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세컨드》는 장이머우(张艺谋)가 연출한 23번째 장편 영화로 2021년 제15회 아시아필름어워즈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천카이거(陈凯歌)와 함께 5세대 감독을 대표하는 장이머우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며 중국영화를 세계 무대에 널리 알리고 있다. 그는 베니스영화제 최고의 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2회, 베를린영화제 최고의 작품상인 황금곰상을 1회 수상하였다. 또한 세계 최초로 동계·하계올림픽의 개회식과 폐막식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이 영화는 기술적인 요인(?)으로 2019년 베를린영화제 출품이 무산되고 편집을 거쳐 1년 뒤에 상영하였다고 한다. 이 일을 두고 문화대혁명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이머우는 《원 세컨드》를 영화에 헌정하는 러브레터(love letter)로 생각하였다. 이 영화에는 그가 평생 영화인으로 살아온 자부심이 묻어난다. 영화에서는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위해 지역적인 제한을 받지 않도록 방언(方言, 사투리)을 사용하지 않고 표준어[普通话]를 사용하였다.
1970년대 중반 중국 서북부의 노동교화소 수감자 장주성(张九声, 张译 분)은 영화상영 전에 보여주는 뉴스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자신의 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딸이 보고 싶은 그는 노동교화소 탈출을 감행한다. 산 넘고 물 건너 사막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왔지만 제1농장에서는 이미 영화상영이 끝나버렸기에 그는 다시 제2농장으로 향한다. 어머니를 일찍이 여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남동생과 둘이 살아가는 류구이뉘(刘闺女, 刘浩存 분)가 영화 필름을 훔친다. 이 때문에 장주성과 류구이뉘가 영화 필름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제2농장에 도착한 영화 필름은 훼손이 되고 만다. 영사기사 판뎬잉(范电影, 范伟 분)은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필름복원 작업을 시작한다.
장이머우는 영화를 숭고함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려 하였다. 더럽혀진 영화 필름을 복원하기 위해 마치 일종의 엄격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농장 주민들은 증류수로 필름을 세척하고 건조하여 수건으로 정성스럽게 얼룩을 제거한다. 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주제가를 함께 따라 불렀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주성, 류구이뉘, 판뎬잉 세 인물은 영화로 서로 이어진 관계이며 서로 협력하거나 대적하기도 한다.
장주성은 ‘22호 뉴스’ 필름에 나오는 딸을 보기 위해서 탈옥하고, 어린 소녀 류구이뉘와 영화 필름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판뎬잉을 위협하여 영화를 상영하게 한다. 장주성의 14살 딸은 범죄자 아버지의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밀가루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선전뉴스에 등장한다. 어린 딸은 성인들과 경쟁하며 밀가루 포대를 짊어지다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영사기사 판뎬잉은 장주성에게 뉴스에 나오는 소녀가 딸이냐고 묻는다. 장주성은 딸이 자신 때문에 죽게 된 것이라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장주성, 류구이뉘, 판뎬잉 세 인물은 딸, 남동생, 아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삶의 고통을 참고 견뎌낸다. 류구이뉘는 사내아이처럼 더벅머리에 남자 복장을 하고 여자라는 것을 숨기고 살았다. 류구이뉘는 책을 좋아하는 남동생이 이웃집에서 빌린 영화 필름으로 만든 전등갓을 불에 태워 이웃에게 배상하려고 영화 필름을 훔치려고 한 것이다. 그녀는 부모도 없이 홀로 남동생을 보호하고 빚을 갚기 위해서 동네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감내했다. 장주성은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처럼 류구이뉘 남매를 괴롭히는 깡패들을 혼내주려고 나서기도 하였다.
판뎬잉은 아들이 영화 필름을 우마차에 싣고 오다가 땅에 필름을 떨어트려 흙먼지에 더럽혀지자 아들이 어리석어서 벌어진 일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하였다. 판뎬잉의 아들은 어려서 필름 세척제를 마시고 지적장애를 갖게 되었다. 판뎬잉은 평소 제1호 영사기사라고 쓰인 찻잔을 들고 다니며 마을에서 자신만이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기능소유자라고 거들먹거렸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아부하고 밀고하는 일도 불사했다.
판뎬잉은 장주성이 도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생존을 위해 장주성에게 아부하고, 그의 딸이 나오는 뉴스의 짧은 장면을 반복해서 상영해주지만 결국 보위대에 장주성을 밀고한다. 그러나 판뎬잉은 보위대에 붙잡힌 장주성의 윗옷 주머니에 딸의 모습이 담긴 필름 두 조각을 신문지에 싸서 넣어주었다. 판뎬잉은 아들을 장애인으로 만든 죄책감과 딸을 잃은 장주성에게 연민을 느끼고 위험을 무릅쓰고 필름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보위부 대원은 압송하는 도중에 장주성의 옷 속에서 발견한 필름을 모래사막에 내팽개쳤다. 이에 장주성은 멀리서 배웅하는 류구이뉘를 바라보며 필름을 잘 보관해주길 바랐다.
장주성은 판뎬잉의 밀고를 알아채고 도망치다 류구이뉘가 자신을 도운 혐의로 보위부 대원에게 붙잡혀 욕을 볼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차마 도주하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보위부에 붙잡힌 장주성과 류구이뉘는 서로 등을 마주하고 손이 묶인 채로 영화《영웅아녀(英雄儿女)》에서 부녀가 상봉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영웅아녀》는 1964년 바진(巴金)의 소설 《단원(团圆)》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18년간 헤어진 아버지와 딸이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장이머우는 장주성과 류구이뉘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딸의 이미지를 설정하였다. 부녀지간 같은 두 사람은 상처와 고난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치유를 경험한다.
《영웅아녀》는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을 지원하는 전쟁)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며 최근에는 《금강천(金剛川)》, 《장진호(长津湖)》가 큰 인기를 끌었다. 2022년 춘제(春節)에 장이머우가 연출한 《저격수(狙击手)》가 상영될 예정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며 미중관계의 대립이 첨예한 시기에 장이머우의 영화 《저격수》가 또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귀추가 주목된다.
류구이뉘는 장주성을 ‘나쁜 놈(坏分子)’이라고 욕했다. 이는 장주성이 문화대혁명 시기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실권파) 척결을 외치는 조반파(造反派) 인사와 싸움을 하다 노동교화소에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류구이뉘가 아버지뻘인 장주성을 반동분자로 인식하는 것은 문화대혁명 기간에 벌어진 비극이며 장이머우의 다른 영화에도 나타난다.
장이머우가 옌거링(严歌苓)의 소설 《루판옌스(陆犯焉识)》를 영화로 만든 《5일의 마중(归来, Coming Home)》에서 루옌스는 지식인 반동분자로 교화소에서 탈출하여 딸과 아내를 보러왔지만 딸은 발레리나로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아버지를 고발한다. 《5일의 마중》, 《원 세컨드》 두 영화에는 문화대혁명의 반윤리적인 상처를 드러낸다. 또한 장이머우의 삶과 역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장이머우는 베이징영화대학에서 촬영을 배울 때 동기들은 예술가 집안 출신인데 자신은 출신 성분 때문에 자존감이 낮았다. 장이머우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황포군관학교[정식명칭은 중국국민당육군군관학교(中国国民党陆军军官学校)] 출신이고 장이머우의 아버지도 국민당의 군관 출신이었다. 장이머우는 문화대혁명 당시인 1968년 시골로 하방(下放)되어 3년간 노동을 하며 고생을 하다가 1971년 다시 도시로 와 셴양(咸阳)의 방직공장에서 7년간 노동자로 일하였다. 그래서 장이머우도 문화대혁명 기간 여느 지식인처럼 학문의 공백기를 보냈다. 국민당 출신 가계, 문화대혁명, 산아제한 정책 위반 등 고난의 시기를 겪고 두 번의 베이징올림픽 총감독을 맡은 그의 인생의 부침은 중국 예술가의 삶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이머우의 영화 《인생(活着)》은 위화(余华)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원작소설이 비극으로 끝나는 데 반하여 영화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해피 엔딩으로 끝맺는다. 이 영화도 결미에 2년 후 출옥한 장주성은 다시 류구이뉘와 만나서 서로를 보며 미소 짓는다.
류구이뉘는 보위부 대원에게 끌려가는 장주성에게 영화 필름으로 만든 전등갓을 흔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장주성은 출옥하여 돌아와 류구이뉘가 딸의 모습이 담긴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필름을 감쌌던 신문지만 보관하고 있었다. 이는 잃어버린 딸을 다시 찾을 수도,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의 제목은 1초이다. 1초는 순간이며 찰나이다. 1초를 반복한다고 영원이 될 수는 없다. 영사기사 판뎬잉이 장주성의 딸이 나오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었지만, 장주성은 “1초는 너무 짧다” “부족하다”라고 외친다.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딸에 대한 갈망을 해소할 수 없고 오히려 딸에 대한 상실의 고통이 커져만 갔다. 1초는 개인의 시간이며, 시대(역사)의 시간이기도 하다. 1초의 고통은 영원한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