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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20 통권 91호     필자 : 이옌싱(嚴行) 프린트   이메일 
[중국 문화 읽기]
성경에 비춰 본 중국인의 사고

기독교가 중국에서 체계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0여 년의 일이다. 평소 중국교회역사에 정통한 린즐핑(林治平) 교수는 󰡒중국에서 기독교는 오늘날까지도 배척당하고 있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서구의 종교일 뿐이다. 그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고 뿌리를 내려 중국인의 기독교가 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고 말한다. 

기독교가 중국에서 겪는 저항은 문화의 깊숙한 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저항은 정치적 압력보다 훨씬 큰 잠재력과 근성을 내재하고 있다. 바로 문화적 충돌인 것이다. 무엇이 중국에서의 기독교 전파를 이토록 어렵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중국문화와 기독교 정신간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종교정신이 결핍된 중국문화
중국문화의 특색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유사 이래 줄곧 󰡐신앙󰡑이란 종교정신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앙이란 문화의 긍정적인 핵심이다. 신앙은 󰡐의의(意义)󰡑를 지향하고, 󰡐의의󰡑의 배경에 󰡐가치(价值)󰡑가 존재한다. 따라서 신앙이란 한 문화의 가치계통이다. 󰡒아무리 변해도 그 바탕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화 속에 존재하는 신앙은 그 바탕이며, 요점이며, 근본이다.

인간은 그 존재에 있어 의의가 필요하다. 󰡐살아있기 때문에 사는 것󰡑은 개와 고양이의 존재 상태와 다르지 않다.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삶의 의의를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의의를 발견하지 못한 인간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신앙은 사람의 생명에 의의를 부여해 준다. 신앙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임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중국문화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물론, 신앙이라고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고, 신앙의 능력조차도 갖추지 못했다. 

중국에는 불교와 도교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불교와 도교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도교는 윗면에 󰡐중국산󰡑이라는 표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은 아니다. 불교가 유입되자, 그 자극과 계몽으로 불교를 모방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중국문화와 이족문화가 서로 맞닿아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불교는 기원 초에 중국에 들어 왔다. 그로부터 140여 년 후, 동한(東漢)의 장따오링(張道陵)이 도교를 창립하였다. 이 시기의 도교는 자체적인 교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자의 유가에 근거를 두고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유가의 제제를 받았다. 󰡐공자는 불가사의한 힘(신통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논어󰡑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득이하게 노자와 장자의 도가에서 이론적인 근거를 찾게 되었다. (판원란의 중국통사 참조)

재야의 학설이었던 도가도 유가와 같은 저항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도교는 노자를 태상진인(太上眞人)으로 받들고, 장자를 남화진인(南華眞人)으로 받들었다. 도교는 엄청나게 뒤죽박죽 섞여 있다. 도교의 팔선(漢鍾離, 張果老, 韓湘子, 李鐵拐, 曺國舅, 呂洞賓, 藍采和, 何仙姑-고대미술의 소재나 고대장식의 주제가 되었음)은 여기저기서 모아 놓은 잡동사니 무더기이다. 여러 시대의 역사적 인물과 전설 속 인물을 함께 모아놓은 모양새가 마치 관우(關羽)가 진(秦)나라를 치던 형세와 비슷하다. 또 다른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피안(彼岸)에 대한 탐구정신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단지 무속신앙 중의 󰡐백발홍안󰡑, 󰡐불로장생󰡑과 같은 현세의 갈망과 탐구만이 있을 뿐이다. 국산 종교인 도교는 예전부터 철두철미한 종교가 아니었다.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는 어설픈 모조품인 것이다. 

불교 역시 종교적 토양이 없는 중국에서는 오랜 적응과정을 거쳐야 했다. 동한 초기에서 송대까지 대략 천 년의 시간이 걸렸다. 문화적 배척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점이다. 마치 장기이식처럼 이교배척은 매우 강렬하게 일어났다. 불교의 역량이 강대한 만큼 중국문화와의 충돌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쪽에서는 사당을 짓고 한쪽에서는 허무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당나라 중기에 이르자 투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송대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근 천 년간의 충돌과 융합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불교는 도가의 노장철학과 결합하여 변증법적 사유를 특징으로 하는 선종을 형성하였고, 비로소 중국문화와 평화롭게 공존하기 시작했다. <홍루몽>에는 승려 망망대사와 도인 묘묘진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니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지경이니, 불교 역시 중국화되어 그 진면목을 잃고 만 것이다. 선종은 중국특색의 불교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중국인의 입맛에 딱 맞게 변한 것이다.

중국인은 옥황상제를 진짜 믿을까? 중국인은 관세음보살을 진짜 믿을까? 표면적으로 일부 노인들은 실제로 불교를 아주 경건하게 믿는 것 같다. 또 중국 곳곳의 사찰마다 참배자들이 들끓고, 내실에 불상을 모시는 상점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중국식 믿음이다. 평안을 기도하고, 건강을 기도하고, 득남(아이를 점지해 주는 관세음에 대한 참배자가 특히 많다.)을 기도하고, 돈 벌기를 기도하고, 승진을 기도하고, 자손이 잘 되기를 기도한다. 특히 영험하다고 소문난 절엔 몰려드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소원을 비는 것은 가장 전형적인 실리적 심리상태이다. 일종의 투자행위이자, 장사심리인 것이다. 신과 흥정하여 좋은 것을 얻고자 한다. 우선 좋은 것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나중에 빚을 갚는다. 이윤을 보장받고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실리적인 태도와 실용적인 정신이다. 기도 소리마다 개인의 사욕이 담겨있다. 피어나는 향 자루마다 인간의 소망이 불살라진다. 부처는 뇌물을 받는 대상이자, 근심과 고통을 해소해 주는 해결사인 것이다. 탕숭룽(唐崇榮)목사는 󰡒중국에는 지금 󰡐돈󰡑이라는 신만 남아있다. 왜 돈을 믿을까? 돈은 실용적이고 가장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 󰡒아버지여!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나이다󰡓는 전혀 사욕이 없는 기도이다. 예수께서 하신 기도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자신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또 주기도문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중국문화에 대한 반성
중국은 신앙이 없는 까닭에 자기문화 반성에 한계가 있다. 중국인의 중국문화에 대한 반성은 아편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중국은 처음 문화적 강적을 만나게 된다. 중국문화의 약점이 철저히 폭로되었다. 중화사상으로 자긍심이 드높던 중국이 단 한방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참으로 의외의 사건이었다. 항상 만사 OK이던 중국이 더 이상 OK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중국인의 각성을 불러왔다. 중국인은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세속적인 문화를 가진 중국의 반성은 자연히 실용적인 쪽으로 흘렀다. 실용적인 각도로 문제를 찾고, 물질적 형태로 격차를 보았다. 󰡐우리에겐 견고한 선박과 정예의 함대가 없고, 서양제 소총과 대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무(洋務)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러나 갑오전쟁 당시 가장 큰 함대와 우세한 화력을 지녔던 북서양군이 전멸 당하자, 단순히 서양기술만을 도입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인 체제 반성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견고한 선박과 정예의 함대가 있지만, 잘못된 체제 때문에 서양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군주제를 전복시키고 공화제를 건립하는 신해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제도가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패가 거듭되었다. 이어 문화적 반성인 5․4운동이 일어났다. 내용은 '과학'과 '민주'였다. 중국은 '공업', '공화제' 외에 '과학'과 '민주'라는 두 가지 서양 문화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5․4운동은 항일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중단되었다. 이후 80년대에 문화 열기가 일어났고, 이것은 사실 5․4운동의 과학과 민주에 대한 반성의 맥을 이은 것이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화에 대한 반성은 더 높은 경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때 발견한 것이 서양의 과학과 민주라는 배경 뒤에는 기독교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민주의 배경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셨던 것이다. 과학과 민주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진정으로 성취될 수 없는 것이었다. 과학과 민주가 서양문화 속에서 탄생했고, 결코 중국에서 자생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중국에는 근본적으로 과학적, 민주적 토양이 없고, 하나님의 도움이 없고,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이 진리는 우수한 문화학자들이 1860년 아편전쟁부터 130여 년을 연구한 후 오늘날에야 비로소 발견한 진리이다.

이 진리는 바로 최고의 진리이며, 바로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이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다. 이 짧은 세 마디를 발견하는데 중국학자들은 100여 년이나 걸렸다. 시인 수팅(舒婷)의 시 중에 󰡒아주 짧은 진입로를 우리는 아주 긴 세월 동안 걸어갔다.󰡓란 구절이 있다. 그렇다. 신앙이 없는 중국에서 하나님의 길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학자들이 아주 힘들게 인식해 낸 것은 단순히 과학과 민주였고, 그것은 중국을 구원할 수는 없었다. 과학이든 민주든 모두 인간의 문화 형태로 유한한 범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민주의 상위는 하나님이시다. 만약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 채, 단지 과학과 민주만을 찾는다면 오류를 면할 수 없게 된다. 과학은 인간과 물질의 관계이고, 민주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다. 이는 모두 차안(次岸)에 속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찾도록 한다. 피안(彼岸)과 영원과 관계를 맺도록 하여, 인류정신을 최고점에 달하도록 한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바로 이점이 중국문화의 취약점이라는 것이다.

자연주의와 실용주의
자연주의는 중국문화의 중요한 특색 중의 하나이다. 중국의 전통경제는 소농위주의 자연경제로 자급자족의 생산방식을 취하고 있다.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긴밀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인들 사이에는 흩어진 모래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노자의 이상(理想)은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살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아니한다󰡓이다.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의 활동영역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은 공중도덕을 배울 길이 없다. 공중도덕의 부족으로 인해 함부로 가래를 뱉고, 공공시설을 훼손하고, 일부러 생활보호대상인 체 꾸미고, 공공기물을 속임수를 써 받아가는 일들이 허다하다. 

중국인들의 인간관계 속에도 이러한 자연관계가 나타난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연관계는 바로 혈연관계이다. 이것은 중국문화 속에 나타나는 인간관계의 기초이다. 정치관계도 혈연관계에 비추어 이루어진다. 군신, 부자, 부부, 형제, 친구의 5가지 관계 중에서 부자, 부부, 형제가 혈연관계인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신과 친구관계에 혈연적 요소는 없는 것일까? 그것조차 중국인은 자연관계로 바꾸어 버렸다. 군신관계는 부자관계로 설계된 것이다. 임금에 대한 충성심은 부친에 대한 효도에 상당한다. 친구관계는 형제관계로 설계된 것이다. 고대의 영웅들을 살펴보자. 모두 호형호제하지 않는가? 유비(劉備)는 큰형이고 장비(張飛)는 셋째다. 고대에는 지방 관리를 모두 부모라고 호칭했다. 백성들이 다 그 자식이라는 것이다. 백성들은 관리를 무엇이라 불렀는가? '라오예(老爺)!'라는 친족 칭호를 사용했다.

자연주의와 연결되는 실용주의는 매우 특출하다. 가치판단의 전형적인 방식이 바로 '이것이 뭐에 쓸모가 있냐?'이다, 민주를 외치는 자에게 고위관리는 화를 내며 '민주가 밥 먹여 주냐?'라고 묻는다. 질문이 얼마나 구체적인가! 중국문화는 어떤 물건의 가치를 논할 때 '무슨 쓸모가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배워서 무슨 소용인가? 배우고 남는 힘이 있으면 벼슬을 한다. 독서가 무슨 소용인가? 책을 읽으면 부귀영화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 것을 가르치신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기적을 서른다섯 차례나 행하셨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 행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직면했던 유혹은 전 세계와 그 영화였지만, 조금도 흔들리시지 않으셨다.

중국은 실용주의 사유방식의 영향으로 서양문화의 쓸모 있는 부분만을 아주 쉽게 받아들인다. 5.4운동 때 도입한 과학과 민주 중에서, 과학은 쉽게 수용했지만 민주의 수용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의 수용 역시 기술적인 측면만 쉽게 받아들였지, 과학적 관념이나 과학적 사상의 수용은 여전히 부족하다. 중국인에게 있어 과학은 언제나 선진적이고 진보적이다. 과학으로 돼지를 기르면 돼지가 살이 찐다. 과학으로 경작하면 생산량이 증가한다. 이것은 과학에 대한 저차원적인 해석이다. 단지 장점과 이익만을 볼 뿐, 과학의 정신은 간과한 것이다. 중국인은 과학정신 중에서도 실용주의는 쉽게 수용하지만, 형이상학적 부분의 수용은 어렵기만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과학은 단순히 지식과 기술, 제1 생산력이다. 그러나 과학의 심오함은 세계관과 인문소양, 심령의 경지에 있다. 과학은 정신을 분석하고 추리를 통해 사물의 근원을 찾는다. 하나님은 세상의 근원이시다. 또한 우주의 인과(因果)고리의 정점이시다. 그러므로 과학의 본질은 특히 이론과학과 기초과학은 하나님의 신비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말하자면 과학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실제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속세에 사는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결코 하나님의 신비를 모두 풀어낼 수는 없다. 과학은 끝이 없다는 관념의 저변에는 인간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내포 되어 있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중국의 실용주의 문화를 잘 나타내는 구호이다. 실천이란 무엇인가? 실천은 인간의 사회활동이다. 유한한 존재 인간의 활동인 실천이 어떻게 진리를 검증할 수 있겠는가? 뉴턴은 시공은 절대적이며, 만유인력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힘이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시공은 물질의 존재형식이며 만유인력은 표상이고, 물질이 공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보어는 불확정성 원리로 아인슈타인을 반박했고……. 앞으로도 이론은 끊임 없이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 진리를 검증할 수 있겠는가? 실천이란 단지 진리에 조금 더 근접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어찌되었건 과학은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장점들을 가졌고, 실용문화와 가장 가깝고, 중국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중국은 대체로 실용적인 것은 아주 잘 받아들인다. 대도시에 가보면 외국에 있는 것은 다 있다. 심지어 더 많이 갖추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베이징은 토론토보다도 호화롭다. '좋은 것, 발전, 부귀'는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목표이다. 특히 현재 중국의 경제 흐름 중에는 재물과 부귀를 추구하는 마음이 팽배해 있다. 호화주택, 자동차, 벼락부자의 꿈은 모든 사람들의 갈망이다. 사람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물질과 이익추구는 실용문화의 안목으로 현대화를 바라보게 한다. 현대화, 부유, 강성함……. 참으로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실용문화가 서양문화를 접할 때, 자연히 비실용적인 것과 직접적인 이익이 없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민주는 받아들여지기가 아주 힘들다. 실용문화의 토양 위에 민주가 뿌리내리기는 어렵기만 하다. 중국역사 속에도 민주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백성들이 관리를 󰡐라오예󰡑라고 부르는데, 어찌 감히 관리와 국민을 하나로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아큐(阿Q)가 󰡒나와 조대감은 일가야󰡓라고 하자 곧바로󰡐번쩍󰡑하며 따귀가 날아왔다.-(노신의 아큐정전) 

역대로 중국의 농민들은 살기가 어려워지면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이 목청껏 부르짖은 것이 무엇이었는가? 민주나 평등이 아니었다. 바로 토지의 균등한 분배였다. '나도 가지고 너도 가지고 모두 가지자'-(대장부의 노래:好漢歌)는 것이다. 어느 혁명과 혁신운동에서도 민주를 구호로 외친 적은 없었다. 균등이야말로 강렬한 소망이다. 토지를 균등하게 하고 소작료를 없애는 것, 토호(지방호족)를 치고, 토지를 나누는 것, 한 솥밥을 먹는 것, 연공서열에 의한 것은 모두 균등을 바라는 강렬한 중국인의 마음이다. 중국문화 속에 이 균등은 공평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균등은 자신이 손해 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남보다 가진 것이 많다면 잠잠히 있지, 불공평하다고 떠들어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의 원칙은 어떠한가? 균등이 아니라 공정과 공의이다. 공정과 공의의 원칙은 '인간은 모두 똑같다'가 아니다. 마태복음 20장에 예수님의 포도원 일꾼의 비유가 나온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나가 한 데나리온의 일당을 주기로 하고 일꾼을 고용했다. 10시 경에 나가 또 일꾼들을 고용했다. 12시, 오후 4시, 심지어 오후 6시에 또 몇몇의 일꾼을 고용했다. 품삯을 계산할 때가 되자, 주인은 모든 일꾼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 씩을 지급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이 원망하자 주인은 말한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의 공의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모든 사람이 똑같이'는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오묘하시다. 우리가 실용을 추구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실용의 유익을 누리게 하신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만들면서, 그것이 실용화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단지 이 연구를 통해 우주의 본질과 신비를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다. 현재의 핵기술은 그의 유명한 질량에너지공식 E=MC에서 나온 것이다.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만들 때, 그들은 비행기가 사람과 화물의 주요 운송수단이 될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이 특허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인은 오랫동안 실용주의를 추구하여 왔다.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전등, 전화, 계산기, 텔레비전, 양변기 등등 모두 실용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중 중국인의 발명품은 하나도 없다. 실용주의 그 이상의 경지로 오르지 못한다면, 결국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바로 '무릇 가진 자는 더 받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다. 유익을 구하면 구할수록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를 좇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출처 |  www.cefocm.org(海外校園)
번역 | 김현주(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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