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교회를 생각하기 전에 개신교 중국선교의 시작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중국선교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나 중국선교에 오랫동안 헌신해 온 사역자 모두에게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1807년 9월 4일은 중국선교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날이다. 이 날 개신교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 羅伯, 馬禮遜)이 마카오에 첫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그는 3일 후인 9월 7일에 광저우(廣州)로 이동하여 선교 사역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모리슨 선교사의 처음 도착 날짜를 놓고 두 가지 견해가 생기게 되었다. 도착 지점을 마카오로 보느냐 아니면 광저우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따라서 중국 개신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고 선교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복음의 첫 발걸음에 대한 시기적인 정확성도 따랐으면 한다.
화교에 대한 개념 화교(華僑)라는 명칭은 본래 당인(唐人), 중국가인(中國賈人), 화민(華民), 화공(華工)이었으나 근대에 와서 화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화인(華人), 화족(華族), 화상(華裔) 등의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것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지만 거류국의 국적을 취득한 자들을 지칭한다. 중국은 13억 인구와 56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92%를 한족(漢族)이 차지하고 있다. 한족만을 화교로 볼 것인지 아니면 기타 소수민족도 화교로 볼 것인지, 화교의 개념을 광의(廣義)적으로 보느냐, 협의(狹義)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과 숫자적 통계가 달라진다. 광의적 개념은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중국인을 화교로 보는 관점이고, 협의적 개념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해외의 중국인들만을 그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일부 조선족들이 중국 여권을 소지하고 해외로 나가면 행정적으로 볼 때는 화교인데 실제로는 화교의식보다 종족의식이 더 강하게 작용함을 볼 수 있다. 화교 2 세나 3세가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이 되고 또한 미국인과 결혼하게 되면 다음 세대는 언어, 교육, 문화, 생활 습관까지도 모두 서구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들은 화교라기보다 화상미국인(華裔美國人)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는 화교라는 강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일반적이다. 화교의 구분은 종족과 행정, 지역과 문화, 혈연 등의 모든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 또한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의 숫자는 약 5천 8백만 명으로 그 중 80%가 동남아 각국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 화교의 역사적 배경 한국의 화교교회를 이해하기 전에 한국 화교의 이주사(移住史)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화교의 최초 이주사를 은(殷)나라 말과 주(周)나라 초 기씨조선(箕氏朝鮮)시대(B.C 1066년 경)로 주장하는 화교사학자들이 있다. 기씨조선의 최초 역사문헌인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후 여러 왕조에 걸쳐 정치, 군사, 무역, 문화 등 다방면을 통하여 중국과 한국은 주후 1882년까지 잦은 왕래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 화교 사회의 형성은 1882년 중․한 양국이 조청상민수육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의 체결을 시점으로 화교가 정식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견해가 주도적이다. 그 외에 1874년 무역상 탄제셩(譚傑生)이가 청계천 수표교 부근에서 동순태(同順泰) 무역상을 경영했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사료적 근거는 찾을 수가 없다.
청태종(淸太宗) 숭덕년간(崇德年間) 조선정부가 북도개시제(「北道開市制」)라는 문호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중조변경(中朝邊境)에 근접한 신의주 회녕(會寧), 경원(慶源) 등지에서 연 1-2회에 한해 물물교환 형식으로 왕래가 이루어졌는데 그 기일은 20일 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일시적인 체류라 할 수 있으나 이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시장은 청시「淸市」라고 불렸다. 개시 기간 내내 중조양국(中朝兩國)의 삼엄한 경비 하에 변경교역(邊境交易)에 국한되었던 상황에서 ‘조청상민수육무역장정’ 체결 이후 내륙 통상과 항만 무역의 형태로 전환된 것이다.
1876년 부산항의 개항을 시작으로 인천, 한성, 원산, 목포, 군산, 신의주 항구가 연이어 개항되면서 화교 인구가 점차 증가하였다. 1883년에 한성(首爾)에 82명, 인천에 54명, 부산에 20명, 원산에 10여 명의 상인(商人)과 26명의 공인(工人), 12명의 관원, 고용화교 5명 등으로 총 209명의 화교가 한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해가 더해질수록 화교 인구도 계속 증가하여 1922년에는 3만여 명, 1950년부터 1980년 사이에 북한 거류 화교의 통계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남한에는 약 3만 명이 거주하다가 80년대 미주 이민 바람으로 대다수의 재력 있는 화교는 대부분 이민을 갔고 지금은 22,200명 정도가 남아있다. 물론 이 숫자는 신이민(新移民)이 아닌 전통 화교를 말한다.
한국 화교교회의 간사(簡史) 전 세계 화교 기독교 신자 수는 약 1백 5십만 명으로 전체 화교의 약4% 정도이며, 교회 수는 약 8천여 곳으로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1개 교회마다 화교 8천 명에게 복음을 전해야 화교 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계산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화교교회(재단법인 방한중화기독교회(旅韓中華基督教會) 이사장: 방지일 목사) 수는 7개소이다(서울, 영등포, 인천, 수원, 군산, 대구, 부산). 그 밖에 부산중화침례교회와 부산한중교회 두 곳이 더 있다. 교회 창립 일시는 다음과 같다. 한성교회(1912년), 인천교회(1917년), 부산교회(1929년), 수원교회(1955년), 대구교회(1957년), 영등포교회(1958년), 군산교회(1963년).
중국교회의 첫 해외 선교 모리슨 선교사가 중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한 이래 내년이면 200주년을 맞이하게 되지만 선교사를 파송하고 해외 선교에 눈길을 돌린 것은 1929년에 이르러서야 쟈이푸민(翟輔民) 목사를(Rev. Robert Alexander Jaffray 1873~1945) 중심으로 시작 된다.
그는 1897년 미국 선도회(宣道會) 소속 다른 선교사 3명과 함께 중국선교사로 파송되어 광시(廣西)성 우저우(梧州)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광시성 선도회 총회가 남양포도단(南洋佈道團)을 창설하여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8월에 중화국외포도단(中華國外佈道團)으로 개칭하여(Chinese Foreign Missionary Union.(CFMU) 명실 공히 중국교회의 첫 번째 선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당 선교회는 광시성 우저우를 선교 기지로 삼고 「일어나 남으로 향하여!」(행8:26)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지에 있는 화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오늘의 큰 교세를 이루게 되었다. 쟈이푸민 선교사는 특히 선교 사업은 서양 선교사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중국인들에게 인식 시켰다.
한국 화교교회의 역할 개신교 중국선교가 200주년을 맞이했다면 한국에 있는 화교교회는 그 절반에 가까운 햇수를 복음의 은총 가운데서 보냈고 사역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것이며, 오늘도 시공을 초월하여 화교교회를 향해 은총의 손길을 펴고 계시다. 은혜의 손길에 사는 자는 반드시 사명의 손길을 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화교교회의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하고 고민도 해본다. 그 해답은 간단하다. 영혼 구원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성취요, 은혜에 참여이다. 화교교회는 중국 복음화에 선두주자로 나서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화교교회는 중국선교에 있어서 유리한 점이 많다. 첫째, 문화의 동질성이다. 적응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고 문화적 충돌을 면할 수 있다. 둘째, 언어의 편리성이다. 긴 시간을 언어에 투자할 필요 없이 바로 자국어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 기독교 용어와 중국인들의 화술 속에 담겨진 우회 언어에 대한 이해와 말의 지혜를 구하면 될 부분이다. 셋째, 민족의 통일성이다. 이념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자연적으로 일치를 이룰 것이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장점들을 살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를 파트너로 삼아 상부상조 한다면 화교교회는 한국교회와 함께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선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유소충 | 영등포중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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