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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 통권 255호     필자 : 김종건 프린트   이메일 
[중국기독교회사]
런던선교회와 중국 선교

런던선교회
런던선교회(The London Missionary Society)는 존 웨슬리(Fr. John Wesley, 1703-1791)가 일으킨 신앙부흥운동의 전개에 크게 힘입어 해외 선교의 열기가 고양된 결과 영국국교회(Anglican Church), 장로회(Presbyterian Church), 조합교회(Congregational Church),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침례회(Baptist Church) 등의 연합으로 1795년에 출범되었다. 초기에는 명칭을 ‘선교회’라고 하였으나, 1818년부터 ‘런던선교회’로 바꾸었다.

런던선교회는 교파의 벽을 넘어 세계 선교를 위해 힘을 기울였고, 비단 신앙적 열정뿐만 아니라 학술, 의료 분야의 능력을 충분히 갖춘 인물을 엄선하여 선교 대상 지역으로 파송하였다. 1797년에는 남태평양, 1798년 인도, 1799년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1807년에는 마침내 중국 선교를 위해 로버트 모리슨을 파송하였다. 1813에는 윌리엄 밀느를 파송하여 중국 선교를 위한 역량을 강화하였고, 이후 선교사 추가 파송을 통해 개신교회 중국 선교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모리슨과 밀느의 뒤를 이어 런던선교회로부터 파송되어 중국 선교를 위해 헌신한 대표적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월터 메드허스트
월터 메드허스트(Walter H. Medhurst, 麥都思, 1796-1857)는 런던 출신으로 일찍이 인쇄 기술을 익혔으며, 1817년 2월 인도를 거쳐 6월 말라카에 도착하여 밀느의 선교 사역을 돕기 시작했다. 1819년 4월 목사안수를 받았고, 1820년 바타비아(Batavia, 자카르타 북부)로 사역지를 옮겨서 인쇄소도 열고 성경 번역, 출판물 간행, 고아원 운영 등 사역을 전개하였다. 메드허스트는 1823년 7월 《특선촬요매월통기전(特選撮要每月統紀傳, Monthly magazine)》을 간행하였고, 1828년에는 《천하신문(天下新聞, Universal Gazette)》을 간행하여 동방 선교를 위한 각종 자료와 소식들을 담아 전하였다.

1834년 로버트 모리슨이 세상을 떠나자 런던선교회의 중국 선교를 위해 메드허스트는 1835년 7월 중국으로 와서 이듬해까지 광주를 비롯한 연안 도시들을 찾아 문서 선교를 진행하였다. 1836년 4월 바타비아로 복귀한 그는 1843년 8월 홍콩에서 개최된 성경번역회의에 참석한 다음 상해에 거주하면서 성경을 번역하고 각종 소책자들을 제작 출판하였으며, 중국 유가 경전 《서경(書經)》을 영문으로 번역하였다. 1857년 1월 중국을 떠나 귀국하였다가 바로 세상을 떠났다.   

△ 윌터 메드허스트(출처/바이두)

윌리엄 로크하르트
윌리엄 로크하르트(록하트, William Lockhart, 諾魏林, 1811-1896)는 1838년 7월 런던선교회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파송받아 바타비아를 거쳐 1839년 1월 중국 광주에 도착하였다. 로크하르트는 파커(Peter Parker) 선교사가 경영하던 마카오 병원에서 일을 도우며 중화의약전교회 사역을 담당하다가, 바타비아로 가서 메드허스트에게서 중국어를 좀 더 배운 다음, 1840년 5월 다시 마카오 사역에 복귀하였다. 로크하르트는 벤자민 홉슨(Benjamin Hobson)과 윌리엄 디버(William B. Diver) 등 후속 의료 인력이 마카오에 합류를 하자 1840년 9월 영국이 아편전쟁 중 점령한 주산(舟山)으로 가서 병원을 개설하였고, 1841년 2월 영국이 주산에서 철수하자 3월에 마카오로 복귀하였다. 1843년 홍콩에 병원을 개설하였고, 1844년 상해, 1861년 북경에서 병원을 열었으며, 1864년 귀국한 이후에는 중국 대학에서 중국학 분야를 개설하여 교육에 힘썼다. 


△윌림엄 로크하르트(출처/바이두 캡처)

제임스 레그
제임스 레그(레게, James Legge, 理雅各, 1815-1897)는 윌리엄 찰스 밀느, 벤자민 홉슨과 함께 1839년 1월 말라카에 도착하여 모리슨 선교사가 유지로 남긴 성경 번역과 교육 사역을 이어받았다. 레그는 남경에 있던 모리슨 선교사의 차남 존 로버트 모리슨(John Robert Morrison, 馬儒翰, 1814-1843)에게 중국 선교기지를 중국의 북경이나 남경으로 이전할 것을 건의하였고, 중국 선교 기지를 홍콩으로 옮기는 쪽으로 결정되자 1843년 7월 홍콩으로 이주하였다. 

레그는 1843년 8월 홍콩 주재 선교사회 대표로 피선되었고, 이후 홍콩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우영당(佑寧堂, Union Church)을 설립하여 선교 인력 양성에 주력하였다. 레그는 중국 서적의 영문 번역 작업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황승(黃勝), 나상(羅祥), 왕도(王韜) 등 중국인 학자들의 보조를 받아서 1850년대 말 《논어(論語)》를 비롯한 유가 경전 4서(書) 영역을 완료하였고, 1861년 5경(經)과 주석서의 영문 번역작업도 완료하여 간행하였다. 유가 경전의 번역 소개는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 선교를 위해 중국 문화에 대한 소양을 넓히는데 대단히 큰 영향력을 미쳤다. 레그는 만년에 중풍으로 공생하다가 1897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제임스 레그(출처/바이두)

윌리엄 찰스 밀느
윌리엄 찰스 밀느(밀른, William Charles Milne, 美魏茶, 1815-1863)는 윌리엄 밀느 선교사의 아들로, 1822년 밀느 선교사가 세상을 떠난 뒤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1839년 7월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12월에 레그 부부와 홉슨 부부와 함께 마카오로 와서 브리지만의 병원과 모리슨학교에서 사역하였다. 윌리엄 찰스 밀느는 1844년 7월 영국으로 귀국하여 결혼한 다음 1846년 8월 클리랜드(J. F. Cleland) 선교사 부부와 함께 홍콩으로 복귀하여 1856년 건강 악화로 사임하기까지 중국 선교에 헌신하였다. 사역 사임 이후 그는 복주영사관, 북경영사관 등의 통역관을 지냈고, 중풍으로 고생하다가 1863년 5월 세상을 떠나 북경 러시안 공원묘지에 묻혔다.
 
벤자민 홉슨
벤자민 홉슨(Benjamin Hobson, 合信, 1816-1873)은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의 사위로,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1839년 12월에 윌리엄 찰스 밀느, 레그 부부와 함께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홉슨은 마카오, 홍콩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였고, 중국인 신앙인 양발과 하진선과 함께 중국 최초의 자립 교회인 도제당(道濟堂)이 세워지는 과정에 기여하였다. 1848년에는 광주에 병원을 열어 진료하다가 1859년 건강이 악화되어 영국으로 돌아갔다.


△벤자민 홉슨(출처/바이두 바이커 캡처)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런던선교회(출처/Wikipedia)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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