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분한 나 어려서부터 난 특별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80년대 사람들이 그렇듯이 중국의 교육환경과 부모의 과도한 기대 속에서 평범하게 자랐다. 나는 총명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리석지도 않았다. 어려서부터 노력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성적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도 높은 점수를 받는 천재들이 부러웠다. 살아오면서 실패와 좌절도 경험했지만 비교적 행복하고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성실히 공부했고 당시 최고 인기 학과인 컴퓨터 학과를 진학하게 되었다. 나는 동아리도 가입했고 공산당원이 되었다. 꿈은 계속 변했다. 초등학교 때는 교사, 중학교 때는 과학자, 고등학교 때는 기업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는 그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내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것은 나의 가족들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민주주의를 좋아하고 자유를 추구한다. 과학을 믿으며 신앙을 존중한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종교는 사람을 쉽게 미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앙은 인간 영혼의 아편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그런 위로를 필요로 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돈이나 권력은 없지만 지식을 소유했기에 신앙 없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커져가는 죄책감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까지만 해도 매우 정상적이고 착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때 어떤 사람이 2년 후에 내가 이처럼 큰 생명의 변화를 겪게 될 거라고 말했더라도 나는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입학 후 실질적으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외적인 모습은 정상적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천천히 심각한 위기를 의식하고 있었다. 단지 개인적인 부지런함과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데서 비롯된 위기의식이었다. 게다가 내 안에서 생겨나는 모순된 감정들이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외면적으로 나는 책임감이 투철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군자처럼 열심히 노력하며 오직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몇몇 기독교인들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고, 거룩하기까지 한 그들의 삶을 보며 무엇인가 부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들과는 반대로 점점 메마르고 무력하며 더러워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가치관과 신념, 이상이 끝도 없이 변해서 나중에는 무엇이 옳은지도 알 수 없었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거짓과 음란, 교만, 탐심 등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특히 위선과 음란함에 있어서, 표면상으로는 나는 군자처럼 보였으나 내면은 악한 꾀와 오만으로 가득했다. 표면상으로는 성실함으로 빛나지만 내면은 음모와 어두움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음란물을 보기 시작했다. 다 보고 나면 크나 큰 죄책감에 시달리며 다음엔 절대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번번이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내 죄책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이 습관을 버리기 위해 여러 차례 해결 방법을 찾아 노력해 보았다. 인문지식과 철학을 탐구하기도 했고, 유교경전에서 불교법서, 성공학과 심리학 등의 서적을 독파했다. 도덕적 수양과 육체의 소욕을 극복하는 일부터 당장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까지 모두 해 보았다. 배움의 깊이가 다르고 장단점이 있기도 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진리를 향한 추구의 시작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겸손하게 복음을 전하는 그들에게 냉담하고 오만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을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보수적이고 편협한 교리주의자이며 자유를 박탈당한 자들이라고 비웃었다. 나 역시 그랬다.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내가 성경은 비과학적이며 허구적인, 사람이 만들어낸 두뇌 세척액일 뿐이라고 여기며 나는 절대로 세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종교의 좋은 점은 일부 인정하고 그 종교들의 정수(精髓)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특정 한 종교만을 믿고 싶진 않았다. 예전에 한 번도 깊이 고찰해보지도 않고 믿는 진화론에 대해서 기독교인과 열띤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나는 사람은 하위동물에서 진화했을 뿐이며 결코 신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내 눈앞에 보여 달라고 했다. 주일에 예배 드리러가는 그들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허황된 것을 쫓아가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하고 경직된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서 내가 경외하는 성결함과 기쁨, 풍성함과 소망, 평안과 담대함이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내게 전혀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때로는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어둡고 더러운 삶을 벗어나고자 했던 나의 수많은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어느 날, 나는 기독교인 룸메이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네가 믿는 그 신앙을 진지하게 연구해보고 싶다. 정말 정확한 것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 이것은 정말 내 삶에 너무 중요하다.” 그후로 나는 열심히《上帝是否存在》,《游子吟》등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토록 단호하게 하나님은 없다고 부인했던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마치 정교하기로 유명한 스위스 시계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천천히《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권세가 얼마나 큰지 부인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빠져들었다. ‘만약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다면 너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이성적으로만 인정했던 이 하나님을 감정적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의 의지가 하나님을 거부했다. 믿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나로 하여금 바라보게만 하고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신앙은 엄숙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믿고 난 후의 내 변화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다. 친구들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며 멀리했다. 친척들은 내게 미치광이라고 했고 친구도 내가 세뇌 당했다고 했다. 심지어 기독교 동아리의 친구조차도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믿으면 자유를 잃고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했다. 이러한 내 생각은 철저히 변화되어야 했다. 어느 날 홀로 숙소에서《십자가-중국에 계신 예수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감동으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한 무리의 가난한 농민이 버려진 아이들, 장애인, 노숙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 육체가 연약하여 소외된 이들이었지만 가장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하고 있었다. 항상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만 얼굴엔 감출 수 없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와 웃음 속에 드러나는 감사와 희열, 사랑과 평안은 내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신기한 능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돈? 권력? 젊음? 지식? 견고한 의지? 아니면 개인의 도덕적 수양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처럼 진실하고 감동적인 삶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 것인가?”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그것은 죄를 사하시고 부활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이지만 오히려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런 힘과 기쁨은 거짓으로 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로소 나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23년이란 세월 동안 마귀에게 혹사당한 것을 깨달았다.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영광의 하나님이 죄 많고 추한 사람들을 이토록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시다니! 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 감동했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더러운 모든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구했다. 주님이 나의 구주와 생명의 주가 되어주시길 간구했다. 기도를 마쳤지만 외적인 나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실질적인 변화는 내면에서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며 바라 본 파란 하늘과 광활한 대지는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내 죄와 더러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았음을 확신하고 나니, 내 마음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넘쳤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후로 2년이 지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전의 삶은 늘 긴장 속에 사는 모습이었으며 관계 속에 잘 어울리지 못했다. 겉으론 웃고 있어도 마음은 늘 무거웠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비로소 참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쁨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기쁨이다. 죄사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죄와 사망에게 종노릇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가슴을 펴고 살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인가!
지금도 걷고 있는 길 이전에 나는 자신의 능력을 늘 증명해 보이려 했던 교만으로 가득 찬 위선덩어리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모든 생각을 아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평생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의의 길을 갈 것이다.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다. 신앙의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좁은 길, 고난의 길이다. 특히 나같이 위선적이고 교만하며 고집스럽고 소심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2년여의 시간을 통해, 넘어짐과 달려감, 포기와 이끄심, 절망과 소망, 슬픔과 은혜, 근심과 평안을 경험하였고 내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에 반해 공의와 능력의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시며 자애로우신지를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기를 낮추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과 감사를 올려 드린다.
新生命月报 28期 번역 | 이순자 · 본지 번역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