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安山) 신도시의 유래 안산은 고려 태조 23년(940년) 처음으로 안산현(安山縣)이라 칭한 후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안산군으로 승격되었다. 처음 읍치의 관아는 와리면(현 안산시 목내동)에 있었는데, 세종 23년(1441년) 소릉(昭陵)이 조성됨으로써 수암동 취암(수암봉) 아래로 옮겼으며, 1915년 시흥군의 면 구역을 개정하면서 안산은 원래의 명칭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1970년대 수도권 내의 신공업도시 개발계획에 따라 반월신공업도시로 선정되면서 개발되어 오다가 1986년 안산시로 승격되면서 본래의 지명을 되찾게 되었다. 도시의 명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반월’이 등장한 것은 지명을 본 딴 것이 아니라 사업의 명칭이었기 때문에 도시 명칭으로는 부적합하였으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 기록된 원래의 지역명칭인 ‘안산’으로 신도시의 명칭을 결정하였다. 안산 신도시는 반월신공업도시 개발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안산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월신공업도시 개발계획이 없었다면 안산은 여전히 경기도 화성군의 일부와 시흥시의 일부로 남아 안산이라는 명칭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즉 안산은 원래의 안산이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형국이 자연적인 형국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산시의 발전 속도를 인구성장으로 가늠해 보면 1986년 안산시로 승격된 이후 매년 10% 이상의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이 속도로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인구는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1995년에는 50만을 넘어 섰다. 1985년에 비하면 무려 5.5배의 급속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안산시 인구의 이러한 급속 성장은 본래 인구의 자연증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증가, 즉 이주에 의한 것이었다. 1990년과 1991년의 20% 이상의 성장은 모두 사회적 증가가 그 요인이었다. 안산의 대도시화와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안산의 인구증가는 안산의 영역을 확대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시화지구개발사업은 안산의 형국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시흥시의 오이도(烏耳島)와 안산시의 작은 가리섬을 가로질러 대부도(大阜島)의 방아머리나루터를 연결하는 시화방조제의 축조는 인공적인 도시개발은 안산시의 지형과 지세를 새로운 측변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할 것이다. 시화지구개발사업 완료 후의 안산시 형국을 보면, 수리산을 진산으로 하여 마하산 군자봉 정왕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백호산이 되고, 수원의 광교산에서 남하하는 수원의 백호인 증악산 줄기에서 남양반도의 비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안산의 청룡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남양반도의 비봉산이 안산의 안산(案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적잖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미 시화호로 인한 환경문제는 심각한 상태에 있으며, 이 영향은 곧 안산시의 심각한 환경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연결된 도로는 생태계를 파괴하여 자연과 조화된 모습보다는 인공적인 도시로 머물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개발의 논리보다는 환경 보전과 생태계의 보존 문제에 가일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살 만하고 편안한 땅, 즉 안산(安山)이 될 것이다.
국경없는마을의 탄생 안산 지역 7곳의 이주민단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원곡동은 1980년대 반월공단이 완공된 이후 다시 한 번 변모하게 된다. 특히 1990년 이후에는 영세 중소기업들이 모인 반월공단 공장들이 심각한 인력난을 맞이하였다. 공단의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근로자가 모여 사는 전국 최대의 근로자 밀집 거주지역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공단과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의 원곡동은 직주분리(職住分離)2) 현상이 두드러진 곳이기도 하다. 공단 안에서 기숙할 수 없었던 근로자가 모여 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1990년대 제조업 불황과 IMF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공단의 한국인근로자 대다수가 원곡동을 떠나가면서부터 이곳은 또 한 번 변모하게 된다. 한국인근로자가 떠나간 빈자리를 1990년대 한국을 찾기 시작한 외국인근로자가 재빠르게 채워 간 것이다. 반농반어의 평화로운 작은 부락에서 전국 최대의 산업단지가 입지한 근로자의 도시로, 그리고 전국 최대 규모의 이주민 밀집 거주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다문화 중심 도시로 변화되었다.
안산시의 외국인 관련 통계는 숫자뿐 아니라 다양성과 밀도에서도 다른 지방자치단체를 압도한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50-70개국 출신의 외국인이 안산시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중국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07년에 방문취업제라고 하여 중국동포(조선족)와 사할린 등 구소련지역(CIS)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례고용허가제의 영향으로 입국하는 중국동포의 규모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안산에서 생활하는 한국계 중국인의 수는 2006년 말 전체 외국인의 약 42%였으나 2010년 12월에는 54.8%로 나타났다. 외국인의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는 점은 안산만의 또 다른 특징이다. 바로 원곡본동 국경없는마을의 존재 때문이다. 원곡동의 가장 화려한 변신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루어진다. 현재 원곡동, 국경없는마을은 한국 최대의 이주민 밀집 거주지역일 뿐만 아니라 ‘한국 속의 작은 아시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다문화1번지’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기독교 전래 시기와 상황 안산시흥 지역에 개신교가 전래된 시기는 고종 32년(1895년)이다. 즉 1896년 감리사 보고에 의하면 지난해 개신교의 시흥 통계는 세례인 1명, 학습인 11명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치가 어디인지, 교세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다. 광무 4년(1900년)의 보고에 의하면 작년(1899년) 무지내에는 입교인이 1명, 학습인이 14명이고 올해는 5명과 41명이라 기록하고 있다. 무지내는 현 소래읍 무지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당시 최초의 입교인은 김동현(1869-1938년)이었다. 무지리는 안양에서 서면(현 광명시)으로 가는 길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서 지금도 그 교회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 교회는 안산시흥권 최초의 개신교였다.
김동현은 배재학당에 얼마간 재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01년에 수원지방 권사에 임명되었고, 다음해에는 시흥 지방 본처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1899년에 무지내 마을의 자택에서 예비를 주관하였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산시흥 지역의 전도는 선교사가 아닌 본토인이 자생적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김동현은 학교와 목사관을 건축하는데 힘을 쏟아 드디어 예배당을 짓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01년 8월, 신학월보).
1906년 원시리(현 안산시 원시동)에 살던 옹장억, 하진태 씨가 복음을 접하게 되어 원시교회(현 성광교회)를 세웠고, 1907년에는 후에 최용신 선생이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한 샘골마을에 천곡교회가 설립되어 열성적인 청년 홍순호가 담임을 맡았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조국 근대화의 물결이 일었고, 1978년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안산은 외지로부터 유입되는 인구로 새롭게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인천제일교회는 안산에 제일장로교회를 개척 설립함으로써 안산의 복음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고, 197년 안산에 반월공단이 들어서기 시작할 때에 복음의 열정을 가진 전도사들이 대거 안산으로 몰려들면서 동산장로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었다.3)
이주노동자 및 외국인 주민 현황 안산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등록외국인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전국적으로 등록외국인수가 3만 명이 넘는 곳은 안산시와 서울시 구로구 두 곳 뿐이다. 안산시에는 2010년 12월 말 현재 67개 국 3만 8,976명의 외국인이 생활하고 있다. 유형별로 보면, 근로자 2만 8,031명, 결혼이민자 4,110명, 유학생 1,789명, 전문취업자 435명, 기업투자자 191명, 방문 등 기타가 4,420명이다. 2002년 안산시의 외국인수는 8,799명에 불과했으니 8년 만에 무려 4.4배가 넘는 인구증가를 보인 셈이다.
2010년 12월에는 안산시 등록외국인의 약 85%에 해당하는 3만 3,202명이 원곡본동이 속한 단원구에 거주하며, 상록구에는 불과 5,774명만이 거주하고 있다. 단원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대부분은 원곡동과 그 인근에 집중적으로 거주하였다. 원곡본동(1만 5,392명), 초지동(8,057명), 원곡1동(5,291명), 선부1동(1,522명)은 특히 외국인이 집주하는 지역이다. 국경없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원곡본동은 외국인수와 인구밀도, 그리고 다양성 등 모든 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2010년 말 전체 4만 7,612명의 주민 가운데 1만 5,392명이 외국인 주민으로 약 3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동인구와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외국인을 포함하면 실제 외국인 주민의 비중은 훨씬 높아진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외국인이 많게는 70%, 적어도 5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원곡본동에서도 국경없는마을, 즉 2009년에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된 원곡본동 795번지 910필지 36만 7,541㎡ 일대는 외국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2010년 8월 국경없는마을 ‘다문화마을특구’에는 총 1만 6,951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내국인은 불과 38%에 그쳤다. 등록외국인의 비율이 특구 주민의 62%에 달하는 셈이다. 여기에 내국인으로 분류된 외국계 한국인(대한민국 국적취득자)을 외국인에 포함시키면 외국인 주민의 비율은 무려70%까지 높아진다. 한편 국경 없는 마을 ‘안산 다문화마을특구’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의 출신국가는 30개에 달하는데, 국적별로는 한국계 중국인 84.9%를 포함한 중국이 94.3%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안산시 원곡본동의 경우 주민의 60%정도가 외국인이며, 약 50여개 국가 출신의 외국인들이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상점의 90%가 외국인관련 상점들이 입주해 있으며, 20여 개의 지원단체와 민족 공동체, 종교기관이 이들에 대한 상시적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말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임금 체불과 산재와 인권문제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 불쌍한 사람들, 모두가 퇴근한 저녁이나 명절이면 빈 공단을 지키는 갈 곳 없는 사람들로만 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며, 이들과 공동체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안산시 원곡동의 ‘국경없는마을’의 실험은 기존의 사회구조와 저항 혹은 협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이 차별없이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대안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경없는’ 이라는 의미는 ‘국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주민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수자와 다수자의 상호 존중과 공생, 그리고 다함께 새로운 미래 문화의 창조’를 의미한다.
‘마을’ 의 의미는 ‘물리적 범위만이 아니라 이웃하여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이미 ‘국경없는마을’은 지역사회와 국내외 다양한 주체들이 관심을 갖는 공동의 의제가 되었지만, 이곳이 실제로 다문화적인 공동체 공간으로 변모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국경없는마을’은 여전히 주민 모두가 만들어 가야 하는, 한국사회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가꾸어 나가야할 공간이다. ‘국경없는마을’ 형성은 소수자를 보호하고, 다문화 공동체 형성, 새로운 미래문화의 창조에 있다.
소수자 차별적인 제도와 질서를 개선하고, 다수자의 의식변화를 이루어내며,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주민운동을 통해 대안적인 다문화공동체를 일구는 일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4)
정리 | 편집부
각주)----------------- 1. 《안산시 영적도해, spiritual mapping,》, 안산시 기독청년네트워크, 2006. 2.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심의 주택가격이 오르고 그 압력에 못 이긴 시민들이 집값이 싼 교외로 내몰려 직장과 주거가 멀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동경과 서울에서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다수 시민들이 인천, 수원, 일산, 판교 등에서 서울 시내로 출근하는 현상이 그 예다. 반대는 직주근접이라 한다. <출처 | 부동산용어사전> 《안산시 영적도해, spiritual mapping,》, 안산시 기독청년네트워크, 2006. 3. 《안산시 영적도해, spiritual mapping,》, 안산시 기독청년네트워크, 2006. 4. 안산시사(2011년편찬)/ 안산시 홈페이지(http://www.ians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