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제법 날씨가 좋다. 학교 캠퍼스 라일락 향이 가장 깊은 향을 내뿜는 시기다. 늦은 밤 퇴근길에 왈칵 다가오는 라일락 향은 뜻밖의 손님처럼 놀랍다가 반갑다가 아련하다. 10년. 매년 봄에 내 퇴근길을 기쁘게 해 주었던 라일락과 이제 인사를 하려고 한다. 이번 여름 계약이 끝나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한 곳에서 10년이면 꽤 긴 시간이다. 여러 모양의 생각이 꽉 들어차 적합한 인사말을 찾기는 아직 좀 어렵다. 떠날 날을 받아 놓은 사람 대부분 그렇듯 마주치는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가볍지 않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매일 먹는 음식들, 그리고 수업 시간의 학생들 표정과 반응 하나하나가 귀하고 아깝다. 이제 칼럼도 이번 호가 마지막이다. 정말 부족한 글이라 매번 송고 후 죄송하고 부끄럽고 감사했다. <중주> 출판부 선생님들의 편집과 교정으로 조금은 그럴듯하게 다듬어져 탑재된 글을 다시 읽으면서 다음 글은 꼭 제대로 써야지 다짐을 하곤 했다. 물론 글쓴이의 오랜 타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사과와 감사의 마음을 함께 보낸다. 마지막 글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소재를 찾다 우리 학생들의 고민을 듣게 되었다.
4학년 학생들은 요즘 졸업 논문 발표와 취업 준비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전에는 졸업 전부터 우수 학생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헤드헌터들이 학교까지 찾아와 신입사원 모집 활동(招聘会)을 했었다. 일부 우수한 학생들은 2학년 2학기 때 선제 임용되었고 고급 공무원 채용에도 꽤 여러 학생이 차출되었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학과 사무실로 찾아오는 기업 인사부 직원들, 공무원 채용 관계자들, 그리고 면접을 보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까지 학과 사무실이 북적거렸다. 그런데 올해는 왠지 조용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가한 학과 사무실과는 반대로 학생들은 각자 취업박람회 등을 찾아다니며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주 전 광저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졸업생들이 학과 사무실로 찾아왔다. 둘 다 남학생이었는데 타지 생활이라 주거비와 생활비가 많이 든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비교적 좋은 직장에 다녀서 그런지 많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주로 베이징, 상하이, 저장성 등의 주요 도시나 대기업 중심으로 취업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는 광저우처럼 직장이 멀어도 주저하지 않고 개척자의 용기를 내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직장도 얻기 어려운 것 같다. 疫情时代(yìqíng shídài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국 경제도 많이 흔들린 것 같다. 한번은 이미 대학원 입학이 결정된 학생을 만났는데 그 학생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부모님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 아무래도 취업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비록 중국이 重启(리오프닝)으로 경제 활동을 재개하고 있지만 현실은 아직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며칠 전 한국 뉴스에도 보도된 것처럼 양육비가 가장 높은 국가로 한국과 중국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1) 1인당 GDP(국내총생산) 대비 양육비 부담이 높다는 것이다. 2022년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률은 73%가 넘는다.2) 그런데 중국에서는 고등교육기관 합격률(전문대, 대학교 포함)이 85%라고 한다. 이는 22년도 대입 시험 신청자 1,193만 명 중 합격자 1,014.5만 명을 계산한 수치다.3) 대학에 합격한 이들이 모두 대학에 입학했는지는 모르지만 통계 수치로만 볼 때 중국의 대학 진학률은 우리나라보다 높다. 그런데 중국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올 7월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 수가 1,158만 명으로 작년 대비 82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4) 이걸 보면 대학 입학시험에 통과한 학생들 대부분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한다는 말이 된다. 매년 서울 인구보다 많은 고급 인재들이 배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도 ‘史上最难就业(역대 최고 취업난)’이 예상된다.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보니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도 대졸자들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당연히 고학력 실업자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毕业即失业(졸업은 실업)’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지식은 인격의 수양과 함께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배우려고 하고, 환경이 허락하면 더 다양한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현대 사회에서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곳은 학교다. 학교 교육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시간과 물질 그리고 정신적 소모를 감수하며 더 높은 단계의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에 대한 심리적 기준을 세워 놓는다. 이는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막상 학교, 학생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는 졸업의 문턱에서 취업이라는 일생일대의 관문을 거쳐야 할 때 높아진 자신의 몸값을 선뜻 지불할 직장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구인과 구직에는 분명한 입장 차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심각한 갈등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다. 사실 중국에서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각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일부 학생들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특권이라 대학생이라는 자긍심이 상당하다. 특히 유명 대학 학생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대졸 학력은 더 이상 큰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신조어가 최근 유행하고 있는 ‘孔乙己的长衫(공을기의 장삼)’이다. ‘공을기의 장삼’은 대졸자들이 걸치고 있는 일종의 허세, 혹은 마지막 자존심과 같은 것이다. 입고 있기도, 쉽게 벗어 버리기도 어렵다. 웬만한 직장은 성에 차지 않고 조건 좋은 직장은 경쟁자가 많아 차례가 오지 않는다. 현실은 냉정하다. 을(乙)의 입장에 있는 졸업 예정자들은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타협하지 않으면 고학력 실업자가 될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한다. 취업 경쟁에서 도태된, 혹은 도태될 것이 두려워 대학원 입학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국 그들도 언젠가는 졸업과 취업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취업난이 심화하자 몇 가지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나타났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중 하나가 심리적 무력감에 빠져 실업 상태에서 세월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대거 출현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교육부가 걱정하는 사회 현상 중 하나가 ‘躺平(tǎngpíng)’과 ‘摆烂(băilàn)’이다. ‘躺平’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 구조적 병폐로 무엇인가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꺾인 상태로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있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심리적 현상을 말하고 ‘摆烂’은 자포자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瓦片族(wăpiàn zú 취업을 하지 않고 집세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 ‘啃老族(kěnlǎo zú 취업을 하지 않고 부모님께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 ‘享乐族(xiǎnglè zú 두 달 일하고 반년 쉬는 사람들)’ 등과 같은 고학력자들의 자발적 실업과 失业流浪的(실업 유랑민)처럼 타의에 따른 실업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특히 ‘실업 유랑민’은 룸펜(Lumpen)과 비슷한 유형으로 이미 광둥성 둥관(东莞)지역 등에 만연해 있는데 이들은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다리 밑이나 처마 밑, 심지어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아침이면 일을 찾아 떠돌아다닌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고학력자가 많다는 것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외에도 은둔형 외톨이(宅男宅女 zháinán zháinǚ)의 증가는 중국 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대두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칭화대나 베이징대 등 중국 유명 대학 졸업생들이 한국의 주민센터(동사무소)와 같은 대민 업무 직종(街道办 jiēdàobàn)에 대거 몰리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고급 인력 낭비라고 걱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만큼 고학력 인재들을 채용할 곳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세 번째, 아주 특이한 취업 형태가 등장했다. 바로 ‘零薪就业(무급 취업)’이다. ‘무급 취업’은 일정 기간 무보수로 일하다가 고용자 측이 직원으로 채용을 원하면 계약이 완성되는 형태로 인턴 기간 동안 ‘열정 페이’로 일한 뒤 채용이 되면 좋고 안 되면 경험을 쌓는 것으로 서로 간에 ‘默契合同(암묵적인 계약)’ 아래 진행된다. 무급 취업은 새로운 형태로 아직 시험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임금 착취, 열정 착취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작년에도, 어쩌면 올해도, 내년에도 어김없이 ‘史上最难就业(역대 최고 취업난)’에 봉착하게 될 세상의 모든 취업 희망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열정과 지식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미주 1) 출처: https://imnews.imbc.com/news/2022/world/article/6357916_35680.html 3) 출처: https://learning.sohu.com/a/659500893_121653938 4) 출처: https://baijiahao.baidu.com/s?id=1760848557175233411&wfr=spider&for=pc
[편집자 주] 그동안 ‘신조어로 보는 중국 사회’ 코너를 맡아주셨던 박애양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십 년의 시간 속에 박애양 교수님은 전천후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고사성어’ 코너의 글도 집필해주시고, ‘번역’으로도 섬겨 주시며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새롭게 준비하는 일들로 인하여 글쓰기를 내려놓게 되어 아쉬움이 큽니다. 결코 짧지 않았던 십 년간의 수고! 교수님의 글에 공감하며 깊은 생각에 잠길 때도, 다시 공부하는 학생이 되어 차근차근 읽으며 ‘신조어’를 알아가며 기뻐한 적도 많습니다. 독자님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본웹진의 필진으로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교수님의 한국에서의 길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사진 출처 | 바이두박애양 | 중문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