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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3 통권 250호     필자 : 변성래 프린트   이메일 
[책 속의 중국]
《빛의 도시》
_야콥 단코나 | 까치

야콥 단코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르크 폴로보다 1년 앞서 동방 여행길에 오른 이탈리아의 유대인 상인입니다. 기록을 보면 유대교 랍비였을 가능성도 크다고 합니다. 1270년 야콥은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인 안코나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시리아, 페르시아만, 인도양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긴 여정을 보냅니다. 마르코 폴로보다 3년이나 먼저 중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책 제목으로 쓰인 ‘빛의 도시’는 13세기 중국의 국제무역 도시 짜이툰(Zaitun), 즉 츠퉁(刺桐)의 별칭입니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중 하나인 무역항 츠퉁의 이모저모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츠퉁은 그 당시 동서무역의 2대 교통로의 하나인 해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원저를 영문 편역한 데이비드 셀번(영국인)은 우연한 기회에 원저 문서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 자신의 집을 찾아온 한 방문객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그 방문객은 데이비드 셀번이 유대인의 풍속과 유물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문서의 존재를 알리게 됩니다. 방문객은 이 문서를 이탈리아인에게는 ‘믿고’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셀번은 마침내 1990년 12월에 그 문서를 만나게 됩니다. “그 문서를 싼 한 폭의 17세기 비단은 우리 마을의 두루마리 율법서 표지에 그려진 삽화와 비슷한 푸른빛과 분홍빛 꽃의 묵주 문양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 두루마리는 유대인이 열 명 이하로 줄어서 현재는 폐쇄된 채 사용되지 않고 있는 마을의 유대교 회당의 보관함에 들어 있었다.”

중세 때 근동과 극동 지방을 여행한 유럽인, 특히 이탈리아인 여행자들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세상에 공개되거나 공개되지 않은 여행기 원고들이 바티칸궁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여러 도서관에 상당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기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허풍이 많다는 것이지요. 하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도 의심의 눈길을 받기도 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과연 중국에 간 적이 있느냐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었지요.

이 책을 두 가지 관점으로 읽습니다. 하나는 유대교와 그 당시 기독교(가톨릭)의 극심한 대립 그리고 야콥 단코나는 중국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배척은 현대사에도 기록되지만, 그 당시(13세기)도 상당했습니다. 13세기 초에 시작된 종교재판은 유럽 유대인들에게 다양하면서도 가혹한 장기간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미칩니다. 종교재판을 주관한 사람들은 유대인에게 끝끝내 예수의 신성을 믿지 않는 죄행을 저지른 “충절 없는” 이교도의 낙인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이교로 꼬드기는 악마의 친구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을 “악마의 자식”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대부분 유대인이 상업에 종사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바탕 위에서 형성되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우선 유대인들은 공직 진출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금융, 상업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장사 수완이 뛰어난 것은 여러 나라의 말을 구사하고 문해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경전을 읽지 못하는 유대인은 사실상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한왕조(漢王朝, 기원전 200-기원후 226) 때에도 중국에 거주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야콥 단코나와 중국 학자들 그리고 권력자들
짜이툰에 도착한 야콥은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중국 학자들의 의논과 토론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전략상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야콥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학자들은 일종의 학술원에서 정기적으로 만났으며 법률을 제정하는 역할 수행을 한 듯하다고 합니다. 학술원에는 학자들 사이에서 벼락출세를 꿈꾸는 상인 지도자들도 많이 참석했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 학자들은 여러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야콥은 이들 대부분을 “궤변론자”라고 부릅니다.

야콥의 기록을 볼 때 이 당시 짜이툰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지만,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도시의 통치 문제와 상업 활동의 범위 제한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인들은 도시의 통치권에 참여하고 장악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황제의 관리들과 귀족들이 장악했던 낡은 질서는 붕괴 중이었습니다. 상인들의 이익에 중점을 둔 신질서가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점에 몽골 침략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야콥은 이러한 정기적인 학술원 모임에서 다른 화제를 제쳐놓고 기독교 신앙의 비행(과 위선)에 관해 열변을 토합니다. 학술원 모임 외에 시민회 형태의 집회가 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대중 집회가 계속 열리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러한 대중 집회를 통해서 도시 내부의 상반된 주장들이 발표되고 모든 시민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중도적 방안이 모색되었습니다. 

기록을 통해 남송의 지식계와 정치계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됩니다. 야콥과 수많은 대화 상대자의 윤리적, 철학적, 정치적 이상의 윤곽을 그려봅니다. 야콥의 원고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은 1271-72년 겨울에 짜이툰에서 벌어진 정치 토론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도시의 원로들과 선비들은 타타르족에게 도시를 방어하는 문제와 정부 운영과 치안 유지 등 일반적인 여러 가지 현안을 놓고 의견대립을 보입니다. 야콥이 유지라고 부른 어느 부유한 상인과 ‘개인적인’ 의견을 교환한 내용이 소개됩니다. 그들은 부자와 빈자, 교역과 이윤, 오늘날 ‘복지’와 ‘자유 시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제도의 장단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두 상인은 부자의 사회적 의무와 빈자가 기대할 수 있는 구호의 수준, 상업 자유의 이익과 위험에 대해 날카로운 토론을 벌입니다. 야콥의 일부 답변이 쑨잉서우라는 상인의 분노를 촉발해 갑자기 대화가 중단되고 맙니다. 토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남송의 부유한 상인들의 ‘낭비’와 사치(야곱의 시각으로)와 탐욕을 특징으로 하는 생활양식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상인으로서 야콥은 중국 상인들을 존경하지만 도덕가로서 야콥은 그들을 비난합니다. 이런 면에서 야콥의 상반되는 복합적 성격을 짐작하게 됩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책의 텍스트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 때문에 오랜 세월 은폐되어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그 소장자가 원고 원본의 공개를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 《빛의 도시》는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자마자 10여 개 언어로 소개되었습니다. 동시에 전 세계의 독자와 학계에 엄청난 호기심과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남긴 것으로 되어 있는 저술처럼 이 원고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컸습니다. 그 원인 중 남송 말기의 도시와 관련한 역사적 서술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 때문입니다. 이에 취안저우(泉州)당국과 지방 사학계를 중심으로 고증작업이 진행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학술토론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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