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직업이 평생 선교로 어떻게 해서 중국선교에 관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직업과 직책 때문이었죠.”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곤 한다. 이 대답을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979년, 중국이 개방정책을 택하고 교회의 문을 열기 시작할 때, 나는 극동방송의 전도국장이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오는 성도들의 편지를 받아 답장을 쓰고, 성경을 보내달라거나 이산가족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는 일을 했다. 또한 복음방송이 중국선교의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열심히 홍보하는 일도 나의 책임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점차 알려지고 확대됨에 따라 나는 중국선교에 더욱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중국 성도들의 너무나도 뜨겁고 순수한 신앙에 은혜를 받은 나는, 하나님 앞에 재헌신을 서원하고 여러 가지 과정을 밟아 결국 목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원래 방송사의 교양 프로듀서였다. 대학 다닐 때 친구의 권유로 학교 방송국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방송바닥’에서 30년 가까이 지냈다. 방송을 좋아했고 방송을 사랑했다. 현업 책임을 지고 있을 때는 잘 때도 머리맡에 라디오를 켜놓았다. 잠이 깊이 들었을 때는 모르지만, 새벽쯤 되면 한쪽으로 자면서도 방송사고가 나거나 못마땅한 내용이 송출되면 그것이 머리에 새겨진다. 일과가 시작되었을 때 그 점을 지적하면 실무자는 눈이 동그래지곤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방송을 통해 중국에 복음을 전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으니 방송을 떠난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1982년에 홍콩에서 중국선교 활동을 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서 귀국, 입원을 했다. 감기인 줄 알고 오래 방치했기 때문에 병은 깊었고, 복막염까지 병발(竝發)했다. S목사에게 만일의 경우 장례를 부탁할 정도로 형편이 심각해졌다. 그 때도 “하나님, 비록 일찍 떠날지 모르지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중국선교를 열심히 하고 떠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했다. 필자의 이런 부끄러운 체험이 중국선교에 뜻을 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교지 개념파괴 한국 교회의 중국선교 활동은 시정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 들뜬 흥분, 선교를 받는 쪽을 위한 선교가 아니라 선교를 하는 쪽을 위한 선교, 선교사의 훈련 부족, 중국의 종교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 선교윤리 부족, 공인교회와 가정교회에 대한 양극논리적인 인식 등등이다.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내가, 현지에 가서, 직접, 전통적인 방법으로 선교를 해야겠다”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중국선교뿐만 아니라 선교 일반에서도 19세기적인 낡은 사고로 통한다.
◇ “내가” - 지금은 내가 가는 것만이 선교가 아니다. 보내는 것도 훌륭한 선교이다. 선교의 구호가 “가라!”에서 “가라 아니면 보내라!”로 바뀐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기도하는 것도 훌륭한 선교이다. 재정후원을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현지에 가서” - 현지인들, 특히 현지의 엘리트들을 불러서 지도자로 훈련시켜 다시 현지로 보내는 방법이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아세아연합신학대학은 원래 이런 취지로 세워진 기관이다). 또한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선교하는 방법도 많이 활 용되고 있다. 이것을 ‘선교지 개념파괴’라고 하는데, 파괴해야 할 낡은 것을 파괴하지 못하고 고수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답답한 일이다.
◇ “직접, 전통적인 방법으로” - 이것을 고집하다 보면 회교권 선교 같은 것은 아예 불가능하며, 공산권인 중국선교도 불가능해진다. 간접선교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전문인선교 같은 것은 더욱 효과적인 선교로 부각될 것이 분명하다.
시대는 그에 걸맞는 선교를 요구한다 복음은 항상 그 시대에서 발달된 방법을 통해서 전파되어 왔다. 바울이 로마의 평화정책이 잘 닦아놓은 도로를 잘 활용한 것이나, 루터가 인쇄술을 활용한 것이나 근대선교사들이 항해술의 발달을 활용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필자가 방송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자주 내세운 논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는 방송이 가장 발달된 방법이었다.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방송사의 프로듀서였고, ‘PD고시’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래서 “방송을 복음전파에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대 어떻게 하면 방송사에 입사해서 방송선교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젊은이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그 길은 너무 제한되어 있다. 또 조직의 일원이 되면 갈등이 많이 생긴다. 방송사에 입사할 생각만 하지 말고 좋은 작가, 복음성가 작사자왕 작곡자, 성우, 연출가, 리포터, 전문지식을 가진 해설가, 방송선교학자 등이 되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좋은 방송선교 활동이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로 인터넷이 이 시대의 가장 발달된 방법이다. 십여 년 뒤가 되면 라디오나 TV 수상기를 통해 방송을 시청취하는 사람과 인터넷을 통해서 시청취하는 사람의 수가 같아질 것이라는 권위있는 분석도 있었다. 이제 인터넷이 중국선교에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N세대들은 마음만 먹으면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는 배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을 통한 중국선교에 뜻을 두고 길을 찾아나가다 보면 방법을 저절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6 .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통일과 북한선교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가고 있고, 이것은 중국선교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다. 지금까지도 중국선교는 북한선교의 대린만족 수단이거나 한 방편인 듯한 면모가 없지 않았다. 즉 북한선교를 하고 싶은데 제약이 많으니까, 우선 길이 넓게 열려 있는 중국선교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 현재 중국을 통로나 기지로 해서 북한선교를 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미션홈을 운영하면서 전도를 하고 그들을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일이 전개되고 있다.
80년대 초반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 때는 ‘소련선교’의 문도 열리지 않았고, 북한의 문은 더욱 높고 두텁게 버티고 있어서 북방 선교단체들이 모두 중국선교에 힘을 모았다. 러시아선교회도 중국선교를 했고 북한선교회도 중국선교를 했다. 이제는 중국선교에서 그같은 대리만족 요소나 다른 것을 위한 수단과 같은 면모는 빠져나가고 있다. 조선족선교가 진정한 중국선교가 아니라는 것도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선교는 중국선교이다. 자기의 재능과 종사하고 있는 분야를 통해 이 일에 헌신할 젊은 엘리트들을, 제자리를 찾고 있는 중국선교가 부르고 있다.
유관지 목사 | 목양교회 담임, 전 극동방송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