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유명 사전 출판사 미리엄웹스터(Merriam-Webster)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1) 가스라이팅의 사전적 의미는 ‘심리적 지배’로 주로 친밀감이 있는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일방이 상황을 조작하여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그를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가스라이팅을 어떻게 말하는지 바이두(百度)를 검색해 보았다. 중국에서도 이미 《煤气灯效应》 와 같은 가스라이팅 관련 도서가 출판되었고 해당 단어를 검색해 보니 관련 자료들을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중국어로 가스라이팅을 ‘(煤气灯式)心理操纵’, ‘煤气灯操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 글에서 ‘PUA(Pick Up Artist)’을 “被PUA了”로 써서 상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상황에 사용한 예를 보았다. ‘PUA’는 원래 수줍은 사람들(주로 남성)이 이성과 의사소통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었으나,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점차 한쪽이 정신적 압박을 통해 다른 쪽을 통제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발전했는데 핵심은 조작자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지속적으로 기만해서 피조작자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하여 조작자에게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조정한다는 것이다.2)
가스라이팅과 비슷한 말로 ‘세뇌(洗腦)’가 있다. 세뇌 역시 조작자와 피조작자가 있다. 조작자는 어떤 대상에게 어떤 일정한 내용을 주입하여 그 내용을 따르도록 ‘세뇌한다’. 반면 세뇌를 당하는 피조작자는 조작자의 목표의 대상이 되고, 과녁이 되어 조작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피동적 인물이 된다. 그런데 가스라이팅은 세뇌의 의미를 일부 포함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듯하다. 세뇌가 정신적 이념적인 부분에 방점이 있다면 가스라이팅은 주로 피조작자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감정적·심리적 부분에 방점이 있다. 인간의 감정은 타자와 관계 속에서 두드러진다. 인간 사회에서 ‘관계’는 크든 작든 사회구성원이 형성하고 있는 삶의 일부이다. 다만 그 관계에는 ‘힘’이 작용한다. 친밀도, 서열, 직위 등 사회가 관습적으로 부여한 힘의 역학관계가 존재한다. 구성원들은 이 관계의 힘을 인정하며 서로 밀고 당기면서 관계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관계의 힘에 인위적 조작이 개입하면 균형은 깨지게 된다. 누군가 부여된 힘보다 더 많은 힘을 소유하려고 하면 관계의 힘은 기형이 된다. 가스라이팅은 인간의 감정에 개입해서 관계의 균형을 깨는 인권 침해 행위이다.
차제에 이 말의 어원이 된 영화 《가스등(GasLight)》을 다시 보았는데 이 영화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사악한지 잘 보여주었다. 남편이 의심스럽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오히려 맹목적인 순종과 불안한 믿음으로 철저하게 의존적으로 되어버린 여주인공을 보면서 답답함에 소리치고 싶었다. 아내가 받은 유산을 탈취하기 위해 연민은커녕 아내를 속이고 오도하는 남편의 잔혹함을 보면서 세상에는 저런 인면수심의 ‘無’양심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가스라이팅은 조작자가 화청자의 관계를 화자>청자로 설정해 놓고 조작자인 화자를 두각해서 피조작자인 청자가 화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지속적으로 세뇌한다. 그것이 칭찬이든, 질책이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피조작자의 감정을 제어하려 든다. 피조작자는 조작자의 힘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미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무력해진 피조작자는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철저하게 가스라이팅 된 사람은 “네가 그렇지 뭐.”라는 말을 들으면 “맞아, 내가 그렇지 뭐.”라고 쉽게 자신을 무기력화한다.
특히 의존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누군가의 간섭이 돌봄으로 여겨진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니 차라리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대상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자신의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해서 되려 마음이 편할 수 있다, 의존성이 심할 경우 가해자의 부당한 행위를 알면서도 더 의존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가해자가 피해자를 떠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가스라이팅은 자기 자신, 가족, 친구, 연인, 교사, 상사 등 주변 인물과 정치인, 사이비 교주 등 사람을 통해 일어나기도 하고, 드라마나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강화되기도 한다. 부정적 생각의 반복적인 주입, 위압적인 태도,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약점을 이용한 두려움 강화 등 부정적 자극이나 칭찬과 유혹, 보상 등의 긍정적 자극으로 시도된다. 어느 사람도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으려면 옳고 그름을 생각해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이 없으면 이단 사이비의 노예가 될 수 있다. 미신을 찾거나 권력이 있는 자, 권위적인 사람에게 의존하고 그들의 판단에 따르는 길을 택하기 쉽다. 순진한 이들은 저들의 가스라이팅에 부화뇌동한다. 그러나 이들의 순진함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한 게으른 순진함이다. 고전에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문을 닦아도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없으면 사물의 이치를 환히 깨닫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더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롭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사고하기를 포기하면 다른 사람의 글이나 말에 의존하게 된다. 정녕 그러한지 생각하는 ‘사고(思考)’의 힘이 없으면 평생을 남의 꼭두각시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어릴 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훈계를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칭찬을 받았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이 약하다. 부지런히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아무리 의존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기 생각을 표현할 만한 힘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은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자신보다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의 말에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의존하게 된다. 사실 그 힘이 허상의 것임에도 말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이다. 새해는 미망 속에서 ‘살던 대로 사는 한 해’가 아니라, ‘깨어 길을 찾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미주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박애양 | 중문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