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두 권의 책을 통해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유산과 그 당시 중국의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허드슨 테일러에 대한 글은 이번 원고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책 이후에도 책이 몇 권 더 번역되었으나 출판 연도가 오래되어 이미 절판되기도 했고, 세 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의 두 권은 1부, 이 책은 편집상 2부로 분류된다. 1부의 핵심 내용은 당시 중국에 있는 기독교 선교회를 제대로 알자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허드슨 테일러의 삶과 사역을 들여다보며 역사적 관점에서 그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허드슨 테일러의 삶과 선교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인지 그의 개인 기록을 통해 좀 더 분명히 살펴보고 있다. 허드슨 테일러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그만의 독특한 성품도 발견된다. 허드슨은 잠시 영적인 방황과 혼란기를 겪기는 했지만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아멜리아의 지속적인 기도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긴다. 이 과정 속에도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가기 전 허드슨은 수련의 시간을 보내고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겪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해답의 실마리를 얻는다.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다듬어져 가면서 그는 선교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물로 거듭난다. 이 책은 5개의 흐름을 따라 구성되어 있다. _중국을 포함한 서구의 역사 _중국 대상의 가톨릭 및 개신교 선교 _선교에 영향을 준 중국과 서구의 무역 및 외교관계 _사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_허드슨 테일러가 거듭나게 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개인사 등이다. 시기적으로는 1850년대 허드슨 테일러가 선교회의 지원과 후원 기구에서 독립하기 전 7년간 격동의 시기가 잘 그려져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상황은 어땠는가 옮겨본다. 1850년 2월 25일 도광제(道光帝)가 죽자 중국에는 심상치 않은 동란이 일기 시작했다. 왕이 바뀐다는 것은 수하의 관리들이 모두 바뀐다는 의미였고 따라서 정치적 혼란 등의 문제가 일어날 소지는 충분했다. 게다가 용좌를 계승한 자가 이제 겨우 열아홉 살 난 함풍제(咸豊帝)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불안은 내재된 것이었고,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유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는 왕의 자리에 앉자마자 불교식 우상을 숭배하고 미신을 의지한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다. 전해진 사료에서 불과 5∼6년 전에 정해진 신앙 자유령을 취소하라는 비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함풍제는 그리스도인을 공공의 적으로 분류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친 악조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이비 기독교로 알려진 배상제회(拜上帝會)와 같은 종파가 광저우(广州) 내륙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중국선교에 크나큰 걸림돌로 등장한다. 이들 배상제회라는 단체는 반민주 비밀조직과 연합해서 황제 정부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베이징 황실에 심각한 위협으로 여겨질 만한 일들이 연이어 전개된다. 이는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치명적인 반란의 전조였다. 이 무렵 영국도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심히 불편한 상황이 벌어진다. 당시 영국을 가톨릭으로 재개종시키겠다는 로마의 새로운 계획이 드러나자 개신교 측에서는 격분을 감추지 못한다. 교회선교협회(CMS)의 총사무관이면서 역사학자였던 유진 스톡(Eugene Stock)은 “나라 전체에서 곧바로 분노가 폭발했다. 트위드 강에서 리자드 마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가톨릭을 거부한다’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수상의 표현을 빌리면 교황제도의 ‘오만하고 교활한’ 공략에 저항하기 위해 나라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고 기록했다.
다시 허드슨 테일러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1850년 당시 18살이었던 허드슨은 중국선교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다. 허드슨은 그의 여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사랑스런 아멜리아, 기도할 때마다 항상 나를 기억해 주렴. 나는 몸과 정신과 영혼을 하나님의 사역에 바치기로 결심했단다. 그 어느 때보다도 중국에 가야겠다는 강한 열망을 느끼고 있어. 중국은 한 번도 내 안중에 없었는데 말이야. 소망 없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는 3억 6천만 영혼을 생각해 봐. 반즐리의 인구에 해당하는 4천 명이 중국에서 매일 죽어가고 있어(이는 허드슨 테일러가 잘못 계산한 것이었다. 하지만 숫자는 중요치 않은 것 같다). 불쌍한 중국을 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 중국은 소외되어 있지. 거의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중국인들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거야. ‘갈 길 몰라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등불이 되어 주어서는 안 되는 걸까? 중국인들을 위해 적극 기도하면서 이 사역에 동참해주길 바래.”
1853년 9월 19일. 드디어 중국으로 출발한다.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그가 탄 배 덤프리스 호는 폭풍을 만나 큰 위험이 닥친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긴다. 그는 9월 26일 일기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얼마나 그분이 자비로우신지 적으려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 내셨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께 영광 돌리는 일에 사용되기를 바란다’라고 쓴다.
허드슨이 탄 배는 우여곡절 끝에 1854년 3월 1일에 우송(吴淞)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근 5개월 반 만에 땅을 밟는다. 그가 도착한 중국의 시점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때였다. 불안하게 돌아가는 주변 정세와 협회의 재정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거주할 집도 마련하지 못한 절박한 상태의 허드슨 테일러는 ‘우울증’과 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만을 의지한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며 그대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미래는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지만 제 갈 길은 한 번에 한 걸음씩 분명히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그분을 신뢰해야겠지요. 그러면 모든 게 형통하겠지요.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따라가면서 이전보다 더욱 잘 섬기고 싶습니다.” (어머니께 쓴 편지)
참고로 이 책을 쓴 알프레드 제임스 브룸홀(Alfred James Broomhall, 1911.12.6∼1994.5.11)은 중국내지선교회(CIM/OMF) 소속의 작가이자 역사가이다. 허드슨 테일러의 증조카인 저자는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나 3대째 선교사였고, 의사를 은퇴한 뒤에는 수술용 칼을 접어 두고, 펜을 들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십여 년에 걸쳐 모아 두고 있던 자료와 공식적으로 남아 있던 CIM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허드슨 테일러와 CIM에 관한 방대한 책을 발간했다. 1994년, 82세의 나이로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한 뒤에도 그 저술들을 통해 그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다.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