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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4 통권 243호     필자 : 박애양 프린트   이메일 
[신조어로 보는 중국 사회]
融梗(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차용함)

2년을 넘게 준비한 논문이 있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썼다고 생각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의견도 들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논문이기에 자신 있게 투고했다. 그런데 뜻밖에 “게재 불가” 통지를 받았다. 스스로 만족했던 논문이기에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는 심사위원들의 고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학회에 투고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퇴짜를 맞았다. 애지중지 힘들게 완성한 내 논문에 내려진 사망선고를 확인하자 갑자기 두려워졌다. 내 몇 년의 시간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더 이상 내가 쓴 논문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노트북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벌써 몇 달……. 겨우 새로운 주제를 찾아 ‘논문 쓰기’를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이제는 일 년에 소논문 한 편 쓰는 일도 너무 버겁다. 아니, 간단한 칼럼 한 페이지 채우는 것도 힘에 벅차다. 

논문을 쓸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선행연구다. 내가 쓰는 논문 주제가 연구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주제인지, 만약 이미 연구가 된 주제라면 어떤 연구자들이 연구했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주제라도 연구자의 시각과 연구 방법에 따라 새로운 결론이 도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행 연구자들의 주장과 내 논문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내 논문에만 담긴 창의적 부분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선행연구 조사는 빠질 수 없는 주요 과정이다. 어떤 주제는 연구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해 이미 레드오션이 된 주제가 있는가 하면 어떤 주제는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신선한 주제도 있다. 얼마 전 포기한 논문은 이미 많은 이들이 연구한 주제라 연구자들의 주장이 다양하고 이미 충분히 연구된 내용이라 신선함이 부족했을 수 있겠다. 아쉽지만 내공이 더 필요할 듯하다. 

선행 연구자들의 논문을 살피는 과정에서 가끔 글이 매우 조리 있고 주장이 분명하며 결론이 설득력이 있는 논문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연구자의 노고에 감사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참고할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참고한 부분이 있으면 출처를 표기한다. 사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귀찮은 부분은 출처 표기이다. 그래서 성실하게 표기해 놓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타인의 논문에서 가져왔다면 반드시 명시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힘들게 작성한 논문이라고 해도 표절로 낙인이 찍히게 되고 연구자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어쩌면 본문 내용보다 더 중시해야 할 부분이 바로 출처 표기이다. 누군가 “논문은 자식과 같아.”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논문은 연구자에게 자랑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한 자식과 같은 존재다. 잘 쓰든 못 쓰든 내 연구 기록에 남아 평생 따라다닌다. 그런데 최근 고위 공직자들과 그 부인, 자녀들의 논문 표절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간단한 출처 표기 누락이 아닌 내용 전체를 표절한 의심을 받는다. 돈만 내면 실어주는 학술지에 발표하거나 참여하지도 않는 논문에 이름을 올린다. 심지어 표절률이 높아도 심사위원들이 통과시켜 준 학위 논문들이 발각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노트북 한구석에 게재 불가 딱지가 붙은 논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그러하다. 

흐릿한 마음으로 중국어 신조어를 둘러보다 “融梗[rónggĕng]”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아주 생소한 단어였다. 의미를 찾아보니 ‘표절’이란다. 원래 표절을 의미하는 단어로 “剽窃[piāoqiè]”가 있다. 그런데도 인터넷 신조어인 融梗이 등장한 것이다. 최근 논문 때문에 고생해서인지 이 신조어에 관심이 생겼다. 인터넷 자료를 살펴보니 融梗과 함께 제시된 단어로 剽窃, 抄袭[chāoxí], 洗稿[xĭgăo] 등이 있었다.1) 표절 정도는 剽窃> 抄袭> 洗稿> 融梗 순이 되겠다. 우선 剽窃(표절)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것을 허락 없이 가져다가 자신의 것으로 만든 불법적인 행위이기에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抄袭는 표절의 다른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작품을 형식만 다소 변형해서 자기 작품화했기 때문에 이 역시 도작(盜作) 행위에 해당한다. 타인의 작품 또는 작품의 단편을 자신의 것으로 도용하는 것을 표절이라고 하며 중국에서 剽窃와 抄袭는 저작권법적으로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한다.2) 洗稿는 다른 사람의 작품에 형식적 변화를 가해 자기 작품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즉 형식은 조금 다르지만 핵심은 같은 것으로 ‘돈세탁’이라는 말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원고를 세탁한 것이다. 融梗에서 融은 ‘융합하다’, ‘어우러지다’ 등의 의미를 나타내고 梗은 이야기의 줄거리, 창의성 등을 나타낸다. 融梗은 다른 사람 작품의 요소를 활용한다. 작품을 창작할 때 타인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교묘하게 조금씩 바꿔 적법인지 위법인지를 잘 구별을 할 수 없게 녹아낸 것으로 融梗의 핵심은 “타인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따라서 표절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운 애매한 합성 작품쯤 되겠다. 자료를 찾아보니 融梗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2019년 개봉한 중국 영화 《소년시절의 너(少年的你)》가 다른 작품의 아이디어를 표절했다는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네티즌 여론은 融梗이 아이디어 차원의 참고(reference)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비교적 높은 수준의 베끼기고 비록 명시적 표절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교묘한 표절 역시 표절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融梗이 특히 인터넷 문화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어 점차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天下文章一大抄”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抄[chāo]는 ‘베끼다’, ‘참고하다’는 뜻으로 비록 창의성은 떨어지지만 좋은 문장을 여러 번 베껴 쓰다 보면 스스로 문장 짓는 능력이 배양된다는 의미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학생들에게도 좋은 문장 베껴 쓰는 과제를 자주 내주고 있다. “熟能生巧(익숙해지면 공교로움이 생긴다)”라는 말처럼 좋은 문장을 자주 읽고 베껴 쓰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기본에 깔려 있어서일까 사실 중국에서 타인의 아이디어는 물론 상표와 브랜드 전체 이미지를 무단으로 도용한 예가 많이 적발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한국의 유명 디저트 브랜드 ‘설빙’의 예가 기억에 남는다. 약 5년쯤 전 일이다. 중국 지난(济南)에서 한 쇼핑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한국의 설빙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설빙에 들어가 주문하려는 순간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모양도, 메뉴도 심지어 진동벨도 한국의 설빙과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왠지 엉성한 느낌이었다. 후에 중국의 한 기업에 설빙 브랜드가 도용당했고 2021년, 7년여의 상표권 도용 소송 끝에 한국 설빙이 승소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렇듯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사회는 도용에 대한 인식이 그리 강하지 않았었는데 최근에는 중국 정부와 사회가 타인의 지식권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인터넷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신조어가 融梗이라 하겠다. 이제는 중국 사회에서도 ‘타인의 아이디어를 순수하게 참고만 했는가, 고의적으로 베꼈는가’ 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토론한다. 베낀 것을 베꼈다고 비판도 하고 또 사실이 밝혀지면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중국 사회가 달라지고 있다. 시나브로 시나브로. 

미주           
1) 이 단어들의 설명은 https://baike.baidu.com에서 참고하였다. 
2) https://xue.baidu.com/(融梗和抄袭的区别)







사진 설명 | (아래) 중국 지난(济南)의 한 쇼핑센터 내 한국의 설빙을 도용한 모습 (2018년 여름)
사진 출처 | (위) 바이두
박애양 | 중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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