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단상

대륙의 밤기차를 타고 출장을 나서는 길이다. 밤10시가 지나자 실내등이 꺼지고 기차는 흔들리는 요람처럼 기분 좋은 박자로 덜컹거린다. 이 무한 반복되는 운율을 따라 내 마음은 어느덧 13년 전 처음 중국에 왔을 때로 달려간다. 

그때 청년이었던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달랑 배낭 하나 매고 대륙을 밟았다. 98년 중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몸소 여러 가지 큰 문화충격을 겪었는데 그 중 압권은 단연 기차였다. 그 때는 기차역에서 기차표를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그 더운 대합실에서 두 줄인지 세 줄인지도 모르는 긴긴 줄 뒤에 서서 끼어드는 새치기와 한참 씨름을 한 뒤엔 돈을 집어던지는 불친절한 역무원과 상대를 해야 했다. 그래도 원하는 표를 수중에 넣을 수 있으면 행운이었다. 그 날은 입석표 밖에 살 수 없었다. 심양에서 연길로 가는 18시간 기차였다. ‘다리야 너만 믿는다. 18시간만 버티어다오’라고 빌면서 대합실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렸다. 개찰구가 열리자 놀라운 광경에 펼쳐졌다. 그 느릿느릿하던 사람들이 가마니같이 큰 짐을 들고 100m달리기를 하듯 뛰어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빨리 타야 짐칸에 짐도 올리고 장시간을 견딜 수 있는 좋은 위치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었다. 무지했던 나는 뒤늦게야 들어가서 좁은 통로에 어정쩡하게 서있게 되었다. 그런데 제 눈앞에 펼쳐진 객차의 광경은 정말! 일단 후덥지근한 객차 안은 땀 냄새와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바닥은 각종 과일껍데기와 해바라기 씨로 덮여있었고 큰 쓰레기는 모두 창문 밖으로 던져서 처리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보니 변기 안과 밖에 대변이 널려있고 나무로 된 변기 뚜껑은 오줌에 절어 있었다. 그야말로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젖혀 디딜 곳조차 없다”였다. 그렇게 5시간, 8시간, 10시간을 버티는데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후각이 마비가 되고 몸은 곤비하니 청결과 오염을 구별하는 지각도 점점 희미해져갔다. 결국 나는 쓰레기 바닥에 쪼그리고 있다가 털썩 앉게 되고 급기야는 눕게 되고 말았다! 그들이 먹고 뱉은 해바라기 씨와 쓰레기 위에 정말 머리를 데고 누운 것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욥의 고백은 나의 고백이 되었다. 그렇게 깜박 잠이 들었다. 바로 그 때 누가 나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이 아니겠는가! 혹시 곤비한 엘리야를 쓰다듬어 주었던 그 천사?! 눈을 떠보니 그 것은 천사가 아니라 차장의 빗자루였다. 객차의 통로가 정말 쓰레기로 가득하여 못 봐줄 꼴이 되면 차장은 빗자루를 드는데 내가 그 쓰레기 위에 누워있으니 차장은 빗자루로 날 깨운 것이었다. 아! 화장실도 청소한 그 빗자루로 말이다. 놀라서 고개를 쳐드니 차장은 내 얼굴 아래 있던 쓰레기를 쓸어 담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바로 그 때부터였다! 내가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잠결에 나를 쓰다듬었던 차장의 빗자루의 느낌이 이상하게도 너무나 포근했던 것이다. 원효는 전 날 밤 해골의 물로 해갈한 것을 알고는 구역질을 하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말했던가. 나는 나를 애무한 빗자루를 확인한 후에도 세수하러 가지 않았다. 그냥 계속 그 자리에서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천상의 쾌적함을 버리고 거친 말구유 지푸라기 위에 뉘이셨을 때 예수님의 기분이 어떠셨을까? 아마도 포근하셨을 것이다. 환경은 열악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선교지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이 세상과의 첫 접촉이 구유위의 여물이었던 것처럼 그날 밤 더러운 빗자루의 그 포근한 느낌은 나와 이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일체감을 준 것이다. 그 느낌을 간직하며 기차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10여 년 동안 여권 2부을 중국 스탬프로만 찍어서 소멸할 만큼 이 나라와 사랑에 빠졌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기차는 13년 전과 전혀 다르다. 에어컨이 나오는 깨끗한 실내에 화장실에는 휴지도 걸려 있다. 그 동안 이곳의 선교적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그 때는 괘도의 찬양가사를 보고 다들 노트에 옮겨 적었지만 지금은 빔 프로젝터가 기본이다. 한국에도 번역되지 않은 기독교서적을 인터넷으로 구매 할 수도 있다. 부흥하고 있는 한족교회의 상황에 발맞추어 나의 사역도 미전도 소수민족(야오족)과 한족교회 선교훈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도 많이 변했다.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고 결혼도 하여 가장이 되었다. 이젠 기차를 타도 청년시절의 여흥은 거의 느끼지 못하는 중년이 되었다. 아침에 거울 앞에 서면 그 날렵했던 젊은이는 온데간데없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같은 몸매의 중년이 서 있다. 그러나 딱딱한 맨틀 아래 뜨거운 마그마가 흐르듯이, 태연해 보이는 나의 표정 아래로 기차를 타고 이 나라를 구석구석 누비며 이 땅과 사랑에 빠졌던 청춘의 추억이 분명히 뜨겁게 흐르고 있다. 지금도 기차에 누워서 생각에 잠긴다. 앞으로 얼마나 이 대륙의 밤기차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될까? 그 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 밤은 나의 얼굴을 쓸고 지나가던 차장의 빗자루 꿈을 다시 한 번 꾸고 싶다.

야오족 TEE사역

기차는 밤새 달려서 N시에 도착했다. 야오족(瑤族)은 윈난(云南), 광시(广西) 등 남부지방에 넓게 퍼져있는데 N시에서 2시간 떨어진 D현에 야오족들이 많이 있다. “한족(?族)은 길가에 살고, 좡족(壮族)은 물가에 살고, 묘족(苗族)은 산속에 살며, 야오족은 척박한 곳에 산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힘이 없기 때문에 변방으로 밀려난 것이다. 다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D현에 도착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학생들이 있는 마을로 들어간다. 긴긴 시간동안 땀 흘리고 자서 머리는 이미 봉두난발이다. 오토바이 바람이 최후의 헤어디자이너가 되어주면 완성이다. 마을에 들어가도 나를 외지인으로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마을에 가보니 3명이 오지 않았다. 설 때 가족, 친구들을 만난 후 도시로 일하러 간 것이다. 그러나 “누구누구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주를 버리고 돈 벌러 갔다”고 정죄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또 그들의 때가 있겠지. 남은 훈련생 12명을 데리고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TEE(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는 선교지에서 저학력자들을 교회의 리더로 세우는데 아주 탁월한 훈련이다. 전체 6권으로, 권당 10단원의 내용이 있으며 한 번 출장 때 한 권을 끝낸다. 훈련생은 거의 전임 사역자이다. 자신의 민족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들이다. 미전도 종족으로서 미전도 종족을 향하여 사역을 하니 이들에게 사례금을 줄 수 있는 지지기반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결국 이들은 종종 매혈(?血)을 택한다. 현에 나가서 400cc의 피를 팔면 200위안을 받는다. 특히 자녀가 있는 부부는 돌아가면서 400cc씩 팔면서 자녀를 양육한다. 혈색이 없는 훈련생은 최근에 매혈을 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합숙을 하는데 총 15명의 사람이 하루 30위안으로 밥을 먹는다. (보통 나 혼자 밖에서 잘 먹으면 30위안은 든다.) 식탁은 엄격한 그린벨트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 날마다 푸성귀 국에 짠지로 밥을 먹으니 이것이야 말로 제후의 밥, 걸인의 찬이다. TEE 3권을 마치고 마을을 떠나는데 훈련생들이 나와서 배웅을 한다. 선생님들이 가시면 자기네들끼리 맛있는 것을 먹을 거라고 놀린다.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이 뿌옇게 보이는 것은 나를 태운 오토바이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작아지는 그들을 보며 혼자 되뇌는 말이 있다. ‘당신들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당신들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부디 영양가 있게 먹고 당신네 민족을 향한 훌륭한 사역자가 되십시오.’

중국교회 선교훈련사역

기차는 다시 달려서 Z시에 도착했다. 가장 뜨거운 중국교회 현장을 보고 싶으면 허난(河南), 안후이(安徽)로 오면 된다. 이쪽의 교회 분위기는 보통의 소수민족들과는 전혀 다르다. 고난과 순교의 토대 위에 세워진 한족가정교회는 경제성장과 교회부흥이라는 파도를 타고 “선교”를 향하여 키를 돌리고 있다. 바야흐로 중국이 선교사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U.S for World Mission에서는 2025년까지 중국에서 10만 명의 선교사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앞으로 전 세계 선교사의 1/4이상은 중국에서 나오게 된다는 소리인데 이것은 이슬람, 힌두, 불교권 같은 선교의 남은 장벽을 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족가정교회는 또한 은둔과 내부지향성, 그리고 뿌리 깊은 중화사상이라는 반 선교적인 요소들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중국의 비전을 위해서는 애벌레가 포근했던 고치를 뚫고나와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선교는 자신의 상황을 뛰어넘어 타 문화권으로까지 헌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시는 것과 같은 선교계몽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이 바로 한족교회를 상대로 선교적 계몽과 도전을 하며 이들을 훈련을 시킬 때이다. 

땀 흘리며 한바탕 찬양을 한 뒤에 우리는 MP(Mission Perspectives)를 중심으로 강의를 한다. 강의는 대개 부흥회로 끝나게 마련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선교하시는 하나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됨!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위한 남은 과업! 이런 주제들을 어찌 냉랭한 강의로 담아 낼 수 있을까. 아침부터 밤까지 집회를 하고 밤에는 선교의 영상을 보면서 도전을 한다. 그 후에 이어지는 한족성도들의 뜨거운 기도와 회개……, 그들은 서서히 자각하고 있다. 자신들을 위하여 네스토리우스, 마테오리치, 허드슨테일러 등 수 많은 시대에 수많은 선교사가 왔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중국 안의 소수민족조차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감동이 있는 형제자매들은 선교사로 헌신한다. 지난달에는 X시의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선교훈련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건물, 비용 등)는 그들이 책임지겠으니 우리는 선교훈련의 내용을 준비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또 2011년에는 한 달간 중국형제자매들과 인도로 단기선교를 떠날 것이다. 앞으로 남은 선교지-이슬람12억, 힌두10억, 불교권 3억-는 선교의 노동력이 필요한 지역이다. 광활한 땅과 수천 종의 언어와 민족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을 추수할 용사들은 중국교회이다. 나는 꿈을 꾼다. 과거 중국의 인해전술은 사람을 죽이고 정복하기 위한 전술이었지만, 앞으로 중국교회의 인해전술은 사람을 살리고 추수하기 위한 전략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성숙한 중국인 선교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이 전략의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두 손이라는 무기’를 들어 ‘기도라는 전투’에 참여하는 용사들이 늘 있기를 바란다.

이젠 집으로 가는 기차 안이다. 몸은 아직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벌써 현관문을 열고 있다. 이번엔 아들 녀석이 보든 안 보든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아내에게 뜨거운 포옹과 키스를 해줄까 한다. 한 달의 반 이상을 집을 비우는 남편에게 불평 한 마디,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없이 햇살 같은 웃음으로 나를 대해주는 아내. 지금까지 유치원을 다섯 번이나 옮겼지만 잘 소화하고 꿋꿋하게 생활하는 기특한 아들. 가족이 있기 때문에 선교사역도 가능하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이젠 가족 꿈을 꾸고 싶다.


최욥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