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조나단 차오(趙天恩) 목사님이 우리와 그가 설립한 중국복음회(中國福音會)를 떠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나단 차오 목사님은 발제자에게 있어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위인들처럼 “그는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히 11:4). 이런 감정이 이토록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제 개인 구원 이전의 배경과 경험이 관련 있을 것입니다. 문화대혁명의 재앙을 겪고, 1980년대 교만한 마음으로 미국 유학을 갔다가 후에 6·4 톈안먼(天安門) 사건의 충격으로 과학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길에서 환멸을 느낀 제가 ‘6·4’ 이후 해외에서 첫 번째로 주님을 믿게 된 대륙 출신 미국 유학생 중 한 명이 된 것은 실로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원래 저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이 모두 인간이 이 세상의 번뇌나 고난을 피하고자 만들어낸 일종의 해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서양 문명에서 귀중하게 여기던 과학과 민주주의의 성과는 사실 기독교 신앙이 가져온 산물이었습니다. 근대 중국에 가장 큰 해를 끼친 공산주의와 오늘날 서양에서 성행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대적하며, 스스로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오만과 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유토피아적 성격의 죄악은 오직 기독교 복음의 빛 아래서만 드러나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교회에 맡긴 복음의 대사명은 영적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과 문화의 영역에서 사단의 권모술수를 주목하여 증상에 맞는 처방을 하고, 견고한 진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고후 10:5)” 해야 합니다. 당시 주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저는 영적으로 정말 연약했지만, 이런 깨달음은 매우 강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다”라는 주제로 제 신앙 간증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몇몇 선배 신자들과 흥분으로 끓는 마음으로 나누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매우 사랑으로 저를 대해 주셨지만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는데 이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미 주님을 믿었으니 주님에 의해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하며 주님과 가까이 지내야 하고, 더 이상 세상일에 관여해서는 안 되며, 특히 정치와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히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하지만, 왜 전체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확립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원래 해외 중국인교회의 근본주의자들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개인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귀중하지만, 전통적인 반지성주의 경향으로 교리와 신학 연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거룩함과 세속이원론으로 인해 교회가 세상에서 복음 사명 외에 문화 사명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치 제 머리 위로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은 것 같아서 사역을 시작하는 저에게 약간의 혼란과 외로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지 두 번째 해(1992년) 가을, 리젠트대학(Regent College)에 입학하라는 소명을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 J. I. 패커(James I. Packer) 교수 밑에서 조직신학 과정을 공부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이는 처음 주님을 믿을 때 가졌던 깨달음에 견고한 개혁주의 신앙의 기초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에서 성경의 전체 계시에 충실한 교리를 지키는 것은 교회 설립에 매우 중요합니다. 해외 중국인교회에서 성속이원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문화 사명을 부정하는 관점은 바로 개혁주의 신학이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해외 중국인교회의 두 선배 지도자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 두 분 중 한 분은 세계 해외 중국인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부흥 전도자이자 신학 사상가인 탕충룽(唐崇荣) 목사님이고, 다른 한 분은 현대 해외 중국인 신학 교육과 교회 역사 연구의 선구자인 조나단 차오 목사님입니다. 두 분의 공통점은 모두 전체적인 개혁주의 복음 신앙을 사역 지침으로 삼았고, 중국의 문화 역사와 공산 정권의 본질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교제하면서 저는 첫 만남에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느낌, 마음이 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저를 감동시켜 그들의 사역을 따르고 그들의 사역에 투신하게 하셨다고 믿으며, 그들을 제 신앙과 사역의 길에서 스승이자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이 두 분, 즉 하나님께서 현대 해외 중국인 교회에서 크게 사용하신 종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사용하여 문화대혁명 이후 모든 것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중국 가정교회의 재건 길을 인도하셨는지를 보았습니다. 과장 없이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 해외에서 일으키신 탕충룽 목사님의 개혁주의 신앙 입장을 바탕으로 한 복음 부흥 전도 사역과, 조나단 차오 목사님이 중국 복음 현장에 깊이 들어가 추진한 ‘삼화비전 (三化異象)’을 바탕으로 한 지도자 훈련 사역이 결합되어, 중국 가정교회, 특히 새롭게 떠오르는 도시 가정교회의 신앙 입장과 복음 사역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이를 새롭게 했습니다. 이 중 특별한 예는 현재 주님을 위해 감옥에서 고난받고 있는 왕이(王怡) 목사님이 설립하고 목회한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이른비언약교회(秋雨聖約長老教會)일 것입니다. 이 두 분의 영적 선배들이 그의 개인적인 인도와 중국 가정교회의 부흥과 개혁에 미친 영향을 크게 칭찬한 것이 바로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입니다.
지금 조나단 차오 목사님이 직접 설립한 중국복음회가 40여 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그의 현대 중국 가정교회에 대한 여러 공헌을 언급하자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특별히 조나단 차오 목사님의 두 가지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조나단 차오 목사님을 통해 지난 1970년대 말, 중국이 ‘개혁개방’에 막 진입한 역사적 기회를 잡아 홍콩에 ‘중국교회연구센터(中國教會研究中心)’를 설립하게 하셨습니다. 순수한 신앙으로 인도하고, 역사적 안목으로 총괄하여, 문화대혁명의 재앙을 겪은 뒤의 중국 가정교회의 재건과 훈련을 세계 개혁 복음주의의 역사적 계승과 연결하였습니다. 그중 특별히 언급할 만한 상징적 성과는 조나단 차오 목사님이 1998년에 발표를 주도한 ‘중국 가정교회 신앙고백 (中國家庭教會信仰告白)’입니다. 바로 이 역사적 문서로 인해 정통 신학이 현재 중국교회에서 주류가 되는 데 기초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조나단 차오 목사님을 인도하여 중국복음회 사역을 위해 삼화비전의 목적, 즉 ‘중국의 복음화(中國福音化), (중국)교회의 하나님나라화(教會國度化), (중국) 문화의 그리스도화(文化基督化)’는 제가 보기에 절대적으로 조나단 차오 목사님이 중국복음회와 중국 가정교회에 남긴 가장 귀중한 영적 유산입니다. 이는 중국 가정교회에 개혁 복음의 길에서 올바르게 전진할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조나단 차오 목사님은 순수한 신앙과 신학적·역사적·문화적 소양을 갖춘 학자일 뿐만 아니라, 경건하고 겸손하며 영혼을 사랑하는 목자입니다. 이전의 한 추모 글에서 언급했듯이 제가 북미에 있던 시기의 대륙 출신의 청장년 전도자들 대부분은 조나단 차오 목사님의 보살핌과 인도를 받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나단 차오 목사님이 중국의 복음 현장에서 단지 원대한 식견을 가지고, 용감하게 책임지는 전략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앞장서서 복음 전쟁의 최전선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의 리더십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종종 반듯하게 다림질한 정장 차림으로 해외에서 행사를 주최하거나 각종 사역 세미나에 참석하여 통찰력 있는 연구 보고서를 열정적으로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백 번 중국을 드나들며 도시와 농촌 가정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고, 교회가 박해 속에서 겪는 환난과 증인의 삶을 체험하고 이해하며, 중국 정부의 기독교 탄압의 악행을 주저 없이 알리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나단 차오 목사님은 여러 차례 밴쿠버에 오셔서 강연하셨는데 후배인 저를 논찬자로 허락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2001년에는 저를 캐나다 중국복음회의 이사가 되어 달라고 하셔서 감동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저와 함께 중국, 특히 허난(河南)성과 안후이(安徽)성 두 지역에 가 보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조나단 차오 목사님의 인도로 삼화비전의 깃발을 들고 중국 복음의 현장에서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2003년 11월 22일, 조나단 차오 목사님이 가발을 쓰고 밴쿠버의 이사회에 나타나셨을 때, 비로소 목사님이 림프종에 걸려 한동안 화학 치료를 받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저의 놀란 표정을 보시고 곧바로 특유의 유머로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님이 지고 계신 책임이 이렇게 큰데, 하나님께서 어찌 보호하고 치유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중국의 선교현장이 그를 너무나 필요로 하니, 우리는 목사님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2004년 1월 12일 조나단 차오 목사님은 캘리포니아에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조나단 차오 목사님의 큰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는 그 아픔과 갑작스럽게 은사를 잃어버린 후배들의 막막한 심정은, 당시 엘리사가 엘리야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보고 외쳤던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왕하 2:12)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님의 이 말씀은 조나단 차오 목사님께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합니다. 탕충룽 목사님은 조나단 차오 목사님을 추모하는 글에서 “그는 진실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올바른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의 삶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발전과 통치자들 사이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중국교회 연구에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해외 중국인교회에서 매우 존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조나단 차오 목사님은 정말 너무 일찍 우리를 떠나셨습니다. 그의 소천은 해외 중국인교회, 중국 대륙의 박해받는 가정교회, 특히 그가 창립한 중국복음회에 거대하고 메울 수 없는 손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조나단 차오 목사님을 바울과 같이 주를 위해 자신을 버리게 하셨고, 그는 일생 동안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마친 더욱이 아름다운 싸움을 싸우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차오 목사님을 위해 하늘에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땅에서도 목사님의 삶에 감동한 많은 씨앗을 일으키셔서, 차오 목사님의 손에서 삼화비전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계속 전진하게 하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차오 목사님은 생전에는 해외 대부분의 중국인교회들이 박해받는 가정교회 편에 섰으며,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 삼자애국회와는 관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차오 목사님이 떠난 이후 홍콩과 대만의 일부 기독교 기관과 신학교는 관방(공식) 삼자회와 산하 기관과 비공개 교류에서 개방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반대로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의 가정교회 박해가 심해짐에 따라 안전을 위해 일부 해외 중국인교회(단체)들은 중국 가정교회의 각종 섬김을 취소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고통받는 지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꺼리게 되었습니다.
차오 목사님이 제시한 삼화비전 사역에 관해서는 국내외 중국인교회에 더욱 민감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중국 정부의 눈에는 이 세 가지 ‘화(化)’ 하나하나가 중국교회에서 중국의 종교 정책을 시행하고 통일전선을 펼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국복음화’의 비전으로 온전하고 순수한 복음을 중국 전역에 전파하고, 중국이 복음 진리의 본질을 바꾸려는 ‘기독교의 중국화’에 맞섭니다. 우리는 중국교회의 하나님나라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의 형상으로 성장해야 하며, 사회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중국에 의해 변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표명합니다.
앞의 ‘두 가지 화(化)’가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려면, 우리의 중국문화의 그리스도화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공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중국문화의 그리스도화의 요지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는 것”입니다. 이 파해야 할 높아진 것들이란 바로 인본주의,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는 ‘과학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진보주의’ 등입니다. 둘째, 기독교인의 소금과 빛의 행동 모델로 사회 문화를 이끄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 되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무엇을 하든 주를 위해 하며, 그리스도가 ‘모든 일에 최우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삼화비전 사역이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를 왕으로 높이며, 중국의 무신론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전방위적인 영적 전쟁을 하는 것이므로 중국 정부의 눈엣가시가 되어 중점 타격 대상이 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엄중한 현실이 조나단 차오 목사님 이후 시대의 중국복음회 앞에 놓여 있어 도전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복음회가 삼화비전을 내걸고 중국 가정교회를 향해 복음훈련 사역을 전개할 수 있을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개인 자격으로 홍콩에서 중국 가정교회 동역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문화 사명에 관한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그때 고 조나단 차오 목사님의 삼화비전을 언급했는데, 차세대 젊은 사역자들이 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지만 이 분야의 정보를 더 많이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한 가지 비전을 주셨다고 믿는데, 중국복음회의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삼화비전의 기치를 내걸고, 중국 가정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훈련과 연구 사역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비전을 미국 중국복음회 회장인 자오샹언(趙享恩) 박사와 캐나다 중국복음회 회장인 천궈쉬안(陳國瑄) 박사에게 나누고, 중국복음회가 승인한다면 자원봉사자로 ‘삼화훈련센터 주임’ 직책을 맡아 이 사역을 주관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제안은 두 회장님의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 제안이 중국복음회 국제회의에서 만장일치의 찬성을 얻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국과 캐나다 두 지역의 중국복음회가 연합하여 이 사역을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오샹언 목사님과 제가 공동의장 자격으로, 차이나에이드(ChinaAid, 對華援助協會) 푸시추(傅希秋) 목사님을 포함하여 함께 이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침내 조나단 차오 목사님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해인 2014년 6월 20~23일, 북미 중국복음회 이름으로 주최한 제1회 삼화비전 캠프(주제: 온전한 기독교 신앙 속에서 살기)가 홍콩 침례신학원에서 공식 개막되어, 중국 전역의 교회 동역자 약 400명이 참가했습니다(이 캠프장의 최대 수용인원 400명). 이어서 2015년 3월 6~9일, 제2회 삼화비전 캠프가 홍콩 우시사(烏溪沙) 청년캠프장에서 열렸습니다(주제: 온전한 기독교 신앙 살아내기). 주최 측의 등록 웹사이트가 악의적인 해킹을 당해 중국 전역에서 온 교회 참가자가 약 400여 명이 초과되어 총 1,400명에 이르렀습니다. 일시적으로 숙박과 식사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참가자 중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에서 온 여행업에 종사하는 형제들이 홍콩의 모든 호텔과 버스 서비스에 긴급 연락해 캠프장의 숙소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탕충룽 목사님과 미국의 유명 신학자 웨인 그루뎀(Wayne Grudem)과 현재 주님을 위해 옥에 갇힌 쓰촨성 청두시 이른비언약교회 왕이 목사님의 메시지가 참석한 동역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으며, 회의 중 인원 초과에 따른 여러 불편은 언급할 가치도 없었습니다.
이번 캠프의 규모와 영향력이 중국 당국의 면밀한 주시와 추적을 받는 만큼, 우리는 다음 해 제3회 삼화비전 캠프의 규모를 축소하고 회의 등록을 비공개로 진행하여 참가자들이 저지당하지 않고 순조롭게 올 수 있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3회 삼화비전 캠프는 2016년 4월 5~8일 홍콩 침례신학원에서 열렸습니다(주제: 용감히 진리를 지키자). 중국 가정교회 동역자 약 400명이 참석했습니다. 탕 목사님과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 피터 릴백(Peter Lillback) 박사님 그리고 현재 감옥에 갇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고 있는 차오싼창(曹三强) 목사님도 모두 초대되어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강력하게 전했고 회중은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이후 우리는 많은 참가자가 중국으로 돌아간 뒤 공안과 국가안전부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즉 앞으로 이러한 삼화비전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절대로 출국해서는 안 되며, 위반하는 자는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전반적으로 가정교회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음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북미 중국복음회가 3년 연속 홍콩에서 개최한 삼화비전 캠프를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전력을 다해 저지하려는 자세를 보였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이대로 그만둘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안 됩니다. 더구나 2017년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여러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2017년 9월 12~15일 홍콩 침례신학원 캠프장에서 제4회 삼화비전 캠프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주제: 개혁 신앙과 삼화비전). 예상대로 이번 캠프는 당국의 전례 없는 저지를 받았습니다. 강사인 왕이 목사님이 처음으로 출국 금지를 당해 쓰촨성 청두공항이 봉쇄된 것은 물론 350명 안팎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15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그들은 공안과 국가안전부의 블랙리스트에 없었습니다). 몇 번의 삼화비전 캠프에 참석한 사람 중 일부는 경고를 받고 다시는 신청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일부는 경고를 무시하고 티켓을 구매했는데 강제로 취소당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집이나 출국장에서 직접 차단되었습니다. 사람은 매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음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왕이 목사님은 참석할 수 없었지만 그의 세 번의 설교 영상을 캠프에서 상영하였고, 심지어 영상으로 현장과 소통하며 질문에 답했습니다. 왕이 목사의 주님을 향한 충성심과 두려움 없는 용기는 캠프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캠프는 왕이 목사와 출국 금지된 많은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며, 서로에게 진실한 마음을 나누며 끝났습니다. 당시 중국의 강력한 차단 조치로 인해 2018년 제5회 삼화비전 캠프가 개최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 예감은 이후 현실이 되었습니다. 2018년 초, 중국 당국은 새로운 더욱 엄격한 종교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2018년 12월 9일, 쓰촨성 청두 공안은 왕이 목사와 그의 부인과 이른비언약교회의 동역자 100여 명을 체포했는데, 중국 가정교회는 더욱 심각한 박해를 겪게 되었습니다. 원래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약속에 따라 홍콩도 2020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홍콩에서 중국 가정교회를 교육하는 좋은 날도 끝난 듯 보입니다. 우리는 미래 중국복음회 삼화비전 사역이 어떻게 진행될지 기도하며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완전한 어두움이 다가오기 전에 마지막 기회를 잡아 홍콩에서 4년 연속으로 조나단 차오 목사님의 삼화비전의 깃발을 높이 들고 주님을 위해 선한 싸움을 했다는 것이 가장 위안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드릴 것은 네 번의 삼화비전 캠프에서 큰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오랜 시간 목회해온 목사로서, 세계 여러 곳에서 전도훈련과 사역 세미나 강사로 요청받지만 임무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말씀 준비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복음회가 홍콩에서 진행한 삼화비전 중국 사역에 직면하여 본 교회의 목회적 부담 속에서도 동시에 다른 곳에서 캠프를 준비하고 캠프 강사로서 이중 임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캠프 준비와 조직 과정에서 미국 중국복음회와 차이나에이드가 재정적·인적 자원에서 강력한 지원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회장 자오샹언 박사는 매번 수고를 아끼지 않고, 모든 행사에 참석하여 내지에서 온 교회 동역자들을 환영했습니다. 자오종위에나(趙鍾越娜) 사모는 두 번째, 세 번째 캠프에서 결혼과 가정 강좌를 진행하여 많은 참가자에게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캐나다 중국복음회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어, 후반 세 번의 캠프에서 본인이 목회하는 신유탕(信友堂)교회에서 중국선교에 부담을 가진 세 명의 자매가 자원봉사로 캠프의 등록과 접수 업무를 맡았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들 중 두 명은 현재 전임 사역의 길을 가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지금도 삼화비전 사역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제가 이 네 번의 캠프에서 삼화비전의 중국 내 주제에 대해 열세 번의 설교를 하여 조나단 차오 목사가 중국교회에 남긴 귀중한 영적 유산을 기리며, 삼화비전의 작은 불꽃을 차세대 중국 가정교회의 밭에 뿌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024년 8월 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1978-79년 홍콩에서 학생과 대화(맨 왼쪽) / (아래) 조나단 차오 목사(오른쪽 두 번째) & 탕충룽 목사(오른쪽 세 번째)와 신학 교육 사역의 좋은 친구 [사진 출처 | 《趙天恩傳(1958-1975)》, 趙享恩 저, 중국복음회 발행. ♣훙위졘 | 목사 ♣번역 | 송건한 선교사·중국복음회 총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