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달려온 교회 역사와 선교의 횃불은 바야흐로 종착점에 진입하기 앞서 마지막 비상시기에 이미 진입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교회 역사 이래로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보기도를 논하면서 영적전쟁을 언급하는 것은, 중보기도와 영적전쟁이 한 맥락이며 결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 기도 후원자들에게 나눈 성탄 메시지 중 일부를 인용하길 원한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helpless), 배고프고 추워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울어야만 하는 어린 아기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묵상해봅니다. 가난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깊은 겸손과 순수한 마음으로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따르며 경배하기를 원합니다. 그분을 따르고 섬기기에는 너무 지식이 많고 부유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아무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크리스천들 혹은 사역자들, 하나님을 위한 큰 일을 하는 데 그분의 도움이 없이도 지력, 재력, 각종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며 하나님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길 원합니다.”
사단이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략 가운데 가장 잘 먹혀 들어가는 성공 전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빨리, 많은 일을 하라고 부추겨대는 것이다. 그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원칙(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 5)을 위배하고, 인위적인 열심과 인간의 혈기와 노력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오히려 교만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며, 인간의 오만한 바벨탑과 허울만 남게 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일과 차단되는 것이다. 중보기도라는 주제에 대해 이와 같은 언급을 하는 것은, 형식적인 중보기도보다는 실제적으로 건강한 ‘기도생명(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부흥의 도래를 소원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국의 한 지역에 거주하면서 그 지역 교회를 섬길 뿐 아니라, 여러 지역을 정기, 비정기적으로 순회하며 현지 사역자들과 동역 관계를 가지고 여러 지역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러므로 특히 중보기도 사역이 매우 중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어떤 지역은 1년에 두어 번 정도 밖에 방문하지 못하지만 거의 매일 중보기도 가운데 섬기고 있고, 실제로 이러한 사역이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그런 과정 가운데 깊이 절감하는 것은, 내 몇 마디의 기도보다는 내 영적 상태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 자체가 중보기도의 가장 중요한 근본이라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영적 상태로부터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것처럼, 나의 영적 상태가 내가 직접 관계하고 있는 지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살피며 ‘일의 사람’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늘 몸부림치는 것이 나의 중보기도 사역의 근본이 되고 있다. 즉 이런 원칙에 의한 중보기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중보기도를 통한 동역관계 사실 선교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절실히 필요를 느끼고 요청하는 것이 중보기도일 것이다. 필자도 사역지에서 수시로, 배후에서 기도로 도우며 동역하는 분들의 중보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다. 그 기도 후원은 크게 두 방면에서 오는 것이다.
중국인 기도 동역자들 8년 전부터 계속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섬기는 사역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된 가정이 있다. 5대 째 예수님을 믿는 가정으로 86세의 노인 사역자가 계시다. 지금은 홀로 된 목사 사모님이신 이분이 나에게 얼마나 큰 중보기도의 축복을 느끼게 했는지 모른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얼마 전까지도 한 가정 집회의 영적 거장으로 영향력을 미치며, 말씀과 기도 사역으로 교회를 섬겨 오셨다.
2년 전 그 지역을 방문하였을 때는 워낙 바쁜 사역 일정 때문에 도저히 그분을 찾아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변동된 시간으로 여유가 생겨 그 노인 사역자를 뵙고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 눈물을 흘리시며 맞아주신 그분은, 기도하는 가운데 지난 수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기억하며 중보기도 해온 것을 언급하셨다. 그분이 날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실 때 얼마나 큰 감격과 감사함이 있었는지 모른다.
당신께서는 매일 간절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는데, 나는 수개월만에 그 지역에 와서는 사역이 바빠 찾아 뵙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리 서운해 하시는 않았지만, 그동안 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갈 때마다 뵙지 못한 것이 참 죄송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인지를 깊이 느꼈다. 아직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사역지에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주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분과 같은 기도의 종의 중보기도를 통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며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깊이 절감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과 기도의 빚을 얼마나 많이 지고 있는가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지난 연말에 다시 그 지역을 방문했을 때, 그분과 나는 동일하게 이제 이 땅에서의 마지막 만남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감회가 깊었다. 노령과 지병으로 쇠약해져 병석에 누워 계신 그분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처음 믿은 22세 때부터 60여 년 동안 그 종의 섬김을 통하여 영광 받으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렸다. 그분 역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축복해 주셨다. 아마 지금도 예수님 앞에서 이 부족한 종을 위해 중보하고 계실 그분을 생각하면 깊은 감사함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많은 중국의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을 위해 서로 중보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사역자가 사역 현장에서 얻는 중보기도 후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깊이 느끼며 감사하고 있다.
한국인 기도 동역자들 또한 모국에 있는 선교 동역자들의 중보와 동역이 큰 격려와 힘이 되고 있다. 순회 사역지에 나가 있는 2∼3주의 기간 동안 여러 긴장된 상황 가운데서 풍성한 주님의 은혜와 역사들을 체험하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배후에 있는 기도 후원의 힘을 절실히 체험한다. 대부분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충성돤 주님의 일꾼으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중보 사역하는 여러 성도님들이 있다. 모교회를 방문하여 새벽기도 시간을 마치고 나올 때 내 두 손을 꼭 붙잡고 매일 기도한다고 말하는 성도를 만날 때마다, 결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그밖에 필자의 기도편지를 받아보는 전국의 여러 선교 동역자들이 있다. 그들은 거의 다 안면이 있기는 하지만, 선교대회 혹은 여러 단체들의 활동 가운데 연결되었기 때문에 계속 개인적으로 교류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참으로 귀한 축복의 동역자들이 아닐 수 없다. 넓고 다양한 선교지에서 진행되는 치열한 영적전쟁, 많은 필요, 여러 지역에서 사람이 결코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부흥의 조짐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중국의 성도들을 만나면서 요즘 어떻게 하면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다. 특히 그룹별로 합심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능력을 생각하며, 기도 동역자들과의 적절한 연결과 동역자들의 참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보안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기도자료가 한국의 중보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기도 동역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중보기도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필자는 작년부터 구체적인 확인과 연결이 된다면, 별도로 그룹중보기도를 원하는 단체나 개인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기도편지를 작성하여 보낼 것을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오늘날 중국선교는 세계선교의 관건이며,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더욱더 총체적인 선교역량의 집중이 필요하며, 이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중보기도의 지원이 이루어지느냐에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기도제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역자 자체 곧 나 자신이 주님 앞에 늘 온전히 드려지는, 주님의 기뻐하시는 그릇으로 준비되는 것이다. 선교지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는 단기선교팀이나 선교 관심자, 헌신자들에게 필자는 늘 나 자신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더욱 철저히 죽고 그분이 내 안에서 온전히 당신의 삶을 사시는 것이 선교의 가장 큰 관건이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많은 중보기도의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고, 앞으로도 더욱 신실한 당신의 기도의 일꾼들을 연결시켜 주실 것을 인하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강성광 | 본지 편집위원·중국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