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한국어 성어와 중국어 성어가 형태나 의미면에서 조금 다르거나 의미가 변화된 것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부터는 양국에서 사용하는 성어가 변화되지 않고 형태와 의미가 동일한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파죽지세(破竹之勢): ‘대나무를 쪼개는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적을 향해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물리치는 기세를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진서(晋书)》의 <두예전(杜预传)>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삼국시대(三国时代)는 사마염(司马炎)이 진나라를 건국하면서 막을 내린 셈이지만, 삼국 중의 하나인 오(吴)나라는 십오년 동안이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오나라를 치기 위해서 진남(镇南)대장군 두예가 이십만 대군으로 형주(荆州)를 완전 점령하고 마지막 총공격을 위해 작전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지금은 봄철이라 비가 잦고 전염병까지 발생하기 쉬우니 일단 작전을 중지하고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두예는 “지금 군사들이 위엄을 떨치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면서 곧장 오나라의 수도를 향해 진군할 것을 명령했다. 과연 오나라 군대는 두예의 군대에 항복하였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破竹之势’ [pò zhú zhī shì]이다.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적을 물리치는 등등한 기세를 이르는 말로 한국어 성어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하다.
2. 오리무중(五里雾中): ‘짙은 안개가 오리나 끼어 있는 속에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방향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후한서(后汉书)》의 <장해전(张楷传)>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의 순제(顺帝) 때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장해(张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순제는 장해에게 벼슬을 주려고 여러 번 불렀지만 장해는 아프다는 핑계로 계속 거절하였다. 장해는 《춘추(春秋)》와 고서(古书)에 통달한 학자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거느리고 있는 제자만 해도 100여 명에 달했다. 게다가 전국에서 명망이 높은 선비들을 비롯하여 귀족, 고관대작들까지 다투어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장해는 이것을 싫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하게 살았는데 은둔하고 있는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과 학자들로 인해 그의 집 앞은 여전히 사람들이 붐볐다. 그런데 장해는 원래 학문뿐만 아니라 도술(道术)에도 뛰어나 쉽게 ‘오리무(五里雾)’를 만들었다. 즉 사방 5리까지 안개를 일으켜서 사람들이 그의 집을 찾을 수 없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五里雾中’ [wǔ lǐ wù zhōng]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 방향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이르는 말로 한국어 성어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하다.
3.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经)》제41장에 나오는 말이다.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대인(大人)의 기품이 있어 무제(武帝)의 신임을 받았다. 그에게는 임(林)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출세가 늦어서 친척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 그런데 최염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큰 종이나 큰 솥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큰 인재(人材)도 이와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면서 그를 아끼고 도와주었다. 과연 그 사촌동생은 뒷날에 삼공(三公)이 되어 임금을 보필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노자는 ‘큰 사각형이 지나치게 커서 모퉁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큰 그릇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다음에 비로소 완성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大器晚成’ [dà qì wǎn chéng]이다. 큰 일을 맡을 사람이나 큰일을 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르는 말로 한국어 성어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하다.
4. 전화위복(轉禍爲福): ‘재앙과 근심, 걱정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노력과 의지를 통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성어는 사마천(司马迁)의 《사기(史记)》 <관안열전(管晏列传)>에 나오는 말이다. <관안열전>은 관중(管仲)과 안영(晏婴)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업적과 삶을 서술한 것이다. <관안열전>에서 관중에 대해서 평하길 “그는 화(祸)가 될 일을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바꾸어 성공이 되도록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관중은 뛰어난 재상이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국 시대의 종횡가(纵横家: 모사) 소진(苏秦)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에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转祸为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성공이 되게 했다(因败为功).” 이 두 이야기에서 ‘전화위복’이 유래하였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转祸为福’ [zhuǎn huò wéi fú]이다. 재앙이 바뀌어 복이 된다는 뜻으로 한국어 성어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하다.
5.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으로 적에게 포위당해 고립되어 있거나 몹시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에 빠진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사기》〈항우본기(项羽本纪)〉에 나오는 말이다. 진나라 말기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은 초(楚)나라 항우(项羽)와 한(汉)나라 유방(刘邦) 양대 세력의 천하 쟁탈전으로 좁혀졌다. 처음에는 항우가 우세했으나 점점 균형의 저울추가 유방 쪽으로 기울었다. 항우는 결국 유방과 휴전협정을 하고 각자 도읍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방이 배신해 갑자기 공격하는 바람에 항우는 참패하고 해하(垓下)에서 한나라 명장인 한신(韩信)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성 안에 포위된 항우는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군사들은 지쳤고 군량미마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나라 군대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다. 어느 날 밤, 사방에서 고향을 그리는 구슬픈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왔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을 시켜 고향의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항우는 그 노래를 듣고, “아니,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가?”하고 탄식했다. 한나라의 심리 작전이 맞아 떨어져 항우의 진영에서는 도망자가 속출했다. 항우는 진중에서 마지막 주연을 베풀었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气盖世)’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다. 그 후 남은 8백 명의 기병과 함께 오강(乌江)까지 갔다가 결국 건너지 못하고 그곳에서 31세의 나이에 자결하고 말았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四面楚歌’ [sì miàn chǔ gē]이다. 사방으로 공격 또는 핍박을 당하는데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중국어 성어는 한국어 성어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하다. 6. 태연자약(泰然自若): ‘마음에 어떠한 충격을 받거나 혹은 큰일을 당해도 아무 동요함이 없이 천연스러움’을 이르는 말이다. 천연덕스러운 태도는 상황에 따라서 좋은 뜻으로도 쓰이고 나쁜 뜻으로도 쓰인다. 이 성어는《금사(金史)》<안잔문도전(顔盏门都传)>에 나오는 말이다. 《금사》에는 73권의 열전이 수록되어 있다. 금나라에 ‘안잔문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천성이 충직하고 온후했으며 사소한 일에도 신중하였다. 그는 작전을 하면서 군영과 보루의 배치를 잘 하였고,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도 아주 주도면밀 했다. 그는 “갑자기 적이 나타나 화살과 돌을 쏘아 대는 상황에서도 태연자약하면서 부하들에게 평소처럼 호령을 내렸다(有敌忽来, 虽矢石至前, 泰然自若, 乃号令士卒如平时).” 또한 그는 매우 용감하여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서하(西夏) 이세보(李世辅)에 의해 납치된 안완고(完颜杲)를 구출하기도 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泰然自若’ [tài rán zì ruò]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위기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이르는 말이다. 이 중국어 성어는 한국어 성어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하다.
7. 천편일률(千篇一律): ‘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로 되어 있다’는 뜻으로, 여러 시문의 격조가 차별 없이 비슷비슷함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사물이 개별적인 특성 없이 판에 박은 듯이 엇비슷한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명(明)나라 왕세정(王世贞)의《예원치언(艺苑卮言)》제4권에 나오는 말이다. 왕세정은 명나라 후기 고문사(古文辞)파의 지도자가 된 문학가로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원치언》에서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백거이(백낙천)의 시는 어느 것이나 모두 엇비슷하여 시의 작법이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 시를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의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과 손을 쉽게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篇一律, 诗道未成, 愼勿轻看. 最能易人心手).”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千篇一律’[qiān piān yī lǜ]이다. 이 말은 문장이 공식화하여 있는 것을 말하거나 어떤 사물이 특징이나 변화없이 판에 박은 듯이 엇비슷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중국어 성어는 한국어 성어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하다.
사진 | 바이두 석은혜 | 본웹진 전 편집장 |