승 유종주의 운명은 황종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은 명 왕조의 혼란과 멸망이라는 현실이 빚어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군주 중심의 정치체제 비판

명말 아버지와 스승의 비극적 죽음을 목격한 그는 청 왕조에 협조하지 않았다. 절개를 지켜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교육 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아버지와 스승의 비극적 죽음이 결국 유교 도덕에 입각한 정치 개혁의 노력이 역사와 현실의 벽 앞에서 무기력하게 좌절되었음을 절감하고 보다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의 개혁을 추구하였는데, 그 성과가 바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1662)이다.

‘명이대방록’을 풀이하면, ‘명이’(明夷)란 ‘밝음이 이지러져 있어서 충분히 빛을 발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 것이고, ‘대방(待訪)’은 ‘누군가가 방문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곧 ‘어느 현자(賢者)가 찾아와 자신에게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힐 명지(明智)를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는 정치 안을 서술한 것이다. 그 내용은 원군(原君, 군주란 무엇인가)·원신(原臣, 신하란 무엇인가)·원법(原法, 법이란 무엇인가)·치상(置相)·학교(學校)·취사(取士)·건도(建都)·방진(方鎭)·전제(田制)·병제(兵制)·재계(財計)·서리(胥吏)·엄환(奄宦) 등 13항목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황종희는 대대로 내려오는 황제 전제 체제의 역사를 분석함으로써, 그 체제의 여러 결점과 폐단을 문제 삼아 지적하였다. 그는 우선 군주가 존재하기 이전에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인민이 존재했음을 상정하고, 그러한 이해관계가 통일되면서 군주권이 성립되었다고 인식하였다. 그는 ‘군주’란 인민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과 받은 의무이며 자기희생적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옛날의 군주는 천하를 주인으로 하고 군주 자신을 객으로 간주하여 천하를 위해 봉사했다.

그러나 후세의 군주는 천하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취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는다. 이것이 천하가 어지러운 이유이다.’ 라고 지적한다. 황종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군주가 악하다면 그 군주를 폐하고 새로운 군주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당시 군주정치 체제를 비판하였으니, 이것은 맹자의 민본사상과 혁명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민주적인 정치사상과 민중에 대한 책임정치를 역설화한 것이다.

학교를 통한 여론 정치 강조

그의 정치이론 가운데 특색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학교제도이다.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의회적인 기능을 가져야 함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즉 국자감이나 주․현립 학교가 각각 정치상의 문제에 대하여 토의하고 결정하는 직책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하 사람이 다 옳다고 하는 것도 아직은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고, 천하 사람이 다 그르다고 하는 것도 그것이 꼭 그른 것이 아니며, 그 시비는 학교의 공론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비’의 결정을 천자 개인의 자의로부터 해방시켜 대중적인 여론 속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론의 중심체는 학교라는 것이다. 학교야말로 독서인 및 학생이 모여 일반 여론을 형성하는 곳이고, 이러한 여론이 바로 정책에 반영하여 구체화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민의 위탁에 입각하여 성립하는 대의제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민의 여론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대부의 정치 참여 권리를 인정하는 사대부적인 기질이 담겨져 있기는 하나, 군권을 억제하고 인민 주권의 원칙을 사대부 계급에 집중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황종희는 이 책에서 인민의 복지를 보증하기 위한 제도 개혁과 법의 중시를 강조하였다. 그는 도덕적인 품성과 탁월한 재능을 갖춘 인물이 있고 없음에 따라 세상의 혼란과 평화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나 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져 시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치법(治法)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치인(治人)이 있다.’라고 하여, 종래 덕을 갖춘 군주를 강조하던 전통적인 유교의 입장을 탈피하고, 올바른 제도와 법률을 세우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법치주의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사람에 우선하는 것으로써 법의 권위를 확립하고 지배자의 행동을 합법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사회의 법적 안정성을 확립하려 하였던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명이대방록』을 완성한 후, 황종희는 철학을 연구하는데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역작인『명유학안(明儒學案)』은 중국 사상사에서 사실상 최초의 체계적인 학술사상 전문서이다. 300여 년에 걸친 명나라 유학자들의 학문적 계통을 정리, 규명하고, 그들의 문집, 어록 등에서 핵심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는데, 학파나 학자의 개인의 특성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도 내리고 있어 명대 사상사를 언급할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자료이다.

황종희는 ‘중국의 루소’로 높이 평가되기도

황종희는 명나라의 멸망만이 아니라 왕조가 멸망하는 것은 국가 기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진행된다고 보았다. 그는 동림당 이래의 민본주의적 입장, 즉 정치는 인민의 복지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곧 정치란 지배자의 도덕적 요청에 기초하여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기구 그 자체 속에서 보증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당시 정치기구의 전면적인 개혁을 구상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명이대방록』의 논리는 전체적으로 복고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천하의 공(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천하의 공’이 현실적인 정책 이념으로 작용하게 될 때에 황제권력은 질적 전환을 하게 되고, 자연히 전반적인 국가체제도 변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황종희는 그 힘을 『명이대방록』 이 한권의 책에 응축해 놓고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후 19세기 말 양계초(梁啓超)나 손문(孫文)등 중국을 더 나은 국가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명이대방록』을 들고 나왔다. 만인의 욕구가 자유롭게 대변·충족되는 ‘공(公)의 사회’ 만인을 위한 합리적인 사회가 되어야 사회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특히 양계초는 황종희를 ‘중국의 루소’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황종희를 높이 평가하여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그는 홍콩 ‘아주시보(亞洲時報)’에서 황종희의 평등사상과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용주의 철학이 11차 5개년 계획(11ㆍ5계획, 2006-2010)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하였다. 오는 2020년까지 국민 모두가 비교적 잘사는 수준인 ‘샤오캉(小康)’ 사회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의 부유만이 아니라 정신적 만족과 더불어 황종희의 군신(君臣)평등, 법률평등, 인권평등의 원칙을 주목한 것이리라.


전순동|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