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선교 패러다임에 묶여 있기보다는 지구촌이 급변하고 있다.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화,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가능해져 지구촌은 더욱 보편적이고 실시간적 문화권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정보, 전자통신의 발전으로 지구의 반대편에 있어도 원격조정으로 현장에 있는 것 같이 실시간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교통의 발전으로 지구의 한 지역에서 반대쪽까지도 대부분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가히 하나의 지구촌이라 불러도 마땅한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외형적인 기술의 변화에 발맞추어 내부적인 사고의 방식도 바뀌어 가고 있다. 앞선 세대가 일관성과 전체적인 조화를 강조했던 세대였다면 지금의 세대는 개인의 장점이나 개성을 강조하는 세대라 말할 수 있다. 실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는 선교의 영역에 있어서도 개인의 전문성이 점차 강조되게 되었고 결국 그 전문성이 필요한 곳으로 선교사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세계는 이렇게 외형적, 내부적인 대변혁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는‘혁신’을 말하고 있고‘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를 외치고 있다. 선교에 있어서도 개념과 접근방법 그리고 전략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필자가 신학을 공부하던 시기에는‘토착화(Indigenization)’나 ‘상황화(Contextualization)’같은 사역의 개념은 로마 가톨릭 혹은 자유주의 신학권에서만 사용하던 선교전략으로 비판되어 왔었다. 하지만 현대 개신교 선교에 있어서의 상황화 사역은 선교의 문외한이 아닌 이상 복음주의권에서 대다수가 인정하고 추구하는 선교전략으로 정립되었다. 더 나아가 근본주의 성향을 띠고 있는 무슬림 지역들 안에서의 선교 사역을 극대화시키기 위한‘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과도 같은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혁신적 패러다임의 선교전략은 이전 같으면‘혼합주의(Syncretism)’를 양산할 수 있는 위험한 전략이라고 무조건 비판만 받았을 것이다. 선교의 영역 안에서도 적극적 패러다임의 변화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통주의가 강한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공부하며 일해 왔던 우리에게 선교라는 것은 한 사역지에 계속적으로 머물면서 사역하는 현장중심의 전통주의적 개념의 것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한국교회나 한국선교사들은 선교사가 한 선교지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사역하다가 장렬하게 그곳에 뼈를 묻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선교사는 무언가 부족한(?) 선교사라는 전통적 선교 패러다임에 대부분 묶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을 보라! 정말 복음이 필요한 창의적 접근 지역 그 어느 곳에 그렇게 일생을 바칠 수 있는 사역지가 존재하는가!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더 이상 이러한 전통적 선교 패러다임에 묶여 있지 않고 새로운 시대 속에서 특히 중국과 같이 창의적 접근 지역 안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발전적으로 사역해야 한다.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비거주선교의 배경과 정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서구 제국주의에서 독립한 신생 독립국들 가운데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국의 문화와 종교를 앞세워 민족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가 발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부터 수많은 국가들이 선교사의 입국을 통제하게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 약 140여 개의 국가에서 선교사의 입국을 불허하고 있다. 인구로 따지면 전세계 70억 인구의 1/3정도의 규모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선교를 불허하는 나라들이 복음이 더욱 필요한 지역이라는데 있다. 대부분 강력한 이슬람, 힌두, 불교 지역이거나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이 지역들은 전통적 선교의 방법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들이기에 보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야 되었다. 이에 소위‘창의적 접근 지역(Creative Acess Nations)’혹은‘선교 제한 지역’이라는 선교개념이 등장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어떤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한곳에 거주할 수 없는 현실적 상황에 따라 소위‘비거주선교(Non-residential Mission)’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복음에 대한 배타 지역에 대해 점점 비거주 사역은 중요한 사역전략으로 확립될 것이고 다양한 모습과 방식의 비거주선교사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 바렛은“비거주선교는 마치 1608년에 각각 따로 연구하던 여섯 사람에 의해 동시에 나타난 광학 망원경의 발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 당시 렌즈 연마술은 새로운 기술적 단계에 도달해 있었고 일반 대중의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있었다. 이 두 요인의 결합이 결국 필연적으로 광학 망원경의 발명을 낳았던 것이다.”라고 비거주선교에 대해 언급했는데, 결국 시대의 요청에 의해 광학 망원경이 발명된 것과 같이 비거주선교 역시 시대의 요청에 의한 하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비거주선교의 시작은 시대의 필연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비거주선교사라는 개념은 1986년 미국의 남침례교 해외선교부에서 비거주선교 분과를 신설하고 1989년 마닐라 대회에서 비거주선교사의 개념을 소개함으로 기독교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데이비드 바렛은 비거주선교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는데“비거주선교사는 장기전임 선교사로서 합법적으로 선교 사역을 하되 자신의 주 사역 대상지인 미전도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외부에서 사역하는 사람이다.”다시 말하면 비거주선교사는 장기적 거주에 제한을 받는 창의적 접근 지역에 여행이나 문화교류, 전문직 등을 통해 입국해 장기적인 생활은 하지 않지만 단기간 동안 현지인을 훈련시키고 섬김으로써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서구단체들 가운데에는 비거주선교사라는 개념이 좀 더 발전된‘선교전략조정가(Stratage Coodinator)’라는 개념으로 점차 변화되고 있는데, 선교전략조정가는 해당 지역의 상황을 리서치하거나 네트워킹 하여 현지인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선교사이다. 더 나아가 선교지에 적합한 전략을 개발하고 현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며 현지인을 사역에 동원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선교사라고 말 할 수 있다.
중국에서의 비거주선교 필자는 중국에 들어오기 전, 1990년대 초부터 발칸반도의 이슬람 지역에서 사역하면서 비거주선교를 하는 사역자들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미국 뉴욕의 유명한 대형교회의 백인 목사가 종종 이 지역을 방문하여 소위 비거주 선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잘못된 사역 방식으로 인해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현지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UN에서 일하는 남편을 보기 위해 미국에서 오신 다른 여성선교사는 직장에서 은퇴를 한 후, 3개월씩 이 지역에 머물며 선교사의 어린 자녀들을 돌보는 사역을 감당했었다. 그분의 헌신되고 겸손한 모습은 많은 선교사들에게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다른 사역과 마찬가지로 비거주선교 역시 어떻게 사역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와 파장은 너무도 다를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의 비거주선교사는 보통 사업가, 관광객, 교사 등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사역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이전 중국에서 사역한 적이 있었지만 개인적, 상황적 이유로 현재는 중국 내에 거주할 수 없는 전임 선교사들이나 현재 한국이나 미국 등지에서 목회를 하거나 혹은 은퇴한 후 중국을 단기로 방문하곤 하는 목회자들이 포함된다. 또한 중국을 드나들며 비즈니스를 하는 평신도 선교사들 그리고 국외에서 선교단체를 이끌고 있는 선교 지도자들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 중 다수의 비거주선교사들은 한국이나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화교가 많은 국가들 안에 거주하면서 사역하고 있다.
지금의 중국은 비거주선교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성상 일반적인 감시는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조심하고 무리(?)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단기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곳도 중국이다. 상황에 따라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없는 경우에는‘치고 빠지는’ 작전(?)이 아주 유용하다. 계속 있을 수 없다면 있을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서 상황에 맞게 일 할 수 있다면 되는 게 아닌가? 상황에 맞추어 맞춤식 사역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선교전략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중국에서의 비거주선교는 맞춤식 전략이다. 필자는 종종 중국에서의 사역을‘짜고 치는 고스톱’에 비교하고는 한다. 서로가 서로의 패를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눈감아주는 그런 식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전에 중국에서 오랫동안 사역했었던 선교사나 중국에 자주 드나드는 비거주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까지 중국에서 비거주선교사로 사역한 지 오래되지 않은 선교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따라서 신학적 훈련을 시킬 수 있는 목사 선교사인 경우에는 단기적인 TEE 프로그램이나 신학교육을 시킬 수 있고, 선교 지도자들인 경우에는 현지 교회를 대상으로 선교훈련 프로그램이나 Kairos(선교동원훈련) 같은 훈련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면 필자는 중국의 동쪽 한 지역에 베이스(Platform)를 두고 있지만 필자의 주 사역인 현지인 선교동원과 네트워킹, 코칭 사역은 중국의 광범위한 지역과 동남아시아까지 이른다. 전통적인 비거주선교사는 아니지만 네트워킹이나 코칭 사역을 위해 들어가곤 하는 중국 외의 다른 국가들이 볼 때 필자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비거주선교사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거주선교사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던 1990년대 부터 한국에서는 중국을 방문하지 않은 목회자들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목회자들이 단기 방문하여 우후죽순 격으로 사역을 했었다. 하지만 타문화권선교에 대해 훈련받지 않은 목회자들의 사역은 그 의욕과는 달리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사역은 열정 못지않게 방향이 중요하다. 따라서 그 평가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부분뿐 아니라 부정적인 것 역시 적지 않은 듯 하다. 이에 필자는 현재 중국의 비거주선교 사역을 몇몇 예를 통하여 잠시 진단을 해 보려 한다.
# 1 이전 G국에서 사역했던 A선교사는 성경번역 전문가이다. 15년이 걸린 성경번역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 사역을 준비하던 그는 현재 중국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사역자들을 위해 성경번역 컨설턴트로 돕고 있다. 자신의 사역 노하우를 비슷한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에게 전달하여 사역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좋은 예라 생각된다.
# 2 J시의 B선교사는 미국선교사이다. 그는 두 선교단체를 설립한 설립자로 현재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몇몇 국가를 방문하며 비거주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그는 중국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선교훈련을 시키고 자신이 기초를 닦은 동남아시아의 몇몇 국가에 단기선교사로 보내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가정교회가 눈뜨지 못한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을 통한 단기선교를 훌륭히 감당해 내고 있다.
# 3 C는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업가이다. 그는 한국의 한 교회에서 비거주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사업차 자주 들리는 H시에서 가정교회를 돕고 있다. 하지만 중국어를 하지 못해 조선족 형제를 비서로 채용하고 있다. 사업가이다 보니 자신이 할 일은 재정으로 돕는 일이라 여겨 가정교회를 재정으로 돕고 있으며, 현지 신학생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 이렇게 선교사로서 아무 훈련 없이 비거주선교사로 파송을 받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업가라면 사업가로서 어떻게 현지인을 섬길 수 있는지를 먼저 훈련받고 파송을 받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교회를 돕는 것도 신학교를 돕는 것도 모두 물질로 해결하려는 문제를 낳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현지 교회와 신학교는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도리어 외부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 4 최근 들어서야 다시 중국을 드나드는 D선교사는 이전에 중국에서 사역을 하다가 강제 출국된 경험이 있는 선교사이다. 그는 개방 초기부터 현지에 들어가 사역했었던 시니어선교사이다. 한때 그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 사역하는 선배선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강제출국으로 인해 그 꿈(?)은 깨어지고 말았다. 물론 지금은 중국을 드나들며 사역을 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계속적으로 중국에 거주하여 선배선교사로서 사역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그러다 보니 비거주선교를 한다 해도 만족감이 없고 매사에 예민할 뿐이다. 비거주선교는 강제 출국되었던 선교사 자신이 만족을 얻기 위해 하는 사역이 아니다.
비거주선교에 대한 제언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비거주선교를 위해 몇 가지 유의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비거주선교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왜 자신이 비거주선교사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비거주선교사란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비거주선교사는 현지에 들어가 장기적인 사역을 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혹은 입국의 길이 막혀서 할 수 없이 비거주선교사가 된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이유로 비거주선교사가 된 것이다. 비거주선교사는 현지에서 거주하는 선교사들보다 급이 낮은 선교사가 아니며 실패한 선교사도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 자존감은 사역에 힘을 더해 준다.
둘째, 사역을 주도하려 하지 말라. 비거주선교사들도 현지에서 거주하는 선교사들과 같이 사역지를 마련할 수 있고 동원 사역을 하거나 그 외의 여러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무리한 사역에 대한 주도권 싸움은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 간에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현지에서 사역을 주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현지의 선교사들이나 현지인 사역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돕는 사역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깊은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사역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될 수도 있다.
셋째, 종족이나 지역 연구, 비즈니스나 교사 등의 전문적 비거주선교사라 할지라도 비거주선교의 긍극적인 목표는 현지교회를 섬기고 세우는 데 있음을 기억하라. 종종 비거주선교사들이 단기로 현지를 방문하면서 자신이 세운 계획만 끝마치면 허둥지둥 본국으로 귀환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비거주선교의 목적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교회에서 필요한 일을 충족시켜주는데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비거주선교사가 자신 중심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면 빠른 시간 안에 사역의 방향을 현지교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넷째, 비거주선교사로서 적절한 타문화권선교 훈련을 받으라. 이전부터 현지에서 사역하다가 부득이하게 현지를 떠나 비거주선교를 하게 된 선교사들은 다르겠지만 새롭게 개 교회에서 비거주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된 비거주선교사들 가운데는 적절한 선교훈련을 받지 않고 파송된 이들이 있다. 지금 모든 것을 멈추고 적절한 타문화권선교 훈련을 받으라. 자신은 잠시 선교지에 다녀오는 비거주선교사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라.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가 어떻게 군사훈련도 받지 않고 나갈 수 있는가! 파송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훈련받고 사역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섯째, 자신의 거주지를 전략적으로 찾으라. 비거주선교를 시작하려고 할 때 자신이 거주할 거주지를 무조건 사역지와 가까운 곳으로 찾을 필요는 없다. 도리어 다른 동역자들과 전략적인 동역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이 유용하다. 필자가 사역했던 이전 국제단체의 북아프리카팀의 본부는 스페인의 남부 항구도시 말라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앞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면 곧바로 북아프리카에 도착할 수 있고, 사역에 위험 부담이 많은 북아프리카에서 긴급 상황에도 쉽게 말라가로 피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팀 지도자가 수시로 북아프리카에 비거주선교사로 방문하여 팀원들을 돌볼(Member Care)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섯째, 속도감과 자유로움을 마음껏 사용하라. 현지에서 은밀하게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장기적인 사역을 감당하여야만 하기에 정부의 감시 속에서 무리한 사역을 시도하기 어렵고 여러 사역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거주선교사는 이런 감시나 사역의 제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따라서 비거주선교사는 단기간 사역지를 방문하는 동안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 속에서 속도감을 살려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역들을 돕고 시작할 수 있다.
선교의 기본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지금까지 비거주선교의 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는 비거주선교에 대해 말은 하고 있지만 비거주선교사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거주선교라는 선교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비거주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 개개인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직도 비거주선교사를 정상적(?)인 선교사로 보기보다는 사역은 하지 않고 그 주변만을 돌아다니는 자 혹은 보조 선교사나 심지어 선교지 이탈자나 선교브로커(?) 등으로까지 보는 일도 있는 듯하다. 이는 아마도 일부 선교사들이 후원 등을 이유로 자신의 사역지를 마음대로 이탈하여 사역지를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비거주선교사들을 한 선 상에 놓고 동일화 시키는 것은 무척 위험한 발상이다. 그중에는 헌신적이고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이 더 많다 .
무엇보다도 선교의 기본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비거주선교사이든 현지에 거주하는 선교사이든 우리는‘섬기는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장기로 현지에 거주하며 사역하든 비거주로 사역하든 사역의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누구든지 나에게로 와서 배우라’고 거드름 피우며 선교지의 주인 행세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결국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가 어떤 사역의 방식으로 그분 앞에 부름을 받았든지 우리의 부름 받은 것은 우리가 필요한 그곳이 어떤 곳이든 어떤 일이든 개의치 않고 겸손히 현지교회와 현지인을 섬기는 그런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지면을 빌려 지금 이 순간에도 창의적 접근 지역 어느 외딴 곳, 특히 중국에서 이름 없이 사역하고 있는 수많은 비거주선교사들께 파이팅을 외쳐 본다.
정한길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