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사에서 ‘치욕의 100년’이란 기간이 있습니다. 1842년 제1차 아편전쟁부터 1949년 중국공산당 집권까지의 기간을 외세에 시달린 치욕의 100년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치욕’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시기와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무대가 되는 ‘상하이(上海)’는 독특한 도시입니다. 아편전쟁으로 강제 개항된 곳이기도 하지만 상하이는 이 시기(100년) 동안 세계적 수준의 교통망과 가스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해안을 따라 시카고나 뉴욕 못지않은 스카이라인을 갖추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놀랍게도 중동의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상하이에 정착한 유대인 가문들이 있었습니다. 상하이를 상하이답게 만든 두 유대인 가문이 이 책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의 활동에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1800년까지도 중국은 그 지배와 영향력이 아시아 전역에 뻗어 있는 세계적 강국이었습니다. 많은 선박이 동남아시아에서 교역을 수행했고, 중국을 찾은 무역상과 외교 사절단은 중국의 통치자들에게 공손히 접근함으로써 공경을 표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고두(叩頭)’의례입니다. 즉 황제 앞에 나아갈 때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하는 의례입니다. 비중국인들과 외교는 외국인은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관리들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자기들도 거만한 영국인들(영국 외교관과 군 관계자들)은 그러한 규칙에 따르길 거부했습니다.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혁명이 대영 제국의 팽창에 최초의 타격을 가한 지 고작 몇 년 뒤에 영국과 중국은 갈수록 격화하는 일련의 외교적, 군사적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영국은 중국에 사절을 파견해 중국이 자국 도시와 항구를 무역과 영국산 상품에 개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베이징에 영국 대사를 주재시킬 것을 제의하며 영국 기술력의 최상의 실례로서 시계, 망원경, 무기, 직물과 같은 선물을 한아름 보냈습니다.
황제는 조지 3세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중국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짐은 낯설고 기발한 물건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너희 나라의 제품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썼습니다. 그렇지만 지구적 세력 균형점이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황제에게 무시당한 뒤 중국을 떠나면서 자존심이 상한 영국 사절은 상관들에게 중국은 큰소리를 치고 있을 뿐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물이 새는 배와 같다고, “낡고 흔들거리는 대형 전함”이라고 썼습니다.
19세기 유럽과 영국에서 아편은 통증을 줄여주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최고의 약품이었습니다. 1899년에 특허 출원되는 아스피린은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아편은 또한 중독성이 있고 환각 작용을 일으키며, 행복감을 가져왔지요. “때로는 하룻밤 사이에 70년이나 100년을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라고 19세기 영국의 한 아편 중독자는 썼습니다. 알고 보니 아편은 중국(인민들)이 원하는 단 하나의 상품이었습니다. 아편전쟁이 시작됩니다.
결국 1842년 8월, 청나라는 영국에 항복하고 난징(南京)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난징조약으로 영국은 다섯 개의 청나라 항구에서 자유롭게 무역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홍콩섬의 지배권을 얻었습니다. 난징조약은 청나라가 외국과 처음으로 맺은 근대적 조약입니다. 그러나 영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상하이는 중국 중앙을 관통하는 양쯔강의 넓은 입구 근처에 자리 잡고 있고 태평양과 인접한 것이 특히 강점입니다. 외국인이 환영받지 못하는 고루한 수도 베이징과 대조적으로 상하이는 에너지와 개방성으로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상하이는 상업 도시, 무역과 돈에 익숙한 도시였습니다. 외국인을 따뜻하게는 아니라도 제대로 대우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서순 가문 데이비드 서순(David Sassoon, 1792-1864)은 바그다드 출신의 이름난 유대인 가문의 후손입니다. 여덟 아들과 함께 전 아시아에 걸친 기업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중국어나 영어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중국어는 일부러 안 배웠다고 합니다), 그의 주도로 서순 가문은 중국 무역을 지배하고, 상하이를 장악하고, 아편 사업을 좌지우지합니다. 장래 영국 국왕의 물주가 되고, 영국 총리들을 자문하게 됩니다.
1900년대 초 서순의 둘째 아들 일라이어스 서순이 상하이 바닷가에 발을 디딥니다. 그의 도착은 서순가가 진정으로 지구적인 사업체로 확장하는 다음 단계를 의미합니다. 데이비드 서순이 기업의 회장이라면, 여덟 아들들은 각 나라의 지점장 격입니다. 아비는 아들들에게 봉급을 넉넉히 주고 그들이 자체적으로 투자하도록 장려했지만 아들 중 누구도 회사의 동업자는 될 수 없었습니다. 온전히 가부장(데이비드 서순)이 회사를 지배했습니다. 중국 파견자는 차남인 스물 네살의 일라이어스가 뽑힙니다. 상하이에서 일라이어스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자체 창고를 지어서 아편과 인도산 향신료와 모직을 중국인들에게 팔고 비단과 차, 가죽을 구입한 다음 인도로 돌아갈 때 텅 빈 선창을 채우고 싶어 하는 아편 화물선 선장들에게 팔았습니다. 일라이어스가 상하이에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곧 주목받는 영국인 상인이 됩니다.
서순 가문은 중국에서 아편 판매로 큰돈을 벌었지만 아편이 금지된 뒤에는 부동산과 공장에 투자하여 더 큰 재산을 축적합니다. 1949년 공산당은 집권 후 상하이에 있는 서순 회사들의 사업 기록을 압수했습니다. 1980년대에 중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 중국 경제학자 두 명이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서순가가 축적한 다양한 자산을 자세히 조사하고 산정했습니다. 두 학자는 아편 무역으로 서순가가 1억 4000만 냥(19세기 중국 화폐 단위)의 이익을 거뒀다고 추산합니다. 2018년 미국 달러화 가치로 27억 달러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서순 가문과 쌍벽을 이루는 커두리(Kadoorie) 가문은 서순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엘리 커두리는 서순사(社)의 직원으로 출발했지만 금방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언제나 외부인이었던 그는 쑨원(孫文)과 같은 중국 혁명가, 자신 같은 이민자, 현지 중국인들과 제휴했고 막대한 부를 쌓아 아시아 최대의 갑부이자 실력자가 됩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중국 지부장을 역임했습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학살을 취재하는 등 30년 가까이 중국 전문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책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은 유대인 두 가문이 중국에서 막대한 부를 형성하고, 일면 중국을 변화시킨 주역으로 소개됩니다. 사실 이 두 가문의 성장기와 다르게 아편전쟁 시기부터 중국공산당이 자리를 잡기까지 중국 내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이징에서 신중국 수립을 선포한 마오쩌둥(毛澤東)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가들과 단결해야 한다. 동지들이 감히 말을 못 하지만 자본가가 없으면 되는 일이 없다.”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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