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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3 통권 235호     필자 : 강진구 프린트   이메일 
[중국 사회와 문화 이야기]
에일린 구가 중국에 남긴 것

에일린 구에 열광했던 중국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최고의 화제 인물은 단연 에일린 구(Eileen Gu, 谷爱凌)였다. 중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에일린 구는 프리스타일 스키 종목에 출전해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내서 세계적인 스타 선수 반열에 올랐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프리스타일 스키는 서커스 묘기를 능가하는 기술을 보여주는 까닭에 보는 사람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참가선수 역시 도전 정신이 가장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격렬하고 위험한 운동이다. 그런데 이 프리스타일 스키 종목에서 한꺼번에 메달 3개를 획득한 사례는 에일린 구가 사상 최초다. 

그런데 중국이 에일린 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중국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한껏 고양시켰기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가 고향인 에일린 구는 2003년생으로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중국으로 귀화하여 2019년도부터 각종 대회에서 중국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미중 간의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는 현실에서 에일린 구가 미국 대신 중국을 선택했으며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중국 민족의 우수성과 중국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린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언론이 에일린 구의 영웅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녀의 경기하는 모습과 금메달 소식은 매일 보도되었고 그 뒤에 항상 붙는 미국 태생이지만 중국을 선택한 엄연한 중국 국가대표라는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에일린 구는 모델로 활동할 만큼 미모도 갖춘 데다 북경오리와 양고기 전골 같은 중국 음식도 잘 먹고 중국어로 능통하게 인터뷰하는 모습은 그 즉시 그녀를 대륙의 딸로 불리게 만들었다. 거기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 대입 시험인 수학능력적성검사(SAT)에서 1천600점 만점에 1천580점을 받아 명문 스탠퍼드대학에 합격할 만큼 명석한 두뇌도 갖추었으니 중국인의 애국심 자랑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미국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2월 15일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니키 헤일리(Nikki Haley)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자유를 지지하는 국가의 깃발을 가슴에 달지, 아니면 인권 유린을 지지하는 국가의 깃발을 가슴에 달지 명확히 알고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일린 구는 국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인인지 중국인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미국에 있을 땐 미국인, 중국에 있을 땐 중국인”이라는 식으로 답할 뿐이었다. IOC 홈페이지에 에일린 구는 이중국적자로 표시되어 있다.

중국을 실망시킨 에일린 구
올림픽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일린 구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와 2월 22일자 인터뷰에서 “여전히 스키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선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고, 그 뒤로는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2022-2023시즌 출전 여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음을 밝혔다. 이것은 중국 국가대표로서 활동을 그만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중국인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고 그에 따른 결과로 돈도 많이 벌고 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면 앞으로도 중국의 영광을 위해 스포츠 선수로 남기를 바라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와 중화사상에 갇혀버린 중국인에게 선수 개인의 선택과 취향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미중관계에서 중국과 공산당을 우선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중국인의 사고가 에일린 구의 미지근한 언행에 대해서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에일린 구에 대한 찬사는 비난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전에도 에일린 구는 중국으로 귀화한 이후부터 스키 종목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중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왜냐하면 2020 로잔 동계 유스올림픽 빅에어와 하프 파이프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만큼 세계적인 지명도가 있었기 때문에 에일린 구야말로 동계올림픽 주최국의 명성에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올림픽이 시작하기도 전인 2021년 차이나모바일이나 중국은행과 같은 중국 내 대기업은 에일린 구를 광고 모델로 쓰기 위해 돈을 싸들고 달려들었다. 그녀가 중국 내에서 올린 광고 수익만 2천만 위안(약 38억 원)에 이를 것이란 보도가 상세히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다 올림픽은 그녀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올림픽 기간 중 루이비통이나 티파니앤코 같은 명품 브랜드를 포함 총 24개의 광고 계약을 맺어 4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덕분으로 각종 상금 액수를 더한 금액이 무려 1,200억 원 가까이 된다. 한마디로 중국인들의 입에서 먹튀 논란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국적으로 뛰어서 얻은 소득인 만큼 중국 선수로 계속 뛰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스포츠에 대한 중국의 성숙한 자세를 기대하며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중국의 갈등과 문제는 에일린 구의 사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포츠 세계에서 돈으로 중국의 영광을 사려는 시도가 좌절될 때 그 상처는 큰 법이다. 과거 구소련이 건재할 당시 동구권 국가들은 소수 재능있는 엘리트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서 올림픽에 내보냈다. 금메달이야말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국가의 명예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도 북한과 경쟁하며 국민의 사기를 높인다는 이유에서 금메달을 향한 엘리트 체육이 활성화한 때가 있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모습은 그 당시 스포츠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그것을 다른 목적에 이용하려는 수단화의 오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동메달을 따도 즐거운 한국 선수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스포츠 문화가 성숙되었음을 깨닫게 하지만 말이다.

스포츠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스포츠를 감동의 드라마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국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의 멋진 경기에 대해 칭찬을 아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자신의 나라가 최고라는 생각에서 스포츠 정신을 무시하고 법규를 무시해가며 진행하는 일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딤후 2:5). 

중국은 에일린 구를 탓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먹튀 논란은 늘 일어나는 법이다. 그녀는 훌륭히 경기를 마쳤고 중국에는 금메달로 보답을 했다. 혹은 다른 나라 선수들이 딴 메달에 대해 자국 선수들이 놓쳤다고 안타까워할 이유도 없다. 스포츠가 얼마나 멋진 인생 드라마인지를 생각하고 에일린 구가 얼마나 멋진 경기를 펼쳤는지를 다시 돌아보며 성숙한 자세로 스포츠를 바라볼 일이다.









사진 | 바이두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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