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선교의 중심사업 감리교 북방선교회는 중국의 동북3성의 조선족선교와 조선족을 통한 북한선교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1988년에 설립되었다. 이 지역은 우리민족이 나라를 잃고 유랑하고 다니던 광야이며, 항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한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 지역에 조선족교회를 세움으로 중국 내 조선족을 복음화하고, 통일의 전초기지로써 북한선교의 토대를 구축할 목적으로 감리교 북방선교회를 조직하였다. 본 선교회의 중심사역을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서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지원하고 있다. 서간도 지역은 조선족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곳이며, 압록강변을 따라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선교의 전초기지로 가장 적합한 지역이다. 본 선교회는 압록강을 따라 800여 킬로미터의 변방지역을 중심으로 통일될 그날까지 지속적으로 조선족교회를 개척하여, 탈북자 선교와 북한선교를 담당할 전문 사역자를 양성 하고 있다. 우리가 압록강 변방의 조선족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종족임과 동시에, 북한 주민들과 지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져 통일 후 북한교회를 건설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둘째, 조선족교회를 통하여 탈북자들에게 식량 및 의료품, 생필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조선족교회가 탈북자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역이다. 일명 꽃제비라고 부르는 북한과 중국을 넘나드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구름떼처럼 몰려오고 있다. 처소교회 지도자들은 이들에게 밥을 주고 복음으로 무장시켜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복음의 투사로 양성하는 사람들로 양육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인민으로 지하에서 한 사람, 한 가정을 구원하여 복음자리(Mission Home)를 건설해 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중국 내에 있는 탈북자 중 복음을 접한 자들은 70% 이상이다. 1995년부터 300여만 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중국을 오고 간 통계로 추산한다면, 북한 주민들이 탈북자를 통하여 1/5 이상 복음을 접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탈북자들을 미래 북한선교의 사명자로 지명하시고, 이들을 키워 북한으로 파송하는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필자는 20여 년 동안 북방선교를 하면서 북한선교는 통일 후에 할 선교가 아니라는 것과, 지금 우리가 하는 사역이 북한선교를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조선족들과 탈북자 선교를 통하여 치열하게 북한 본토 선교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는 인식을 갖고, 북방선교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셋째, 중국조선족교회 지도자 양육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에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보다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현지 처소교회 지도자를 양육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매월 처소교회 지도자들이 중심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고, 성경을 공부하고, 공동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조선족 마을마다 조선족교회가 견고하게 서 가고 있으며, 조선족의 중심 센타로 영향력을 확보해 가고 있다.
넷째, 조선족교회 고급지도자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성장함으로 조선족교회 지도자의 질적인 향상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에 본 선교회에서는 감리교 웨슬리 전도단과 협력하여, 현지에서 목회하는 유능한 조선족 목회자를 선정하여 감리교 신학 대학에 목회학 석사 과정을 개설하고,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들 중 유력한 자들은 한국에 남아서 중국교포들과 탈북자들을 위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대도시 공단 지역에 퍼져있는 탈북자들과 중국교포(조선족)를 위한 교회를 개척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목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신원을 보장해 주는 일은 북방선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침체된 조선족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북한선교의 비전을 새롭게 구성하는 북방선교의 비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섯째, 복음통일을 위한 순례자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북방선교회를 설립한 목적은 중국에 있는 조선족교회를 통하여 복음통일 운동을 전개하는 것과 통일 후 북한교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 사역을 위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동북삼성 만주 지역을 방문하여 압록강변에 있는 조선족교회에서 기도회를 하면서 압록강 2,000리 길을 탐방하고, 동시에 북한에 근접한 지역- 강화, 김화, 철원, 파주 임진각, 고성 민통선, 연천철책 -에서 기도회를 갖는 것이다. 기도회 방법은 이렇다. 먼저 철책이 보이는 곳에 모여 간단한 설명회를 갖고 시작한다. 후에 각자가 준비한 복음통일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철책을 따라 공동기도문을 암송하며 걷는다. 철책 걷기를 마친 후에는 성만찬을 나누고, 북녘을 향하여 통성으로 기도한다.
북방선교의 선교중심지역 1. 통화시 - 지역상황 : 통화시는 통화현, 유하현, 휘남현 등 3개 현과 통화시, 집안시, 매하구시 등 3개의 성시구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요령성 환인현과 경계에 있고, 북쪽으로는 길림시와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백산시, 남쪽으로는 자강도의 자성군, 시중군, 위원군, 초산군, 만포시 등,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 교회사적 상황 : 통화에 대한 선교는 1900년에 선천에서 결성된 장로회 평북전도회가 재정을 지원하여 1909년, 한경회를 유하현과 통화현에 파송한 한국인들에 의한 최초의 선교였다. 1910년, 통화현은 상동교회 우당 이회영 권사가 전 재산을 정리하여 60여 명의 가족이 이주하여 세운 신흥무관학교가 있던 곳이다.
2. 집안시 - 지역상황 : 집안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는 장군총이 있는 곳으로, 고구려인의 활동 무대였다. 현재 집안의 행정구역은 길림성 집안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심지가 집안시이다. 집안의 인구는 약 30만 명이며, 이 가운데 조선족은 약 2만 명 정도이다. 집안 일대에는 고구려의 크고 작은 고분이 약 1만 3천기나 흩어져 있다. 남쪽으로 압록강을 두고 북한 자강도 만포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 교회사적 상황 : 집안은 교회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다. 서간도 한인촌 집안 출신의 매약상 김청송이 봉천(=심양)에서 시작된 예수성교의 출판사 식자공으로 채용되면서 로스 선교사가 누가복음을 처음으로 출판하는데 참여하게 되었다. 1881년, 누가복음 인쇄를 마친 김청송은 죤 로스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권서로 파송 받아 집안으로 돌아와 수많은 한글 복음서와 전도책자를 반포하였다.
3. 백산시 - 지역상황 : 훈강시의 새로운 이름이다. 백산시는 길림성 동남부 장백산 중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동쪽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서쪽은 통화시와 북은 길림시와 접하고 있으며, 남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양강도와 접하고 있다. 전체인구는 117만 명이다. 시 관할 하에는 정우, 무송, 강원, 장백현 등 4개의 현과 팔도강, 임강 등 2개의 성시구가 있다. - 교회사적 상황 : 백산시의 기독교 교회사는 조선족 이민사와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세기 말엽 조선 북부의 가뭄과 재해로 많은 조선인들이 압록강을 건너 훈강시 북부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백산시 지역에 조선족 고유 부락이 20여 개나 되는 것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상당한 규모의 조선족 공동체가 백산시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일제에 항거하는 의식 있는 지도자들이 이주하게 되는데 이주자들 가운데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포함되어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1900년도에 훈강과 임강에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 후 1911년 장백 현에 교회가 설립되어 민족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4. 임강시 - 지역상황 : 압록강 변방지역으로 북한과 가장 근접한 교역의 요충지이다. 도문시와 더불어 탈북자들이 쉽게 압록강을 건너오고 돌아가는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호랑이가 북방을 향하여 입을 벌리고 기지개를 펼 때 아랫 이빨과 윗 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이다. 임강은 북한과 수시로 교역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므로 북의 정보와 상황을 잘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방선교의 거점으로 중요하다. - 교회사적 상황 : 임강현은 1900년, 선천에서 결성된 평북전도회가 황운기를 집안현과 임강현에 파송한 것이 한국인에 의한 선교의 시작이었다. 현재 임강에는 백산 선명교회에서 지교회로 개척한 몇 개의 처소교회가 있다.
5. 장백현 - 지역 상황 : 장백현은 백두산을 경계로 연변자치주와 경계를 이룰 뿐 아니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혜산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함경도에서 집단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1990년, 통계에 의하면 조선족 인구가 14,508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장백현의 중심은 장백진으로 장백진의 인구의 절대다수는 조선족이며 13,419명이 살고 있다. 장백현은 장백 진을 비롯하여 25개 조선족 부락이 산재해 있다. - 교회사적 상황 : 일제의 강점기에 백두산을 중심으로 무장 투쟁하는 독립군이 활동하던 지역이다. 장백에 교회가 시작된 것은 1911년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부터였고, 1945년까지 장백은 조선족 자치현으로 간도지역의 구심점이었다.
나가는 말 감리교 북방선교회는 두 가지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만주 땅에 흩어진 부여, 고구려, 발해의 유민들과 볼모로 잡혀간 고려 유민들, 나라가 망하고 살길을 찾아 만주로 이주한 조선족들이 우리의 얼굴(櫱堀, cave of spirit)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역사공동체(歷史共同體)를 세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만주를 거점으로 세운 역사공동체를 중심으로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일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평양에 들어가 무너진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정진권 목사│삼양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