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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29 통권 145호     필자 : 김영철 프린트   이메일 
[중국영화]
《일대종사(一代宗师)》, 홍콩 왕자웨이(王家卫) 감독
종적이 사라진 도시의 협객

색다른 무협 영화 - 군체의 서사시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왕자웨이 감독은 1997년에 제작한 《해피 투게더》로 칸영화제에서 최고 감독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1994년에 선보인 영화 《동사서독(东邪西毒)》은 복잡한 감정묘사를 통해 독특한 무협영화를 연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08년 《동사서독》을 재구성한 《동사서독 리덕스(Ashes Of Time Redux)》는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왕자웨이가 2013년에 제작한 《일대종사(一代宗师)》는 무협영화의 계보를 잇는 쿵푸영화로서 제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제50회 타이완 진마장(金马奖)에서 여우주연상, 미술디자인상, 조형디자인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또한 이 영화는 제33회 홍콩영화제 진샹장(金像奖)에서 최고 작품상을 비롯한 12개 부문을 석권하는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대종사》는 제56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Asia Pacific Film Festival)에서 여우주연상과 최고 촬영상을 받았고, 미국 타임지에 의해 2013년을 빛낸 10대 영화중에서 5위에 랭크되었다. 이외에도 《일대종사》는 제86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선정한 외국어영화 9개 작품 중에서 최고 촬영상과 의상디자인상의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어 경쟁을 펼쳤던 유일한 중국어권 영화로서 왕자웨이 감독이 꾸준히 심혈을 기울였던 영상미학에 대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일대종사》는 
영춘권((咏春拳)의 고수인 ‘엽문(叶问)’에 관한 평전 성격의 영화이다. 2008년 예웨이신(叶伟信) 감독의 《엽문(The Legend Of Ip Man)》이 상영된 후에 2013년 전쯔단(甄子丹) 주연의 《엽문 3(Ip Man 3)》까지 제작되어 엽문 시리즈 영화는 중화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관객들에게도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중문제목 ‘일대종사’는 한 시대에 존경받는 큰 스승이란 뜻이고, 영문제목 ‘The Grandmaster’는 최고 수준의 달인이란 의미로, 엽문을 단순한 무술인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로 해석한 것이다. 1930년대 중화민국 시기에 중국 무예의 고수들이 불산(佛山)에 모여 여러 가지 논란과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무예실력과 품격을 겸비한 엽문한테 중화무사회 회장(中华武士会会长) 자리를 넘겨주었다. 왕자웨이 감독은 엽문이라는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서술보다는 남북 군벌, 국공 내전, 항일 전쟁 등 정국이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무도인들에게 초점을 맞춰 ‘군체(群体)서사시’로 재해석하였다. 기존 무협 쿵후 영화와의 차별화를 시도하여 여성 무예인 궁얼의 캐릭터를 통해 무술이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협객의 절제된 사랑

팔괘장(八卦掌)의 종사(宗师) 궁위톈(宫羽田, 王庆祥)이 고령으로 중화무술인 회장 은퇴를 선언하자, 그의 딸 궁얼(宫二, 章子怡)은 불복하여 비밀리에 엽문(叶问, 梁朝伟)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궁얼이 엽문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화려한 무술과 영상미가 돋보이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궁얼은 엽문의 인품과 무예에 매료되었지만 그에게는 현모양처 장융청(张永成, 宋慧乔)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궁얼은 팔괘장의 후계자로 자처하여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남과의 결혼도 거부하고 일평생 독신으로 지내려고 하였다.

궁얼은 엽문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마음속에 그를 향한 애정을 키워갔다. 엽문은 궁얼이 있는 동북 지방으로 가기 위해 외투까지 마련했지만 일본군의 침략으로 끝내 가지 못했다. 궁얼은 엽문에게 무술을 익히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 세상까지도 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평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여겼다. 궁얼과 엽문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로만 지내자고 하였다. 현숙한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엽문과 무술인의 외동딸로서의 궁얼은 현실에서 각자의 본분을 지키려고 애썼다. 궁얼은 죽음이 임박할 때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촛불에 태우고 그 재를 담은 작은 상자를 엽문에게 보냈다. 궁얼은 엽문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지만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닫고 홀로 외롭게 여생을 보냈다. 왕자웨이 감독은 법도를 지키며 도를 넘지 않는 무도인의 모습을 연출함으로 남녀 간의 사랑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성숙이라고 여겼다.

 

최고의 무예가 발산하는 아름다움

왕자웨이 감독은 《일대종사》를 8년여 년 동안 꼼꼼하게 준비했다. 3년간의 공들인 촬영은 그만의 특색을 담은 영상미와 함축미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을 곳곳에 배치할 수 있었다. 중국 전통 건축 안,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궁얼과 엽문이 처음 만날 때, 이탈리아 오페라를 삽입하여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할 사랑의 감정과 불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왕자웨이 감독은 남녀의 감정을 표현할 때와 격투 장면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미학을 드러냈다. 엽문과 팔극권(八极拳)의 대가 이셴톈(一线天, 张震)이 적수들과 대결을 벌이는 격투장면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펼쳐졌다. 수없이 떨어지는 물방울과 파문이 일어나는 물결 속에서 날렵한 손과 발동작을 렌즈에 그대로 담아냈다. 왕자웨이 감독은 고도의 화려한 영상미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기존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액션 영화가 잘려진 신체들이 날아다니고 선혈이 낭자한 장면을 남발하는 것에 비해 한 차원 다른 수준의 무예를 보여주었다. 무술 최고의 경지는 손과 발, 몸짓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팔괘장의 대가 궁위톈은 엽문의 공력(功力)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의 손에 쥐어진 구운 빵을 무공으로 쪼개어보라고 했다. 엽문은 손발을 사용하는 거친 공격을 가능한 자제하고 상대방의 동작을 귀로 들으면서 의중을 헤아린다. 그리고 몸이 아닌 사유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자 궁위톈은 기꺼이 무술인의 최고 명예직을 엽문에게 양보하였다.

이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정신으로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임을 강조한 것이다. 영화에서 칼이 칼집에 있는 것은 살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숨기기 위함인 것처럼, 무인은 양보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라는 글자는 창 과()와 그칠 지()가 조합해서 만들어진 한자로서, 무력을 그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좌전《左传(宣公十二年)》에 나오는 초장왕(楚庄王)의 견해이다. 왕자웨이 감독은 무 글자의 자원(字源)적인 해석보다는 문화적인 해석에 더 치중하였다. 궁얼과 엽문이 대결하는 장면에서 평소 무용에 재능이 있는 장쯔이의 가벼운 몸짓을 부각시켜 여성의 섬세한 춤 동작을 통해 무예의 최고 경지를 아름답게 연출하였다. 왕자웨이 감독이 무예의 달인 전쯔단과 같은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고 연기력이 출중한 량차오웨이를 선택한 것은 그가 무인의 고상한 기백을 드러내는데 적합한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고난 중에 지켜낸 협객의 품격

중국에서 무인은 북방과 남방으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의 무술이 뛰어나다는 갈등을 오랜 기간 겪어왔지만 대일항전 시기에는 남북 무술인들이 오히려 단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엽문은 1936년 일제의 침략으로 봄이었던 시절이 일순간 겨울로 변했다고 회고하였다. 

궁위톈의 수제자였던 마산(马三, 张晋)은 스승의 명을 거역하고 침략국인 일본에게 협조하여 직위까지 받았다. 스승이 이러한 마산을 못마땅하게 여기자 사제 간에 다툼이 벌어지고 마산은 스승을 죽였다. 외동딸인 궁얼은 마산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여기고 복수를 결심하였다. 궁얼은 기차역에서 마산과 목숨을 건 혈투를 펼친 끝에 가까스로 그를 눈 쌓인 길바닥에 눕혀 버렸다. 궁얼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갚았지만 삶의 방향을 잃고 허무감에 사로잡혀 아편에 손을 대고 폐인이 되어갔다. 근현대 시기의 여성은 남성들과 달리 무술을 통해 영예를 얻기보다는 고독과 무기력감에 더 시달렸다. 

불산과 홍콩이 일본에 의해 함락된 후 엽문은 가족과 헤어지고 생계조차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식까지 잃으면서도 끝까지 일본에 협조하지 않는다. 그는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고 나서 자신의 무술 도구를 도끼로 부숴버렸다. 그는 무예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품격은 지켰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느꼈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왕자웨이 감독은 굴곡진 중국현대사 속에서 한 시대의 거인마저도 연약하고 쓸모없게 만드는 현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종적이 사라진 도시의 협객

왕자웨이 감독은 중화민국 시기에 엽문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다른 무예인들이 각자 개성은 달랐지만 불산에서 다시 홍콩으로 모여 이들의 무술이 세계에 전파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엽문은 불산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홍콩으로 이주하였고 영춘권을 선양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 유명한 제자로는 이소룡을 손꼽을 수 있다. 팔괘장, 팔극권, 형의권(形意拳) 등과 같은 남북 무술이 불산과 홍콩에서 합류하였다. 엽문의 출생지인 불산은 광동의 3대 도시이며 광동 문화가 융성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왕자웨이 감독은 상하이에서 출생하여 5세에 홍콩으로 이주하고 홍콩이공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였다. 그는 엽문이 어쩔 수 없이 이주를 거듭하며 화려한 도시 속에서 여러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겪는 허무와 좌절을 앵글에 담아내며 홍콩의 과거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진한 향수를 느꼈다. 그러나 품격을 갖춘 영웅들은 보이지 않는다. 척박한 현대 도시에서는 협객의 멋이나 의리를 재현하기조차 힘든 아쉬움이 묻어난다. 타이베이의 자인라디오 기독교방송국(佳音電台)은 ‘도시인의 영혼을 수호한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세월호(世越号) 참사로 깊은 상처를 받은 유가족과 국민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치유되어 하나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국가의 재난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을 보듬어 주시길 기원한다. 성경에서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이사야 32:17) 라고 밝힌 것처럼,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 개인과 국가의 안전과 번영이 보장되길 기대한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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