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회색빛 풍경 바둑판처럼 반듯한 도로 사이로 주택가와 상가, 아파트 지구와 공장지대로 나눠진 마을은 누군가 의도하고 계획된 대로 움직이는 게임 속 풍경 같다. 팔용동의 거리는 늦은 오후가 되면서 시작된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분주히 학원을 오가고, 아침 일찍부터 일터에서 일한 뒤 일과를 마친 사람들은 상가에서 저녁을 먹고, 장을 보고, 카페나 술집에서 지인들과 만남을 즐긴 뒤 늦은 저녁이 되면 가까운 주택과 아파트로 잠자리를 향해 스며들어 간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품은 회색빛 마음은 성공, 출세, 쾌락, 돈, 사랑 같은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하다. 거리의 회색빛 풍경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출현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따분한 거리에 어떻게든 생기를 더해보려고 더해진 서사는 주위를 둘러싼 산에 여덟 마리 용이 내려와 앉았다는 팔용산에서 본을 떠서 동네 이름을 팔용동이라 이름한 것 정도다. 하지만 그 역시도 여덟 마리 용의 대단한 전설이나, 전설이 뒤섞인 마을의 유구한 역사나 문화나 사람살이에 대한 마음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처음 이 지역을 개발할 때부터 지역의 역사와 문화 따위는 안중에 없이 그저 개발과 산업의 발전만을 목표로 만들어진 마을이었으니까.
회색빛 도시의 회색빛 교회 회색빛 탐욕으로 물들어 있는 듯한 이 마을에 성도교회가 들어선 것은 8년 전 5월 첫 번째 주일이었다. 위로를 받으러 교회에 갔다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상처만 입은 채 쫓겨난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려고, 상가의 작은 공간을 선뜻 내어주신 한 집사님의 배려 속에 올망졸망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예배라도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서로 의지하며 기댈 수 있는 성도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 다시는 상처를 주는 부끄러운 교회가 되지 말자고 마음으로 다짐하며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이때만 해도 팔용동에 대한 비전은 딱히 없었다. 그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여 교인을 삼아서 하루빨리 부흥하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회색빛 팔용동과 그리 다를 바 없는 교회였다. 무엇이 팔용동이고, 무엇이 성도교회인지 딱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4년 전 코로나19가 왔다. 모든 것이 멈췄다. 예배도, 심방도, 찬양도, 성도의 교제도 그리고 팔용동 마을의 사람들도, 공장도, 일터도 모두 얼굴을 가리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맞서느라 두려움과 불안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낯선 일상을 보냈다. 그 와중에 대구의 신천지와 애국보수주의를 자처하며 좌파 정부의 음모 가득한 예방주사 따위는 맞지 않겠다고 고집하던 일부 교회들이 슈퍼전파자가 되어 바이러스의 확산을 부추기면서 안 그래도 원망할 대상을 찾던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이 교회를 향했고 교회는 매몰차게 질타당했다. 목회자는 언제나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목회를 할 것인지 늘 고민하지만, 특히 코로나19는 목회자로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도전, 하나님의 발길에 채어 예배 없는 교회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매일 새벽기도 설교 영상을 핸드폰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 성도들은 영상으로 새벽기도에 참여했다. 주일 예배도 혼자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하는 예배 영상을 찍어 올리면 성도들은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렸다. 서로를 표현하는 것에 어색한 성도들은 더더욱 낯선 온라인 예배에 ‘아멘’이라는 댓글 한번 표현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그나마 코로나19 직전 성도들과 함께 ‘가정하브루타예배’를 정기적으로 진행해 오던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가정의 달 5월에 집중해서 진행했던 ‘가정 하브루타’는 유대인의 안식일 식탁교제를 차용한 것으로, 온 가족이 함께 밥상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고의 밥상을 차려 먹으며 교제를 나눈 뒤, 주어진 성경 본문으로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 가고, 자녀들과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신앙의 대를 이어가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가정예배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그나마 경험이 전무하던 가정예배가 아니어서 가정 온라인 예배에 잘 적응해 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코로나19가 만든 낯선 길을 더듬어 걷던 중 선교적 교회라는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세미나는 코로나19라는 현실에 대해 마냥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필자의 목회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목회가 변화를 꾀하기에는 너무 비대해진 몸집과 세속화한 현실로 인해 굼뜨고 무거워져 버렸기에 하나님이 그 엉덩이를 발길질로 걷어차셔서 코로나19라는 낯선 세계로 몰아넣어서 새로운 목회의 전환을 더욱 빠르게, 급격하게 이룰 수 있도록 하신 새로운 목회의 기회였음을 깨닫게 해 주셨다.
회색빛 교회에 녹색의 생명을 심다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뉴노멀의 시대를 코로나19는 더욱 가속하였고, 이에 한국교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목회를 모색하던 중 발견한 것이 녹색교회였다. 하나님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어둠 속에서도 일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동역의 길은 탄식하는 피조물의 신음 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했다. 부산장신대와 총회 그리고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주최했던 부산·울산·경남지역 목회자들을 위한 교회환경지도사 과정은 기후위기가 가져올 파국적 미래를 경고하는 파수꾼의 소리였다. 강사로 나섰던 한 분 한 분의 전문가들은 마치 파수꾼처럼 산과 강과 흙과 대기 그리고 그 속의 수많은 피조물의 신음하는 소리를, 확성기를 귀에 대고 들려주듯 크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를 신학적으로 바라보게 해 준 신학자들의 강의는 지금이야말로 회색빛 목회를 녹색의 목회로 급격히 전환할 때임을 깨닫게 해 주었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았다.
하나님의 선교적 부르심에 응답하는 첫 번째 여정은 ‘녹색성경읽기’였다. 코로나19의 끝자락에서 겨우겨우 주일예배가 기지개를 켜고, 움틈이 시작할 즈음 마침 새벽기도에 에베소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증거할 때였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는 이 말씀을 읽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가 사람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그러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의 비전을 깨달았을 때 지금까지 성경을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읽고 있었음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비전이 내 가슴을 벅차게 하였다. 또한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물 간의 화평의 일꾼으로 부르시기 위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시고 때가 되어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인치신 말씀을 읽을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는 교회의 사명이 교회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것(엡 1:23)임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여기에 교회의 사명이 있음을 확신했다. 새해를 맞아 필자가 묵상 중에 깨달은 하나님의 선교 비전을 나누고 싶어서 성도들에게 ‘에베소서 50독’을 제안했다. 4개월 동안 에베소서를 반복해서 50독을 하고, 주일마다 에베소서의 말씀을 설교하면서 인본주의적 성경읽기를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생태적 성경읽기로 시야를 넓히고, 교회의 사명이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데 있음을 스스로 깨닫도록 녹색의 비전을 심어 주었다.
녹색성경읽기와 함께 회색빛 교회에 녹색의 생명을 심는 또 다른 활동은 절기와 예배를 활용하여 녹색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었다. 사순절 기간에 탄소금식을 제안하고, 일주일씩 탄소금식 실천활동을 알려드린 뒤 실천에 참여하신 분들은 게시판의 현황판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했다. 처음에는 참여가 저조하였으나,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어린이들과 어린이들을 두고 있는 성도의 가정이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한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실천에 참여하면서 참여율이 높아졌다. 사순절 기간 내내 게시판의 현황판에 스티커의 숫자가 쌓여갈 때마다 성도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조금씩 눈을 떠가고, 탐욕 가득한 회색의 세상에 경건과 절제로 녹색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부활의 날에는 계란을 나누는 여느 부활절과는 달리 반려 식물인 꽃기린을 성도들에게 부활의 선물로 나눠 주었다.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라는 꽃말을 지닌 꽃기린은 가시면류관과 보혈을 상징할 만한 형상을 지니고 있어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승리의 의미를 소개하면서 부활의 의미를 더욱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었다. 꽃기린을 전도 대상자들에게 나눠 주면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등 녹색 생명이 부활의 소망과 함께 하니 더욱 뜻깊은 부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그전까지 몰랐던 ‘창조절’이라는 절기를 알려드리면서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한 기도문으로 매일 기도하며 생태적 감수성을 닮은 영성으로 다듬어 갔다. 때마침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그린엑소더스 릴레이기도회를 제안해 와서 우리 교회도 참여하였다. 이 기도회를 먼저 시행했던 용인 고기교회의 사례를 따라서 예배 중에 집사님 한 분에게 기후위기를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게 하였는데, 그날의 예배 설교는 잘 기억하지 못해도 집사님의 프레젠테이션은 모두가 기억하며 칭찬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매 주일예배의 마지막에 그린엑소더스 결의문을 온 성도들과 함께 낭독하며 결단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회색빛 마을에 녹색의 생명을 심다 교회를 넘어 지역 사회와 연계하는 활동을 전개한 것은 교회가 속한 상가 옥상에 텃밭을 가꾸는 것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버려진 옥상의 조경시설을 텃밭으로 가꾸기 위해 어린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코로나19가 끝날 무렵 지역 사회와 소통을 위해 교회에서 기후위기대응도서관인 정다운생태도서관을 시작했는데, 도서관의 이름으로 교육지원청의 재정지원을 받아서 마을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옥상 텃밭을 가꾸게 된 것이다. 교회와 지역 사회가 연합하는 사역의 첫 시작이었다. 지원받은 예산으로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 가족 팻말을 제작하고, 식물을 구입하여 텃밭에 심는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다 보니 아이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모든 과정에 부모가 되는 집사님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가족 프로그램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주일에 교회에 올 때마다 자기 가족 팻말이 있는 텃밭에 물을 주고, 부모님들은 채소를 가꾸면서 상추, 토마토, 고추, 가지 같은 농작물들이 주일 교회의 점심 식탁에 올라왔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옥상 텃밭 가꾸기에 부모님들이 더 적극 참여하면서 겨울에는 무로 깍두기 김치도 담그고, 배추를 수확해서 교회 김장에 활용하기도 했다. 마을과 본격적인 소통은 필자가 ‘탄소중립마을만들기’ 추진위원에 자원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 2년간 탄소중립위원으로 활동할 때만 해도 활동은 저조했고, 방향성을 잡지 못해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3년째 되는 올해 초 위원들이 필자를 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위원들과 함께 여러 차례 회의 끝에 탄소중립을 위한 방향을 자원순환에 두고, 마침 창원시에서 ‘탄소중립마을만들기 사업 공모’가 게시되면서 몇 날 며칠을 열심히 준비해서 드디어 ‘자원순환정거장에 탄소걸렸네’라는 사업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현재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 통장회의,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과 만나 협조를 구하면서 조용하던 팔용동을 뒤흔들고 있다. 재활용 쓰레기를 잘 관리해서 자원으로 만드는 비율을 높이려는 목표에 대한 사업 설명을 하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현재 자원관리사들을 교육하며 지도자양성 과정을 진행 중에 있다. 아울러 지역 주민 대상의 교육도 예정되어 있고, 관내 유치원에 자원순환 교육도 예정되어 있어서 유아에서 어른까지, 또한 지역의 유지에서 모든 주민에게 이르기까지 녹색의 생명을 불어넣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재활용 쓰레기 문제는 간혹 우리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국에서만큼 애정을 가지고 재활용 분리배출에 협조하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 교회가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팔용동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 성탄절 선물을 드리며 교류하고 있던 터라 대표님을 만나서 사업 설명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자원순환에 대해 교육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대표님께서 매우 적극적으로 이 사업을 지원해 주셔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 사업을 안내하는 광고지를 중국어와 베트남어로 제작하고 번역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가족들의 모임에 초대해 주셔서 약 100여 명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자원순환에 대해 강의할 수 있었다. 앞으로 중국과 베트남 노동자들의 국가별 모임에 초대해 주기로 약속해 주셨다.
녹색빛이 온 마을을 뒤덮을 때까지 성도들은 녹색 사역에 점차 주체로 서서 스스로 녹색 사역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단계로 해마다 성장해 가고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팔용동탄소중립마을만들기’ 위원회 대부분이 불신자이지만 필자는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교회 밖 목회 현장이라고 여기며 팔용동 전체 주민들이 기후위기를 깨닫고 녹색 활동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 회복에 동참하는 하나님 나라 일꾼들로 만들기 위해 기도하며 헌신하고 있다.
필자는 팔용동에 이미 하나님께서 녹색선교를 진행하고 계셨다고 믿는다. 필자와 우리 성도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부르심을 받아 팔용동을 생태 공동체로 세워 가는 일에 작은 부분에서 주님께 쓰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앞으로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자 한다. ♣
♣사진 출처 | 창원성도교회 홈페이지 캡처 ♣박희광 | 창원성도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