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글로벌 선교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중국의 선교 상황도 계속 변하고 있다. 물론 선교지 상황의 변화는 상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 몇 해 사이 중국의 변화는 일시적 변화가 아닌 다분히 시대를 가르는 근본적, 장기적 변화이기에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세계교회는 이런 변화를 잘 관찰하고 분별하여 선교의 비전과 사명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선교전략에 있어서는 선교지 상황에 맞게 부단히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짧은 글을 통해 코로나19 시기를 전후로 중국과 중국교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고, 이 모든 변화 속에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아울러 중국을 섬기고자 하는 해외 사역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성찰해 보려고 한다.
우선 중국의 외국인 사역자들과 관련하여 2020년 코로나19 이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첫째로 2017년 해외 NGO법 제정으로 인해 중국 내 외국단체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다수가 등록이 취소되고, 힘들게 허가된 단체들도 향후 중국 내에서 신분의 안전과 활동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둘째는 해외 전문 인력에 대한 비자발급 조건이 크게 강화되었다. 2017년 말에 시행된 외국인 취업 분류 기준에 의하면 A, B, C세 등급(A는 외국 첨단 인력, B는 외국 전문 인력, C는 외국 보통 인력)으로 나눠 입국심사를 한다. 이 중에 중국의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것이 별로 없는 C등급은 입국을 엄격히 제한하고, B등급도 상황에 따라 이전보다 더 세밀한 심사를 거칠 전망이다(참고로 여기에 비지니스 분야는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개혁개방 뒤 약 40년 만에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외국 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정책의 변화는 같은 기간 중국이 이룬 급속한 경제발전과 국력신장, 유학파 중국 인재의 지속적인 귀국과 아울러 자국인 취업 우선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변화의 근저에 중국은 강국이 되었고, 더 이상 해외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태도도 분명히 감지된다. 따라서 향후 중국에서 전문 인력과 관련된 장기 사역자의 문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셋째로 근년에 중국의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다. 덩샤오핑(邓小平) 시대의 민족주의는 열강에 침략을 당한 피해자 신분으로서 민족주의였지만, 시진핑(习近平) 시대의 신민족주의는 그동안 중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와 국력신장을 근거로 상당히 공세적이고 배타적인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1) 그래서 일단 정치·외교적으로 중국과 서방이 대립관계에 서면 민족주의 물결이 대단히 거세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서방과 대립 국면이 형성될 때 중국 당국의 언론선전과 맞물려 일반 시민들 사이에 반외국인(특히 서양인) 정서가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지금은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시안(西安) 등 대도시 록다운(lockdown) 이후 중국 정부의 코로나 제로정책에 대한 피로감으로 인해 그 반감이 다소 완화되었지만, 중국의 민족주의는 온오프라인과 상관없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사회 현상이다.
넷째로 2017-2018년을 중심으로 엄청난 수의 해외 사역자들이 비자발급 거부 혹은 비자연장 거부를 통해 비자발적 혹은 자발적 철수를 하고 있다. 아마도 지난 40년 개혁개방 이래 최대 규모의 숫자가 철수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은 이 흐름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중국 설날을 전후로 예년과 다름없이 많은 외국인 사역자들이 옷가지들이 가득한 여행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가 해외에서 회의 중에 코로나19 소식을 접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세기적 전염병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러나 그 후 여행을 떠나지 않은 일부 남은 자들과 다행히도 국경 봉쇄령이 내려지기 전에 중국으로 귀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여행지에 고립되어 기약도 없이 국경이 열릴 날 만을 기다렸다. 결국 몇 개월이 지나 대부분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들 중 지금까지 본국에서 혹은 주변에서 중국의 문이 다시 열릴 날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본국이든 제3국이든 완전히 새로운 임지로 전환하여 떠나기도 했다. 끝으로 중국 종교정책의 변화이다. 마오쩌둥(毛泽东) 시대의 종교정책이 모든 종교를 소멸시키는 것이었다면, 문화대혁명 이후 덩샤오핑 시대에는 경제발전을 위해 종교관용정책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2012년 말 시진핑 시대에 접어들어 또다시 종교에 대해 엄격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래서 삼자교회든 가정교회든 상관없이 모든 교회의 활동공간이 현저히 축소되었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변화들이 일시적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 혹은 장기적 변화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왜 이런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유는 개혁개방 30여 년간 경제개혁의 가속화에 비례하여 중국공산당의 국가 통제력도 점차 이완되었기 때문이다. 아래 표는 중국공산당 체제하에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2)
<표: 중국 정치경제개혁 경로>
다시 말해 국영기업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에서 민간기업 위주의 시장경제로 방향을 전환하고, WTO가입을 통한 국제무역질서에 참여하고, 해외 투자에 따른 부분적 금융개방 등 30년간 경제개혁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그 변화에 비례하여 중국공산당도 내부적으로 점차 정신적 이완과 조직적 부식을 가져왔으며, 2012년에는 급기야 당 전체적으로 이러다 당이 와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런 위기감에 따라 시진핑 시대에 들어 중국공산당은 의사결정 체제를 상시 체제에서 위기 체제로 전환하고, 2014년 ‘국가안전’을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국가안전에는 정치안전, 국토안전, 군사안전, 사회안전, 문화안전, 환경안전 등 다양한 측면이 있지만, 그중에도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문화안전’, 즉 ‘사상안전’이다. 그리고 그 사상 혹은 이념안전 확보를 위해 사회 각 분야, 특히 언론, 출판, 교육, 종교, 외국 비정부기구 영역 등에 철저히 당 우선의 사회주의노선 지도방침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 영역에서는 2018년 2월 시행된 ‘신종교사무조례’를 필두로 최근 2022년 3월 ‘인터넷종교정보서비스관리방법(互联网宗教信息服务管理办法)’까지 총 9가지의 관련 법령을 제정하여 중국 기독교가 철저히 당의 통치에 순응하고, 궁극적으로 ‘기독교 중국화’라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통제하고 있다.
2020년 발발한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더 심화되었고, 동시에 중국 정부는 다분히 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이용해 대중과 사회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련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고려할 때 중국교회는 또다시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환기를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좀 더 앞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역사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보다 더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개혁개방 후 40년, 중국교회가 걸어온 길을 세 시기로 나누어 회고하며 살펴보려고 한다.
제1시기: 신생과 부흥(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 문화대혁명 뒤의 중국교회는 큰 부흥과 발전을 경험한다. 삼자교회는 예배당 회복으로 여념이 없었고, 가정교회는 특히 농촌 풀뿌리 계층에서 우후죽순처럼 힘차게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외개방으로 인해 미국과 한국 등 해외 사역자들이 중국에 도착해 현지교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 교회부흥은 온전히 현지 지도자들에 의한 자발적 현상이요, 동시에 토착화한 무종파 교회였다. 예를 들어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등지에서 나타난 농촌지역 네트워크(위계질서가 분명한 전국 규모의 교회 조직), 베이징, 원저우(温州) 외 지역에서 교회연합회 조직 등이 생겨났다. 당시 가정교회의 신학교육은 아직 태동기여서 교회 지도자들이 공식적인 신학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학문적, 종파적 배경의 신학은 없었지만 오히려 중국교회의 1세대 영적 지도자들에게 물려받은 근본주의 계통의 ‘영성파’ 신학을 견지하였다. 이 시기 교회의 분위기는 자발적, 전도 중심적, 성경적, 토착화한 교회였다.
제2시기: 중국교회 발전의 황금기(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중반) 이 시기는 중국 가정교회운동의 황금기라 불린다. 중국교회 외부적으로는 대중들의 기독교에 대한 호감, 당국의 관용적인 태도 등 우호적인 사회 환경이 형성되었다. 내부적으로는 중국교회의 성장 동력이 점차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갔다. 당시 전례 없는 ‘기독교 열기’로 인해 중국교회는 모임 장소를 가정에서 사무실로 이동하며 대교회 전략으로 전환하게 된다. 한 예로 베이징의 한 빌딩은 거의 매 층마다 교회가 입주하여 ‘기독교 빌딩’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이런 변화는 중국에서 합법적 신분을 갖추지 못한 가정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공적 공간이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중국교회의 구성원도 중산층 혹은 사회 엘리트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지난 시기와 비교할 때 중국교회는 청년층과 지식인이 늘어나고, 자원도 많아졌다. 많은 해외 사역자들이 현지교회와 협력하고, 중국교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일부 중국교회는 해외에서 아무런 비평도 없이 종파적 신학전통과 교회체제를 도입한다. 그 결과 미국과 한국 등에서 들어온 대형교회 모델 혹은 칼빈주의 신학 등이 상당한 주목을 끌게 된다. 신학적으로 번영복음부터 강경파 칼빈주의까지 스펙트럼도 넓어졌지만, 대립 현상도 일어났다.
이 시기 중국교회의 분위기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고, 승리주의적 성향도 보였다. 그래서 중국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을 강조하면서 주류 사회로 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으며, 중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이런 자신감은 베이징, 상하이, 청두(成都) 등 엘리트 출신 사역자들이 인도하는 도시교회를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선교비전은 제1시기 일부 농촌교회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 비전이 중국 가정교회 전체적으로 공유된 것은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을 전후로 한 2시기에 와서다.
제3시기: 새로운 상황과 가능성(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예상과 달리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교회의 사회적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중국교회의 공적 공간이 현저하게 축소된다. 대중들의 분위기도 빠르게 민족주의적으로 변했고, 중국 당국도 교회를 더 엄격히 통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중미관계가 긴장관계로 변할 때마다 중국교회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정치적 상황뿐 아니라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 중국교회는 이중적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교회 내부적으로도 여러 도전 앞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교회 안에서는 신학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중국교회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적지 않은 중국교회 지도자들은 중국 정부의 탄압보다 오늘의 중국교회를 더 위협하는 것은 바로 세속화의 물결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이전 시기에 있었던 폭발적 중국교회의 성장은 끝났으며, 특히 젊은 세대를 향한 전도가 쉽지 않게 되었다. 중국교회 청년세대 유실은 글로벌 현상과도 맞물려 있기는 하지만 세대적이요, 정치적인 이중의 요인으로 중국교회는 청년사역을 돌파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예상대로 중국교회도 좀 더 냉철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중국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교회의 연약함을 보게 되었고, 기독교는 중국 사회 속에서 여전히 소수요, 주변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중국교회 안에서 복음과 교회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반추가 일어나고 있으며, 교회론과 관련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너무 낙관적이었나? 교회에 거품이 너무 많았나? 그러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버금가는 것은? 건축물인가? 사람 수인가? 모임 방식인가? 교회는 어떻게 세상과 구별될 수 있나? 무엇이 거룩한 교회인가? 이중의 시련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증거하나? 미국의 종파주의나 한국의 대형교회 모델이 정말 중국 상황에 적합한가? 지금이 중국교회 교회론과 선교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할 때가 아닌가? 지금이 80년대 아니 문화대혁명 시기의 고난과 순교의 정신으로 돌아갈 때가 아닌가?
이러한 교회론에 대한 성찰에 근거하여 새로운 환경에서 교회의 생존과 전진을 위해 교회와 목회 방식을 토착화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큰 교회들이 주로 탄압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제 교회들은 다시금 소그룹 모델로 돌아갔고, 그것도 쉽지 않을 경우 두세 가정이 함께 모이는 전통적 가정교회 모델이 돌아가고 있다. 만약 이것도 여의치 않다면, 마지막 선택으로 문화대혁명 때와 같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는 플랜C도 생각하고 있다. 고정적 현장예배가 어려울 경우 차를 대절하여 고속도로에서 모임을 가지기도 하고, 온라인 모임도 최대한 활성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련의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예레미야 시대와 같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뽑거나 철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심고 재건하는 일이다(렘 1:10). 하나님은 지난 30여 년 동안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가운데 형성된 거품이나 그에 버금가는 것은 제거하시고, 지금의 정결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하는 공동체를 다시금 세우실 것이다. 그 공동체는 좀 더 성숙하고 예언자적이고, 토착화, 상황화한 중국교회일 것이다.
미래의 중국교회를 묵상할 때 역사학자 앨런 크라이더가 말한 ‘인내의 발효(patient ferment)’라는 말이 생각난다. 중국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은혜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성경적 방법을 연구하고 찾아 나선다면, 적대적 세상에서 그리스도 신앙을 살아내는 충성스러운 소수가 되지 않을까? 정치와 코로나19라는 이중의 시련 속에서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고 있는 중국과 글로벌 선교현장에서 ‘인내의 발효’로 자리매김을 하지 않을까? 겸손히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자.
그러면 해외교회와 해외 사역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와 제안을 나눈다.
▶ 하나님 선교(Missio Dei)의 긴 역사적 안목 갖기 하나님 선교의 긴 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선교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 선교역사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선교사들이 중국 본토와 주변 지역을 사이에 두고 이동을 반복하는 현상이다. 청나라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로버트 모리슨 등 초기 선교사들은 중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 지역을 배회하였다(1807-1842). 그 뒤 열강에 의해 중국의 문이 강제로 열리고, 중국선교는 주변 지역에서 본토로 옮겨 약 백 년간 지속되었다(1842-1949). 하지만 중국의 공산화 이후 중국선교는 본토에서 주변 지역으로 철수했다. 뒤이어 개혁개방으로 문이 또다시 열리자 선교의 역량은 지난 40년간 주변 지역에서 본토로 이동했다. 그러다 근년에 정치 상황의 변화로 우리는 다시금 본토에서 주변 지역으로 물러나는 현상을 보고 있다. 이러한 선교역사에서 나타나는 시계추 현상 혹은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한다: 첫 번째 불변은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진입과 철수를 반복하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사실 한 번도 이 땅을 떠난 적이 없으시다. 동시에 떠나든 머물든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뜻에 순종하는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는 분이시다. 또 다른 불변은 비록 인간의 연약함과 일시적 좌절이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주님의 교회는 그럼에도 계속 전진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이백여 년의 중국교회 역사를 통해 교회는 얼마나 많은 기근과 역병, 전쟁과 혁명 그리고 반대와 핍박을 겪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는 한 알의 밀알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물가에 잘 심긴 나무로 가뭄의 때에도 잎이 무성한 나무로 성장하였다. 이제 21세기에는 해외 사역자 홀로 본토에서 주변 지역으로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국선교사들이 본토에서 주변 지역으로 보냄을 받는 하나님의 새 일을 목도하는 중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백 년 전 로버트 모리슨과 허드슨 테일러가 그토록 갈망해온 그날이 아닌가? 오늘 중국교회 앞에 주어진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안목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겠다.
▶ 현존 사역(presence ministry)의 중요성 중국에 머무는 것이 힘들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일수록 그만큼 해외 사역자들이 지속적으로 이 땅에 머무는 것이 더욱 귀하고 가치 있는 사역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형제자매들도 사회적 소수 혹은 고난의 주변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국 땅에서 온 누군가가 글로벌교회 지체로서 이 땅에 충성스럽게 머무는 자체(presence ministry)가 그들에게는 영적으로 엄청난 위로와 격려가 된다. 지금 중국에 남아 있는 사역자들은 대부분 4-5년 전과 비교하여 일(doing)은 덜하고 있지만, 현지 형제자매들과 제자훈련 관계, 즉 존재(being)와 소속감(belonging)이 더 심화되었다고 말한다. 환경적으로 각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커지면 커질수록 서로를 향한 신뢰와 하나 됨은 더 깊어지게 된다. 자신의 신분을 이 땅에서 복음의 종으로, 외국인과 나그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섬김이 사람이 보기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나, 고난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과 긴밀히 동행하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 도리어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 분명히 나타내는 선교 방식이 될 것이다(고후 12장). 이를 존 스토트는 약자의 선교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땅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이런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 총체적 선교의 선교신학적 이해 물론 중국에서 현존 사역을 하려면 그 현존을 위해 직장인, 전문인 혹은 비지니스 신분 등 사회적 신분이 필요하다. 이제는 과거 일부에서 행하던 ‘양두구육’ 방식을 지양하고, 사회적 신분이나 직업 자체가 사역이요, 삶으로 전하는 복음 메시지임을 인식하는 총체적 복음, 총체적 선교(Integral Mission)의 선교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필자가 아는 한 부부는 서부지역의 민족지역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비지니스사역을 하고 있다. 비지니스와 선교가 따로국밥처럼 이분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잘 통합되어 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성경적 가치에 부합하는 비지니스 경영과 원칙을 실천함으로 그 일터에서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타문화권 제자훈련(Cross-cultural discipleship)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타문화권이라 함은 선교지 문화(한족 주류 문화와 소수민족 문화)와 한국 문화와 경계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고, 비지니스 현장에서 하늘기업 문화와 세속기업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중적 타문화권 제자훈련을 의미한다. 복음과 선교는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한국교회와 사역자는 이런 선교학적 돌파를 본국에서 더 많이 이해하고 실천할 때 중국선교의 문은 여전히 넓게 열려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해외 사역자의 사역 규모와 역할 조정 지난 40년간 중국교회가 변했으니 선교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외국 사역자는 일선에서 이선으로 물러나고, 이선에서 현지 사역자와 일대일로 혹은 소규모로 동행하는 일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현지화를 가속화하고, 안전에 대한 리스크도 줄여야 한다. 특히 현지 사역자와 동역과 동행은 갈수록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역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을 들여다보면 많은 필요가 있음을 보게 된다. 부부의 성격 문제, 부부관계, 자녀양육 등 가정 문제, 원가족(family of origin)이 남긴 상처, 특히 여자들은 사역만 강조하는 교회 문화로 인해 번아웃(burnout)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섬길 사람들이 필요하다.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좀 더 건강한 영성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 일대일로 정기적으로 관심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소그룹 리더를 훈련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역자들을 말씀으로 충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에서 들어주는 사람으로 역할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중국에는 많은 사역자들이 1세대 성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적 아비가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 이런 영적 아비가 없는 세대와 누가 동행하길 원하는가? 누가 들어주고, 질문하고, 그래서 스스로가 말씀으로 성령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동행하길 원하나? 이제는 새로운 역할을 할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21세기는 글로벌선교의 시대이다. 글로벌선교의 특징은 시혜자와 수혜자로서 일방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서로가 상호 의존하며 양방향으로 서로 배우는 과정이다. 동시에 글로벌 선교현장은 백 년 전처럼 가진 자 혹은 강한 자가 없는 자 혹은 약한 자에게 가는 선교가 아니라 초대교회처럼 약한 자가 강한 제국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오늘의 중국은 그러한 글로벌선교, 하나님의 선교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영적 겨울’에 처해 있는 중국교회는 지금의 시련을 통해 적대적 세상에서 문화대혁명 때와 같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살아내는 충성스러운 소수가 될 것이고, 문화적 주변에서 묵묵히 인내의 발효를 살아내는 자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부름인가!
미주 1) 조수아, “중국 민족주의와 한국교회”, BOF29호, 20쪽. 2) Heilmann, Sebastian. 붉은 백조(红天鹅:中国非常规决策过程), 홍콩중문대, 2018.
조수아 | 선교사(OM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