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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0 통권 72호     필자 : 어진옥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여성선교사
주님과 함께 그분의 일을 감당하라
- 여성선교의 준비

수년 전 필자는, 복음과 조선의 영혼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수많은 선교사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을 돌아보며 감격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묘비에 적힌 글을 보며 충격을 받아 발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내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 독신 여성 선교사의 초라한 무덤 앞에 세워진 묘비에는 이런 글이 써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목숨이 천 개가 있다면 난 그 천 개의 목숨을 모두 한국 영혼을 위해 바치겠다.” 이 분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얼마나 영혼구원의 열정이 불타올랐으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질 정도로 큰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그 분이 부러웠다. 자신의 목숨을 한국 영혼들을 위해 초개와 같이 내어놓는 용기도 부러웠지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강력한 힘, 그 내적동기가 부러웠다. 하나님과 강력한 연합과 성령에 사로잡힘 없이는 그런 고백과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적충만과 확신으로 용기있게 나아가는 자라면 여자든 남자든, 선교 현장이든 어디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누구인가? 
독신이든 부인 선교사이든 여성 선교사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부르신 이의 뜻에 순종하려면 남자만 아니라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여자의 사명을 이해하고 여자의 정체감에 충실할 때 바른 순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사역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여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여자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미국의 여성 지도자 미쉘 코렐 박사의 강의를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여성관을 정리해보았다. 

여자는 하와와 다르다
창세기 2장 23절에서,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돕는 배필에게 ‘여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범죄하여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진 이후 아담은 아내에게 ‘하와’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여자를 ‘여자’라고 불렀으나 타락 이후에 ‘하와’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즉 여자는 죄로 말미암아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목적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여자라는 이름을 회복시켜 주셨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공생애를 여는 첫 기적을 이루신 예수님은, 이 사건에서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아직 때가 안되었다는 말을 하실 때 “여자여!”라고 부르셨다(요 2:4). 그후 다시 공생애를 마감하는 십자가상에서 다시 어머니인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신다(요 19:26). 여자의 후손인 예수의 공식적인 하나님 나라 세우기의 시작과, 여자의 후손을 통해 원수의 머리를 격파하실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과 약속이(창 3:15) 이루어지는 순간에 여자라는 이름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것은 여자를 타락 이전의 신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창조 시의 여자로 회복시키시는 선포였다. 여자의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는 것이었다. 하와의 죄로 잃은 것을 다시 찾아 주신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여자의 본래 목적을 회복시키신 것이다. 

여자는 돕는 배필로 지어졌다
여자를 만드실 때 하나님은 특별하고 유일한 방법으로 만드셨다. 이미 만들어진 아담의 갈비뼈가 여자를 만드는 주재료였다. 물론 뼈나 살이나 다 원래 재료는 흙이었고, 그 흙덩어리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 넣어지자 하나님의 영이 담긴 살아있는 생령이 된 것이다(창 2:7). 그러나 여기에서 남자가 지어진 후 호로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지으신 것은 주목해야 한다. 창세기 1장 26, 27절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고 나와있다.

그것은 인간이 지정의를 가진 인격체로 지어졌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상위인격이신 하나님의 속성인 관계를 위한 존재로 만드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세 분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듯이, 남자와 여자 이 둘의 연합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이 관계성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고, 이 관계성을 위해 여자가 창조되었다. 곧 남자가 뼈대라면 여자는 그 뼈를 중심으로 채워지는 살이요,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답게 하는 돕는 배필인 것이다. 여자는 섬기기 위한 존재이고, 하나님과 남자를 섬기도록 지음 받았음을 이해해야 한다.
 

여자는 하늘의 거룩한 것을 잘 이해하도록 지어졌다
여자는 아담의 돕는 배필로 지어졌을 뿐 아니라, 아담과는 다르게 하나님이 인간과 교제하시기 위해 특별히 마련하신 에덴동산에서 지어졌다(창 2:8~25). 즉 에덴동산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가운데 여자는 영적인 깊은 신비를 잘 이해하도록 창조되었다. 아담이 그랬듯이 남자들은 이름 짓는 일, 곧 다스리는 일을 하려 하지만 여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잘 이해하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다. 관계 맺는 일에 본능적인 관심과 능력이 있기 에 하나님과도 인격적인 관계 맺기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사람과도 인격적인 관계 맺기에 주력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일 자체를 성취하고 이루는 일에 주목한다면 여자는 그 일에 관계된 실제 내용들의 관계와 나눔에 주목한다. 

여자는 영적인 것을 산출하는 자로 지어졌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된다고 선포하셨다. 여자는 뱀의 머리를 강타할 후손을 배출하는 사명을 맡았는데, 이 사명은 영적인 것을 산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영적 산출까지는 대단히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자는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결국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 여자들은 계속적인 영적 산출을 통해 계보를 이어가야만 했다. 이것을 사단이 싫어하여 방해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라, 리브가, 라헬의 이야기 속에 이 점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세 여자들은 모두 아이를 낳는 데 장애를 안고 있었다. 바로 불임의 문제인 것이다(창 17:16, 24:60, 25:21, 30:1, 22~33). 

여자의 후손이 복의 근원이 되고, 여자는 열국의 어미가 되는 일이 사단에게는 영원한 멸망을 뜻하기 때문에 창세부터 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단은 어찌하든 예수님으로 이어질 여자의 후손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열국의 어미가 될 세 여자는 불임을 겪어야 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불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영적 산출은 주님께서 명하신 여자들의 사명이다. 여자는 영적인 것을 산출해야 하고, 이 일은 계속 방해를 받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여자는 속박을 깨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영적인 산출은 반드시 속박이 끊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갈 4:25, 5:17). 인간적인 방법이 떠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사라가 이방 여인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내어쫓았다(창 21:9, 10). 하갈과 이스마엘은 인간적읜 방법의 결과였기에 떠나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속박을 깨는 일이다. 여자는 인간적인 방법과 그 결과를 몰아냄으로 속박과 결박을 푸는 자들로 세우심을 받았다. 

여자는 중보의 사명을 받은 자들이다
여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로 부름받은 자들이다. 여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잘 이해하는 자라면 당연히 중보자가 되어야 한다. 중보사역이야말로 영적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남자의 돕는 배필이 되는 일도 이 기도를 통해 가능해진다. 또한 영적인 일을 산출하고 속박을 깨는 일도 기도로 이뤄진다. 중보자는 기도로 영적인 산출을 하는 자이며, 기도로 하나님의 짐을 지는 자이고,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자이며, 기도로 하나님의 일을 가장 빨리 잘 이해하여 가장 빨리 행하는 자, 기도로 하나님의 일을 보혈로 덮는 자, 기도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 그리고 완전한 헌신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여성선교사로서의 준비 
여성들이 선교지에서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려면 다음과 같은 준비와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명을 확인하라
남자든 여자든 선교사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영적 전투장의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된 군사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소명이 분명하고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함을 명백히 깨달아야 한다. 남편의 헌신에 동의하여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개인적인 부르심에 분명히 서고 결단해야 한다. 독신의 경우 결혼하기까지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선교지로 향하고 보자는 정도가 아닌 것이다. 장기 선교사일 경우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개인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섣불리 선교지로 나가지 말고 기다리라. 결혼을 위해서든, 아니면 혼자라도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내적확신을 위해 기도하고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영적 전투의 긴장에 익숙하라
여성 선교사들은 원수들의 공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역의 가장 최전방에서 영적전투를 수행할 각오와 영적 민감함이 있어야 한다. 무시로 기도 가운데 성령 안에서 깨어있는 훈련이 안된 채로 선교현장에 간다면, 태초 이후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해 온 악한 영들의 공격에 무력하게 당할 일만 있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독립적이 되라
독신이든 부인 선교사든 한 독립된 인격체로서 하나님 앞에서 건강하게 세워져야 한다. 타인을 의존함으로 존재할 힘과 의미를 얻는 자는 선교지에서 건강하게 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생각보다 많은 수의 여성 선교사들이 독립적이지 못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여성을 독립된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남성에게 속한 소유물로 보는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인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부르심에 대한 확신없이 부창부수의 미덕으로 남편을 따라가서, 정작 남편의 선교적 열정과 상관없이 소극적으로 선교지 생활을 힘겹게 감당하는 부인 선교사들이 적지않다. 독신의 경우, 결혼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는 문화에 스스로 종속되어 남에게 쉽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선교 현장에서도 이러한 독신 선교사를 못마땅해하며 정당한 동역자로 인정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 반대로 독신이 독립적으로 사역을 힘있게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여자가 너무 독립적이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런 사회 문화적인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여성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비전 앞에 꿋꿋이 서서 나아갈 힘과 내적 건강함이 필요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이해하고 충실하라
같은 여성이라도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가정을 가진 자로서 감당할 역할이 있고, 독신으로서 해야 할 몫과 특권이 다른 것이다. 서로 혼동하지 말고 각각의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기를 권면한다. 어떤 인도하심 가운데 노출되어 있든지 간에 그 상황과 여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주님을 섬겨야한다. 부인선교사라면 가정 안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가능한 방법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독신이라면 허락된 환경 가운데 자유로이 선교에 직접 뛰어들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신들은 독신으로서의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결국 결혼을 독신으로부터의 도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부인은 부인대로, 독신이라야 가능한 사역을 꿈꾸며 자신의 처지를 답답해하곤 한다. 독신 선교사라면 독신의 삶에 충실하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인 선교사라면 부인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기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협력자가 되라
여자는 섬기는 자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남편과 나져 즉 가정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다. 돕는 배필은 주도적인 위치보다 도와주는 자리이다. 여성은 돕는 배필 곧 협력자이다. 

현실적인 능력을 갖추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룰 수 없다면 여성의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다. 잠언 31장의 하나님으로부터 온 현숙한 여인은 참으로 현실적인 능력이 충만한 모습이다. 이런 실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가정과 교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다. 

초문화적인 자질을 준비하라
지금까지 내가 익숙했던 것과 다른 생소한 것에 대한 열린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문화권에서의 생활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욱 실제적인 부딪힘이 많다. 시장에서 물건을 산다든지 현지인 이웃과 관계를 맺는 등 생활의 실제 필요를 다루는 것은 여자들의 평범한 일상이 된다. 그러므로 더욱 초문화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이런 유연성을 갖지 못하면 문화충격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 현장의 문화적, 사회적 상황과 특징을 고려하여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모르고 한 나의 행동이 선교 현지의 문화권에서는 결정적인 실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라(관계성)
남자와 달리 인격적 관계 맺기의 전문가인 여성들이 선교지에서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나와 이것은 아닌, 나와 너의 인격이 오고가는 관계를 맺는 것에 본능적인 관심이 있는 여성들은 선교 현장의 영혼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관계를 떠난 사역은 그 어떤 것도 복음과 거리가 멀다. 인간과의 인격적인 나눔과 의사소통을 위해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예수님의 사역이 곧 우리의 선교사역이고 이것이 우리 여성들의 전문 사역인 것이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선교지 영혼들과 아름다운 인격을 나누는 관계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관계를 맺는 일에 능한 여성에게 유리하다. 

내면의 치유를 받고 유지하라
내적치유는 주님의 제자라면 필수적인 사항이다. 주님의 사역을 하려면 정서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사역자에겐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이해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사단이 나의 어떤 점을 공략하여 실패로 이끄는지 알아야 한다. 자신 안에 있는 쓴뿌리와 상처들에 대한 인식은 내면 안에 견고한 진으로 자리잡고 수시로 공격하는 사단의 전략에 대항할 수 있는 든든한 기초가 된다.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패턴화된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병적 행동과 생각들이 자동적으로 튀어 올라 자신을 넘어뜨리려 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드러내고 성령의 치유하심을 입어 자유케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악한 자를 능히 대적하고 내 마음 속의 영적 격전장에서 예수님의 승리를 경험한 자만이 악한 자에게 사로잡혀 있는 선교지의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을 덧입을 수 있다. 치유받아 정서적인 건강함을 유지하지 못하면, 남들은 다 알아도 스스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자가 될 뿐이다. 

선교 현장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하라
부인선교사들의 경우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들과 부딪힐 수 있다. 곧 남편과 자녀들과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 실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문화충격, 동역자와의 갈등, 독신과의 삼각관계, 사역에서 제외됨에서 오는 소외감 등이다. 그리고 독신 여성선교사의 경우는 남자 선교사들과의 서열상의 문제와 사역의 정체감에 대한 문제(선교현장 또는 본부에서 독신 여성 선교사를 동등된 동역자가 아니라, 선교사 가정을 돕는 보조자로 여겨 사역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등이 있다. 이외에도 부인선교사와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 정서적 어려움, 즉 외로움에서 오는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미리 예견하고 자신의 한계와 성향을 바로 알고 인정하여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위에서 필자는 여성선교사로서 준비학 훈련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조금은 강하게 언급하였다. 그러나 완벽한 준비는 연약한 본성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나,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 바로 선교이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응을 받고, 현재 있는 이곳에서부터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약속을 주신 후 예수님은 승천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마 하신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셨고 우리를 증인되게 하셨다. 하늘에 오르신 후에도 예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두루 전파할 때마다 함께 역사혔다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다(막 16:19, 20) 

어느 선교사의 말처럼,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천상행전’이다. 사복음서가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라면,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가신 후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일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도 주님과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 더 이상 여자라는 사실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남자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께 수종들 것이다. 오직 그분의 능력으로 준비되며 믿음으로 행하는 여성들이 바로 이 일을 감당할 것이다. 

어진옥 / GBT(성경번역선교회) 본부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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